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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1월 2일 온고을교회 주일예배설교 – 황의찬목사
《 밧세바의 미투 》
시 51:1~19
〈 밧세바가 현대에 살았다면 미투 했을까? 〉
제가 목사가 되고 책을 모두 8권 펴냈습니다.
그 중에 [밧세바의 미투]가 있습니다.
밧세바는 솔로몬 왕의 어머니이자, 다윗왕의 아내이니 왕비입니다.
인류 역사가 지속하는 한, 솔로몬, 다윗, 밧세바, 이 이름들은 잊히지 않을 겁니다.
꼭 기독교인이 아니어도 이 세 사람은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인물입니다.
저의 책 [밧세바의 미투]는 이들이 주인공입니다.
미투는 2018년, 한국에 불어닥친 회오리 광풍이었습니다.
한 여성 검사가 선배 남자 검사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언론에 공개했습니다.
그때 이미 수년 전부터 미국과 유럽에서는 이러한 운동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피해를 당한 여성이 가해자를 밝히면서 사회에 호소하는 일, 그 운동을 미투라 불렀습니다.
‘미투 Me Too, 나도 피해를 당했다’ 라고 공개하는 운동입니다.
저는 ‘책 쓰는 작가 목사’로서 미투를 보면서 한 가지 발상을 했습니다.
‘미투를 하기로 한다면, 다윗 왕비 밧세바가 해야 할 것 아닌가?’
밧세바의 본 남편은 전쟁터에 나가 있었습니다.
남편을 기다리며 홀로 지내는 밧세바가 목욕하는 장면을 다윗 왕이 보게 됩니다.
욕정을 자제하지 못한 왕이 밧세바를 왕궁으로 불러들여 동침했습니다.
공교롭게도 밧세바가 임신을 했습니다. 다윗이 어떻게 수습할까요?
자기의 죄를 덮으려고 전쟁터에 있는 밧세바의 남편 우리아에게 특별휴가를 주었습니다.
그런데 우리아가 귀가하여 지내는 동안 아내와 동침하지 않습니다.
‘전우들은 화살이 빗발치는 전장에 있는데, 내가 어찌 아내와 동침을 한단 말인가?’
다윗이 밧세바의 임신을 남편 탓으로 돌리려는 꼼수는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다윗왕은 귀대하는 우리아 편에 밀서를 지참케 하여 부대장에게 전달합니다.
그 밀서에는 ‘우리아가 전쟁에서 적군에게 포위당하여 죽게 만들어라!’
왕의 명령을 누가 거역합니까? 다윗 왕은 살인교사죄를 범했습니다.
우리아가 전사했다는 통보를 받고, 다윗은 밧세바를 왕비로 삼습니다.
☞ 밧세바가 현대에 살았다면 미투했을까요? [밧세바의 미투]가 이 질문에 답합니다.
〈 다윗의 죄 〉
다윗의 죄를 한번 나열해볼까요?
첫째, 왕의 권세로 밧세바를 범했습니다.
둘째, 임신한 사실을 덮으려고 우리아에게 특별휴가를 주었습니다.
셋째, 잔꾀가 실패로 돌아가자 우리아를 죽게 하라는 밀지를 내립니다.
넷째, 우리아로 하여금 그 밀지를 품고 귀대하도록 합니다.
다섯째, 그 밀지에 따라 부대 지휘관까지 살인죄를 짓게 됩니다.
여섯째, 우리아를 죽게하고자 다른 병사들까지 함께 죽게 합니다.
일곱째, 우리아를 죽게 한 다음 청상과부가 된 밧세바를 왕비로 삼았습니다.
다윗의 이러한 죄, 하나님이 모르실 리가 없습니다. 방관하실 리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선지자 ‘나단’을 다윗에게 보냅니다. 나단이 다윗에게 죄를 상기시킵니다.
나단 선지자가 자기 죄를 낱낱이 드러냈습니다. 이때 다윗의 태도가 중요합니다.
다윗은 왕입니다. 왕의 죄를 들먹이는 선지자 나단까지도 말 한마디면 처단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여기서 자기의 죄를 직시합니다.
하나님이 선지자를 자기에게 보냈습니다.
여기서 자복하지 않는다면, 다윗은 더 이상 하나님의 사람이라 할 수 없습니다.
그 자리에서 다윗은 납작 엎드렸습니다.
그때 하나님 앞에 통회자복 하면서 다윗이 쓴 시가 오늘 설교 본문 시편 51장입니다.
시편 51장 표제부에 명백하게 밝힙니다.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한 후 선지자 나단이 그에게 왔을 때” 그리고 1절로 이어집니다.
(1절)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
이렇게 시작하는 시편 51장은 구약 성경 전체를 통틀어 최고의 ‘참회시편’입니다.
자기의 죄를 참회하는 시로써, 동서고금을 통하여 가장 탁월한 시입니다.
시편 51장이 참회에 대하여 밝혀주는 3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인간의 죄를 누가 사해주는 지 밝힙니다.
둘째, 인간의 죄는 누구에게 범죄하는 지 밝힙니다.
셋째, 인간의 출생은 죄 중에서 이루어짐을 밝힙니다.
시편 51장이 우리에게 선포하는 3가지를 정리해봅니다.
① 죄는 하나님이 사하십니다. ② 죄는 하나님께 범합니다. ③ 사람은 죄 중에 탄생합니다.
〈 첫째, 죄는 하나님이 사하십니다 〉
나단 선지자가 다윗의 죄악을 지적했을 때, 다윗은 하나님께 부복했습니다.
자기의 죄를 고지한 나단에게 엎드리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자신이 겁탈하고 왕비삼은 밧세바에게 사죄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매달립니다. 시편 51편의 많은 부분이 이 점을 분명히 드러냅니다.
제가 쓴 책 [밧세바의 미투]가 사실은 시편 51편을 본문으로 한 설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2018년에 출간했지만, 지난 주에 다시 한번 읽었습니다.
책에서 유명한 한국 영화 한 편을 거론합니다. 2007년에 상영한 이창동 감독의 [밀양]입니다.
이 영화의 주제가 ‘죄의 용서는 누가 하는가’입니다.
주인공 신애(전도연 분)는 남편과 사별하고 남편의 고향에서 살겠다며 밀양으로 갑니다.
거기서 다시 한 번 참사를 당합니다. 외아들이 유괴되어 살해당합니다.
너무나 비통한 신애는 동네 교회의 인도로 기독교인이 되기로 결단합니다.
교회는 이런 경우 범인을 용서하라고 가르칩니다.
용서함으로써 평안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애는 신앙생활 중에 마음속으로 용서했다는 확신이 들자, 범인을 만나기로 합니다.
교도소에 가서 면회를 신청했습니다. 창살을 가운데 두고 신애와 범인이 마주했습니다.
범인 : 하나님이 이 죄 많은 놈에게도 손 내밀어 주셨습니다.
저는 회개했습니다. 회개하니 하나님이 저의 죄를 용서하여 주었습니다.
신애 : 하나님이 죄를 용서해 주셨다고요?
범인 : 예, 눈물로 회개하고 용서받았습니다. 용서받고 마음의 평안을 얻었습니다.
영화 보신 분들은 이 대목을 기억하실 겁니다.
교도소를 나온 신애가 어떻게 합니까? 땅바닥에 주저앉아 울부짖습니다.
“그 사람은 이미 용서받았대요, 그런데 내가 어떻게 그 사람을 용서하냐고요?”
이 영화는 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습니다.
‘죄와 용서’ ‘죄와 죄 사함’을 주제로 세상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세상은 말합니다.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해야 한다.’
물론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피해자가 “됐습니다” 할 때까지 용서를 빌어야지요!
그런데 죄의 문제로서 거론할 때는 차원이 달라집니다.
죄인이 피해자에게 충분히 빌고 용서를 받았다고 그 죄가 사라지는가의 문제가 있습니다.
☞ 피해자가 가해자를 용서했다고 그 죄까지 사해지겠습니까?
〈 둘째, 죄는 하나님께 저지릅니다. 〉
용서는 피해자에게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죄 사함의 문제는 차원이 다릅니다.
영화 밀양에서 가해자가 피해자인 신애에게 용서받으면 죄 문제가 해결될까요?
사실 직접적인 피해자는 어머니이기 전에 살해당한 아들입니다.
살해당한 아들로부터 용서받기 전에는 그 죄가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아들은 이미 용서할 수 없습니다. 유명을 달리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이 점을 잘 알았습니다. 자신이 용서 받아야 한다면 밧세바가 아닙니다.
죽은 우리아에게 용서 받아야 합니다. 우리아와 함께 죽은 병사에게 용서받아야지요!
그러나 그들은 이미 죽었기 때문에 그들로부터 용서받을 길이 없습니다.
그러면 다윗은 어디 가서 죄 문제를 해결받고, 의인으로서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밧세바가 용서한다고 하면 해결되겠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다윗은 왕이고 밧세바는 가녀린 여인이요, 이미 다윗의 왕비가 된 몸입니다.
다윗이 밧세바에게 용서받아 죄가 해결된다면 다윗은 천 번 만 번 그렇게 했을 겁니다.
다윗은 어떻게 합니까?
(4절)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주께서 심판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하나님이 용서하시고 죄를 사하여 주지 않는다면, 세상 모든 죄, 사라지지 않습니다.
다윗의 한 마디,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이 말은, 하나님을 압박하는 말입니다.
‘나의 주홍빛과 같은 죄, 사하여 주실 분은 오직 하나님 뿐이잖습니까?’
‘하나님이 죄를 사하여 줄 수 없다면, 내가 지은 죄로 나는 단 한 순간도 숨쉴 수 없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죄 사함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이 외침은 다윗의 처절한 절규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죄 사함 받을 수 없다면, 다윗은 영원히 죄인입니다.
우리아는 죽었습니다. 병사들도 죽었습니다.
그들이 용서하지 않는데, 살아있는 밧세바가 용서한다 한들 무슨 소용입니까?
“하나님, 주홍빛 같은 내 죄, 하나님이 용서하시면 양털같이 희어집니다!”
결국 사람의 모든 죄는 피해자에게 남지 않고, 하나님께 남습니다.
① 죄는 하나님이 사하십니다. ② 죄는 하나님께 범합니다.
☞ 이 진리를 꼭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의인되어 천국갈 수 있습니다!
〈 셋째, 사람은 죄중에 탄생합니다. 〉
시편 51편을 읽다가 첫 번째 걸림돌은 4절입니다.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이 뜻을 우리가 헤아렸습니다. ① 죄는 하나님이 사하십니다. ② 죄는 하나님께 범합니다.
의문이 생기는 구절이 또 하나 있습니다. 5절입니다.
(5절)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아리송합니다. 낳아주신 어머니를 모독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여러분 생각은 어떠세요?
이 말씀에도 간과할 수 없는 심오한 진리가 숨어있습니다.
다윗이 밧세와 통정하여 임신시켰습니다. 밧세바는 태중에 아기를 갖고 왕비가 됩니다.
그런데 이 아이, 어떻게 됩니까?
다윗이 자기의 죄와 함께 이 어린 생명을 바라봅니다.
전쟁터에 나간 남편이 버젓이 있는데 밧세바를 겁탈했습니다. 임신이 되었습니다.
이 아이, 다윗의 죄로 인하여 잉태했습니다.
다윗은 이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중병을 앓을 때 금식하면서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그 기도 하나님이 외면하시고, 아이는 죽고 맙니다.
만일 이 아이가 살았다면, 자라서 자기의 출생 연원을 모두 알게 되면 어쩌겠습니까?
이 아이가 삶의 의미를 찾으면서 일생에 평강을 누리겠습니까?
다윗은 이러한 묵상 끝에 한가지 결론에 도달합니다.
“모든 태어나는 생명은 죄가 작동한 결과다.”
부부가 정상적으로 아이를 가지더라도 부부의 침실에는 남녀의 정욕이 있습니다.
섹스, 그 발로는 욕정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향하여 일어나는 욕정입니다.
물론 그 안에 사랑도 한 줄금 있지만, 그보다 더 큰 것은 정욕, 욕망입니다.
“얘야, 네가 그렇게 잉태되어 태어났다고 비통해하지 말라! 나도 죄악 중에 태어났느니라!”
“내 어머니도 죄 중에서 나를 잉태했다!”
“모든 생명은 죄 중에 태어나지만, 그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
5절 말씀은 다윗의 완벽에 가까운, 아버지로서의 부성애입니다.
그러니, 한부모 가정의 아이들이라고 도깨비 눈뜨면 죄입니다.
정자은행에서 비싼 돈 주고 산 생명이라고 차별하면 안 됩니다.
시편 51장 다윗의 참회시 참으로 놀랍지 않습니까?
① 죄는 하나님이 사하십니다. ② 죄는 하나님께 범합니다. ③ 사람은 죄 중에 탄생합니다.
〈 참회를 받으시는 하나님 〉
시편 51장을 통해서 우리가 무엇을 볼 수 있습니까?
씻을 수 없는 죄악 중에 사는 우리, 죄 사함을 받을래야 받을 수 없습니다.
다윗은 우리아를 만날 수 없습니다. 함께 죽은 병사도 만날 수 없습니다.
피해자인 그들에게는 사과도 불가능합니다. 용서도 받을 수 없습니다.
크건 작건 죄는 이러한 속성을 띱니다.
사람은 누구나 죄를 짓습니다. 죄짓지 않고 사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사람들이 저지르는 죄, 피해자로부터 용서받았다 해도, 죄는 고스란히 남습니다.
[밀양]에서 범죄의 피해자는 ‘신애’만이 아닙니다.
희생된 아이의 조부모도 있고, 친구도 있고, 스승도 있습니다. 그들이 모두 피해자입니다.
피해자가 어디 사람뿐이겠습니까? 그 범죄로 인해 사회와 국가의 기강이 무너집니다.
그 범죄는 나비효과를 일으킵니다. 범죄는 더 큰 범죄를 부릅니다.
죄는 이처럼 피해자만이 아니라, 사회, 국가, 더 나아가 역사까지 오염시킵니다.
이 죄를 누가 나서서 해결하고, 주홍빛 같은 죄를 양털같이 희게 할 수 있겠습니까?
누가 누군가를 미워했습니다. 누구를 미워한 것입니까?
바늘 도둑이 바늘 하나를 훔쳤습니다. 누구의 것을 훔쳤습니까?
소 도둑이 소 한 마리를 훔쳤습니다. 누구의 것을 훔쳤습니까?
학폭에서 가해 학생은 누구를 왕따하고 누구를 유린했습니까?
죄는 크나 작으나, 창조주 하나님을 향합니다.
하나님을 미워한 것이고, 하나님의 것을 훔친 것입니다.
하나님을 왕따하고 하나님을 유린했습니다.
① 죄는 하나님이 사하십니다. ② 죄는 하나님께 범합니다. ③ 사람은 죄 중에 탄생합니다.
오늘 예배하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죄의 문제가 얼마나 위중하고 심각한지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만일 하나님이 아니 계신다면 인간의 죄 문제 어떻게 해결할 수 있단말입니까?
하나님이 살아계시지 않는다면 우리가 짓는 죄, 누가 우리의 죄를 탕감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계셔서 천만다행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니 참으로 좋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향하여 우리의 죄를 참회할 수 있습니다.
시편 51장을 쓴 다윗은 엄청난 죄인이었지만, 엄청난 진리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시편 51장은 죄를 누구에게 어떻게 참회하고, 죄 사함을 받을 수 있는지 보여줍니다!
우리도 다윗처럼 참회하고, 다윗처럼 참회시를 써야 하지 않겠습니까?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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