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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이방 예언자 발라암
유다 광야에서는 베두인 목동들이 키우는 나귀를 종종 볼 수 있습니다. 베두인들은 이런 나귀를 ‘택시’(?)라고 권하며 호객 행위를 합니다. 다소곳이 처분만 기다리고 있는 나귀 택시들을 볼 때면, 주인에게 억울하게 맞고 하소연했던 ‘발라암의 나귀’(민수 22장)가 떠오릅니다.
사연은 이렇습니다. 이집트에서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이 모압 벌판에 다다르자, 모압 임금 발락은 이스라엘의 기세에 두려움을 느껴 그들을 저주하려고 발라암이라는 예언자를 데려오게 합니다. 발라암은 ‘발락을 따라가면 안 된다.’는 주님의 명령을 듣고 처음엔 거절하지만, 발락이 두둑한 복채를 제안하자 마음이 움직여 주님께 재차 여쭈어봅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따라가도 좋다.’는 허락이 내립니다. 그래서 나귀를 타고 길을 나서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이내 주님의 천사가 칼을 들고 막아섭니다. 나귀가 천사를 보고 길에서 비켜나자, 천사를 보지 못한 발라암은 그를 때립니다. 이때 주님께서 나귀의 입을 열어 주시니, 나귀는 영문도 모르고 때리는 발라암에게 하소연합니다. 이에 발라암은 칼만 있었어도 말대꾸하는 나귀를 죽였으리라고 위협하지만, 저주의 말로 한 백성을 해치기 위해 고용된 그가 언변으로 나귀조차 당해내지 못한 건 역설입니다. 나귀를 굴복시키는 데 ‘칼’을 필요로 했으니 말입니다. 발라암은 주님께서 눈을 열어 주셨을 때 비로소 천사를 알아보고, 나귀 덕에 목숨을 구하였음을 깨닫습니다. 이후 그는 발락을 만난 자리에서 주님의 뜻을 어기지 않고 그분의 말씀을 받아 이스라엘을 축복해줍니다.
성경에서는 발라암을 “점쟁이”(여호 13,22) 또는 ‘불의한 자’ (2베드 2,15; 묵시 2,14 등)로 묘사하기도 합니다. 이는 발라암이 이스라엘을 축복해주긴 하였으나, 애초에 복채의 유혹에 넘어간 상태였다는 점과 관계 있어 보입니다. 모압 임금에게 가지 말라는 주님의 명령을 듣고도 파격적인 대가를 제시받자 주님께 다시 여쭈어 봤던 것입니다. 이때 주님께서 뜻을 바꾸어 발라암에게 가도 좋다고 허락하신 건 일견 의문거리지만, 그에 대한 해답은 2사무 22,27에서 볼 수 있습니다: “깨끗한 이에게는 깨끗하신 분으로 대하시지만, 그릇된 자에게는 비뚤어지신 분으로 당신을 드러내십니다.” 결국 하느님께서는 허락은 하셨으나, 곧 천사를 보내어 발라암에게 호된 교훈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발라암도 메시아에 관한 예언을 남깁니다: “나는 한 모습을 본다. (…) 야곱에게서 별 하나가 솟고 이스라엘에게서 왕홀이 일어난다”(민수 24,17). 실제로 이후 동방 박사들은 “별”의 움직임을 보고 메시아의 탄생을 인식하게 되지요(마태 2,1-12). 민수기에서 발라암의 이야기를 길게 서술한 목적은, 이방 예언자조차 하느님을 주님으로 인정하고 복종하였음을, 이스라엘의 가나안 진입을 막을 자가 없었음을 보여주려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이 이야기는 동방에서 온 박사들이 이스라엘 백성보다 먼저 메시아를 알아보았듯이, 발라암도 이방인이지만 이스라엘 예언자들에 앞서 구세주와 관련된 신탁을 전했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성경 73 성경 통독 길잡이] 요나서
요나서 1장 1절을 보면 요나는 아미타이의 아들로 소개가 됩니다. 2열왕 14장 25절에 따르면 아미타이의 아들 요나는 예로보암 2세가 다스리던 시절(BC 787-747년)에 활동한 예언자입니다. 하지만 요나서에서 요나가 북이스라엘이 아닌 아시리아의 수도인 니네베에서 예언자로서의 소명을 수행한 것으로 보면 요나서에서 말하는 요나가 열왕기 하권에서 말하는 요나와 같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요나서에서 사용하고 있는 어휘나 문체 그리고 내용을 살펴보면 요나서가 작성된 시점은 예로보암 2세가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시점이 아닌 훨씬 후대로서 바빌론 유배를 마치고 돌아온 페르시아 시대에 해당합니다. 따라서 요나서는 열왕기 하권에서 말하는 예로보암 2세 때 활동하던 아미타이의 아들 요나라는 인물을 채택해서 BC 5세기경, 즉 페르시아의 영향 아래에서 에즈라-느헤미야가 이스라엘을 재건하던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하는 하느님의 말씀이 됩니다. 에즈라-느헤미야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은 더이상 왕정국가의 형태를 지닐 수 없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을 재건하기 위해서 민족적이며 종교적인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노력을 다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는데 박차를 가했으며, 율법을 충실히 지키는 삶을 살려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모습은 자연스럽게 이민족을 향한 배타적인 태도로 이어지게 되었는데 요나서는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그들의 생각과는 다른 하느님의 뜻을 전하고 있습니다.
요나서는 총 4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각 장은 유기적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먼저 1장에서 하느님께서 요나에게 니네베로 가서 회개의 메시지를 선포하라고 이르십니다. 하지만 니네베는 거친 폭력의 도시이며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아시리아의 수도였기에 요나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주님을 피해 당시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장 먼 곳으로 알려진 타르시스로 향합니다. 하지만 항해 중에 폭풍을 만나게 되고, 이를 피하고자 배에 탄 사람들이 각자가 믿는 신에게 기도를 해보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뱃사람들이 제비를 뽑아 누구 때문에 이러한 재앙이 닥쳤는지 알아보는 과정에서 요나가 하느님을 피해 달아나는 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를 희생제물로 바다에 내던지게 됩니다.
2장에서 요나는 하느님의 도움으로 물고기 뱃속에서 사흘 낮과 밤을 보내면서 목숨을 구하게 되고 하느님께 회개의 기도를 바칩니다. 하느님의 구원을 체험한 요나는 니네베로 가서 회개를 선포하라는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합니다.
3장은 니네베에 도착한 요나가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모습과 이에 대한 니네베 사람들의 반응을 전해줍니다. 요나는 니네베에 가서 “이제 사십 일이 지나면 니네베는 무너진다!”(3,4)라고 선언합니다. 충격적인 선언에 임금을 비롯한 니네베의 모든 사람들은 단식을 선포하고 회개를 상징하는 자루옷을 입은 뒤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칩니다. 사람은 물론이고 짐승까지도 아무것도 먹고 마시지 않은 채 자루옷을 걸치고 하느님께 부르짖으며 악한 길과 폭행에서 돌아선 뒤 하느님의 자비를 간청하라는 니네베 임금의 선언은(3,7-9 참조) 이방민족인 니네베 사람들의 완전한 회개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모습을 보시고 하느님께서는 니네베에게 내리고자 하셨던 재앙을 거두십니다.
마지막 4장에서는 니네베 사람들의 회개를 바라본 요나의 태도와 하느님의 뜻이 이어집니다. 요나는 니네베 사람들의 회개하는 모습과 하느님께서 자비를 베푸시어 재앙을 내리시지 않는 것을 두고서 “아, 주님! 제가 고향에 있을 때에 이미 일이 이렇게 되리라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저는 서둘러 타르시스로 달아났습니다. 저는 당신께서 자비하시고 너그러우신 하느님이시며, 분노에 더디시고 자애가 크시며, 벌하시다가도 쉬이 마음을 돌리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제 주님, 제발 저의 목숨을 거두어 주십시오.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것이 낫겠습니다.”(4,2-3)라고 말하면서 화를 냅니다. 요나는 먼저 자신이 하느님께서 재앙을 내리실 것이라고 이야기했는데 그러지 않으심에 따라 자신의 권위가 실추되었으며 거짓말쟁이가 되었다고 생각하면서 화를 냈습니다. 즉, 자신들의 원수인 아시리아 사람들을 사랑하시고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시는 하느님의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화를 낸 것입니다. 요나는 니네베 성읍 동쪽에서 초막을 짓고 지내면서 아주까리 나무 그늘 아래에서 더위를 피했습니다. 그러다가 벌레가 들어 아주까리가 시들어버렸고 뜨거운 햇볕에 그대로 노출되자 요나는 다시 한 번 하느님께 죽기를 자청하며 화를 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런 요나에게 네가 아주까리 하나조차도 아까워하며 동정하는 것처럼 수많은 사람들, 수많은 짐승들이 니네베에서 하느님을 모른채 죄를 지으며 살고 있는데 내가 어떻게 동정하지 않을 수 있겠냐고 말씀하시면서 이스라엘 백성을 넘어서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시며 구원으로 이끌고자 하시는 구원의 보편성이라는 당신의 뜻을 알려주십니다. 이를 통해 하느님께서는 죄악을 저지른 니네베에도 회개가 필요하지만 하느님의 자비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상설벌악이라는 정의에만 사로잡혀 있는 요나를 비롯해서 민족적-종교적 배타중의에 빠져 있었던 에즈라-느헤미야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회개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주셨으며, 정의를 넘어서서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자비를 닮으라고 가르쳐주고 계십니다.
[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54) 예레미야서
하느님의 사랑과 용서로 이뤄지는 ‘새로운 계약’
히브리어 구약 성경은 예레미아서를 ‘이르메야후’라고 표기합니다. 우리말로 “야훼께서 던지다” “야훼께서 급히 보내다”라는 뜻입니다. 이를 헬라어 성경 「칠십인역」은 ‘이에레미아스’(Ιερεμιαs)로, 라틴어 대중 성경 「불가타」는 ‘예레미아스’(Jeremias)라고 음역했습니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발행한 우리말 「성경」은 ‘예레미아서’라고 표기합니다.
예레미야서는 기원전 627~587년 약 40년간 남왕국 유다를 무대로 펼친 예레미야 예언자의 활동과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유다 왕국의 므나쎄 임금(기원전 687~642) 통치 말기에 예루살렘 동북쪽 벤야민 지파 땅 아나톳에서 사제 가문의 에비야타르 후손으로 태어났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예루살렘 멸망 40년을 앞두고 20세 청년 예레미야를 당신의 예언자로 부르십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예레미야는 유다 왕국 요시아 임금 13년(기원전 627년)에 부르심을 받아 예루살렘이 바빌로니아에 의해 함락되던 치드키야 11년(기원전 587년)까지 예언자로 활동했습니다.
예레미야가 예언자로 활동하던 40년 동안 유다 왕국은 요시야, 여호아하즈, 여호야킴, 여호야킨, 치드키야 다섯 임금이 바뀔 만큼 정국이 불안하고 멸망으로 치닫던 매우 혼란한 때였습니다. 예레미야는 유다 왕국이 처한 위기를 내다보며 하느님의 뜻에 순응하고 주님께 의탁하지 않으면 백성이 기다리는 ‘하느님의 날’은 구원과 승리의 날이 아니라 패배와 멸망의 날이 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예레미야는 ‘말씀의 고독한 예언자’라 불릴 만큼 고난과 고통, 고독으로 점철된 생애를 살았습니다. 그는 평생 가족과 동족, 사제, 예언자, 정치가들로부터 외면당해 ‘외톨이’로 살면서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그는 외적으로 동포와 동료들의 살해 위협 속에서, 내적으로 본성에도 맞지 않는 예언자의 소명을 수행해야 하는 데서 오는 끝없는 갈등 속에서 자기 사명을 완수합니다.
예레미야는 바빌로니아가 예루살렘을 점령한 후 바빌론으로 가서 편하게 살라는 제의를 받았지만 거절합니다. 그는 유다 지방관으로 임명된 그달야와 함께 황폐한 유다에 남습니다. 결국, 그는 친이집트 세력에 의해 그달야가 살해된 후 바룩과 함께 이집트로 끌려간 후 행방이 묘연해집니다.
예레미야서는 이사야서와 더불어 대예언서라 불립니다. 예레미야서는 바빌론 유배 시대 초기에 이미 여러 문서와 기록들로 흩어져 있었고, 신명기계 학파에 속하는 인물이 최종 편집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예레미야서는 52장으로 편집돼 있습니다. 이를 도입부(1,1-3), 1부 유다와 이스라엘에 대한 신탁(1,4-25장), 2부 예레미야 전기(26-45장), 3부 이민족에 대한 신탁(46-51장), 4부 역사, 부록(52장)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서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주제는 하느님을 두고 거짓 예언자와 참 예언자가 벌이는 첨예한 갈등입니다. 거짓 예언자 무리를 대표하는 하난야계 대부분은 관료와 사제, 제도권 예언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이집트의 후원을 받아 바빌로니아로부터 독립을 추구하는 친이집트 세력 구성을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기원전 587년 8월 예루살렘 함락 후 바빌론으로 끌려가진 전에는 ‘예루살렘의 안정과 견고함을 위한다’는 내용의 신탁을, 유배 후에는 ‘왕과 추방된 지도자들이 신속히 돌아온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참 예언자 예레미야를 따른 무리는 아히캄의 아들 그달야와 네리야의 아들 바룩, 신명기계 개혁에 적극 가담한 소수의 궁정 관리들, 키르얏 여아림 출신 우리야, 일부 사제들로 바빌론에 복종하고 그들과 함께할 것을 추구하는 친바빌론 세력 구성을 주장했습니다. 이들은 유배 전 ‘거짓 예언자들은 스스로 조작해낸 환시와 그럴듯한 말로 유다의 부만 축내는 자들’이라고 고발합니다. 유배 후에는 ‘바빌론 유배 기간이 수십 년에 이를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예레미야서는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이 맺는 ‘새로운 계약’을 드러냅니다. 하느님께서 역사에 개입하신 것은 당신 백성을 무조건 처벌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뉘우치게 해 그들을 구원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말합니다.(3,14-18; 16,14-15; 24,4-7)
하느님과 이스라엘은 ‘혼인’ 관계입니다. 신랑이신 하느님께서 열정적인 사랑을 보여주시지만, 신부인 이스라엘은 그 사랑을 배신하는 행위를 일삼고 있다는 것입니다.(2,20-25) 따라서 악으로 기울어진 완고해진 마음을 되돌리는 것은 인간 스스로 힘으로는 불가능하며 하느님의 개입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리고 죄를 벗기 위한 ‘마음의 할례’가 필요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새로운 마음속에 당신의 법을 새겨주실 것입니다. 그때 비로소 인간은 하느님을 바로 알고 그분의 뜻에 따라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31,31-34)
하느님의 이러한 개입은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이 맺는 ‘새로운 계약’이 될 것입니다. 이 새로운 계약은 전적으로 하느님의 사랑과 용서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신약 성경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서간은 이 계약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되었다고 풀이합니다.(히브 8,8-12; 10,16-17)
[허영엽 신부의 성경 속 인물] (1) 내가 만약에 아담, 하와라면?
초등학교 주일학교는 모두 개근을 했다. 그렇게 어린 시절 싹수부터 파릇파릇했냐고? 절대 아니다. 온갖 핑계와 잔병치례로 정작 학교는 많이 결석했다. 주일미사와 주일학교는 빠지면 평소 인자하던 아버지가 화를 내시고 회초리를 드셨다. 주일학교에서 배운 교리 중에 지금도 생생한 건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다.
한 학생이 손을 번쩍 들며 “하느님은 왜 사과를 따먹지 말라하셨나요?”라고 물었다. 그런데 대학생인 주일학교 선생님이 당황하고 얼굴이 빨개지고 말씀도 꼬이셨다. 그러자 옆에 개구쟁이 친구가 발로 툭차며 “짜식아, 하느님이 먹지 말랬잖아” 하니까 “그러니까? 왜 먹지 못하게 했냐고요?”하면서 두 놈이 엉겨붙어 뒹굴면서 수업이 끝났다. 호기심 많던 친구는 대학교수가 되었고 선생님을 도우려했던 친구는 변호사가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중요한 정곡을 찌르는 질문이었다.
하느님은 에덴동산을 완벽한 장소로 창조하셨다. 창조사업의 갑과 을은 확실하다. 인간에게 이미 창조된 피조물들을 관리할 책임과 권리를 주셨고 단 하나 하느님이 지적한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는 것이다. 아담 부부는 동산의 모든 것이 내 것인데 저 나무 열매 하나쯤이야 하고 쉽게 생각했다. 이때 유혹자 뱀이 등장한다. 구스의 작품 ‘뱀에 유혹당하는 아담과 하와’(1470년경)를 보면 뱀의 앞부분은 아름다운 사람의 모습으로 하와를 올려다보고 있다. 뱀이 사람을 유혹할 때 송곳 질문을 한다. 왜 그 열매는 안 먹냐고. 하와는 열매를 먹으면 우리가 죽는다고 대꾸한다. “이 바보들아, 거짓말이야. 그 열매를 먹으면 너희 눈이 밝아져 하느님처럼 되는 거야.”
피조물이 하느님처럼 될 수 있다는 유혹, 내가 전지전능한 신이 된다는 유혹의 말이 아담 부부에게 꽂힌다. 아담 부부는 결국 하느님이 만들어 놓은 질서를 어지럽힌다. 하느님과 우리를 떼어놓으려는 악의 유혹은 항상 달콤하다. 우리나라의 범죄 중 가장 많은 범죄는 사기라고 한다. 사기인줄 미리알고 넘어가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사탄은 본시 고발자라는 뜻으로, 뱀(사탄)의 역할은 인간 삶 안에 있는 끝없는 욕심과 한계성을 지적한다. 우리는 늘 경각심을 가져야한다.
“사탄의 가장 은밀한 간계는 오늘날 사탄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확신시키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오죽하면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저서에 ‘악마는 있다’라는 제목을 붙이셨을까. 하느님의 말씀을 어긴 아담 부부는 하느님이 무서워 나무 뒤로 숨었다. 하느님은 사람을 부르신다.
“ 너 어디 있느냐?”
이 질문은 장소를 묻는 게 아니라 지금 우리 모두에게 하는 질문이다.
“나는 누구이고,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나는 누구인가?”
인간의 본질에 관한 문제이다. 올해 이 문제의 해답을 찾으려고 노력할 때 나의 삶은 좀 더 겸손해지고 새로운 눈을 뜨게 될 것 같다.
[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한나의 서원
실로는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30킬로미터가량 떨어진 옛 성읍입니다. 이스라엘의 마지막 판관 사무엘이 어린 시절 그를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은 성소가 있던 곳입니다(1사무 3장). 그 성소는 어머니 한나가 불임으로 고통받다 주님께 기도하고 서원해 사무엘을 얻은 곳이기도 합니다.
한나는 에프라임 땅에 살던 엘카나의 첫째 부인으로 암시되는데요(1,2), 그가 아이를 낳지 못하자 둘째 부인으로 프닌나가 들어온 듯합니다. 한나와 프닌나의 이런 관계는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와 하가르, 야곱의 아내 라헬과 레아를 떠올려줍니다. 사라와 라헬의 불임으로 남편이 다른 여인에게서 먼저 아이를 얻고 그로 인해 여인들 사이에 갈등이 불거진 점이 공통적입니다.
한나는 불임과 프닌나의 조롱으로 마음고생하다 실로 성소에서 서원을 하는데(1,11), 서원의 내용이 역설적입니다. 아이를 얻으면 그 아이를 주님께 바치겠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아이를 갖기 위해 아이를 포기하겠다고 서약한 셈이니, 당시 한나의 신세가 얼마나 암담했는지 말해줍니다. 이 과정에서 한나의 성품도 드러납니다. 불임을 조롱하며 괴롭히는 프닌나에게(6절) 앙갚음하거나 남편의 사랑을 과시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상대에게 받은 고통을 상대에게 돌려주지 않고, 홀로 하느님 앞에서 해결하려 하였습니다(7.10절). 아마도 한나는, 프닌나가 괴롭히는 원인이 불임인 자신에게 남편이 과분한 대우를 해준다는 데에 있음을 알고 있었던 듯합니다. 한나를 지극히 사랑한 남편의 처사는 1사무 1,5에서 엿보입니다: “한나에게는 한몫밖에 줄 수 없었다.” 여기서 “한몫”으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사실 ‘두 몫’으로 해석 가능합니다. 그러니까 남편 엘카나가 측은히 여기며 사랑한 한나에게 정해진 몫의 두 배를 주는 일이 되풀이되자 프닌나가 분노한 것입니다(5-7절). 그러나 한나는 프닌나에게 앙갚음하지 않고 주님 앞에 나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서원하였습니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하지 않았을 터이지만, 너무 간절하고 그 외에는 다른 길이 없었기에 자신이 그토록 바란 아이를 하느님께 내어놓겠다는 서원을 했던 것입니다.
이런 한나의 기도를 주님께서 들어주셨다는 사실은 실로의 사제 엘리의 말(17절)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한나의 사연에 대해 알지 못했던 엘리가 축복해주자, 그는 음식을 먹었고 얼굴도 전처럼 어둡지 않게 되었다고 합니다(18절). 드디어 한나는 소원대로 아이를 낳았습니다. 사무엘이 젖을 뗄 무렵에는 아들을 성소로 데려가 자신의 서원을 지켰습니다(1,24). 세 살 남짓의 사무엘이 성소에 남겨져 사제 엘리의 손에서 자라게 된 건, 성전에 홀로 남았던 어린 예수님이 자신은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한다고 말한 루카 2,49을 상기시켜줍니다. 또한 한나가 부른 기쁨의 노래(2,1-10)는 이후 성모님의 노래 ‘마니피캇’(루카 1,46-55)에도 인용됩니다.지금의 실로는 유적으로만 남았지만, 이곳에서는 상대에게 앙갚음하지 않고 오직 하느님께 매달리며 노력한 끝에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를 낳은 한나에 대해 생각해보게 됩니다.
[빛이 되라] 하느님의 ’남다른‘ 백성 : 마지막 이야기, 우리가 말씀으로 무장해야 하는 이유
거룩한 삶이란 남들과는 다른 삶을 사는 것이라 했다. 그것은 마치 연꽃과도 같다. 진흙탕 속에서도 깨끗하고 고결한 아름다움을 잃지 않기에 불교의 상징으로 쓰이지만, 이것이 어찌 불교만의 것이겠는가? 그것은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삶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지만, 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아니다. 세상 사람들에겐 세상 사람들의 삶이 있고 우리에게는 우리의 삶이 있다. 사회의 법과 하느님의 법은 다르고 대중의 길과 하느님 백성의 길은 다르다. 구약은 이러한 하느님의 길을 걷고자 노력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역사를 잘 보여준다.
그러나 그 두 개의 길이 물과 기름처럼 따로 떨어져 각자도생 하는 것은 아니다. 세상과 구별되어야 한다고, 세상을 버리고 우리만의 삶을 살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란 뜻이다. 오히려 우리는 이 세상을 하느님께 속한 세상으로 만들어가야 한다. 이 세상 사람들 역시 하느님의 길을 걷고 하느님을 섬기며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아가도록 하는 것, 이 세상에 하느님의 나라를 만드는 것, 그것을 우리는 ‘복음화’라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 스스로 먼저 하느님 말씀으로 무장하는 일이다. 하느님을 모르는 이가 이 세상 사람들과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가치관을 가지고 같은 행동을 하며 살아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다르다. 우리는 하느님을 알기에, 하느님 말씀에 따라 생각하고 하느님 법에 따라 행동해야 할 백성들이다. 하느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약속의 땅으로 데려가시기 전에 40년간의 광야 생활 동안 당신의 말씀으로 백성들을 훈련시키셨다. 하느님은 바빌론 유배라는 시련 속에서도 당신의 백성들이 다시금 당신의 말씀으로 무장할 수 있도록 이끄셨다. 이처럼 우리도 하느님의 말씀을 통해 하느님의 백성이 된다. 그 말씀을 순종으로 받아들이고 섬길 때, 비로소 주님이 우리를 다스리시게 되는 것이다.
아! 온 세상 모든 이가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여, 그 법에 순종하여 살아간다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세상 모든 이가 스스로 사랑의 법을 살아간다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 그럴 수 있다면, 그 순간, 그 곳이 바로 하느님의 나라가 아니겠는가? 그러기에 하느님의 나라는 갑작스럽게 닥치는 것이 아니라 물들어가는 것이구나 싶다.
우리 각자의 삶엔 색이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한다. 세상 사람들에겐 세상 사람들의 색이 있고 우리에겐 우리의 색이 있다고. 우리 공동체들은 어떤 색으로 물들어가고 있을까? 세상의 색일까? 복음의 색일까? 세상의 색으로 물들어가고 있다면 그것이 ‘세속화’요, 오히려 이 세상을 복음의 색으로 물들여가고 있다면 그것이 ‘복음화’일 것이다. 우리가 늘 말씀을 가까이하고 묵상하며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내 생각과 내 가치와 내 삶을 말씀의 빛으로 바로잡지 않으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서 그러했듯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에 물들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말씀대로 살아 그 말씀이 우리를 다스리게 된다면, 사랑이신 하느님의 법이 우리를 다스리게 된다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우리가 주님의 사람들임을 알게 될 것이고(요한 13,35 참조) 그들도 우리를 보며 복음의 색으로 물들어가게 되지 않을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수많은 민족들의 문화와 유혹들 앞에서도,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말씀으로 살아가는 자신들만의 길을 놓지 않았다. 그것이야 말로 그들의 정체성이요, 생명줄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나아가야 할 생명의 길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삶의 법이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다시 새겨본다.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을 다스리게 하십시오. … 그리스도의 말씀이 여러분 가운데에 풍성히 머무르게 하십시오.”(콜로 3.15.16)
[사도들의 기쁨과 삶을 담은 사도행전 읽기 40]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
명동 거리를 거닐다 보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문구를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예수천국, 불신지옥’입니다. ‘과연 예수님을 믿으면 천국에 가고,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갈까? 만약 그렇다면 하느님의 뜻은 인간에게 불안감과 공포심을 심어주는 것인가?’ 여러 가지 생각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러나 사도행전을 수차례 읽어봐도 예수님을 안 믿으면 지옥에 떨어진다는 식의 불안과 공포를 조장하는 말은 찾을 수 없습니다. 오히려 인간이 예수님을 거부하고 십자가에 못 박았지만,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살리셔서 주님과 메시아로 삼으셨다는 이야기만 할 뿐입니다. 자신의 구원을 위해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죄를 용서받으라는 말과 더불어 말이지요. 모두 불안과 공포보다는 하느님의 자비와 용서를 느끼게 하는 선언입니다.
사도들의 삶은 어떻습니까? 첫 번째 순교자인 스테파노는 자신을 향해 죽음의 돌을 던지는 이들을 위해 “주님, 이 죄를 저 사람들에게 돌리지 마십시오.”(7,60)라며 용서의 기도를 바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오로는 여러 우상과 신상들을 세워 놓은 아테네 시민들을 향해 대단한 종교심을 가졌다고 칭찬하며 복음을 선포했습니다. 그들의 복음 선포는 열정적이며 친절했고, 공포가 아닌 감화를 불러일으켰습니다. 또한 많은 이들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목숨을 내어주신 섬김의 그리스도를 선포하였습니다. 우리의 복음 선포도 마찬가지여야 합니다.
요한의 첫째 서간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 사랑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 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1요한 4,10-11) 그리스도인들이 선포해야 하는 복음은 심판과 단죄가 아닌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이 핵심입니다. 그러나 어둠에 빠진 세상은 욕망과 탐욕 속에서 빛과 사랑, 진리 등 모든 것을 지우려고 합니다. 빛이며 사랑이신 그리스도를 십자가의 죽음으로 몰아넣었듯이 말입니다. 그렇지만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당신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렇게 선포하십니다.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 16,33)
우리는 부활을 통해 세상을 이기신 그리스도 안에서 용기를 내야 합니다. 혐오와 폭력, 불안과 공포를 조장하는 말들 앞에서 사랑과 섬김, 용기와 희망을 선포해야 합니다. 하느님은 세상의 심판이 아닌 그리스도를 통한 모든 이의 구원을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많은 이들은 사랑과 희망, 진리의 메시지를 듣고 싶어 합니다. 우리는 이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을 선포해야 합니다. 우리가 바로 이 일의 증거자,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입니다.
[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53) 이사야서
이스라엘에 구원과 평화를 주시는 분은 ‘하느님’
히브리어 구약 성경은 이사야서를 ‘예샤아야후’라고 표기합니다. 예샤아야후는 우리말로 ‘야훼께서 구원하신다’ ‘야훼는 구원이시다’라는 뜻입니다. ‘여호수아’와 ‘예수아’와 같은 어원을 가진 이름입니다. 헬라어 성경 「칠십인역」은 ‘에사이아스’(Ησαιαs)로 표기합니다. 라틴어 대중 성경 「불가타」는 ‘Esaias’와 ‘Isaias’로 음역했고,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펴낸 우리말 「성경」은 ‘이사야서’라 표기하고 있습니다.
예언자를 히브리말로 ‘나비’라고 합니다. 성경에서 예언자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사람’ ‘하느님의 말씀이 건네진 사람’을 뜻합니다. 곧 예언자는 ‘하느님의 대변자’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사야서는 66장으로 엮은 ‘하느님의 말씀’ 모음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사야서는 시대 배경에 따라 제1부 1-39장, 제2부 40-55장, 제3부 56-60장으로 나눕니다. 이사야서 제1부는 아시리아가 팔레스티나 지역을 지배하고 있던 기원전 8세기를 배경으로 합니다. 제2부는 1부보다 200여 년이 지난 기원전 6세기 ‘바빌론 유배 시기’로 바뀝니다. 아시리아 대신 바빌로니아 제국이 등장하고 기원전 587년에 일어난 예루살렘 성전 파괴 사건을 옛일로 기술하고 있습니다.(이사 40,2) 아울러 기원전 539년 페르시아 키루스 임금이 바빌로니아를 점령하고 포로로 끌려온 유다인들의 귀환을 허락하는 칙령을 발표하는 내용이 언급됩니다.(이사 41,2; 44,28; 45,1) 제3부는 기원전 538년 바빌로니아 유배 이후부터 에즈라와 느헤미야 시대 이전까지를 배경으로 예루살렘 성전 재건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사야서 제1부는 이사야 예언자가 직접 등장합니다. 이사야는 기원전 740년 유다 왕국 우찌야 임금이 죽던 해에 부르심을 받아 요탐, 아하즈, 히즈키야 임금 시대, 곧 기원전 8세기에 활동한 예언자입니다. 그는 기원전 760년 예루살렘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아모츠였고, 그는 느비야(여성 예언자, 예언자의 부인으로도 해석됨)와 혼인해 두 아들을 낳았습니다. 지적 수준이 높고 임금과 고위 관리들을 어렵지 않게 접촉하고 다윗 왕조와 예루살렘을 중시하는 것으로 보아 이사야 예언자는 예루살렘 귀족 출신으로 여겨집니다. 이사야가 언제 죽었는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성경학자들은 열왕기 하권 21장 16절을 근거로 예언자들을 처형시킨 므나쎄 임금(기원전 687~642년)에게 죽임당했으리라 추정합니다.
이사야서 제1부는 기원전 736~734년 시리아-에프라임 전쟁을 알려줍니다. 시리아 르친 임금과 이스라엘 페카 임금이 동맹해 남 왕국 유다를 쳐들어와 아하즈 임금을 몰아냅니다. 이때 이사야 예언자는 아하즈 임금에게 “다윗 왕조와 예루살렘을 선택하신 분은 하느님이시다”며 “하느님을 믿어야 굳게 서 있을 수 있다”고 독려합니다.
이사야서 제1부는 또 기원전 701년 아시리아 산헤립 임금이 히즈키야 임금 시대 유다 왕국을 침공한 사건을 알려줍니다. 이 시기 유다 왕국의 영토는 예루살렘뿐일 만큼 쇠락했습니다. 하지만 히즈키야 임금은 하느님을 신뢰하고 예루살렘 성전에서 주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밤사이 주님의 천사가 아시리아군 18만 5000명을 죽여버립니다. 이에 이사야는 하느님께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고백하며 하느님께 대한 흔들림 없는 믿음을 강조합니다. 그러면서 임금으로 오실 중개자의 개입으로 구원받으리라는 희망을 예언합니다.(이사 8,23-9,6)
이사야서 제2부는 이사야 예언자가 쓴 것이 아닙니다. 성경학자들은 제2부의 저자를 편의상 ‘제2 이사야’라 부릅니다. 다윗 왕조는 이사야의 예언대로 멸망했고, 유다인들은 바빌론으로 끌려가 50년간 포로생활을 하다 예루살렘으로 귀환합니다. 그래서 제2부는 “위로하여라, 위로하여라, 나의 백성을”(이사 40,1)로 시작합니다. 제2 이사야는 고난을 겪는 ‘주님의 종’을 통한 구원을 선포합니다. 이스라엘의 구원을 주신 분은 주님이신 하느님이시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도 하느님과 평화의 계약을 맺고 기쁨과 평화를 누리게 되리라고 예언합니다.(이사 52,13-55,6) 그리스도교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고난을 겪는 주님의 종(이사 50,4-9), 속죄의 죽임을 당하는 종(이사 52,13-53,12)이 실현됐다고 선포합니다.
이사야서 제3부 저자 역사 다른 사람입니다. 성경학자들은 이 저자를 ‘제3 이사야’라고 편의상 부릅니다. 제3 이사야는 하느님의 구원이 가까이 와 있으나 실현되지 못하는 것은 인간의 죄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 죄는 바로 부도덕한 삶입니다. 따라서 진정한 회개는 이런 죄를 깨닫는 데에서 시작합니다.(이사 59,9-29)
그래서 제3 이사야는 ‘정의와 공정’을 호소합니다. 곧 제3 이사야는 정의와 공정을 실천할 때 구원이 실현된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제3 이사야는 유다인이 아닌 이방인이라도 정의와 공정을 실천하면 구원될 수 있다 합니다. 제3 이사야는 이 보편 구원 사상을 앞세워 하느님께서 계획하신 구원 역사는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펼쳐지며 예루살렘은 만방으로 펼쳐질 구원의 중심이라고 합니다.
[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향백나무
성경에서 나무는 왕국 또는 왕조의 상징으로 자주 등장합니다. 대표적인 예가 “이사이의 그루터기에서 햇순이 돋아나고 (···) 새싹이 움트리라.”(이사 11,1)는 구절입니다. 여기서 “햇순”과 “새싹”은 “이사이의 그루터기”인 다윗 왕실에서 나올 미래의 임금을 상징합니다. 특히 향백나무(체드루스)는 왕국과 왕조의 상징으로 자주 쓰였는데요, 원산지는 이스라엘 북쪽에 자리한 레바논입니다.
레바논은 ‘하얗다’라는 뜻으로 눈 덮인 모습을 반영한 지명입니다. 향백나무는 이런 추운 지방에서 자라므로 곧고 질겨 예부터 훌륭한 건축재였습니다. 현재 생존하는 나무가 천 년 이상 되었다고 하니 장수하는 나무입니다. 이사야가 “레바논의 영광”(이사 35,2)이라고 칭한 이 나무는 목재로도 좋지만, 진과 기름엔 독특한 향이 있어 미라 방부제나 향수로도 쓰였습니다. 그래서 레바논 숲은 나무가 부족한 주변 나라에게 매우 매력적인 곳이었습니다. 이집트는 천오백 년 동안이나 레바논의 침엽수를 가져다 배의 건조, 신전과 성문 등의 건축에 썼고, 기원전 12세기부터는 아시리아도 목재를 얻기 위한 경쟁에 뛰어들었습니다. 성경에는 기원전 701년 유다 왕국을 공격한 아시리아의 산헤립 임금이 레바논 산지를 황폐화한 사건이 나오는데요, 이때 산헤립은 레바논의 나무들을 베어 산 정상까지 나아갔다고 떠벌립니다(2열왕 19,23).
레바논 숲의 소유주가 티로일 때, 티로와 돈독한 관계에 있던 다윗과 솔로몬은 향백나무로 궁전을 지었고, 솔로몬은 성전도 봉헌할 수 있었습니다(2사무 5,11; 1열왕 5,19-24; 7,2-3). 궁전과 성전의 외벽은 돌로 만들지만 내벽과 천장은 향백나무를 써서 단단하고 윤이 나게 꾸몄던 것입니다(6,15). 그 이후부터 향백나무는 다윗 왕실의 상징이 됩니다. 예언자들은 종종 다윗 왕실을 향백나무에 견주며 메시지를 전달하였습니다(예레 22,23; 에제 17,3.12 등). 그렇다고 향백나무가 긍정적인 의미만 지녔던 건 아닙니다. 이사 2,12-17에는 오만의 상징으로 등장하는데, 그 내용은 향백나무와 참나무 위로 주님의 날이 닥치면 세상의 교만이 심판 받으리라는 거였습니다.
이렇게 왕국과 왕조를 상징하는 나무 모티프는 신약성경에까지 이어져 예수님의 가르침에 반영됩니다. 나무의 종류는 달라졌지만, 예수님께서는 하늘나라를 ‘겨자나무’에 비유하셨습니다(마태 13,31-32 등). 다시 말해,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자라 오만하게 보일 수 있는 향백나무와 달리, 예수님의 나무는 풀처럼 연약하지만 옆으로 옆으로 자라며 온 들을 가득 채운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낮은 자들까지 감싸 안으신 그분처럼 말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보잘것없는 목수의 아들이지만, 당신 모습처럼 풀보다 조금 더 클 뿐인 겨자에게서 하늘나라가 드러나리라는 신비를 알려주셨습니다.
고대근동에서 많이 사랑받은 향백나무 숲은 안타깝게도 오랜 벌채로 인해 크게 손상되었습니다. 천천히 자라는 나무라 복구가 쉽지 않지만, 회복을 위한 노력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현재 레바논 국기에도 들어가 있는 향백나무는 과거 그곳의 풍요롭고 찬란했던 모습을 떠올려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