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임재
(시편 139:7~10)
성도가 신앙 생활하면서 가끔 힘들 때가 있습니다. 이렇게 신앙이 어려울 때는 어떤 상황에 있어서 하나님의 부재와 하나님의 침묵을 느낄 때입니다. 이러한 경우에 우리는 영적인 위기를 느낍니다. 성도가 기도할 때 응답을 못받으면 영적인 위기가 옵니다. 계속해서 기도응답을 못받으면 영적인 침체가 옵니다. 이것은 평소에 신앙이 좋은 사람에게도 옵니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마더 테레사인데 그녀는 말년에 하나님의 부재를 경험하며 큰 영적 위기를 겪었습니다. 하박국 1장 2절에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내가 강포로 말미암아 외쳐도 주께서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라고 말씀합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께 강포를 인하여 부르짖어도 왜 구원하지 않습니까?라고 호소합니다. 시편 22편에서 다윗은 고백합니다. 어찌하여 나를 버리십니까? 어찌하여 나를 멀리하십니까? 하나님은 왜 내 신음하는 소리에 귀기울이지 않습니까? 시편 22편은 자신의 심경을 솔직하게 고백하는 시입니다. 다윗은 계속해서 사울에게 쫓깁니다. 다윗은 끊임없이 하나님께 호소합니다. 그런데 응답이 없습니다. 그래서 무심한 하나님께 다윗은 절규하는 것입니다. 본문 시편 139:7~10에서 시인은 하나님을 떠나서 살 수도 없고 하나님을 피할 수도 없다고 고백합니다. 또한 어디를 가도 하나님은 그곳에 계시고 언제나 떠나지 않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찾아오신 것이 아니고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언제나 계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셨는데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인정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계셨고 떠나신 적이 없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임재를 피할 수 없습니다. 온 우주 만물 땅끝까지 하나님의 임재가 충만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을 찾아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떠나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자꾸 하나님을 떠납니다. 문제는 우리가 떠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4장 8절은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멀리하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지 못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가까이하면 하나님의 임재를 느낄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그분을 놓치 않으면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가장 많은 약속이 무엇이냐 하면 ‘내가 너와 함께 하시리라’는 것입니다. 오죽하면 하나님의 아들을 보내면서 이름을 임마누엘로 지었겠습니까!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을 떠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가까이 가야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마태복음 28장 20절에서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보혜사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신 것입니다. 우리와 항상 함께 하며 우리를 도와주기 위하여 보혜사 성령을 보내신 것입니다.
시편 23편에서 다윗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함이니라”라고 고백합니다. 우리가 어두운 터널을 지날 때도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문제의 핵심은 우리가 항상 그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지 않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그 임재를 거부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불편해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부부 간에도 항상 같이 있다가도 어떤 때는 불편할 때가 있습니다. 성도들도 이렇게 하나님의 임재를 갈망하지만 하나님의 임재가 불편할 때가 있습니다. 어떠한 때는 하나님 조금 딴 데 가 있으시라고 부탁할 때가 있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임재를 노골적으로 거부했습니다.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반대로 도망갔습니다. 그는 선지자였는데 하나님의 임재를 거부했던 것입니다. 요나는 하나님을 피해 도망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배에도 계시고 바닷속에도 계셨습니다. 요나는 큰 물고기 뱃속에서 회개합니다. 요나는 회개하면서 ‘하나님께서 여기도 계시는군요’라고 고백합니다.
인류 최초의 범죄자는 아담입니다. 아담은 선악과를 따먹고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도망갑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임재를 원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이중적입니다. 주일날은 하나님의 임재를 구하지만 세상에 나가면 하나님의 임재를 피합니다. 생각보다 세상에서는 하나님을 떠나 있을 때가 매우 많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이중성입니다. 어려울 때는 하나님의 임재를 원하고 내가 마음대로 하고 싶을 때는 하나님의 임재를 거부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이것이 바로 요나의 고민이었습니다. 요나는 본래 자기 생각대로 사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는 하나님의 임재를 피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을 우리가 확신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확신하면 신앙의 큰 힘이 생깁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임재를 연습해야만 합니다. 로렌스 형제가 쓴 하나님의 임재 연습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는 노동수사로 요리하면서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연습을 합니다.
성도들이 하나님의 임재에 익숙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임재가 익숙할 때까지 계속 연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자연스러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훈련을 통해 매 순간 하나님의 임재를 느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일상생활에서 느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임재를 잘 느낄 수 있는 방법이 몇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우리 안의 어두움은 항상 하나님을 거부합니다. 어두움을 제거해야 하나님의 임재를 깨닫습니다. 이렇게 우리 안에 있는 어두움을 제거하는 것이 회개입니다. 회개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합니다.
둘째, 영적인 타성과 게으름을 줄여야 합니다. 영적인 매너리즘과 나태를 극복해야 합니다. 형식주의를 극복해야 합니다. 늘 가난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아주 작은 것으로도 하나님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영적으로 충만하면 모든 것에서부터 하나님을 느낍니다.
셋째, 하나님의 임재를 갈망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를 갈망하는 강도에 따라 하나님께서 임재합니다. 우리는 모든 상황과 시간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갈망해야 합니다. 어떤 어려운 상황에도 감사함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느껴야 합니다. 우리는 걸어가면서 운전하면서 빨래 하면서 산책하면서 사업하면서 일상생활의 모든 경우에 하나님의 임재를 느껴야 합니다.
지금 이곳에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는 최고의 축복은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라는 말씀입니다. 아이들에게 최고의 축복은 엄마가 옆에 있는 것입니다. 최고의 축복은 함께함의 축복입니다. 천국은 하나님이 영원히 완벽하게 함께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축복입니다. 환난 가운데도 너희와 함께 하겠다. 어려울 때에도 너희와 함께 하겠다라고 하나님은 약속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므로 성도는 삶의 관점이 바뀝니다. 그래서 늘 어렵더라도 성도는 하나님게 감사합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절대로 원망과 불평하지 않습니다. 임마누엘을 믿기 때문에 두려움과 염려가 성도에게서 사라집니다. 하나님이 내 가운데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이사야 43장 2절에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라고 말씀합니다. 어떠한 경우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다니엘이 사자굴에 던져졌을 때에도 세 친구가 풀무불에 던져졌을 때에도 그들은 옷 하나도 그을리지 않았고 사자에게 물리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사자굴 속에 나타나신 하나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고난과 함께 하신 하나님을 성도는 믿어야 합니다. 사자 입을 틀어막은 하나님은 우리를 떠나지 않고 어디에나 계십니다.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시는 그 하나님을 꽉 붙드시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