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와 나를 둘로 나누지 마라
법정스님
그대가 시인이라면
종이 안에 떠다니는 구름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구름이 없으면 비도 없을 것이고,
비가 없으면 나무들은 자라지 못한다.
나무가 없으면 종이를 만들 수 없다.
그러니 구름은 종이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다.”
이것은 틱낫한 스님의 책에 나와있는 구절이다.
이 글을 통해 우리는 종이 한 장을 통해
떠다니는 구름을 보게 되듯
세상 모든 존재는 홀로 있지 아니하고
관계 속에서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세상의 모든 존재들이
저마다 독특한 자기 세계를 지니고
온 생명을 바쳐 각자의 몫을 하고 있다.
그러나 서양사람은 인간이
모든 것의 중심이라는 오만한 생각으로
세상을 병들게 만들고 지구를 황폐화시켰다.
결국 인간 중심의 그릇된 사고방식인
서양의 이분법적인 사고는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생명들을 위협을 하고 있다.
지금도 인간들은 보다 많은 것을
차지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키고 있다.
미국이 이라크를 수렁에 빠뜨린 것은
보다 많은 석유를 차지하기 위해서였고,
여기에 무고한 생명들이 희생되고 있다.
새와 짐승, 물고기 할 것 없이 많은 생명이
하루에도 수백 종씩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있고
결국 사람도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이 세상에 독립된 존재는 어디에도 없다.
모두 서로가 주고받으면서 그물처럼 연결돼 있다.
이것이 우주의 실상이다.
달마 스님은 “밖으로 모든 얽힘에서 벗어나고
안으로 헐떡거림이 없어서 마음이 장벽 같아야
비로소 도에 들어갈 수 있다”고 가르치셨다.
모든 분별과 망상에서
벗어나 보고 듣는 것에 얽매여서는 안된다.
바깥에서 보고 듣는 것은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늘 자기 안에서 찾아야 한다.
자기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옳거니 그르거니 상관말고
산이면 산, 물이면 물 그대로 두라 하필이면
서쪽에만 극락 세계랴 흰 구름 거치면 청산인 것을”
절에 오는 이유는 중생심을 버리고
보리심을 발현하기 위해서다.
부처와 지혜는 우연히,
어느 날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니다.
순간순간 익히고 행한 자비심에서 나온다.
자비를 통해서 지혜를 얻는 것이다.
자비심이 곧 부처고 보살이다. 종교의 본질은 자비,
사랑의 실천이다. 자비가 없으면 종교라 말할 수 없다.
불교의 본질 역시 자비심이다.
경전에, 석가모니 부처님이 열반에 든 후부터
미래의 부처인 미륵보살이 성도하기 전까지를
소위 무불시대라고 한다.
이 때 중생제도를 부탁받은 보살이 지장보살이다.
지장보살은 모든 중생의
괴로움을 다 덜어주고 나서 도를 이루겠다,
지옥이 텅 빌 때까지
결코 성불하지 않겠다는 서원을 세운 보살이다.
우리는 여기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은
그가 보살이 되고 나서
원을 세운 것이 아니라,
그 원의 힘으로 부처와 보살이 된 것이다.
어떤 서원을 세우고 살아가고 있는지
스스로 한번 들여다 보라.
‘고3 아들 대학 붙게 해 주십시오’ 같은 것말고 청정하고
광대한 본질적인 원을 지녀라.
그리고 그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
원은 삶의 목표이고 그 목표가 흔들려서는 안된다.
원이 있는 사람은 그 원의 힘으로
이 험난한 세상을 헤쳐나갈 수 있다.
무릇 자식을 생각하는 부모님의 마음이
지장보살의 화신이다.
지장보살과 나를 따로 분리시키지 마라.
부처와 나를 둘로 나누지 마라.
하나를 이루어야 한다. 중생은 업의 힘,
업력(業力)으로 살아가고
보살은 원의 힘, 원력(願力)으로 살아간다.
청정하고 광대한 원을 지니고 살아야한다.
원만 세워 가지고 살아서는 안되며
그에 따른 행동이 순간순간 이어져야 하며 일치해야 한다.
달라이라마의 책 중에서
가장 달라이라마를 가까이 느낄 수 있는
‘용서’라는 대담집이 있다.
이 책을 보면 달라이라마가 18년 동안 중국감옥에서
갖은 고문을 겪은 스님을 만나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데 달라이라마를 만난 이 스님의 모습은
20년 전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달라이라마가 “18년 동안 그 모진 고문을 당하면서
두려웠던 적은 없었습니까?”라고 물었다.
이에 그 스님은 “나 자신이 중국인을 미워하게 될까봐
중국인에 대한 자비심을 잃게 될까봐
그것이 가장 두려웠습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이 구절을 읽으면서 참 부끄러웠다.
내가 만일 이 처지였으면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아마 그렇지 못했을 것이다. 용서는 가장 큰 수행이다.
타인에 대한 용서를 통해 내가 용서받고 용서를 통해
내가 그만큼 성숙해진다.
마음에 박힌 독을 용서를 통해서 풀어야 된다.
어떤 사람이 부처님께
“자비와 용서를 어디서 구해야 합니까?”라고 물었다.
부처님은 땅을 가리키며
“땅은 언제나 자비롭고 용서하며 너그럽다”고 답했다.
땅은 모든 것을 받아준다. 더럽거나 깨끗하거나
거칠거나 부드럽거나 짓밟히거나 허물어지거나 땅,
대지는 어머니처럼 모든 것을 끌어안는다.
우리는 수시로 땅에게 배워야 된다.
과연 자신이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알고 있어야 한다.
어떤 원을 세우고 살아가고 있는지,
그리고 자신이 맑고 향기롭게 살아가고 있는가에 대해서
생각해보아야 한다.
때가 되면 누구나 자신의 일몰(日沒) 앞에 서게 된다.
그전에 맺힌 것을 풀어서
안팎으로 거리낌없이 자유로워져야 한다.
그 짐을 다음 생으로 가져가지 말아야 한다.
맺힌 것이 있으면 모두 풀어야 한다.
우리가 하루하루 살아간다는 것은
날마다 새로운 날을 맞이하는 것이다.
묵은 수렁에 갇혀서 새로운 날을 등지지 말아야 한다.
내 마음이 활짝 열리면 막혔던
세상의 눈도 덩달아 활짝 열리기 마련이다.
이 좋은날 열린 세상에서 열린 마음으로 열고 살아가기 바란다.
모셔온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