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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2월 17일 영국 비비시(BBC) 등 외신에서『비영리보전단체 ‘폴라베어스 인터내셔널’(Polar Bears International) 연구원들이 캐나다 매니토바주 처칠 인근 서부 허드슨만에서 매년 이뤄지는 북극곰 이동 중 생후 5년 된 어미 곰 ‘X33991’이 10~11개월 된 새끼 곰 두 마리와 이동하는 모습을 포착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지난봄 연구진이 어미 곰과 새끼에게 GPS 추적 장치를 부착할 당시만 해도 새끼는 한 마리였는데 지난달 관찰 때 확인하니 그사이 한 마리가 늘어난 것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그 한 마리는 입양된 곰으로 다른 어미를 가진 새끼곰이라고 알렸습니다. 알리사 맥콜 폴라베이스 인터내셔널 연구원은 “북극곰의 입양은 매우 드물고 이례적이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정확지 않다”면서도 “이를 목격한 것은 굉장히 놀라운 경험”이라고 말했습니다.
에반 리처드슨 캐나다 환경기후변화부 연구원은 “암컷 북극곰은 정말 훌륭한 엄마들이라서 새끼를 돌보고 보살피는데 최적화돼 있다”며 “만약 어미 곰을 잃고 해안가에서 울부짖는 새끼를 봤다면, 본능적으로 새끼를 데려와 돌볼 것”이라고 영국 가디언에 말했습니다. 야생 북극곰이 성체까지 살아남을 확률은 평균 50% 정도지만 어미의 보살핌을 받으면 그 확률이 높아진다고 합니다. 맥콜 연구원은 “입양된 새끼의 어미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결국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며 “새끼가 다른 어미에게 입양됐다는 사실을 확인했을 때는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사례는 북극곰이 얼마나 놀라운 존재인지, 왜 이렇게 매혹적이고 흥미로운지를 알려주는 이유이기도 하다”며 “어쩌면 북극곰들이 서로를 살피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큰 희망이 느껴진다”고 가디언에 말했습니다. 본능에 의해 움직이는 동물의 세계마저도 이렇게 특별한 돌봄을 경험하고 신기한 가족관계를 가지게 되는 것을 볼 때 정말 놀라울 따름입니다. 이런 일을 보며 우리 인생에서도 참 신기한 일을 많이 경험하고 특별한 일들을 체험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특히 오늘 본문에서는 이방인 백부장의 믿음을 통해 역사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 예수님의 기적을 체험하게 되는 일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오늘 말씀을 듣고 과연 백부장의 믿음이 어떠했기에 예수님께서 감탄하시며 그 믿음대로 역사하셨는 지 살펴보고 저와 여러분도 우리 주님 기뻐하실 믿음을 소유하며 예수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2026년 큰 은혜를 체험하게 하시는 역사가 있게 되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감탄하실 믿음은 뭘까요? 첫째는 예수님이 누군지를 정확히 알아보는 믿음입니다.
마태복음 8장 6절입니다.
“이르되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
오늘 주신 말씀의 내용은 예수님의 사역에 있었던 일입니다. 그때는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이 누군지에 대한 정확한 믿음이 없었던 시기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도 아닌 백부장이 자기 문제도 아닌 자기 하인의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께 나아왔다는 것은 쉽게 생각할 문제가 아닙니다. 그는 백부장입니다. ‘백부장’이란 당시 이스라엘을 지배하던 로마군대의 장교로 100명의 군사를 통솔하는 군인입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중대급의 군대를 통솔하는 중간급의 간부였습니다. 그 당시 직제상 한 지역의 군정을 담담하며 행정과 사법까지 책임지는 책임자였습니다. 상당한 권세가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자기 개인이나 가족문제가 아닌 하인의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께 나아와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 고쳐 주옵소서 요청합니다. 어떻게 그 백부장은 예수님께 이렇게 나올 수 있었을까? 그리고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었을까요? 그가 예수님이 누구신지에 대해 몰랐다면 그럴 수 없었을 것입니다. 분명 그는 평소 예수님에 대해 듣고 알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그 곳에 오셨을 때 예수님을 찾아와 “주여”라고 부르며 하인을 치료해 달라고 요청한 것입니다. 그가 어떻게 예수님에 대해 듣고 믿게 되었는 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었고 자신의 하인을 고쳐 주실 유일한 분이라고 확신했습니다. 만약에 백부장이 예수님을 그저 특별한 치료의 능력을 가진 의사라고 생각했다면 예수님께 자신의 집으로 가서 환자를 봐달라고 먼저 요청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었기에 이렇게 요청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
예수님을 따라 다니던 제자들도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 당시 제대로 알지 못했고 예수님의 능력에 대해 확신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마저 믿음이 연약했던 이런 상황에서 로마군대 백부장인 이방인이 이런 믿음이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은 대단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백부장의 믿음에 대해 감탄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예수님을 어떤 분이라고 믿습니까?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며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구주이심을 확신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창세전부터 존재하신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도 확신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우주 만물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지어진 것이 없는 창조주이십니다. 교회를 아무리 오래 다녔어도 예수님이 누군지에 대해 모른다면 그것은 잘못된 믿음을 가진 것입니다. 교회 열심히 출석하고 헌금 열심히 내고 봉사활동 많이 하면 그것으로 ‘내 믿음이 좋다’, ‘내 신앙생활 잘 한다’라고 생각하거나 말했다면 그것은 잘못된 신앙기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신지,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나를 어떻게 구원하셨는지를 분명하게 알고 믿어야만 제대로 믿는 것입니다. 또한 주님의 약속도 알아야 합니다. 다시 오신다는 약속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이 오늘 내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아야 합니다. 알고 믿으면 능력이 생깁니다. 그런 믿음은 기적을 만들어 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제대로 모르면 그것은 그야말로 수 억원짜리 도자기를 세숫대야로 쓰면서도 그 가치를 몰라 거지처럼 고생하는 것과 같습니다. 은행에 수 억원이 있으면서도 굶어 죽는다면 이해가 됩니까? 자기에게 엄청난 가치의 복이 있어도 그것을 모른다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가까이 있어도 가치를 몰라 사용치 못하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그분의 사랑이 어떤 사랑인지, 그리고 그분이 우리 위해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시는지를 제대로 알면 우리는 이렇게 그냥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문제를 그분께 가서 아뢰기만 하면 기적 같은 그분의 능력으로 모든 문제 해결 받게 되는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그분이 누구인지 알까요? 방법은 “듣고 배워야” 합니다. 성경은 그분의 계시입니다. 啓示(계시)란 말은 원문상은 “까발려 놓았다”는 뜻이 있습니다. 자신을 숨기지 않고 다 드러내 놓았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경을 부지런히 읽고 듣고 배워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하나님이 목사를 세우시고 교회 지도자들을 세우신 것입니다. 배우지 않는데 뭐가 달라지겠습니까? 한국은 과거 36년간 일본의 지배를 받은 식민지였습니다. 아시아권에서 수많은 나라들이 20세기 초에 식민지생활을 하였습니다. 멀리 인도, 파키스탄, 스리랑카등 서남아시아로부터 인도네시아, 필리핀등의 동남아시아, 한국같은 극동아시아까지 식민지배를 당하는 힘든 시대가 있었습니다. 식민지 시대의 식민지를 지배하는 나라는 식민지 백성들에 대해 우민화정책을 시행했습니다. 가르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교육에 대해 별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가르치는 내용도 식민지배의 정당성을 가르치며 식민지 백성들은 어쩔 수 없이 식민지배를 당할 수 밖에 없는 열등한 민족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식민지배를 당한 나라들은 독립을 쟁취한 후에도 별로 경제성장을 이뤄내지 못했습니다. 우리 대한민국도 그냥 그런 분위기, 그런 정책밑에서 그대로 있었으면 이렇게 경제대국이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 대한민국은 조선시대만해도 양반들을 제외하고 일반인들에게 교육은 별로 관심의 대상이 아니 없습니다. 유교사회에서는 흔한 말로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며 ‘공부는 해서 뭐하냐, 모르는게 약이다’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다가 구한말 기독교가 들어와 수많은 학교를 세웠고 국민들의 안목을 열어 주었습니다. 지식을 채워주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한국이 된 것입니다. 일제강점기 초, 중기에도 조선인들에 대한 교육은 뜨거웠고 똑똑한 지식인들이 많이 배출되었습니다. 일제강점기 말에는 기독교 학교와 민족사학을 폐교시키고 선교사를 강제출국시키면서 교육이 다시 침체기를 맞았지만 해방 후에 다시 폐교된 학교가 하나둘씩 다시 문을 열면서 뜨거운 교육열이 다시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가르치고 열심히 배워서 대한민국이 한강의 기적, 세계 역사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룬 국가가 되었습니다. 잘 배워야 합니다. 바로 배워야 합니다. 교육이 살아야 나라가 삽니다. 영적인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본문의 백부장은 예수님이 누군지 알기에 기적을 체험합니다. 모르면 배워야 합니다. 배워서 깨달아 알면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2026년 우리 모두 말씀을 제대로 배우고 말씀을 제대로 깨달아 참된 말씀으로 우리의 삶이 바로 세워지게 되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감탄하실 믿음은 뭘까요? 둘째는 예수님의 말씀과 능력을 신뢰하는 믿음입니다.
마태복음 8장 8절입니다.
“백부장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이 백부장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알았기에 ‘그에게 말씀만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의 능력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말씀만 하십시오.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습니다.” 이것이 그 백부장의 믿음입니다. 이것이 기적을 경험하게 한 믿음입니다.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의 능력, 이것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오실 필요 없습니다. 나는 이런 믿음이 여러분의 믿음이 되길 바랍니다. 어떤 믿음입니까? “주님의 말씀은 능력이 있다” “그분의 말씀은 살아있는 능력이기에 그 분의 말씀대로 이뤄진다”라는 믿음입니다. 백부장은 자신의 경험을 빗대어 예수님께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그때 주님이 놀라십니다. 그 믿음의 고백에 주님까지도 깜짝 놀랍니다.
마태복음 8장 10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들으시고 놀랍게 여겨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예수님조차도 깜짝 놀라는 그 믿음, 여러분의 믿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습니까? 그 말씀이 실제 여러분의 삶 속에 그대로 될 것을 믿습니까? 그 믿음이 여러분에게 기적을 체험하게 만듭니다.
마태복음 21장 22절을 보십시오. 함께 읽겠습니다.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히브리서 4장 12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우리는 말씀을 통해 힘을 얻고 그 말씀이 우리의 삶에 그대로 이뤄질 것을 기대하며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이 있기에 그 말씀을 의지할 때 놀라운 역사를 만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말씀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그 말씀의 능력 가운데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하는 은혜가 있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감탄하실 믿음은 뭘까요? 마지막 셋째는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믿음입니다.
마태복음 8장 10절입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놀랍게 여겨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이 백부장의 믿음이 대단한 이유는 남의 아픔을 자기의 아픔으로 안고 그 아픈 마음을 가지고 체면을 버리고 겸손히 주님께 나왔다는 것입니다. 이 백부장은 자신의 부모나, 자식이나, 혈육의 문제가 아닌 하인을 위해 예수님께 간구하고 있습니다. 하인은 당시 사회 구조상 천민입니다. 일하는 짐승이나 도구에 불과합니다. 중풍병으로 쓸모없는 하인을 위해 체면과 만사를 제쳐두고 이처럼 간청하고 있는 이 백부장의 인간성에 주님께서 감동받으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칭찬할 때 내가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했다 했을 때 그 “이만한 믿음”이란 사랑이 동반된 믿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냥 무시하고, 버리고, 죽기만을 기다릴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백부장은 그 하인의 아픔이 자신의 아픔이기에 그것을 가지고 예수님께 찾아 나온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믿음에 사랑이 있습니까? 예수를 믿지 않는 영혼을 불쌍히 바라보는 사랑의 마음이 여러분 믿음에 담겨 있습니까? 만약 그런 사랑이 없다면 소용없는 믿음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 1~3절입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고린도전서 13장 13절입니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예수 믿지 않는 영혼, 구원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지옥이 어떤 곳인지도 모르고 살아가는 영혼, 그들을 향한 뜨거운 사랑이 여러분 속에 넘치기를 소망합니다. 그 사랑을 담은 믿음은 기적을 낳습니다. 내가 아닌 남을 사랑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고 예상치 못한 복이 임하게 됩니다.
우리는 주기철 목사님과 손양원 목사님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진정한 사랑이 없이는 목숨까지 내어놓는 그런 사랑을 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자신의 목숨까지도 귀하게 여기지 않고 내어놓는 것입니다. 신앙의 완성은 사랑의 완성입니다. 진실된 신앙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사람들에게 대한 사랑을 통해 보여줄 수 있습니다.
요한일서 3장 10절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형제에 대한 사랑은 똑같은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의로운 삶을 살지 않거나 형제를 사랑하는 모습이 나타나지 않으면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 아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가족과 이웃과 믿지 사람들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참된 사랑으로 섬길 수 있으시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맺을까 합니다.
여러분의 믿음은 얼마나 큽니까? 주님은 이만한 믿음이라 하며 그 백부장의 믿음을 칭찬했습니다. 이만한 믿음이란 주님을 제대로 알고 그 분을 제대로 믿으며 그 분의 말씀을 온전히 신뢰하는 믿음,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그 분의 사랑이 전해지고 그 분의 은혜가 임하기를 기대하는 믿음이 백부장이 가진 이 만한 믿음입니다. 그 믿음은 기적을 만들어 냅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주님이 감동받을 만한 이만한 믿음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라는 은혜가 임하기를 소망합니다. 2026년도 한해는 믿음을 키우는 한 해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부지런히 말씀을 읽고 배우고 들어 믿음을 키워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그 믿음이 우리 삶 속에 기적을 만들어 냅니다. 기적은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기적은 믿음이 있는 자에게 주님이 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선물입니다. 2026년도 한해가 믿음으로 기적을 체험하는 한 해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