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테야마 트레킹
강 문 석
“여기서도 오늘 오를 코스의 아웃라인이 잘 보이는군요.” 일행이 트레킹을 준비하여 숙소를 나서자 먼저 나와서 기다리던 백연옥 가이드가 산행지도를 한 장씩 나눠주면서 숙소 뒤쪽에 펼쳐진 산을 가리켰다. 그는 조금 전까지도 실내에 함께 있었는데 언제 밖으로 나왔는지 빠르기도 했다. 녹색 형광펜으로 루트를 따라 표시한 A4용지 지도는 산행에 적지않게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가이드는 “우리가 지금 산을 상당히 올라와 있잖아요. 그러니까 오늘 산행은 그만큼 수월하다고 보시면 돼요. 그렇더라도 이곳 등산로에선 꼭 바닥에 깔린 자갈을 디딜 때만큼은 조심하셔야 해요. 화산분출 때 나온 현무암 부스러기들이라 잘 부서지면서도 무척 미끄럽거든요. 만약 응급 처치할 일이 생긴다면 제가 다 준비해 왔으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아시겠죠?” 상냥하면서도 깔끔하게 안내를 마무리한 가이드는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그는 서울 여의도의 해외산악트레킹 전문여행사 소속으로 어제 낮 김해공항에서 합류했었다. 서른 중반 백연옥은 등산으로 다져진 몸인지 프로 운동선수들처럼 단단해 보였고 사람을 대하는 예절도 바른 것 같았다.
일행은 어제 낮 도야마공항에서 항공기를 내렸고 열차로 이곳 다테야마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1시경. 숙소에 짐을 푼 후 미구리가 연못을 비롯한 무로도 일대를 둘러보는 게 첫날 일정이었다. 늦은 점심을 먹으러 식당가로 나왔을 때 산행대장이 몽니를 부리는 게 이상했다. 왜 그가 갑자기 그러는지 알 수 없어 사람들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가 주선하여 일본까지 왔는데 여행사에선 가이드를 통해서라도 그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지 않아서 그러는 것 같기도 했다.
산행대장은 터미널에서 일행이 초밥을 먹으러 식당에 들어갈 때 혼자서만 도로를 횡단하여 건너편 우동 집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산행도 시작하기 전인데 일본까지 와서 서로 찌그럭거리다니 낭패스럽고 부끄러운 일이었다. 일행 중에서도 내가 가이드와 비교적 많은 얘길 나눈 편이어서 은근히 신경이 쓰이기도 했다.
20년 넘게 교유하면서 난 산행대장의 이러한 처신을 처음 보았고 무엇이 불만인지를 말하지 않으니 답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젊은 날 전기공사업을 시작하였기에 당시 전력회사 직원이었던 나와 서로 만날 수 있었다. 그땐 나이를 묻지 않은 채 서로 편하게 말을 트고 지내면서 세월이 흘렀고 뒤에 그가 5년이나 먼저 세상에 나왔다는 걸 알았지만 높임말이 어색할 것 같아 편하게 대하고 있었다.
그렇게 지내왔던 그가 몇 년 전 회사 사무실로 날 찾아와 “어이 박 과장, 등산장구 살라는데 어딜 갔으면 좋겠노?”라고 물었다. 난 그 자리에서 직장 산악서클 회장까지 불러서 회사 직원들이 자주 찾는 지하도 옆 'S스포츠’로 향했다. 그곳은 스포츠용품부터 등산장비까지 다양하게 갖추고 있어서 고객들이 끊이지 않는 점포였다.
정 사장은 병원에서 의사가 자신의 당뇨병을 처방하면서 등산을 권하더라는 말을 그때서야 털어놨다. 난 걱정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여 보이면서도 실용적이고 값싼 등산화와 재킷 모자만 골라서 이거면 충분하다고 그에게 내밀었다. 그는 내가 골라준 건 거들떠보지도 않고 스위스와 이탈리아 독일 등지에서 들여온 보라색 등 원색 옷가지와 고가장비만 종류별로 잔뜩 골랐다. “어이 정 사장, 며칠 하다가 때려치울지도 모르는데 뭘 그리 낭비하려고 그러나?”라며 내가 말렸지만 그는 들은 척도 않았다. 누군가가 처음 구입할 때 제대로 된 제품을 사야지 오래 쓸 수 있어 경제적이란 말을 해준 것도 같았다. 그가 자신의 사업장이 있는 동래를 벗어나 서면까지 날 찾아와 도움을 청한 것은 그만큼 날 믿는다는 얘긴데 뒤에라도 원망을 들을까 싶어 충고한 건데 듣질 않으니 하는 수 없었다.
그날 등산장구를 구입한 후 정 사장은 바로 자신의 회사 봉고차로 ‘봉고산악회’를 만들었고 주로 영남지역 인근 명산을 주말마다 찾아가기 시작했다. 참가 회원은 그가 직접 나서서 뽑은 칠팔 명이라 했다. 갑자기 봉고산악회장 감투를 쓴 그는 자기회사 종업원인 운전기사에게 지리산 중산리 쪽에 사람들을 풀어놓고는 산을 한참 돌아 성삼재에 가서 대기토록 했으니 한 번 참가해본 사람은 산행코스의 매력에 빠져들 만도 했다. 휴일에 사람을 부리느라 그만큼 운전수당도 후하게 지급한다는 말도 나돌았다.
그때로부터 2년여 세월이 흘렀을 때, 정 사장이 부산 산악단체 중에서도 비교적 규모가 크고 전문 산악인들이 많이 포진된 ‘금정산우회’ 회장직을 맡자 중앙의 대한산악연맹에선 그에게 수석부회장 감투까지 안겼다. 그 모든 게 돈의 위력이란 걸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더라도 산악단체의 발전을 위해 자신이 가진 것을 쾌척하는 것은 권장되어야 할 것 같았다.
그 무렵부터 정 사장은 일본 원정산행 재미에 빠져 가까이 지내는 몇몇과 자주 일본을 찾아갔고 나도 가끔씩 그 대열에 낄 수 있었다. 처음 대마도의 백악산과 유명산 같은 곳에서 시작했지만 점차 후지산과 북알프스 오쿠호다카다케 코스로 옮겨갔다. 당시 대마도를 주말에 자주 찾았던 건 그가 이즈하라 시내 선술집에서 우리나라의 60~70년대 추억을 맛볼 수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는 열심히 일본을 찾아가면서 그곳 산들을 자랑했지만 난 일본에서 우리나라 산만큼의 매력을 느낄 수 없어 기회가 되면 일본 산행을 그만두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우선 대마도를 빼곤 화산산 특유의 지질 때문이지 산에 삼림이 우거진 곳이 적어 황량하게 다가오는 풍경 때문이었다.
그러한 나의 평소 생각을 대변이라도 하듯 다테야마에서 눈앞의 가이드는 “오늘 트레킹 코스엔 숲이라곤 없으니 물론 길을 잃을 염려도 없겠죠?”라며 출발에 나선 일행을 향해 눈을 찡긋해 보였다.
밤새 퍼붓던 빗줄기는 멎었지만 하늘은 잔뜩 찌푸린 상태였다. 간밤 숙소는 하필이면 양철지붕이어서 거센 빗줄기가 마치 전쟁터에 쏟아지는 총탄을 방불케 했고 이층침대에서 코고는 소리까지 합세한 바람에 난 꼬박 밤을 새우다시피하고 말았다.
일행이 지그재그로 난 등산로 초입에 들어서자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갑자기 행렬을 이룰 정도로 늘어났다. 본격적인 등반이 시작되는 안부에 이르자 그곳에도 깔끔하게 단장한 2층 산장이 나타났다. 그 순간 우리가 이곳에 투숙했더라면 빗소리 때문에 잠을 설치는 일은 없었을 것인데 하는 후회가 밀려들었다.
예상한 대로 정호일 산행대장은 남 먼저 경사진 비탈을 오르고 있었다. 그는 산을 혼자서 오르는 게 이제 습관처럼 굳어진 것 같았다. 일행과 어울리면서 서로 대화를 나누며 오르는 산행에 부담을 느끼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일행 중 최고령인 변희섭 선생이 산행대장과 20여 미터 거리를 두고 오른다. 변 선생은 산행대장보다 두 살 위였고 1년 전 공업학교에서 정년을 마친 물리교사였다. 너무 온순한 성격이어서 그런지 묻는 말에도 제대로 답변을 하지 않는 걸로 봐서 몸이 불편한 것 같기도 했다. 남성 중에서 가장 젊은 옥치관이 변 선생 뒤를 따르고 있는데 그도 이미 쉰 중반을 넘었으니 젊다는 말은 그에게 해당되는 말은 아니었다. 전력회사에서 정년을 3년 앞둔 그는 말수가 적으면서 늘 싱글벙글이라 직장 안에서도 그를 좋아하는 선후배들은 많았다.
여성 둘이 한참 떨어져 서로 붙다시피 오르는 것은 예순에 닿은 이정옥이 자신의 배낭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여 뒤뚱거리자 가이드가 그 배낭까지 받아서 진 때문이다. 산행대장이 오늘 참가한 트레킹 회원들을 모집했지만 나와 동갑인 이정옥은 내가 불러들였다. 그래서 트레킹 나설 땐 꼭 배낭을 가볍게 하라고 이정옥에게 일렀건만 여행 짐 전체를 지고 나와 등산 초입부터 가이드에게 신세를 지고 있었다. 그는 현직 때 나의 직장 선배 아내로 남편이 갑자기 세상을 뜨자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어 산행에 불렀던 것이다. 이정옥과 가이드는 모녀라 해도 될 정도로 서로 손발이 척척 맞았고 헌신적인 가이드는 지극정성으로 이정옥을 보살피고 있었다.
산행에서 난 그냥 산을 오르지 않고 주변 풍광을 카메라에 담느라 뒤처지다보니 이제 웬만한 사란들은 그런 나의 이탈을 그러려니 하며 넘기고 있었다. 내가 안 보인다고 해서 날 기다리거나 찾아 헤매는 사람이 없으니 조금은 마음이 느긋해지기도 하지만 너무 많이 떨어져서 일행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신경을 쓰면서 뒤따른다.
등산로는 초입에서 약간 급경사진 곳이 있었지만 모두들 무난히 통과했다. 세계에서 가장 깨끗한 일본 등산로란 말을 또 한 번 실감할 수 있었고 간밤에 내린 비로 먼지를 잠재운 바닥은 보도처럼 발걸음이 편했다.
사람들은 ‘알펜루트의 백미’란 말로 이곳 다테야마 트레킹을 찬탄하지만 카메라를 든 내 눈엔 담을만한 절경이 나타나지 않아 조급한 마음을 다스리기 힘들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어떡하든 트레킹 구간 10km 안에서 감탄할 만한 비경이 나타나주길 기원하며 앞서간 일행도 놓치지 않아야 하니 걸음을 재촉했다. 그러고 보니 숙소를 나선 후 계속 반시계 방향으로만 돌았고 정상에 당도하기 전 가랑비가 내리자 운무가 다시 산을 휘감기 시작했다. -하편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