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팔레스타인은
현재의
⓵ 이스라엘, ⓶가자지구, ⓷요르단 서안지구 등의 3 지역을 통합하는 지명이며,
또한 ⓶⓷ 지역을 부분적으로 지배하는 국가 이름이다.
이 지역 안에 성경에 나오는 가나안 복지, 시온, 예루살렘 왕국 등등의 지역이 다 들어있다. 이스라엘을 제외한 팔레스타인 국가의 인구는 2017년 현재 약 5백만 명, 영토는 약 6천 제곱 km로 제주도의 1/3.
정치적으로 PLO, PNA, 하마스, 파타 등 4개 단어를 구별하면 이해가 빨라짐.
* 역사: ~ 2차대전 직후까지
1. BC. 60만 년부터 BC. 330년까지 카난인(가나안 사람들)들이 구석기-신석기- 순동기 – 청동기문화를 누렸다. 그 후 남부 그리스에서 필리시테인 (성경에서 블레셋 사람. 삼손의 적이었다)이 철기 문화를 들여와 동화되었다.
2. 구약 성경 이야기가 이 안에 있다. 가나안(팔레스타인의 고대 이름)에 아브라함이 이주했다가, 대흉년이 들자 이집트로 이주하여 노예살이를 했다. 모세가 BC. 1592년에 탄생한 것으로 추산되나, 명확한 증거가 없다. 히브리인이 이집트에서 이주한 종족인지 그 땅에 계속 살았는지, 즉 모세의 전설이 사실인지 아닌지 명확지 않음. 이후 모세의 계승자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정복하여 정착해 사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몰아냈다.
그 후 사울이 이스라엘 왕국을 건설하고 첫 왕이 되었다가 (BC. 1000년경) 3번째 왕 솔로몬이 예루살렘에 성전을 세웠으나 (BC. 910년쯤), 솔로몬의 사치와 방탕으로 나라가 북이스라엘과 남 유다로 나뉘었다가, 각각 아시리아와 바빌로니아에 의해 멸망 당하고 남 유대인들은 거의 다 노예가 됨(BC. 722, BC. 586).
3. 이 지역이 페르시아 지배로 들어가면서 유대인들이 다시 모여들어 농업에 종사하면서 예루살렘에 두 번째 성전을 지었다.
4. 페르시아가 망하고 그리스의 알렉산더 대왕의 지배를 받다가 그의 사후,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이집트)와 셀로우코스 제국의 일부가 되었다. 이때 팔레스타인이 많이 발전하여 도자기도 만들었다.
그러나 다시 내전이 이어지면서 유대인들에 대한 박해가 늘어나 마카베오의 반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 박해로 제1차 유대 –로마 전쟁이 일어났고, 이렇게 혼란한 중에 예수가 태어남.
5. 승리한 로마는 예루살렘 성전 등을 파괴했다. 바르코크바의 반란을 진압한 후 로마는 모든 유대인을 예루살렘에서 추방하고 일부는 팔레스타인 밖으로 추방했다. 그리고 유대, 예루살렘 등의 이름까지도 지웠다. 그래서 기독교는 비밀리에 지속.
6.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1세가 기독교를 팔레스티나 지역의 공식 종교로 인정. 352년 유대인들은 또 반란을 일으켰다가 잔인하게 진압됨. 390년쯤 팔레스티나 지역은 다시 3등분.
7. 638-1516년 아랍 칼리파의 지배를 받으면서, 유대인들은 로마에 의해 쫓겨난 지 500년 만에 다시 돌아왔다. 750년까지 이슬람교, 기독교 유대교인들이 함께 살면서 자기들을 ‘경전의 민족’이라고 불렀다.
8. 1099년 제1차 십자군 원정으로 예루살렘 왕국이 건설되어 100년 가까이 팔레 스타인 지역을 통치하다가 멸망, 다시 그 북쪽에서 재생하여 100년쯤 유지되다가 1291년 맘루크 왕조에 의해 멸망 당함.
9. 1516년 오스만 제국이 이 지역을 점령하였지만, 1920년까지 약 400년 동안 팔레스타인이란 공식적 명칭은 없었다.
10. 오스만이 1차대전에서 패전국이 되자 중동지역은 거의 다 영국과 프랑스 지배에 들어갔다. 영국이 지배하면서 팔레스타인이란 지명이 다시 등장. 러시아에서 시작된 포그롬(민족 차별주의)에 의해 반유대주의가 극성을 떨었고, 이에 대항하여 시온주의(유대민족주의)도 등장하여 유럽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이 팔레스타인으로 돌아오기 시작. 나치에 의한 유대인 학살이 유대인 귀환을 더욱 부채질.
돌아온 유대인들이 민병대 조직하여 이 지역 사람들과 분쟁을 일으킴. 영국은 2차대전 중 시온주의자들의 귀환을 제한하기도 했고 난민촌으로 보내는 등의 박해를 하기도 했지만, 팔레스타인인들에게보다 더 유리하게 해 주다가, 민중봉기가 자주 발생하자 결국 팔레스타인의 통치를 유엔에 맡겨 버림(1947년).
11. 1차대전 때 아랍의 독립국가건설을 약속해주면 오스만과 싸우겠다고 아랍 지도자들이 영국에게 요청하여 약속받음. (맥마흔 선언)
12. 영국은 전황이 계속 위급해지자 이 땅에 유대인 국가 건설도 약속해주고, 전쟁에서 협조받음 (벨푸어 선언)- 즉 영국이 양다리 걸침.
13. 대전 후 영국은 유대인과의 약속만 지키자, 유대인이 계속 들어와 팔레스타인 전체 인구의 1/3을 차지.
14. 아랍인들과 유대인들의 사이가 점점 나빠지자, 1947년 유엔은 주민투표에 의해 팔레스타인 분할안을 채택 아랍인들은 이에 반대하여 폭동을 일으키고 유대인 공격.
15. 영국의 묵인하에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하기 시작한 유대인은, 1948년 5월에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 영토에서 이스라엘의 독립을 선언, (영국 통치 종료). 인접국인 이집트, 요르단, 시리아, 레바논이 이스라엘 공격하니 이것이 제1차 중동전쟁. 같은 해 9월에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아마도 PNA의 전신)가 아랍 연맹에 의해 창설되어 팔레스타인 전역을 영토로 선포하였으나 실질적으로는 가자지구만 통치했음. 이스라엘 지역은 어차피 점령당한 상태였고 요르단강 서안지구는 1948년 전쟁 이후 요르단에 귀속되어 있었음. PNA는 국가로 인정받지도 못한 상태에서 1. 2차 중동전쟁을 치루면서, 대 이스라엘 테러를 계속하고 있었음.
16. 1949년 정전협정에 따라 예루살렘은 반으로 나뉘었고, 동예루살렘과 요르단강 서안 지구는 요르단에, 가자 지구는 이집트에 귀속되었다. 제1차 중동전쟁 때문에 70만 명이 넘는 팔레스타인인들이 이스라엘에서 추방당하거나 피난하여 요르단 등 인근 아랍국가로 이주했으며, 모슬렘 국가에 거주하던 80만 명의 유대인 중 대략 60만 명이 이스라엘로 이주하고 나머지는 미국이나 유럽으로 이주했다.
* 역사: 1960년대 이후
17. 1964년 아랍 정상들이 카이로에 모여,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를 설립, 영국이 통치하던 팔레스타인 전역 (이스라엘 포함)을 자기네 영토로 규정하고, 게릴라전 및 무장투쟁과 시오니즘을 금지를 결의함. 1967년(제3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요르단강 서안지구와 가자지구를 전쟁으로 병합함. PLO의 선포는 1974년에 이루어짐.
18. 1988년 아라파트가 팔레스타인 해방기구 (PLO)의 수립을 다시 선포. 이들은 다양한 이데올로기를 포함하는 비종교적 정치 조직. 그 안에 파타, 하마스, 팔레스타인 인민해방전선, 팔레스타인 민주해방전선, 팔레스타인 국가 계획, 제3의 길, 하지브 알샤압, 등이 입법부내 정당이고, 그 외 소규모 정당이 많이 있다. 파타는 비폭력적 독립운동 단체, 하마스는 이슬람 원리주의로 폭력적 독립을 주장하는 단체, 그 외 공산주의 단체가 많음.
PLO는 미국이 국제테러조직으로 지정하였으나. 1991년 해제하고, 1993년부터는 이스라엘과 PLO가 서로 인정하는 독립국가가 되었음. 그러나 하마스는 무장투쟁을 계속 주장하면서 1993년부터 가자지구와 일부 지역을 추가하여 통치. 2005년까지 파타가 여당이다가 하마스로 바뀜.
19. 그러나, 현재까지도 이스라엘이 요르단강 서안지구의 절반가량을 점령하고 있으며, 이 지역에서도 이스라엘 정부는 유대인 정착촌 확대와 8m 높이의 분리 장벽 설치를 강행해 국제적으로 비난받고 있다. 2012년에 유엔 총회는 표결을 통해 PNA의 위상을 단체에서 국가로 격상하였다. 2012년 현재 요르단강 서안지구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NA)가 장악하고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PLO가 지배하고, 가자지구는 하마스가 지배하는 양대 산맥임.
* 역사: 최근 2020이후
20.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홀로코스트(유대인 집단 학살)는 팔레스타인 성직자 ‘알 후세이니’가 히틀러를 선동하여 일으킨 것”이라고 발언, 엄청난 국내외적 충격을 주었고 양 진영의 감정은 더욱 격화. 계속 치고 막다가, 네타냐후가 국내 입지가 아주 나빠진 틈에 도발해 주니, 저자 입장에서는 완전 구세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