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부모님께서 2005년2월27일에 강화도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칭기스칸이 세계를 다 유린했지만, 한반도는 유린 못한 것을 알아요? 거기가 어디예요? 강화도예요.” 이것은 몽골의 진략으로 1232년 개경에서 강화읍내에 천도하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칭기스칸이 나와 가지고 한국까지 삼키려고 한 거예요. 한반도가 필요해요. …해양권까지 연결하기 위해서 한반도를 기지 삼기 위해서 점령하려고 했는데, 강화도 강화도가 뭐예요? 한강을 타고 ‘화’자가 뭐예요? ‘화 ’ ‘근심 화禍’ 자예요.” 원래 강화는 빛난 화華자를 쓰지만 여기서는 근심 화자를 쓰시면서 당시 강화도의 상황과 의미를 말씀하셨던 것이라 생각됩니다.
“강화도 섬이 되어 있어요. 거기에서 한국사람도 근심했지만, 칭기스칸도 근심해서 보따리 싸 가지고 도망가 버린 거예요. 칭기스칸이 세계 어디든지 점령했지만, 한국을 점령 못하고 돌아갔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구요.” 라고 말씀하시니 강화도가 있길래 몽골을 막아낼 수 있었다고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나는 강화 천도遷都(1232년~1270년)는 고려 무신 최우崔瑀가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고종高宗(제23대 고려 국왕)을 강요하고 행하였다고 이해하고 왔습니다. 당시 국왕은 상징적인 존재로서 국권은 무신들에게 있었습니다. 몽골이 해전海戰에 약해서 바다를 건너오지 못할 것을 예산하였고, 해로를 통해서 호남평야 등 곡장지대에서 생산된 곡식을 강화도에 가져와 농성籠城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무신 최우는 사욕私慾 때문에 천도했겠지만, 배후에 하늘이 한반도와 선민 한민족을 지키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참부모님의 말씀과 최근에 발간된 “한민족 선민 대서사시(천무원에서 편집하고 천원사에서 발간된 서적)”을 훈독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결국 무신 최우가 사망하자 무신들의 결속이 느슨해지며, 고려 원종元宗은 몽골과 손을 잡아 국권을 회복하여 개성에 환도還都하였습니다. 원종이 강화를 떠난 후, 고려는 몽골의 간섭을 받은 부마국(몽골의 사위나라)이 되어버렸습니다.
1636년 병자호란 때도 강화성이 중국 청나라에게 함락되자, 조선 국왕 인조仁祖는 항복하여 왕세자와 빈궁, 왕자를 인질로 중국에 보내야 했습니다. 1866년 병인양요, 1871년 신미양요 때는 강화도에서 불랑스와 미국을 후퇴시켰지만, 1875년 운양호 사건의 처리 과정에서 강화도조약이라는 불평등조약을 맺게 되었습니다. 즉 강화에서 일본을 막아내지 못했던 대가로 일제강점기가 도래합니다.
강화가 함락되면 나라가 함락된다고 볼 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천일국시대인 지금도 마찬가지 아닌가 생각합니다. (참부모님이 계신) 천정궁, 천원궁이 소재하는 가평(청평)이 천일국의 수도입니다. 그래서 가평을 지키는 곳이 강화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리고 또 수도가 위험할 때, 임시수도가 있었던 곳도 강화도입니다. 그러니 강화가 얼마든지 가평을 대신해서 참부모님을 모시며 제2의 수도가 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강화가 문화재 보호구역이다 보니 큰 기업체, 산업체가 없습니다. 생계유지나 학업을 위하여 젊은이가 외지에 유출되어 강화도의 영적 중심축인 강화가정교회의 식구수가 감소하고 있습니다. 이것으로 어떻게 가평을 지키느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인원수가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100명의 군중群衆보다 100명을 인도할 수 있는 1명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식구 1명 1명이 주인의식을 가지고 하늘을 모신다면 불가능한 것을 없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