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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치하문(不恥下問)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결코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
不 : 아닐 불(一/3)
恥 : 부끄러울 치(心/6)
下 : 아래 하(一/2)
問 : 물을 문(口/8)
이 성어는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결코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는 말로, 아무리 지위가 낮거나 못난 사람이라 할지라도 자기가 모르는 것을 알고 있을 수 있으니, 자신이 모르는 것을 묻는 것은 신분이나 지위가 높고 낮음을 가리지 않고 부끄러울 것이 없다는 뜻이다. 논어(論語) 공야장편(公冶長篇)에 나온다.
子貢問曰 : 公文子, 何以謂之文也.
자공이 물어 여쭈었다. '공문자께 어째서 문(文)이란 시호를 붙였습니까?'
子曰 : 敏而好學, 不恥下問, 是以謂之文也.
공자께서 말했다. '총명하여 배우기를 좋아했고, 아랫 사람에게 묻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아, 문(文)이란 시호를 내린 것이다.'
자공(子貢)이 위(衛)나라의 대부인 공문자(孔文子)의 시호(諡號)가 어떻게 해서 문(文)이 되었는지를 묻자 공자(孔子)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민첩해서 배우기를 좋아하고,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 이로써 시호(諡號)를 문(文)이라 한 것이다.
이렇듯 학문을 좋아하여, 혹시 모르는 것이 있으면 비록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일지라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 진실로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자신보다 못한 사람에게도 기꺼이 물어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삼인행 필유아사(三人行必有我師)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함께 길을 가는 세 사람 가운데 반드시 나의 스승이 될 만한 사람이 있다’는 뜻으로, 어떤 사람에게든 배울 점이 있다는 말이다.
또 공자천주(孔子穿珠)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공자가 실에 구슬 꿰는 방법을 몰라 바느질하는 아낙네에게 물어 개미 허리에 실을 매고 구슬 구멍 반대편에 꿀을 발라 개미가 꿀 냄새를 맡고 바늘을 통과해 구슬을 꿰었다는 말인데, 역시 자기보다 못한 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는 뜻이다.
불치하문(不恥下問)은 하문불치(下問不恥)라고도 하는데, 이는 분발하여 학문을 함에 마음을 비우고 가르침을 구하는 정신을 형용한 말이다. 이는 자기보다 학식이 낮은 사람에게 모르는 것을 묻는 것을 부끄러워 하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하다.
불치하문(不恥下問)
불치하문(不恥下問)은 ‘아랫 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것은 아무리 지위가 낮거나 못난 사람이라 할지라도 자기가 모르는 부분을 알 수 있으니, 타인에게 묻는 것은 신분이나 지위의 높고 낮음에 관계없이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이 고사는 논어(論語) 공야장(公冶長) 편에 나오는 공자의 일화에서 유래되었다.
위나라에는 공어(孔圉)라고 하는 대부가 있었는데 죽은 뒤에 시호를 문(文)이라 하였다.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공문자(孔文子)라고 불렀다. 이 일을 두고 공자의 제자인 자공(子貢)이 어느 날 공자에게 “공문자는 왜 시호를 문이라고 했습니까?”라고 물었다.
자공이 이런 질문을 한 것은 그 공문자가 남의 아내를 강제로 취하는 등 평소 행실이 도저히 문(文)이라는 시호를 받을 만한 위인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공문자의 인간성이 이와 같았는데도 시호를 문이라고 했기 때문에 자공이 의아하게 여겨 물은 것이다.
그 물음에 공자는 “그가 영민하면서도 배우기를 좋아했고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기 때문에 시호를 문이라고 한 것이다(敏而好學 不恥下問 是以謂文也)”라고 대답했다.
‘불치하문’은 바로 공자의 이 말에서 유래한 성어로, 오늘날에는 겸허하고 부끄럼 없이 배우기를 즐기고 진심으로 남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태도를 말한다. 진실로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자신보다 못한 사람에게도 기꺼이 물어볼 줄 알아야 한다는 교훈이 담겨 있는 것이다.
이 이야기의 교훈은 수도인의 입장에서도 깊이 새겨볼 필요가 있다. 수도과정에서 도인들은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입장에 서게 되므로, 윗사람은 물론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싫어하거나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함은 ‘불치하문’의 고사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즉, ‘배움’은 서로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둘이 함께 보완해 가는 것을 뜻하는 상호보완(相互補完)적인 관계에서 지켜져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호보완의 의미야말로 우리 수도인에게 깊은 가르침이 아닐까 한다.
수도함에 있어 ‘불치하문’의 교훈을 깊이 새기며 ‘삼인행 필유아사언(三人行 必有我師焉: 함께 길을 가는 세 사람 가운데 반드시 나의 스승이 될 만한 사람이 있다)’라는 말처럼 항상 겸허하게 배우는 자세로 상대를 대한다면, 그 모습이 다른 이들의 본보기가 되어 인망(人望)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불치하문(不恥下問)
아래 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라.
子貢問曰 孔文子 何以謂之文也
자공문왈 공문자 하이위지문야
子曰 敏而好學 不恥下問 是以謂之文也
자왈 민이호학 불치하문 시이위지문야
자공이 "공문자를 어찌하여 문(文)이라고 시호하였습니까?"라고 질문하자, 공자께서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다. "명민하면서도 배우기를 좋아하였으며 아랫사람에게 묻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문(文)이라 시호한 것이다."
위나라 대부 공문자가 '문(文)'이라는 최상의 시호(諡號)를 받자 자공이 의심을 해서 질문한 내용이다. 자공이 질문한 것은 이유가 있다. 이유는 '춘추좌전'에 나온다.
노나라 임금 애공 11년에 위나라의 태숙질은 송나라 자조의 딸에게 장가갔는데, 아내보다 처제를 더 사랑했다. 공문자는 태숙질로 하여금 본부인을 내쫓게 하고 자기의 딸 '공길'과 결혼시켰다. 그런데 태숙질이 여전히 전 부인의 처제와 정을 통하자, 공문자는 성질이 나서 그를 죽이려고 하였지만 공자(孔子)가 말려 그만두고 자기 딸을 데려왔다.
그후 태숙질이 민심을 잃고 쫓겨서 송나라로 달아나자 위나라는 그의 동생인 '유(遺)'를 그 자리에 세웠다. 그러자 공문자는 딸 공길을 다시 '유(遺)'에게 시집보냈다. 공문자의 사람됨이 이와 같았는데도 죽은 뒤에 시호를 문이라고 하니, 자공이 의심하여 질문한 것이다.
공문자의 사람됨이 문제가 많았는데도 시호를 문이라고 한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하나는 명민하면서도 배우기를 좋아했기 때문이고, 둘째는 아랫사람에게 질문하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대체로 사람됨이 명민하면 배우기를 싫어한다. 왜냐하면 자신의 똑똑한 머리를 믿고 노력을 하지 않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공문자는 똑똑하면서도 배우기를 좋아했다. 그것은 지금의 현 상태에 만족하지 않고 더욱 높은 수준의 삶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높은 수준의 삶을 추구한 결과 공문자는 나중에 위나라의 임금을 지키는 일등 공신이 된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공자께서 위나라 임금 영공이 나라를 잘 다스리지 못한다고 말씀하시니, 계강자가 말하였다. '이와 같은데도 어찌하여 임금의 자리를 잃지 않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중숙어는 외교를 잘 하였고, 축타는 종묘를 잘 다스리고, 왕손가는 군대를 잘 다스렸다.' 이와 같으니 어찌 임금 자리를 잃겠느냐?라고 하였다. (논어 헌문)
여기 나오는 외교를 잘한 '중숙어'가 바로 '공문자'이다. 이런 공문자의 노력 덕분에 위나라의 영공은 임금 자리를 잃지 않을 수 있었다. 또 지위가 높아지면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이 부끄러워진다. 그런데 공문자는 자신보다 지위가 낮은 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이것 역시 더욱 수준 높은 삶을 추구했기 때문이었다.
공자는 이와같이 공문자가 가진 단점보다 그가 가진 장점을 더욱 높여서 그의 사람됨을 평가하고 있다. 이렇게 한 것은 공자께서 우리를 군자의 삶으로 이끌기 위해서였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남의 아름다운 점을 이루어주고, 남의 나쁜 점은 이루어주지 않는 삶"이다." (논어 안연)
불치하문(不恥下問)은 글자 그대로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는 뜻이다. 아무리 지위가 낮거나 못난 사람일지라도 자기가 모르는 것을 알 수 있으니 묻는 것을 주저하고 수치스럽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공자가 관직에 있을 때 종묘(宗廟)에서 제사를 모시는 일이 있었다. 공자는 제사를 지내면서 제물의 위치 등을 두루두루 종묘지기에게 물었다. 집에 돌아온 공자에게 제자들이 물었다. “예(禮)로 말하면 스승님을 따를 사람이 없는데 어찌 종묘지기에게 그리 물으셨는지요.” 공자가 답했다. “종묘에서는 그게 예니라.” 공자가 왜 대인(大人)인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공자천주(孔子穿珠)라는 말이 있다. 공자가 구슬을 꿴다는 뜻으로, 자기보다 못한 사람에게 모르는 것을 묻는 게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의미다. 공자가 실에 구슬 꿰는 법을 몰라 바느질하는 아낙네에게 물었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공자는 아낙네의 말을 듣고 개미 허리에 실을 맨 뒤 구슬 구멍 반대쪽에 꿀을 발라 냄새를 맡은 개미가 구멍을 지나가도록 해 구슬을 뀄다고 한다.
불치하문(不恥下問)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
자기보다 학식이 부족하거나 손아랫사람이라도 모르는 것이 있으면 물으면서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고 항상 배우는 자세로 살아야 함을 이야기한다.
세상을 살면서 모든 것에 통달할 수는 없다. 모르는 것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물어서 알아가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모르는 것은 죄도 아니고 그렇다고 부끄러운 것도 아니다. 그러나 모르는 것을 아는 척하고 나보다 아랫사람이라고 여기며 묻기를 부끄러워하는 것이 오히려 더 치졸한 행위다.
논어(論語) 공야장(公冶長) 편에 나오는 공자 제자 중에 장사를 해서 돈을 많이 벌어 부자로 사는 자공(子貢)이 있었다. 스승 공자에게 하루는 “공문자(孔文子)는 어찌해 위대한 ‘문(文)’이라는 시호(諡號)를 받았습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그는 민첩하며 배우기를 좋아하고 특히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래서 시호를 문이라고 한 것이다.” 비록 자기보다 못 배우고 아랫사람이라도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음을 칭찬한 것이다.
그러나 자공은 공문자의 문란한 행실을 너무 잘 알고 있었으므로 더욱 궁금했던 것이다. 공문자는 위(衛)나라의 대부로 본명이 공어(孔圉)였다. 그가 죽자 위나라 군주는 그에게 ‘공문자’라는 시호를 하사하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공문자라고 불러왔다. 그러나 공어(孔圉)의 평소 행실은 그렇게 높이 평가할만한 모범된 삶을 살지 못했음을 자공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스승 공자에게 물었던 것이다.
공어(孔圉)는 태숙질(太叔疾)을 부추겨 아내를 쫓아내고 자기의 딸을 아내로 삼도록 했다. 말하자면 사위로 삼으려고 수작을 부렸다. 사위가 된 후 태숙질이 문란하여 본처의 여동생 즉 처제와 간통을 하자 공어(孔圉)는 태숙질을 죽이려고 공자에게 어떤 방법이 좋을지를 물었다.
그러나 공자는 인간의 도리가 아니라고 못들은 척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그냥 가던 길을 재촉하였다. 그 뒤 태숙질이 송나라로 달아나자 자기 딸 공길(孔姞)을 데려와서 태숙질의 동생 유(遺)에게 아내로 맞도록 했다. 유는 형수를 아내로 맞이한 셈이 된다.
이토록 문란했던 공어에게 유가(儒家) 사회에서 호학정신이 결여된 사람인데도 ‘문(文)’이라는 시호를 하사한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에 물은 것이다. 그러나 공자는 그런 부분은 빼고 아랫사람에게 물어 배워가는 것만을 내세우며 말했다.
학문을 좋아하고 모르는 것은 언제나 누구에게든지 묻는 것을 주저하지 말고 물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다. 즉, 알고 싶으면 자기보다 잘난 사람이든 못난 사람이든 상관하지 말고 기꺼이 물어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논어 자체가 배움으로 시작해서 배움으로 끝나는데 '술이편'에서 배움을 강조하는 말이 또 나온다. 삼인행 필유아사(三人行必有我師)라는 말이다. 세 사람이 길을 가면 그중에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는 말인데, 세 사람이면 나 빼고 두 사람 중에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 두 사람이 배울 것이 별로 없는 별 볼일 없는 사람이라면 어떨까? 공자는 그 속에서 나쁜 것이라도 배워서 다른 사람에게 이것은 나쁜 것이니 행하지 말라고 가르치기 위해 배워야 한다는 공자의 논리다. 즉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배워야 한다는 이야기다.
또 '위정편'에서는 애제자 자로(子路)와의 대화에서 ‘아는 것은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는 것 이것이 참으로 아는 것(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之也)’이라고 했다. 이 말은 스스로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확실히 구분하여 인정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내 지식이며 지혜라는 말이다. 요즘말로 메타인지(meta 認知)와 통하는 말이다.
자로는 제자 중 나이가 많아 때로는 친구 같았고, 용맹하며 성격이 매우 거친 제자다. 그런 자로에게 흠이 있다면 모르면서도 아는 체 하는 일이 가끔 있었다. 그래서 깨우쳐주기 위해 이런 메시지를 주었으며, 혹 다 알지 못하면서도 모르는 것을 안다고 속이는 잘못을 저질러서는 안 됨을 말하고 싶었다.
공자의 사상은 학문을 함에 있어서 성실한 태도로 임하고 허위와 교만한 행동을 경계해야 함을 가르치려 했다. 그런 학풍 때문에 공자는 지금까지도 만인의 스승으로 추앙받는 만세사표(萬歲師表)가 되었다.
‘불치하문’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크게 되려면 이렇게 겸손한 자세로 공부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모르는 것은 상대의 학벌이나, 지위, 직업, 출신성분에 치우치지 말고 아무에게나 물어 알아갈 때 사회적으로 큰 사람, 즉 큰 그릇이 된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준다.
불치하문(不恥下問)
우리의 삶은 모르는 것을 배우고 알아가는 과정이다. '배우면서 늙어가는(學到老)' 것이 인생이다. 배움은 인간의 동반자다. 모르는 것을 해결하는 방법의 하나는 아는 사람에게 묻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모르는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남에게 묻는 것을 꺼린다. 그 이유로서는 학교에서 우리는 교사가 하는 질문에 답하는 데만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고, 자기의 무식이 탄로 나는 것을 두렵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모르면서 아는 척하다가 망신당한 부자 노인의 이야기가 '부자 소 빌려주기(富翁借牛)'라는 제목으로 중국 고전 광담조(廣談助)에 전한다.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르는 부유한 노인이 있었다. 한번은 그가 거실에서 손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밭을 갈려고 하니 소 한 마리를 빌려 달라는 편지를 보냈다. 부자는 자기가 글자를 모른다는 사실을 들키지 않으려고 편지를 펴서 읽는 척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심부름꾼에게 말했다. “알았어. 잠깐 기다리게. 내가 직접 갈 테니.” 곁에 있던 사람이 그 말을 듣고 입을 가리고 실컷 웃었다.
우리 주변에는 이러한 부류의 사람들이 적지 않다. 자신의 무지가 들통 나는 것이 두려워서 모르면서도 아는 척한다. 배움에 대한 의지가 없는 사람일수록 ‘아는 척’을 많이 한다. 배움의 의지가 강하고 지적 호기심이 많은 사람은 자신의 무지를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모르면서 아는 척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긴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신분에 관계없이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물어야 한다.
위나라의 대부 공어(孔圉)라는 사람은 남의 아내를 강제로 취하는 등 평소 행실이 부족한 사람이었다. 그가 죽은 후에 ‘문(文)’이라는 시호(諡號)를 받았고, 후세 사람들은 그를 ‘공문자(孔文子)’라 불렀다. 공자의 제자인 자공(子貢)은 공어의 이 같은 사실을 기억하고 스승인 공자에게 불만을 토로했다. “공어는 무슨 자격으로 ‘문’이라는 시호를 받았단 말입니까?” 이에 공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민첩하면서 배우기 좋아하고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不恥下問).” 여기서 ‘불치하문(不恥下問)’이란 말이 유래되었다.
공자 역시 ‘불치하문’을 실천했다. 공자는 모르는 것이 있으면 묻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한번은 공자가 노나라 군주의 조상 제례에 참가한 적이 있었는데, 그는 시도 때도 없이 이것저것 물었고, 거의 모든 일을 사람들에게 자문을 구하고 나서 처리했다. 어떤 사람이 공자는 예의범절을 잘 몰라 무슨 일이나 물어본다고 조롱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공자가 그 이유를 말했다. “모르는 것을 물어볼 때는 알 때까지 물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내가 예의를 알려고 하는 방증이지 않으냐.”
청나라 문물을 두루 돌아본 박제가(朴齊家) 역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으면 여러 사람에게 물어보고 의심나는 점을 해결한 '북학의(北學議)'라는 책을 썼다. 그는 청나라로 가는 사신을 따라 오가는 길에 보고 들은 것을 단 한 가지도 예사롭게 넘기지 않았으며, 궁금한 것이 있으면 꼼꼼하게 물어서 기록을 남겼다.
연암(燕岩) 박지원(朴趾源)이 '북학의' ‘서문’에서 밝혔듯이, “모르는 것이 있으면 길 가는 사람이라도 붙잡고 묻는 것이 옳다. 비록 하인이라 할지라도 나보다 글자 하나라도 많이 알면 우선은 그에게 배워야 한다. 자신이 남과 같지 못한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여 자기보다 나은 사람에게 묻지 않는다면 이는 죽을 때까지 편협하고 무식한 곳에 자신을 가두어 두는 것이 된다. (중략) 순임금과 공자가 성인(聖人)이 된 것은 평소 남에게 묻기 좋아하고 그로부터 잘 배웠기 때문이다.”
박지원(朴趾源), 북학의서(北學議序) 연암집(燕巖集)
學問之道, 無他.
학문하는 길에, 다른 것이 없다.
有不識, 執途之人而問之, 可也.
모르는 것이 있으면, 길가는 사람이라도 붙잡고 묻는 것이 옳다.
童僕多識我一字姑學汝.
나이 어린 종이지만 나보다 글자 하나라도 많이 알면 우선 그에게 배워야 한다.
恥己之不若人而不問勝己則, 是終身自錮於無術之地也.
자신이 남만 못한 것을 부끄러워하여 자기보다 나은 사람에게 묻지 않는다면, 이것은 죽을 때까지 무식한 경지에 자신을 가두어 두는 것이 된다.
모르면 아는 사람에게 물어라. 모르는 것은 수치가 아니고, 모르는 것을 그냥 넘어가는 것이 수치다. 모르는 것을 그냥 넘어가면 바보가 된다. 이 세상에 만물박사는 없다. 정보가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오늘날 모든 것을 아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모르면 아는 사람에게 주저 없이 물어라. 창피할 것 없다. 묻는 것은 약이고, 모르면서 그냥 넘어가면 병이 된다.
옛말에, “홀로 배워 동무가 없으니, 고루하고 들은 바 적다(獨學而無友, 則孤陋而寡聞)”고 했으니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항간에 떠도는 말 가운데, “자지(自知)는 만지(晩知)고, 보지(輔知)는 조지(早知)”라는 속언이 있다. 스스로 알려고 하면 늦게 알게 되고, 누가 도와주면 일찍 알게 된다는 뜻이라 한다. 과외의 필요성을 역설할 때 항용(恒用)되는 말이다. 제법 그럴 듯한 말이지만 꼭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다.
▶️ 不(아닐 부, 아닐 불)은 ❶상형문자로 꽃의 씨방의 모양인데 씨방이란 암술 밑의 불룩한 곳으로 과실이 되는 부분으로 나중에 ~하지 않다, ~은 아니다 라는 말을 나타내게 되었다. 그 때문에 새가 날아 올라가서 내려오지 않음을 본뜬 글자라고 설명하게 되었다. ❷상형문자로 不자는 ‘아니다’나 ‘못하다’, ‘없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不자는 땅속으로 뿌리를 내린 씨앗을 그린 것이다. 그래서 아직 싹을 틔우지 못한 상태라는 의미에서 ‘아니다’나 ‘못하다’, ‘없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참고로 不자는 ‘부’나 ‘불’ 두 가지 발음이 서로 혼용되기도 한다. 그래서 不(부/불)는 (1)한자로 된 말 위에 붙어 부정(否定)의 뜻을 나타내는 작용을 하는 말 (2)과거(科擧)를 볼 때 강경과(講經科)의 성적(成績)을 표시하는 등급의 하나. 순(純), 통(通), 약(略), 조(粗), 불(不)의 다섯 가지 등급(等級) 가운데 최하등(最下等)으로 불합격(不合格)을 뜻함 (3)활을 쏠 때 살 다섯 대에서 한 대도 맞히지 못한 성적(成績) 등의 뜻으로 ①아니다 ②아니하다 ③못하다 ④없다 ⑤말라 ⑥아니하냐 ⑦이르지 아니하다 ⑧크다 ⑨불통(不通: 과거에서 불합격의 등급) 그리고 ⓐ아니다(불) ⓑ아니하다(불) ⓒ못하다(불) ⓓ없다(불) ⓔ말라(불) ⓕ아니하냐(불) ⓖ이르지 아니하다(불) ⓗ크다(불) ⓘ불통(不通: 과거에서 불합격의 등급)(불) ⓙ꽃받침, 꽃자루(불)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아닐 부(否), 아닐 불(弗), 아닐 미(未), 아닐 비(非)이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옳을 가(可), 옳을 시(是)이다. 용례로는 움직이지 않음을 부동(不動), 그곳에 있지 아니함을 부재(不在), 일정하지 않음을 부정(不定), 몸이 튼튼하지 못하거나 기운이 없음을 부실(不實), 덕이 부족함을 부덕(不德), 필요한 양이나 한계에 미치지 못하고 모자람을 부족(不足), 안심이 되지 않아 마음이 조마조마함을 불안(不安), 법이나 도리 따위에 어긋남을 불법(不法), 어떠한 수량을 표하는 말 위에 붙어서 많지 않다고 생각되는 그 수량에 지나지 못함을 가리키는 말을 불과(不過), 마음에 차지 않아 언짢음을 불만(不滿), 편리하지 않음을 불편(不便), 행복하지 못함을 불행(不幸), 옳지 않음 또는 정당하지 아니함을 부정(不正), 그곳에 있지 아니함을 부재(不在), 속까지 비치게 환하지 못함을 불투명(不透明), 할 수 없거나 또는 그러한 것을 불가능(不可能), 적절하지 않음을 부적절(不適切), 부당한 일을 부당지사(不當之事), 생활이 바르지 못하고 썩을 대로 썩음을 부정부패(不正腐敗), 그 수를 알지 못한다는 부지기수(不知其數), 시대의 흐름에 따르지 못한다는 부달시변(不達時變) 등에 쓰인다.
▶️ 恥(부끄러울 치)는 ❶형성문자로 耻(치)의 본자(本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마음심(心=忄, 㣺; 마음, 심장)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에 붉다의 뜻을 나타내기 위한 耳(이, 치)로 이루어졌다. ❷회의문자로 恥자는 '부끄러워 하다'나 '부끄럽게 여기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다. 恥자는 耳(귀 이)자와 心(마음 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부끄러워하는 것은 감정과 관련된 것이니 心자가 의미요소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귀'를 그린 耳자는 여기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일까? 恥자는 사람이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면 얼굴이나 귀가 빨갛게 달아오르게 되는 것에 착안해 만들어진 글자다. 재미있는 발상이다. 그래서 恥(치)는 마음 속으로 생각하여 얼굴이 붉어지다의 뜻으로 ①부끄러워 하다, 부끄럽게 여기다 ②욕보이다, 창피를 주다 ③부끄럼 ④남에게 당한 부끄러움 ⑤욕(辱), 치욕(恥辱)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부끄러울 괴(愧), 부끄러울 참(慙), 부끄러울 수(羞)이다. 용례로는 좌골의 앞쪽에 있어서 장골이나 좌골과 같이 골반을 에워싼 뼈를 치골(恥骨), 남녀의 생식기 언저리에 있는 불룩한 부분을 치구(恥丘), 음부나 남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부끄러운 부분을 치부(恥部), 쩨쩨하게 굴어 아니꼬움을 치사(恥事),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을 치심(恥心), 부끄럽고 욕됨이나 불명예를 치욕(恥辱), 당당하거나 떳떳하지 못하여 느끼는 부끄러움을 수치(羞恥), 남에게 신세를 지거나 폐를 끼치거나 할 때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을 가지는 상태를 염치(廉恥), 부끄러움을 씻음을 설치(雪恥), 나라가 치욕을 당함을 국치(國恥), 뉘우치어 부끄럽게 여김을 회치(悔恥), 괴롭고 부끄러움을 고치(苦恥), 부끄러움을 면함을 면치(免恥), 부끄러움이 없음을 무치(無恥), 부끄러움을 무릅씀을 모치(冒恥), 그 전에 받은 수치를 숙치(宿恥), 고통스런 치욕을 우치(憂恥), 치욕을 견디는 일을 인치(忍恥), 얼굴이 두껍고 부끄러움이 없다라는 뜻으로 뻔뻔스러워 부끄러워할 줄 모름을 일컫는 말을 후안무치(厚顔無恥), 자기보다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아니함을 두고 이르는 말을 불치하문(不恥下問), 예절과 의리와 청렴한 마음과 부끄러워하는 태도를 일컫는 말을 예의염치(禮義廉恥), 가슴에 맺힌 원한을 풀어 버리고 창피스러운 일을 씻어 버림을 일컫는 말을 신원설치(伸冤雪恥), 세 번 싸워 세 번 당하는 패배의 부끄러움이라는 뜻으로 곧 번번이 싸움에 지는 부끄러움을 일컫는 말을 삼배지치(三北之恥), 나라의 수치와 국민의 욕됨을 이르는 말을 국치민욕(國恥民辱), 총애를 받는다고 욕된 일을 하면 머지 않아 위태함과 치욕이 온다는 말을 태욕근치(殆辱近恥), 염치 없는 줄 알면서도 이를 무릅쓰고 일을 행함을 이르는 말을 모몰염치(冒沒廉恥),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이 수치가 아니라는 뜻으로 누구에게든지 물어서 식견을 넓히라는 말을 하문불치(下問不恥), 회계산에서 받은 치욕이라는 뜻으로 전쟁에서 진 치욕 또는 마음에 새겨져 잊지 못하는 치욕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회계지치(會稽之恥) 등에 쓰인다.
▶️ 下(아래 하)는 ❶지사문자로 丅(하)는 고자(古字)이다. 밑의 것이 위의 것에 덮여 있는 모양이며, 上(상)에 대한 아래, 아래쪽, 낮은 쪽, 나중에 글자 모양을 꾸며 지금 글자체가 되었다. ❷지사문자로 下자는 ‘아래’나 ‘밑’, ‘끝’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下자는 아래를 뜻하기 위해 만든 지사문자(指事文字)이다. 下자의 갑골문을 보면 윗부분은 오목하게 아랫부분은 짧은 획으로 그려져 있었다. 윗부분의 오목한 형태는 넓은 대지를 표현한 것이다. 아래의 짧은 획은 땅 아래를 가리키고 있다. 그래서 下자는 아래를 가리키고 있다 하여 ‘아래’나 ‘밑’이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모습은 금문에서 숫자 二(두 이)자와 자주 혼동되었기 때문에 소전에서는 아래의 획을 세운 형태로 바꾸게 되면서 지금의 下자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下(하)는 (1)아래. 밑 (2)품질(品質)이나 등급(等級)을 상(上)과 하(下), 또는 上, 中, 下로 나눌 때의 가장 아랫길(끝째). (3)일부 한자로 된 명사(名詞) 다음에 붙이어 ~밑에서, ~아래서의 뜻으로, 그 명사가 조건이나 환경 따위로 됨. 나타냄. ~하에, ~하에서, ~하의 형으로 쓰임 등의 뜻으로 ①아래 ②밑(물체의 아래나 아래쪽) ③뒤, 끝 ④임금 ⑤귀인(貴人)의 거처(居處) ⑥아랫사람 ⑦천한 사람 ⑧하급(下級), 열등(劣等) ⑨조건(條件), 환경(環境) 등을 나타내는 말 ⑩내리다, 낮아지다 ⑪자기를 낮추다 ⑫못하다 ⑬없애다, 제거하다 ⑭물리치다 ⑮손대다, 착수하다 ⑯떨어지다 ⑰항복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낮을 저(低), 낮을 비(卑), 내릴 강(降), 항복할 항(降), 낮출 폄(貶),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윗 상(上), 높을 존(尊), 높을 고(高)이다. 용례로는 공중에서 아래쪽으로 내림을 하강(下降), 값이나 등급 따위가 떨어짐을 하락(下落), 어떤 사람의 도급 맡은 일을 다시 다른 사람이 도거리로 맡거나 맡기는 일을 하청(下請), 아래쪽 부분을 하부(下部), 강이나 내의 흘러가는 물의 아래편을 하류(下流), 산에서 내려옴을 하산(下山), 낮은 자리를 하위(下位), 공부를 끝내고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옴을 하교(下校), 한 달 가운데서 스무 하룻날부터 그믐날까지의 동안을 하순(下旬), 정오로부터 밤 열두 시까지의 동안을 하오(下午), 차에서 내림을 하차(下車), 위에서 아래로 향함을 하향(下向), 보호를 받는 어떤 세력의 그늘을 산하(傘下), 일정한 한도의 아래를 이하(以下), 치적이 나쁜 원을 아래 등급으로 깎아 내림을 폄하(貶下), 상대방을 높여 부르는 말을 귀하(貴下), 끌어 내림이나 떨어뜨림을 인하(引下), 원서나 소송 따위를 받지 않고 물리치는 것을 각하(却下), 낮아짐이나 내려감 또는 품질 따위가 떨어짐을 저하(低下), 아랫돌 빼서 윗돌 괴고 윗돌 빼서 아랫돌 괴기라는 하석상대(下石上臺), 붓만 대면 문장이 된다는 하필성장(下筆成章), 아랫사람의 사정이나 뜻 등이 막히지 않고 위에 잘 통함을 하정상통(下情上通), 어리석고 못난 사람의 버릇은 고치지 못한다는 하우불이(下愚不移) 등에 쓰인다.
▶️ 問(물을 문)은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입 구(口; 입, 먹다, 말하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門(문; 출입구)으로 이루어졌다. 말이 나는 곳, 남의 안부를 묻거나 죄인에게 따져 묻는 일을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問자는 ‘묻다’나 ‘방문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問자는 門(문 문)자와 口(입 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門자는 양쪽으로 여닫는 문을 그린 것으로 ‘문’이나 ‘출입구’라는 뜻이 있다. 問자는 이렇게 문을 그린 門자에 口자를 더한 것으로 남의 집을 방문해 질문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이외에도 외부소식은 문을 통해 들어온다 하여 ‘알리다’, ‘소식’과 같은 뜻도 파생되어 있다. 그래서 問(문)은 (1)물음. 질문(質問) (2)옛날, 경서의 뜻 따위를 구술 시험(試驗)으로 묻는 문제(問題) 등의 뜻으로 ①묻다 ②문초(問招)하다 ③방문(訪問)하다 ④찾다 ⑤알리다 ⑥부르다 ⑦소식(消息) ⑧물음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물을 자(咨), 물을 신(訊), 물을 순(詢), 물을 추(諏), 물을 자(諮)이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대답 답(畣), 대답 답(答)이다. 용례로는 남의 상사에 대하여 슬픈 뜻을 나타냄을 문상(問喪), 웃어른에게 안부를 여쭘을 문안(問安), 남에게서 글자를 배움을 문자(問字), 모르는 것을 알려고 물음을 문구(問求), 서로 묻고 대답하고 함을 문답(問答)예절을 물음을 문례(問禮), 앓는 사람을 찾아보고 위로함을 문병(問病), 죄를 지은 사람이 죄의 사실을 진술하도록 하는 심문을 문초(問招), 물어서 의논함을 문의(問議), 대답이나 해답 따위를 얻으려고 낸 물음을 문제(問題), 잘못을 캐묻고 꾸짖음을 문책(問責),묻는 항목을 문항(問項), 의심하여 물음을 의문(疑問), 남을 찾아가 봄을 방문(訪問), 의문이나 이유를 캐 물음을 질문(質問), 지식을 체계적으로 배워서 익히는 일을 학문(學問), 캐어 물음이나 따져서 물음을 신문(訊問), 일일이 따져 물음을 심문(審問), 상대방의 말을 되받아 묻는 것을 반문(反問), 문제나 물음을 냄 또는 그 문제를 설문(設問), 잘못된 점을 따져 물음을 힐문(詰問), 캐묻지 아니함을 불문(不問), 동쪽을 묻는 데 서쪽을 대답한다는 문동답서(問東答西), 병든 데를 찔러 보는 침이라는 뜻으로 어떤 일을 시험으로 미리 검사하여 봄을 문안침(問安鍼), 정의 경중을 묻는다는 뜻으로 천하를 빼앗으려는 속셈이나 남의 실력을 의심하는 행위에 비유하는 말을 문정경중(問鼎輕重)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