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 사역보다 더 어려운 것이 교육 사역이었습니다. 거역하는 양, 제 갈 길로 가려는 양을 이끄는 목자의 사명도 어렵긴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인내와 겸손 그 리고 사랑과 희생으로 목양에 임하여야 하겠기에 속이 까맣게 타들어가는 것 같을 것입니다. 인도에서는 소를 신성한 동물로 취급하여 잡아먹지 않 는 것은 물론, 괴롭게 해서도 안 됩니다. 자동차가 다 니는 길에 소가 길을 막고 있어도 경적을 울리거나 물 리적 힘으로 쫓아내지 못합니다. 소가 알아서 길을 비 켜줄 때까지 운전사들은 한없이 기다려야 하는데 어느 분이 차에서 내려 소에게 다가가 귀에 대고 몇 마디를 소곤거렸더니 꽁지가 빠지게 도망하더랍니다. 무슨 이 야기를 했기에 소가 도망을 쳤는가 물었더니 “너 목회 좀 해볼래?” 했더니 놀래서 도망쳤다는 우스개 이야 기가 전해집니다. 목회하는 일이 그만큼 어렵다는 이 야기일 것입니다. 미국에서 유학하는 동안 10년, 한국에서 5년의 목회 생활은 어렵기도 했지만 보람과 행복을 느낀 좋은 추 억으로 남아있습니다. 모교의 부름을 받고 신학교의 책임자로 귀국했을 때, 학교는 교회와 달리 주어진 권 위로 기록된 법(교육법, 정관, 학칙)에 따라 수월하게 직책을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나 순진한 생각이었습니다. 학교 내부로부터 오는 어려움은 견딜 수 있는 수준이 었습니다. 그러나 교단 내 교역자들로부터 오는 압력 과 비판은 견디기 어려웠습니다. 본인의 자리 확보, 자기 교회의 신도나 자녀를 위한 특혜 요구 등이 밀려 왔고, 이런 무리한 부탁과 압력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비판은 물론 소송으로까지 이어졌습니다. 1%의 진 실에 99%의 거짓을 섞은 블랙메일(Blackmail)이 나돌 고, 교육부, 국회, 검찰, 청와대에까지 학교와 총장을 모함하는 진정서가 제출되었습니다. 적당히 타협하면 비켜갈 수도 있겠지만, 교육자의 양 심과 학교의 장래를 생각할 때 내키지 않는 경우가 많 았습니다. 부탁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남에게 부탁 하는 일이 처음일지 몰라도 학교 행정의 책임자로서는 수없이 당하는 어려움입니다. 물론 좋은 인재를 추천 해주고 조언을 해주시는 것은 백번 환영할 일이고 고 마운 일이지만, 자격이 안 되는 사람의 채용을 부탁하 거나 학교 형편으로 당장 해결할 수 없는 일을 청탁하 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부탁이나 청탁이 이루어지 지 않을 때의 섭섭함은 원망과 미움으로 바뀌고, 비난 과 함께 모함으로 돌아옵니다. 생전 처음으로 검찰에 출두하여 조사를 받았고, 학교 가 불시에 교육부 감사도 받았습니다. 그래도 자기들 이 예상했던 결과가 나오지 않자 정부기관을 믿을 수 없다며 야당 국회의원에게 진정서가 들어가고, 마침내 는 청와대 민원실에까지 총장과 학교의 비리를 밝혀달 라는 청원이 제출되었습니다. 이마저 효과가 없자 형 사고발까지 당하여 재판을 받은 것도 여러 번입니다. 명예훼손과 무고로 맞고소를 할 수도 있겠지만 대상이 동역자이고 목회자인데, 그들이 처벌을 받게 될 경우 그 교회 신자들이 겪을 고통이나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 질 수 있다는 점에서 차마 실행할 수 없었습니다. 맞고 소를 통해 나와 학교를 고소한 이들에게 똑같이 시간 적, 물질적 손해와 함께 정신적 고통을 당하게 해야겠 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떠오를 때도 없지 않았습니다. 그때, 무고하게 빌라도의 법정에 서셨던 예수님, 여러 번 옥고를 치르며 쇠사슬에 매였던 바울 사도를 생각 하면서 내가 당하는 고통은 감히 비교할 것도 못됨을 깨닫고, 하나님께 감당할 힘을 주십사 기도할 뿐이었 습니다. 이때 나를 붙들어주었던 말씀이 이사야서 41 장 10절입니다. 목회현장에서, 선교지에서 또는 교육현장에서 감당하 기 어려운 순간들이 왜 없겠습니까? 그러나 “두려워 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 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하신 말씀을 통해 위로와 힘을 얻고 인내하 면서 맡겨주신 귀한 사명들을 끝까지 잘 감당하시기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의로운 오른손이 붙잡아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