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 버스/ 여정건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불빛도 없는 깜깜한 밤거리에 꼭 상여모양 울긋불긋하게 치장을 한 버스가 내 앞에 급정거했다가 급하게 출발하는 버스에 어디를 어느 경로로 가는지 묻지도 않고 빨려들듯이 올라탔다.버스 안에는 희미하게 켜진 붉은 등이 앞과 뒤쪽 천정에 한 개씩 켜있고 옷도 걸치지 않은 목각 인형처럼 생긴 유령들이 빨간 눈빛으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섬뜩한 느낌을 받으며 멘 뒤쪽에 남아 있는 한 개의 좌석에 앉았다.
나는 지나온 길을 보려고 뒤를 돌아보았으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버스는 라이트도 켜지 않은 채 깜깜한 터널을 쏜살같이 통과하고 있었다.
진흙과 자갈을 튕기는 소리만 요란하게 날 뿐이다.
유령들은 바람에 흐느적거리는 갈대 처럼 덜컹거릴 때마다 몸이 휘청거리며 괴성을 지르고 엉덩방아를 찧는 모습이 우습기도 하지만 뼈만 남은 몸이 흩어지는 건 아닌지. 걱정스러웠다. 그러나 나 또한 삼백육십오일 술에 취한 듯 정신이 깜박 깜박거렸다.
어디를 얼마만큼 왔는지 모르지만. 꽝! 소리에 버스는 급정거했고 함께 타고 있던 유령들은 위로 튕겨 올랐다가 버스 의자와 통로에 널브러지면서 괴성을 지르고 시뻘건 눈동자를 굴린다. 나 또한 그들 몸 위에 걸쳐있었다.
운전수는 공구 통에서 유압 작기를 꺼내 들고 차 밖으로 나가려고 문을 열자 흙먼지가 자욱하게 차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운전수는 뭘 하는지 보이지 않는다. 잠시 후 운전수가 돌아왔다. "왜? 타이어 펑크가 났어요?" 내가 물었다. 그는 아무 대꾸가 없다. "이 유령 같은 버스는 어디를 가고 있나요?" 하고 또 내가 물었다. 이 말에 운전수는 동작을 멈추고 고개를 180도 휙 돌려 시뻘건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운전수의 모습에서 광기 같은 것이 감돌았다. 그의 눈동자에서 보이지 않는 전류가 흘러 내 몸을 꼼작 못하도록 압도하는 것을 느꼈다. 나는 정신을 차리고 일어서려고 했으나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버스는 덜컹 소리를 내고 출발하였다. 운전수는 앞을 보는 게 아니라 나를 계속 응시하고 있었다. 차 안에 널브러진 유령 같은 사람들도 꼼짝하지 않고 넘어진 자세대로 흔들리고 있었다. 아! 큰일이다, 이대로 이 차에 실려 가면 영영 돌아올 수 없는 황천길에 발을 들여놓게 되겠지, 이 유령버스에서 어서 빨리 빠져나가야겠다. 어디를 가려고 이 버스를 내가 탔을까!
아니 어디서 이 유령버스에 승차했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다. 골똘히 생각해보았지만, 짐작도 할 수 없다. 다만 세차게 빨려 들어왔다는 것뿐, 버스는 요란하게 흔들리면서 달리고 있었는데 운전수는 계속 나를 쳐다본다. 버스 창밖을 통해 보이는 불빛이 휙휙 거리며 지나가는 것으로 미루어 차는 덜컹거리며 무서운 속도로 달리고 있는 게 틀림없다.
내 몸은 유령 몸에 걸쳐 있다가 차의 흔들림에 의해 내 머리가 버스 바닥에 널브러진 한 유령 머리와 부딪혔다. 유령 머리는 목탁 소리를 냈고 그 소리는 내 머릿속으로 울려 퍼지면서 심한 사통을 유발했다. 그때 유령은 빨간 눈동자를 굴리며 나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보아 하니 넌 아직 죽지도 않은 놈이 왜 이 차를 탔지? 가만있자, 못쓸 죄를 많이 진 모양이구나." "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이 유령 버스는 세상에 살면서 남에게 악질적인 죄를 지은 영혼을 운송하는 유령버스란다.”
“그럼 난 어떻게 해야 이차에서 내릴 수 있나요?” 그 유령은 대답이 없다.
유령버스 안에는 유령들이 무슨 말인지 모르는 괴성 소리로 가득하다. 나는 점점 정신이 흐려져 가는 것을 느꼈다.
운전자가 버스를 급정거로 세우는 바람에 또 한 번 유령들은 뒤엉키며 괴로워하는 듯 괴성을 지른다. 운전자는 나에게 다가오더니. "넌. 어디서 몰래 숨어들어왔어? 허! 큰일 났는데. “ 운전자의 눈에서 붉은 섬광이 번쩍여서 나는 눈을 꼭 감았다.
“눈을 보니 이놈은 산 놈이고. 그럼 한 놈이 없잖아. " 광기가 어린 눈은 한층 더 나를 매섭게 쳐다보고 있었다. 내 몸은 한 없이 오그라들고 있었다.
" 너라도 잡아가야겠다." 하면서 세차게 오른 발을 들어 내 하복부를 걷어찼다. 나는 하복부에 심한 통증을 느끼며 그의 다리를 잡고 내려 달라고 애원을 했으나 허사였다.그의 다리는 힘없이 내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며 또 한 번 하복부를 걷어찼다. 나는 창자가 끊어지는 심한 통증에 몸부림치며 있는 힘을 다해 살려 달라고 소리쳤다.
운전수는 돌아보지도 않고 운전석에 털썩 주저앉더니 중얼중얼 거리며 콧노래를 하면서 난폭하게 버스를 몰기 시작했다.나는 있는 힘껏 소리를 지르면서 손과 발을 버둥거렸으나 운전수는 돌아보지도 않는다.한참을 달리다가 버스가 급정거했다. 또다시 유령들은 뒤엉키며 고통스런 운 괴성을 지른다.
나는 고개를 힘껏 끌어올려 차 밖을 보았다. 안개가 자욱하게 깔린 절벽 위에 있는 것 같았다. 운전자는 유령들을 짓밟으면서 성큼성큼 내게로 닦아오더니 "큰일이네. 이 재수 없는 놈 이놈은 안 되겠다. 이놈을 데리고 가면 내가 문책을 받겠는걸. 절벽에 던질까 조금 더 올라가서 황천 문에서 집어 던질까." "살려주세요. 저는 차를 잘못 탔습니다." 나는 울면서 애원했다.
“애라 이놈을 여기 절벽에서 던져 버려야지. 죽든지 살든지 내가 알게 뭐야.” 큰 소리로 말을 하면서 내게로 닦아왔다.
이놈아. 여기서 놓아줄 테니 네가 알아서 살아서 돌아가거라. 알았어? 큰소리로 대답해."
"네."하고 큰 소리로 대답했다.
" 그리고 술 좀 작작 마셔라. 술 냄새에 입 냄새에 내 머리만 아픈 게 아니라 그 유독가스에 세상 사람들 모두가 실신하겠다. 알겠나?"
"네." 나는 부끄러워서 모기 소리보다도 작게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대답을 했더니.
“이 새끼 봐라, 대답이 시원치 안어.” 하면서 왼 발을 번쩍 들어 또 배를 찬다. 창자가 끊어지는 고통 참으면서. "아이고! 잘못했습니다. “ 나는 허리를 꾸부리고. "네. 네 참말로 살려만 주신다면. 아이고, 배야.”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나를 강하게 내리쳤다.
"네 이놈. 약속을 어기면 그때는……." 운전사의 빙긋이 웃는 표정이 나를 더욱 움츠리게 했다뭐라고 중얼거리며 그는 한 손으로 내 목 뒷덜미를 잡고 번쩍 들어서 버스 밖으로 힘껏 집어 던졌다.
나는 깊은 골짜기로 떨어지면서 하늘을 날아가는 버스를 쳐다보았다. 버스는 빨간 비상등을 세 번 깜박거리면서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나는 깜짝 놀라 눈을 번쩍 떴다, 내 몸은 침대 밑에 놓아두었던 작은 공구함 모서리에 떨어져 눈이 몹시 아팠다.
다시금 입으로 호흡할 수 있는 쾌감이 심한 통증을 이길 수 있게 해주었다.
잠옷은 땀으로 전체가 젖어 꼭 비 맞은 생쥐처럼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겨우 일어나 거울을 보니 외안각에 상처가 생겼고 그곳에서 흘러내리는 피와 땀 때문에 얼굴 은 온통 피범벅이 되었다.
시계는 새벽 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우선은 피를 닦아내기 위해 샤워를 했다. 비상약통을 찾아 상처에 연고를 바르고 눈 전체를 가리는 거즈를 대고 반창고를 찾았으나 없다 세수수건으로 눈을 가리고 다시 자리에 누었다. 아직도 나는 꿈속에 있는 듯 온몸을 떨고 있었다.
나의 입안과 혀는 바싹 마른 밭고랑같이 갈라져 금방이라도 피가 나올 것만 같다. 시원한 냉수를 마시기 위해 엉거주춤한 걸음으로 주방 냉수기로 갔다. 큰 컵으로 냉수를 마시고 나니 머리가 맑아지고 두근거리던 심장도 가라앉았다. '너무나 끔찍한 꿈이로구나.' 나는 또다시 한 컵을 마시고 방으로 돌아와 잠을 청했다.
눈을 떠보니 7시다. 서둘러 출근 준비를 했다. 아파트 승강기 안에서 만난 사람들은 내 얼굴을 보고 피식 웃으며 “누구한테 되게 매를 맞으셨나 봐요!” 고소하다는 것인지! 매를 맞은 것이 안 됐다. 는 것인지? 여하튼 나는 피식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끝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