벵갈고무나무와 이별했다. 그 별리의 정情이 애달팠다. 그것을 들여놓을 때 기쁨이 컸다. 수형이 마음에 들었고 달항아리 같은 화분이 우아했다. 기하학적 구조물인 원목 받침대도 멋졌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수려했다.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며 물을 주고 잎사귀를 닦았건만 무엇이 맞지 않았는지 한 잎 한 잎 시들어가다가 마침내 원줄기가 시커멓게 물렀다. 나무를 보냈다.
빈 화분은 한켠으로 치워졌다. 계절이 두어 번 바뀌도록 놓쳐버린 나무가 아쉽고 허전했다. 토요일 오후, 문득 나무를 사러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무를 놓친 헛헛함은 나무로 채워야 한다. 아이를 불렀다. 빈 화분을 끌어안고 칠성 꽃시장엘 갔다. 꽃 천지 나무 천지다.
벤자민을 사고 싶었다. "화분하고 나무 크기가 맞지 않아요." 화원 주인의 말이다. 마음에 드는 벤자민 몇 그루를 살피며 고집하니 화분을 포기하라고 한다. 조선백자 달항아리를 닮은 화분을 놔버릴 수가 없다. 몇몇 나무들을 이모저모 살피고 몇 번의 망설임 끝에 초록 잎사귀가 유난히 반짝거리는 나무를 선택한다. "대박나무요." 화원 주인이 나무를 뽑아 들며 말한다. "와, 대박!" 나도 모르게 나온 감탄사다. "보통 대박나무라 카는데 진짜 이름은 녹보수綠寶樹라요." 그가 덧붙이는 말을 흘려들으며 나는 '대박'을 생각한다.
들고 간 화분에 검고 푸슬푸슬한 배양토를 넣은 후 그 속에 뿌리를 조심스레 묻고 다독인 다음 깨끗한 마사토를 덮는 과정을 눈을 떼지 않고 본다. 후즐근한 줄무늬 셔츠를 입고 구부정하게 엎드린 남자의 손길에서 정이 느껴진다. 그는 나무를 사랑한다. 나도 나무를 많이 좋아한다. 그가 내게 나무를 넘겨준다.
몇 걸음 물러나서 나무를 바라본다. 튼실한 원줄기에 곁가지가 두어 개 옆으로 나 있고 그 위에서 다시 대여섯 갈래로 가지들이 벌어져 있다. 가지들이 잘 보이지 않을 만큼 잎이 무성하다. 초록빛 잎사귀들은 반짝반짝 빛이 난다. 건강해 보여서 더 귀하고 좋다. 무엇보다 대박나무라 해서 기분이 그만이다. 아이가 그걸 번쩍 들어서 품에 안고는 성큼성큼 걷는다. 오, 나는 온갖 것에 다 의미를 두고 기대를 한다. 이루어지길 바라는 간절한 소망이 내게 있다. 늘 기도하는 마음이지만 때론 러키세븐이나 네 잎 클로버, 아치의 까치 따위에도 바람을 갖는다. 깜냥이 그러한 까닭에 속설에 기대고 말 한마디에도 꿈을 꾸게 된다.
아이가 거실에 나무를 들인다. 제 자리에 놓으니 나무의 '신수'가 더 훤해 보인다. 나무와 화분, 받침대가 어울려 작품이 된다. 벵갈고무나무가 나간 자리가 비로소 채우진다. 소파에 앉아서 나무를 바라보다가 인터넷을 뒤적인다. 다른 나무는 다 실패해도 이 나무는 키웠다는 글이 올라와 있다. 그만큼 생명력이 강하다는 것이다. 잘 죽지 않고 오래 가기에 개업선물로 가장 많이 선택되는 나무라고도 한다. 그래서 '대박나무'구나. 모든 개업은 '대박'을 염원한다. 그런 게지, 나무에 무슨 신통력이 있으랴만 그 끈질긴 생명력에 사람들이 소망을 얹는 것이지.
녹보수, 녹색 보석나무, 나무의 원래 이름이 참 예쁘다. 운이 좋으면 행운목처럼 꽃을 볼 수 있다고 한다. 호박꽃을 닮은 작고 노란 꽃을 만날 수 있으려나. 그러려면 잘 키워야지, 나무를 잘 알아야지. 나무의 생태와 생장환경에 대해서 공부를 해야겠다. 나의 보석나무, 그렇게 이름을 짓는다. 보석나무를 바라보다가 거실에 있는 다른 나무들을 찬찬히 살핀다. 서로 동무 같다. 꽃이어서 예쁘고 나무여서 좋다.
한 뼘 땅이라도 좋으니 흙이 있는 집, 마당귀에 키 작은 나무 한두 그루는 심을 수 있는 집에 살고 싶었다. 이 나이가 되도록 그리하지 못했다. 이제 영 가망이 없어 보인다. 꽃이나 나무에 대한 나의 애착은 마당을 누리지 못하는 결핍에서 비롯되었으리라 생각한다. 워낙 문외한이라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꽃을 들이고 나무를 가져와서 거실을 채우는 일을 그래서 나는 멈추지 못한다.
벵갈고무나무에 들였던 정을 가슴에서 고이 내보낸다. 그 빈자리에 에메랄드빛 나무 한 그루를 들인다. 녹보수, 이제 그와의 시간이 시작된다. 눈 맞춤을 잦아지고 정은 깊어지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