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변영희 | 날짜 : 12-07-25 13:25 조회 : 1734 |
| | | 나는 지금 후회하고 있다. 아니다. 후회의 시작은 지금이 아니라 좀더 오래 되었다. 한 달 전쯤이라고 생각된다. 나는 아주 먼 길, 3호선 화정역에서 출발하여 거의 끝 지점에 이르는 곳으로 동양고전(東洋古典) 강의를 들으러 갔다 오는 길이었다.
공맹(孔孟) 등 선진유가와 제자백가에 대한 강의는 언제 들어도 질리는 법이 없고, 항상 내 두뇌를 녹슬지 않도록 원활하게 회전시켜주는 기능을 한다.
삶이 팍팍하다고 실감할 때, 인성교육은 뒷전이고 오로지 경쟁으로만 치 닿는 현대의 교육 방식에 회의를 느낄 때 심오한 우주철학이 잠재되어 있는 동양고전에 자연스럽게 끌려들어가곤 했다. 그 비유, 은유가 가히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뛰어나 문학적 가치로서도 상당한 매력이 있어 나는 노상 아파! 힘들어! 하면서도 매주 그곳에 갔다.
수강료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았다. 전 과정이 무료였다. 이미 지난 시절에 배운 내용이지만 공자의 인의(仁義)와 맹자의 성선설(性善說), 순자의 성악설(性惡說) 등을 다시 듣게 된 것이 나는 그리 고마울 수가 없던 것이다.
그날은 내 몸이 몹시 불편했다. 나는 부득이 한 시간 정도에서 그만 교실을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몸에서 보내오는 신호, 쉬고 싶다고 하는 간절한 요구를 무시한 게 잘못이었다. 으스스 한기가 나면서 콧물이 줄줄 쏟아지고 재채기가 연속 났다. 전형적인 여름 감기의 침투였다.
지하철은 빽빽했다. 출퇴근 시간대도 아닌데 웬 사람들이 그리 많은지 어디에도 빈 자리가 없어 서서 가는 중에 갑자기 한 할아버지가 차에 탔다. 그 할아버지는 분홍색 마문지로 꽁꽁 여미고, 노끈으로 가로세로 묶은 사각형의 어떤 물건을 안고 있었다.
갑자기 기자 근성?이 발동한 것일까. 나는 가방에서 디카를 꺼내 할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들고 있는 사각형의 짐을 찍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질문 몇 가지를 했다. 할아버지의 관심은 무사히 그 짐을 잘 전달해주고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는 것에 집중된 것처럼 보였다. 이를테면 그것은 할아버지의 귀중한 생업이었고 지하철은 그 현장이었다. 택배할아버지는 경복궁역에 이르자 직사각형의 짐을 가슴에 싸안고 하차했다. 내가 택배할아버지와 문답을 주고받는 것을 지켜본 많은 승객들이 할아버지가 안 보일 때까지 망연히 바라보고 있었다.순간 나는 아차! 했다.
집에 오자 그 할아버지를 중심으로 나는 기사 작성을 했고 사진을 줄여 곧바로 뉴스를 날렸다. 인터넷 뉴스에 올라온 택배할아버지의 기사와 사진을 보자 나는 깊은 후회를 거듭했다. 그 얼굴 모습이 매우 피로해보였고 슬퍼 보였기 때문이다. 이건 정말 실수였다. 나는 참을 수 없어서 딸과 아들에게 실토했다.
“엄마 짠돌이다!” “엄마! 음료수 값이라도 드리고 와야지, 너무했다.”
후회가 거듭되자 나는 기자라는 항목을 내 잡다한 업무 목록에서 내려놓고 싶었다. 나는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을 자주 이렇게 놓치고 지낸다. 문학에서 휴머니즘이 어떤 스토리를 엮어 가는지 거창하게 논의하고 싶지는 않다.
기자 역할을 쉬고 보니 눈 돌릴 데가 오히려 증가한 느낌이다. 무엇보다도 나의 불건강을 살펴보아야 했으며, 가능하다면 이미 지난 일로 후회하지 말고, 비록 작은 일이라도 후회할 일을 만들지 않고 살 수 있기를 다짐했다.
이런 마음의 동향이 결국은 생활의 여백을 확보한 결과가 아니겠는가. 정신없이 이일 저일에 휘둘리는 것 삼가하고 멀리 넓게, 내 삶을 조망하기로 한다. |
| 박원명화 | 12-07-25 22:10 | | 요즘 할아버지들께서는 생업으로 하시거나 용돈이라도 벌고자 알바 삼아 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급한 물건을 전달하는 이른바 택배도 하시고, 서류전달도 하고 꽃배달도 하신답니다. 그나마 몸이 건강하여 그런 일이라도 할 수 있으니 다행이라 해야 하는 건지, 기왕에 시원한 음료수라도 한 잔 사주셨더라면 좋았을 것 그랬습니다. 더운여름 건강 잘 쳉기세요. | |
| | 변영희 | 12-07-26 07:26 | | 삼복 더위에 무슨 일인지 그 때 그 일을 잊지 못하네요. 극히 사소한 일인데 슬퍼보이는 그 얼굴이 머리에서 떠나지를 않아요. 그 얼굴이 오늘의 고령화 사회를 대변한 것 같기도 하고. 감사합니다. | |
| | 최복희 | 12-07-26 18:37 | | 변 선생님은 좋은 기사로 독자를 사로잡고 계시지요. 능력이 따르면 여러가지를 해도 보람있는 일인데 체력이 안따라주니 못하겠더군요. 저는 요즘 기자활동 접었습니다. 사무국엔 6개월 휴가 맡았는데 다시 복귀하게 될지는 의문입니다. 한 가지를 끊고나니 심신이 편하기만 하네요.^^* 후회하시는 마음이 곱습니다. | |
| | 변영희 | 12-07-26 21:25 | |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나는 마우스를 움직일 기운도 없었지요 미안해요! 그대의 글 -어머니의 뒷 모습 - 잘 읽었어요. 그대가 꼭 그 어머님을 닮아 있잖아요. 어쩜 나도 6개월 휴직, 그 뒤의 일은 말할 수 없고. 지금 한국저작권협회에서 E 북 만들어주어요. 완전 무료로. (회원가입비2만원) . <안철수의 생각>처럼 교보문고가 들썩거리지 않아도 해보는 데까지, 가장 좋아하는 일 해야지요. 고마버요. | |
| | 임재문 | 12-07-27 04:46 | | 변영희 선생님의 기자정신에 저는 박수 보냅니다. 그리고 그 기자 정신이 아마 우리 수필계를 이끌어가는 원동력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그렇게 순간은 놓치지 않는 기자정신으로 살아가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변영희 선생님 ! | |
| | 변영희 | 12-07-27 21:09 | | 선생님의 글 '용서하시는 하나님' 을 읽고 서울의 대형교회에서 성경공부하던 때가 생각났지요. 휘영청 달 밝은 밤에 오산리 기도원 굴에서, 혹은 눈날리는 겨울 밤 철야예배에서 우리는 흔히 다윗왕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지요.우리아를 격전지로 내몰아 죽게하고 그의 아내 밧세바를 취한 일에 대하여. 여기 저기 대강 섭렵한 후에 모든 것은 一切唯心造 라는 나름대로의 정의를 내리고 있지만 당시는 상당히 몰두했지요. 열심히 사시는 모습 보기에 좋습니다. 고맙습니다. | |
| | 김자인 | 12-08-07 15:47 | | 변영희 선생님, 몸이 지치지 않아야 공부도 하시지요. 늘 열성적인 선생님, 공부도 열심히 하시고, 기사도 열심히 쓰고 계시는군요. 더위에 몸 관리 잘 하세요. | |
| | 변영희 | 12-08-07 17:03 | | <마음으로 찾아가는 '108산사 순례단'> 간이 참 알맞게 밴 맛있는 글 읽고 나 혼자 감탄을! 어디 글뿐이랴! 사람 자체가 감탄이거늘. 우리 작가회 동인들의 활약에 늘 고무되고 자긍심! 이몸은 -108산사- 거기 따라가고 싶어도 옴싹 못하는 심정. 좌판 벌여놓고 밖에만 나돌수도, 이미 멀리 와 있어 되돌아갈 수도.... 고맙습니다. | |
| | 김권섭 | 12-08-16 08:57 | | 변영희 선생님! 열심히 사시는 모습이 존경스럽고 아름답습니다. 동양의 고전 공자 맹자 순자를 열심히 공부하시고, 기독교의 신앙에 심취하시어 다윗, 밧세바의 삶을 조명하시고 오산리기도원을 드나드시니 원만한 수양과 인격에 감화됩니다. 존경합니다. 늘 건강하십시오. | |
| | 변영희 | 12-08-17 17:43 | | 김권섭 선생님. 어찌하면 불교 기독교 유교를 어느 한 쪽 치우치거나 폄하하는 일 없이 잘 어우러지게 작품을 써 보나 하고 늘 고민입니다. 나름대로 장 단점 다 있고, 서로 유사성도 많고요. 선생님께서는 작가회에서 매우 의욕적으로 작품활동 하고 계시더군요. 반갑습니다. 고맙습니다. | |
| | 일만성철용 | 12-08-17 14:48 | | 전철에서 만난 가난한 사람과의 많은 일화가 있습니다. 무가지를 회수하는 분에게, 초라한 복장의 가난한 사람에게, 술을 좋아하는 할아버지에게 얼마의 돈과 술이나 식사를 사드리는 일 등등. 그러면서 항상 주의할 것은 남모르게 하거나, 자존심을 상하게 하지 말아야겠더군요. | |
| | 변영희 | 12-08-17 17:38 | | 일만 선생님! 더위가 여전히 기승을 부립니다. 건강한 여름 잘 보내고 계시죠? 그렇습니다. 그래저래 선뜻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기회를 놓쳤는지도 모릅니다. 참 그러고요. 문협 세미나 - 양평 숲속의 아침 -에 가서 아주 총명한 성삼문의 후손? 을 만났습니다. 선생님께서도 익히 알고 계실지 모르는 분. 선생님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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