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아들, 혹은 1980년대식 주체성의 기원.
-이문열, [사람의 아들], 민음사, 2004. 4판 읽기-
1. 소설 [사람의 아들]. 스물다섯 살 먹다.
대학교 1학년 때에 이 책(2판)을 대단히 힘들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논문보다 더 장황했다고 기억되던 각주가 후주(後註)로 처리된 4판은, 기독교적 전문 지식을 요하는 각주의 많은 부분은 ‘신학(神學)’전공이 아닌 한 이해에서 한계를 가지겠지만 세월이 흐른 만큼 성숙해진 시야로 소설 자체를 꽤 깊이 있게 읽을 수 있었다. 한국 현대 소설사에서 [광장]과 더불어서 [사람의 아들]은, 독자의 정신적 성숙에 따라서 다양한 측면의 문제제기를 던져주는 작품목록에 들어간다.
소설은 1970년대란 시간적 배경을 가질 것이다. 그러나, 오랜 시간 읽혀온 스테디셀러의 의미는 소설 창작 시점의 작가의식으로 환원하는 방식만으로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독자가 성장하며 자라는 만큼, 소설작품도 나이를 먹고 성장한다. 그래서, 독자 속에 회자된 소설 텍스트는 고유의 ‘나이테’를 반드시 가진다.
나는 대학가에 최루가스가 가득하던 1980년대 후반에 이 책 2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읽었었다. 당시의 대학가에서는 [사람의 아들]을 논했던 어느 문학평론가보다도 더 정확하게 읽은 이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좌편향 가치로 천편일률이던 대학가에서, 이 책을 좌파적 가치만을 도배해야 된다는 그 무렵의 대학가의 전형적인 가정 속에서 ‘권장도서’에서 ‘필독서’사이로 꼽은 독자들은, 어느 전문적인 문학평론가보다도 소설을 상당히 정확하게 읽었다고 본다. 물론, [사람의 아들]을 필독서로 선정했던 그 독자들이, 1990년대 이후에 다른 계기를 바탕으로 ‘수구보수(?)’적인 작가로 이문열씨를 규정했던 것도 사실이다. 소설가 이문열에 대한 작가론을 쓸 때에 좌파적 가치와 늘 거리를 가졌던 ‘보수주의’ 작가란 평가를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작가론 차원에서 보수주의 작가로 불려질 소설가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은, 작품론 차원에서는 보수주의로 불려질 수 없다. 모든 작가는 동일한 이념 좌표만으로 평생을 살지 않는다. 만약에 동일한 좌표만으로 살았다면, 암기과목 공부의 수험생을 제외한 일반인들에게는 그 작가를 살펴봐야 할 가치가 매우 떨어지게 될 것이다. 한 작가의 문학 이념의 변화는 작가의 문제성을 독자들에게 증폭 시킨다.
나는 예술가의 작품을 출산(出産)에 비유하는 관습을 전적으로 찬성한다. 작가가 만든 텍스트이더라도, 소설작품은 독자적 생명체라고 본다. 소설가가 구상한 소설에 적합한 독자들이 완전히 사라지는, 소설작품이 시간성(時間性)의 침식에 못 견디고 대중들에 망각되고 말 때, 소설작품의 생명은 ‘삶’을 마친 것이고 역사 차원으로 기록되는 것이다. 생명체로서의 예술작품의 역사기록으로서의 퇴장은, 소설의 사회사가 만드는 작가와 독자간에 주고받을 문제의식의 완벽한 소멸에서 가능하다. [사람의 아들]은 문학을 넘어서서 인문학의 본질 차원을 그려낸 만큼, 세계 문학 전집에 수록된 소설작품들의 나이와 장수성(長壽性)을 다툴 가능성이 충분할 것이다.
[사람의 아들]은 겨우 스물다섯 살 밖에 안 먹었다.
2. ‘하나님의 아들’에 대칭 항으로서의 ‘사람의 아들’, 혹은 1980년대식 주체성의 탄생
이 작품의 형식은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예수님과 ‘사람의 아들’로서의 아하츠 페르츠가 대립인물구조를 이룬다. 소설 속에 드러난 주제적 인물의 대칭 구조는 사람의 아들 세대를 ‘신세대(新世代)’로 설정할 때, 신의 아들로 설정되는 세대일 ‘구세대(舊世代)’와의 대립 각으로 이해할 수 있다. 6.25 전쟁의 기억을 비교적 깨인 눈으로 접근했던 전후 세대의 다음 세대들이 사회의 중심으로 자리했던 시간들은, 그 이전 세대들의 유신론(有神論)적 세계관의 무신론(無神論)적인 전복의 순간들이었다고 판단하는 것은 다수의 공감을 얻을 것으로 본다.
사람의 아들에 강조를 한 상태로 하나님의 아들과 대립시키는 소설의 의도가 마르크스주의의 실천적 주체성과 마르크스의 적(敵)이었던 독일 관념론자들의 신학적 가치관과 대립 처럼 이해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다.
하지만 가난은 그의 대학처럼 그 어느 것도 끝을 볼 수 있도록 그를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에게는 어느새 그에게밖에 부양을 기대할 수 없는 늙은 부모와 어린 동생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은 모두 가고 없는 그들. 부모는 그가 아직 단칸방을 면하기 전에 차례로 세상을 떠나고, 가난이 싫어 진작 가출한 큰 누이는 벌써 구 년째 소식이 없다. 그의 신혼을 궁색으로 찌들게 하며 여상을 나온 작은 누이는 두어 해 전 직장 동료인 은행원과 결혼했고, 공전을 나와 작년에야 제대한 동생은 중장비 기사로 중동에 나가 있다. 하지만 그들을 위해 당시만 해도 어렵기 짝이 없던 구직 대열에 끼어들었던 그는 손쉬운 대로 경찰에 들어왔다가 이렇게 굳어버리고 말았다. 노력에 비해 빠르지도 늦지도 않은 승진, 보람일 것도 회한일 것도 없는 업무, 그러나 빠르기는 한 해가 하루처럼만 느껴지는 팔년과 형사계, 남경사.(9쪽.)
[사람의 아들]의 주인공 아하츠 페르츠는, 6.25전쟁을 유년 시대로 치른 세대들의 평균의식을 대변한 남경호의 실존의식의 연장선에 놓인다. 좌파적 가치관의 연구가 말하는 신화로서의 ‘1980년대’는, 좌파의식을 전혀 가지지 않은 이들이 어떻게 마르크스주의적 생각에 비슷한 선입견을 가졌는가를 염두에 두어야만 이해될 수 있다. 좌파 정치학에서 말하는 ‘1980년대’의 전형적인 주체들은 사실상 극소수이다. 극소수를 인위적으로 과장하여 좌파정치의 역사적 정당성을 인위적으로 만드는 것은 부당하다. 그러한 극소수가 한 시대 전체를 총체적으로 대변하는 주체로 나서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6.25 전쟁을 유년 시대로 치른 세대들이 어떻게 우파 사상의 중심인 기독사상에 반감을 가져왔는가에 대한 고찰은, 좌파적인 사회학자가 아닌 중립적 세계관의 사회학자들에겐 매우 중요한 것이다. 물론, 그러한 중립적 세계관의 사회학자들에겐 대학가를 장악한 운동권 세력들이 대학 후배세대들을 선배란 이유로 어떻게 강박하여 비(非)진의 의사 표시를 이끌어 냈는가도 중요할 것이다.
6.25전쟁 직후의 풍경 속에서 젊음을 보낸 세대들이 마르크스주의의 전체적인 지적 면모를 이해했을 가능성은 매우 적다. 책이 넘치는 오늘에 있어서도 좌파 이념 공부는 소수만의 일이다. 책이 적은 과거는 좌파 이념 공부는 더 제한된 소수의 일일 것이다. 군대 문화에서 열외병과 신참병사의 일거리를 다 맡아야 했던 할 말 많은 입장은, 늘 말이 앞서는 관념을 멸시하게 된다. 책이 적은 과거에 공부를 요하는 좌파적 실천관이 좋아보였다면, 그것은 공부보다는 일을 해야만 했던 세대의식 속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남경호가 “사람은 자신이 신뢰를 둔 곳에서 그 대가를 거두어야 한다(164쪽).며 민요섭의 원고를 믿으며 뭔가가 있기를 기대한다. ―그 법언은 공시방법을 믿고 거래한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내용의, 중세 게르만법의 ‘손이 손을 지킨다.(Hand wahre Hand)는 말로 보인다.― 1980년대식 주체성의 기원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6.25전쟁을 유년 시대에 겪은 이들의 착각과 대학가를 장악한 좌파적 성향의 학생운동권들의 의도성의 만남이었다. 남경호의 민요섭에 대한 신뢰. 그리고 대가의 기대. 이것을 이해할 수 있다면 1980년대의 학생운동 무렵의 사회상을 구성하는 능력이 있다는 말과 같다.
‘하나님의 아들’과 대칭 항으로서의 ‘사람의 아들’은, 1980년대 이전에 소리 없이 많은 일을 이룬 세대들의 자의식의 표현이면서, 1980년대 좌파 학생운동의 문제의식을 대신 말해주는 차원이기도 하다. 민요섭과 아하츠 페르츠, 조동팔이란 캐릭터는 소설의 제목이면서 주제의식인 [사람의 아들]의 측면을 드러낸다. 그러면서, 이들의 캐릭터들에는 1980년대식 주체성의 기원에 해당되는 요소가 내재되어 있다. 사람의 아들을 대표하는 이 세 명의 소설적 형상화에는 마르크스주의와 니체주의의 개입이 보인다.
3. 사람의 아들, 그리고 마르크스와 니체.
[사람의 아들]이 설정한 종교적 신성성과 대칭 항으로 내세우는 인간의 영역은, 마르크스주의와 니체주의를 통해 그려졌다. 인간의 본래적인 정의는 신적 이념과 세속적 영역의 종합이 맞지만, 이 글은 오로지 인간의 세속적 측면에서만 강조되었다. 작가 이문열은 액자 소설 바깥의 실질적 주인공인 남경호를 통하여 [사람의 아들]의 핵심 주제문이 담겨 있을 쿠아란타리아서에 비평한다. 이러한 비평은 좌파적인 정치 서적으로 오해되지 않기 위한 작가가 인위적으로 만든 소설적 장치로 보인다.
읽기를 마친 남 경사는 민요섭의 그 어떤 노트를 읽었을 때보다 더 혼란되고 막막한 기분으로 그 노트를 덮었다. 조동팔의 서툰 글 솜씨와 설익은 관념들이 덧칠된 탓이라 쳐도, 그 화자를 신이라 부르는 것은 너무 억지스러워 보였다. 특히 뒷부분은 신학적 논의에 그리 익숙하지 못한 남경사에게마저 합일을 위한 합일로만 보였다. 예수를 공박하던 아하스 페르츠의 그토록 치열하던 반기독적 논리의 바탕이 겨우 그런 애매한 신으로 귀결되고 만 게 솔직히 실망스럽기 그지없었다. (348쪽)
한국에서 가장 많은 독자층을 확보한 소설가 이문열은, 이러한 스타일의 비평적 개입을 작가가 여러 작품에서 시도해왔다. 작가가 최선을 다해서 표현했으나 더 잘하기 어렵다고 스스로 파악하거나 평단의 반응이 안 좋을 때 이렇게 써왔다는 생각이 든다. 아하츠 페르츠가 ‘신’을 찾아 나서면서 만나는 조로아스터교는 니체의 짜라투스트라에서 영향 입은 부분이 거의 확실할 것이다. 또, 쿠아란타리아서에서 미래를 향해 토해내는 방식은 전형적인 니체적인 어조이다. 예수님의 순례 여행의 대칭 항 이미지로서 산과 평야를 제시한 니체의 ‘짜라투스트라’가 없었다면, 쿠아란타리아서를 작가가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니체를 읽어본 독자들이라면 동의할 것이다.
나의 부정은 더 큰 긍정을 위해 있었으며, 우리 양성의 대립도 궁극으로는 거룩한 조화에 이르기 위한 과정이 되어야 한다. 나는 저 태초의 유일자에 대한 기억에서 출발했으나, 이르고자 하는 것은 변증의 용광로를 거쳐 고양된 우리들의 합일이었다. 만약 너희가 진정으로 믿고 섬겨야 할 신이 있다면 그는 바로 그때의 하나로 된 우리이다.
그날의 ‘하나 된 우리’는 너희 믿음이나 섬김을 바라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 위대하고 또 완전함으로. 번거로운 제례와 의식으로 시간과 제물을 낭비하는 너희를 우리는 오히려 민망히 여기리라. (347쪽)
1980년대식 주체성이 기록될 가치가 있다면, 민중이 주인 되는 차원을 앞세웠다는 점을 종교적 모티프로 제시했다는 점이겠다. 이러한 가치판단은 소설의 종국적 메시지인 조동팔을 통해 제시되는 민요섭의 고백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또 말했소, 신학의 탈(脫)개인화든 혁명의 신학이든, 또는 그 이상 마르크시즘과 손을 잡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는 ‘신(神) 안에’ 남아 있어야 했다고. 불합리하더라도 구원과 용서는 끝까지 하늘에 맡겨두어야 했다고.”(366쪽) 마르크스주의적 주체성의 종교적 모티프로의 응집은, 1980년대 후반의 대학가에서 동학(東學) 연구 등으로도 표출되기도 했었다. 그러면서, 사뮤엘 헌팅턴이 그린 미국인들(사뮤엘 헌팅턴, 형선호 역, [헌팅턴의 미국], 김영사, 2004.참조)이 유신론(有神論)적 가치만 지켜진다면 다른 이데올로기도 수용해온 바탕과도 비교가 된다. 좌파의 시대를 견뎌내는 자유주의적 보수주의자들의 세계 보편적인 논리일 수도 있다는 말이 된다. 어쩌면, 유신론(有神論)적 지배 문화 속에서 니체적 초인주의에 물든 세대들의 균형 잡기일 수도 있을 것이다.
니체는 심층심리학의 측면에서 종교적 측면에 깊이 빠진 19세기 독일지성계를 망치로 크게 깨뜨린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니체 철학은 너무나 문학적이다. 6.25전쟁을 유년 차원에서 치러낸 세대에게, 젊은 날에 지배문화였던 ‘서북문화주의’가 어떻게 드러났는가를 생각해본다면, 소설가 이문열이 니체의 심층심리학을 이용한 종교비판 요소를 사용하는 것이 이해될 수 있다. 모든 젊은 세대는 젊은 세대의 지배 문화와 반드시 충돌을 일으킨다. 이는 수천 년간 모든 기성세대에게 젊은 세대가 버릇없다고 기록되어온 것과 동일한 것이겠다. 그래서, 바흐친은 젊은 세대와 아버지 세대가 아니라, 젊은 세대와 할아버지 세대가 교류될 수 있을 것이라 주장하기도 했다.
신(神)의 아들 예수님과 사람의 아들 아하츠 페르츠의 만남은, 한국 현대 소설사에서 수십 권의 사회학서보다 1980년 전후에 나타난 세대 충돌 가치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명장면일 것이다. 2004년의 4판 독자들은 이 책의 초판 당시에는 소설가 이문열이 구세대(舊世代)가 아니라 신세대(新世代) 쪽이었다는 것을 반드시 염두에 둬야 한다.
4. 하나님의 아들과 사람의 아들의 대립 속에 은폐된 것
에르네스트 르낭의 [예수의 삶](에르네스트 르낭, 박무호 역, [예수의 삶], 울산대학교출판부, 1999. 참조)은 예수님을 일관되게 사람의 아들로 표현한다. 성경을 역사학자의 입장에서 분해하고, 성경 속에 드러난 상당 부분을 제자들의 과장으로 기술하는 에르네스트 르낭은 전혀 반(反)종교적 입장이 아니다. 만약에 그랬다면, 니체가 [반그리스도]에서 르낭에 대해서 빈정거릴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은 예수님과 아하츠페르츠를 ‘신의 아들’과 ‘사람의 아들’로 대립 각을 세우고 있다. 한국의 대표 소설가일 수 있는 이문열의 대표작 [사람의 아들]의 소설적 구조는 철저한 한국 사회 현실 속에서 이해되어야만 한다. 이 대립 각은 1979년 당시의 신세대인 이문열의 구세대에 대한 대항의식 차원에서 비롯된 것이다. 다양한 기적을 보이며 일상인들에 ‘대등의식’의 대상이길 거부하나, 사회의 하층민과 똑같은 처벌을 당함으로서 ‘평등성’을 실천한 차원에서, 자연스럽게 솟아나는 ‘인간의 문제’가 아니다.
헤겔은 기독신앙의 핵심을 부정성으로 본다. 예수님이 로마에 의해 억압되었던 시대에 있어서, 예수님은 정신의 힘으로 억압 세력이 일거에 무너지는 때를 기도하였다. 기독신앙에는 ‘사랑’이란 포용과 관용의 정신을 한 축으로 하고 있지만, 좌파 사상으로 연결되는 비판의식도 포함되어 있다. 국가권력에 의해서 승인된 사료만을 연구 사료로 설정하는 긍정의 철학인 실증주의와는 매우 거리가 먼 것이다. 소련 공산당의 황장엽 선생일 게오르그 루카치는 [청년 헤겔]을 통해서, 긍정의 철학으로 변질된 기독교의 억압성 문제를 제시했다.
“그럼 먼저 하나 묻겠소. 지금 저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빵이오. 당신은 이 돌덩이를 빵으로 만들 수 있소? 다시는 저들이 빵이 모자라 고통 받는 일이 없도록 해줄 수 있으시오?”(261쪽)
“아, 그 가혹한 심판의 날 말인가요? 그날에 웃을 몇 안 되는 그 ‘의인(義人)’들 말인가요? 하나를 위해 아흔아홉이 불에 던져져야 하는 재앙의 날에……”(262쪽)
농민들의 물화(物化)된 노예적 상태를 정치적으로 이용한 20세기 현실공산주의가 아닌, 19세기의 마르크스의 인간해방사상은 정치적으로는 어떠한 평가를 받을지 몰라도 학술적으로는 뒤집혀진 ‘기독사상’이 분명하다. 오뚝이 뒤집기가 오뚝이의 오뚝이임을 부정하지 못하는 것처럼, 뒤집혀진 기독사상은 여전히 대단히 종교적인 것이다. 종교를 부정하는 마르크스의 표현은, 기독사상에 엄청나게 젖어있는 독일지성계에서의 생존투쟁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며, 마르크스 사상에 내재된 종교적 자취가 지워지는 것은 아니라 본다. 부르주아 지배 공간으로 자기 시대를 파악하고, 이러한 시대를 완전 부정하며 다음 시대의 도래를 바라는 것은, 신약성서의 철학화를 시도한 헤겔사상의 청년기의 연장선으로 봐야 적절하다. 다만, 아담스미스와 다윈의 철학을 적용했다는 점을 과학성으로 높이 띄워서 분명한 신학적 자취를 지웠을 뿐인 것이다.
마르크스의 유물변증법에 포함된 신학적 요소를 이해한다면, 소설의 결말부에서 민요섭의 신학적 의지는 좌파철학 테두리 내에서 논리적으로 예측 가능한 것이다. 쿠아란타리아서에 서술된 정반합 변증법으로서 신(神)의 아들과 사람의 아들은 대립된다. 6.25전쟁을 유년 시대로 겪은 세대들의 독자적 체험을 원바닥으로 시작해서, 보편 이념을 인정하면서 좌파 이념을 승인하는 식의 변증법적 결말을 보는 식이다. 종교적 가치로서의 ‘선’과 ‘악’은 무너지고, 소설의 중심골격을 이해할 수 있는 세대 체험으로서의 ‘선’과 ‘악’의 가치가 솟아오른다.
아하츠 페르츠의 입을 통해서 강력한 군사행동을 긍정하게 하여 예수님을 비판하는 장면은, 6.25전쟁을 유년으로 치른 세대들의 ‘대한민국 국민=조선조 문인’론과 겹쳐지는 인상을 준다. 마르크스주의 사관의 아시아의 정체성론을 일본(日本)이 우리의 역사에 씌운 공식을 같이 쓰면서, 대한민국 전통 세력의 허약함에 희열감을 희열감과 쾌감을 느끼는 특정한 세대의식의 표현으로 보인다. 신세대의 입장에서 6.25전쟁에 무력했던 구세대에 대한 적대감과 증오감에 기초하여 대한민국의 전통을 사실상 부정하며 일본문명을 높이는 비교문명사론의 변이형으로 파악된다.
지금 이 땅의 민중들이 가장 열렬하게 고대하고 있는 것은 정신적인 메시아가 아니라 강력한 정치적 군사적 메시아요. 가서 저들을 조직하고 무장시켜 옛 다윗의 영광을 재현하도록 합시다. (265쪽.)
기독사상의 내재적 논리에서 풀어볼 때는 성경에 표현된 바대로 ‘광야에서 유혹을 받으심’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기성세대와 신세대의 대립을 ‘신(神)’의 아들과 사람의 아들의 대립으로 풀 때는, 성서의 내용이 오해가 될 것이다.(268쪽.) 그렇게 볼 때, 민요섭이 말하는 그가 돌아가고 싶은 ‘옛 하나님과 그 교회(366쪽)’는 일반적 의미의 신학(神學)과 거리가 있는 것이 된다. 신학의 탈개인화와 혁명의 신학과 마르크시즘을 포용하는 신학(神學)은 또 다른 의미의 세속적 정치성일 것이다. 그리고, 세속적 정치성 속에 박제 상태로 남는 종교성의 민요섭을 조동팔에 의해 죽게 만들고 조동팔도 스스로 죽게 하면서 ‘종교적 초월성’을 향한 마지막 고리도 끊겨진다. 광야의 신학(神學)인 쿠아란타리아서의 수평적 광대함이 종교적 초월성을 이기는 순간일 것이다.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은 니체의 [반그리스도]에 비견될 만큼, 망치를 들고 기독교를 격파한 소설에 해당될 것이다. 민요섭의 종교로의 회귀는 쿠아란타리아서의 궁극적 실현이라는 차원을 드러내기 위한 소설적 장치 수준에 머문다. 소설의 액자 안에서 작가가 기독교를 폭파시킨 이유는, 액자 바깥의 현실 세계에서 어느 정도 해설된다. 아하츠 페르츠와 예수님의 대립구조는, 민요섭과 그를 둘러싼 현실세계의 대립구조와 같다.
5. 민요섭은 ‘1980년대’식으로 사회와 종교에 저항했다.
아하츠 페르츠가 예수님의 신학(神學)을 정조준 했다면, 민요섭은 현실 세계의 이성(理性)적 체제 전체를 정조준 했다. 일반인들이 합리적인 가치를 이루어 가는 체계가 신성성의 구현이라고 생각해본다면, 민요섭은 반(反)종교적 논리를 전제로 한 인간의 입장에서 종교적 입장을 공격했다고 봐야 된다.
소설가 이문열은 민요섭이란 인물을 1970년대 시대상에서 창출했을 것이나, 25년간의 독자층을 얻은 [사람의 아들]을 2004년의 입장에서 통괄해 본다면, 인물 민요섭은 1980년대 후반에 대학가를 장악하고 영웅화 모델로 자화자찬했던 인물 군상과 겹쳐지는 게 자연스럽다. [사람의 아들]은 좌파적 대학가에 영향을 주었으며, 대학가를 장악한 ‘전위’이란 이름으로 불려지는 왕자병 환자들에게 계몽적 역할을 하였다.
그러한 세대들이 추구했던 것은 하늘에 있을 신성함이 아니라, 땅에 있을 신성함의 찾기일 것이다. 종교적 입장의 ‘선’과 ‘악’의 구분법이 아니라, 전혀 다른 가치 축에서 가치가 부여된다. 하늘에 신성함을 반대했던 1980년대의 대학가 왕자병 환자들이 성도덕(性道德)에 도전을 안 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43쪽) 그리고, 성도들의 가족 공동체 차원의 교회를 파괴(44~46쪽)했다. 또, 조동팔에 과외를 하러가서 조동팔을 ‘작은 민요섭’으로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
민요섭은 형이상학적이며 관념적인 종교에 반대했다. 아하츠페르츠가 신을 찾아나서는 방황장면이 액자 바깥의 민요섭의 신앙의 실체라 본다면, 민요섭이 믿은 것은 ‘자연신학(自然神學)’적 측면에 치우친 유목민적인 종교로 보인다.(219~244쪽)
하지만 신은 있다. 지금 이 순간도 저 태양이 분명한 실체로 불타고 있는 것처럼, 신의 섭리도 실존의 숭고한 빛으로 이 무한한 시공(時空)을 관통하고 있다.……(243쪽.)
민요섭은 물질적인 것에 신성한 믿음을 가지며, 형이상학적인 것은 타파해야 할 허위의식으로 바라본다. 이러한 사고관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바라보는 기독교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화된 시각이기도 하다.
그러다가 우리 교회로서는 말하기 부끄러운 그 일이 터진 것이지요. 바로 그 학생이 우리 동네에서 사라지기 얼마 전의 어느 일이었습니다. 그날도 목사는 또 예의 그 ‘사람이 빵만으로 사는 것은 아니요……’를 자신에게 유리하게만 끼워 맞춘 설교를 하고 있었습니다. 좌석 앞줄에서 듣고 있던 그 학생이 강단 앞으로 달려 나가더니 목사를 손가락질하며 소리쳤습니다. ‘집어치워! 말씀이 우리에게 무얼 줄 수 있단 말이야? 기껏 너 따위에게 이용되어 당연히 우리 입에 들어가게 되어 있는 빵조차 가로채 갈 뿐이야!’ 그러자 목사는 강단 위에서 ‘사탄아, 물러가라!’고 외치더군요. (46쪽)
대부분의 문학평론가들이 기독교 소설의 근거로 제시하는 민요섭의 십자가로의 귀의는, 소설 전체를 통해서 제시된 민요섭의 반(反)종교적 자세 속에 단순한 연장선으로 봐야 논리적으로 합당하다. 이전의 연구자들이 일관되게 착각을 했던 이유는, 마르크스가 목사님이 압도적인 다수를 이룬 독일지성계와 싸웠다는 사실에 치중하여, 마르크스 스스로가 기독신앙의 논리를 이용한 유사종교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민요섭이 [사람의 아들]을 통해서 보여준 것은, 그가 행동과 원고를 통해서 일반 기독교에 반대하고 니체의 자연신학적 요소와 마르크스의 유물론적 요소를 종합한 것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민요섭에 남아있던 약간의 종교적 요소마저도, ‘작은 민요섭’인 조동팔에 의해서 제거되는 내용이 소설의 결말인 것이다. 따라서, 이전의 문학평론가들이 이 소설을 기독교 소설로 분류한 것은 잘못된 독해였다. ‘사람의 아들’들과 민요섭이 소설에서 저항했던 방식은, 너무나 전형적인 ‘1980년대’식이었기 때문이다.
6.25전쟁을 유년차원으로 보낸 의식으로서의 신세대의식과 그 이전 세대의식의 대립논리, 둘로 나눠진 ‘신’과 ‘인간’의 세계, 그리고 부조리한 현실과 밀착된 ‘신’의 세계와 그것을 깨려하는 ‘인간’의 세계. [사람의 아들]이 보여주려 했던 ‘사람’은 1980년대식 주체성의 기원인 것이다. 소설가 이문열을 아끼며 이전의 문학평론가들의 평가에 집착된 사람들은, 소설의 인물구조와 플롯의 변화에서 너무나 선명하게 드러나는 점을 밝혀 적는 것에 거부감을 느낄 수 있다고 본다. 에르네스트 르낭의 [예수의 삶]이 일관되게 예수님을 ‘사람의 아들’로 보았고, 독일 관념론철학에서 인간문제의 본질을 예수님의 기독신앙에서 찾았던 것과 같은 보편적이며 원론적인 시각은 [사람의 아들]에 전혀 담겨 있지 않다. [사람의 아들]을 기독교적이라 읽은 평가는 원론적 기독교의 가치가 소설에 담겨 있을 것이라 간주하고 읽거나, 소설 속에 여러 겹 속에 좌파적 요소가 숨겨진 것에 기뻐하며 읽은 문학평론가들의 오류라 봐야 적절하다.
그렇다면, [사람의 아들] 4판을 읽은 작가를 아끼는 독자들에겐, [사람의 아들]에 대한 5판 개정판을 요구할 권리가 형성된다. [사람의 아들]은 1980년대식 좌파 정치의 기원을 형성하는 문화의 일부이다. 이는 소설내용과 1980년대의 대학가 풍속도가 증명한다. 그런데, 오늘의 현실은 1980년대식 좌파 정치가 크게 퍼져 있고, 그러한 현실의 혼란상에 절망한 국민들이 기독신앙의 요소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시대이다.
최근에는 무신론(無神論)적이며 좌파적 요소의 대한민국 국민 압박이란 현실적 흐름에 절망을 느낀 이들이 많아졌다. 그런데, 나는 [사람의 아들]은 약간만 고쳐진다면 이러한 이들에 위로를 하며 새롭게 읽혀질 수 있다고 본다. [사람의 아들]은 작가의 노력에 따라서 2004년에 걸맞게 현재적이면서, 그 이후의 시간에도 들어맞도록 미래적으로도 존재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기 위해서 5판 개정판이 쓰인다면, 어떠한 부분을 어떻게 고쳐야 할까?
6. 민요섭이 마르크스와 니체를 넘어선 지점에서 하나님을 찾고 울부짖을 수 있다면,
공산권이 몰락했을 무렵에 쓰인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말]은 미국 보수주의자들이 마르크스와 니체를 넘어서는 지점의 기록일 것이다. 그리고, 1990년대 중반 이후에 종교의 중요성이 미국 사회에 재인식되고 9․11 이후의 미국은 종교국가로 다시 편성되고 있다. 최근의 한국 사회는 ‘뉴 라이트’(New Right)운동이 일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마르크스와 니체를 중심으로 하는 1980년대식 논리를 극복하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있었기에 가능한 움직임이었다. 대한민국에 사는 평균적인 국민들의 상당수는 마르크스와 니체 중심의 1980년대 논리에 실증을 넘어 반감(反感)을 가지고 있다.
6.25전쟁을 어린 시절에 보내고 현재에 사회의 중심을 차지한 세대들의 보편적 세계관과 민요섭의 사고관은 매우 가깝다. 1980년대식 좌파 논리는 이러한 세대들의 사고의 한계성을 기초로 사회에서 사용된다. 작가 세대의 선배 세대들의 실망은 더 이상 현재적인 본질요소가 아니다. 6.25전쟁 때 어리지 않은 사람들이 6․25 전쟁 때에 무력했던 점과, 근대화정치 때에 생산성 중심의 실질적 기여 없는 문화중심의 간접적 기여인 점은, 그 세대들의 한계성 때문에 아파해야 했던 세대들에겐 오래 남는 상처일 수 있다. 보수 문화가 좌파도 아니면서도 최근 10여 년 동안 ‘진보’와 ‘변화’를 중시하는 내용이 많았던 속살은 이러할 것이다. 그리고, 작가와 동세대들의 집단적 착각은 1980년대식 좌파 정치의 사실상의 기초가 되었다. 이제는 [사람의 아들] 작가 세대들의 세대적 한계성에 아파하는 후배 세대들의 눈물을 닦아 줄 시간이 맞을 것이다.
일제 36년의 자유 없는 세월을 이겨낸 세대들은 과도한 물질 중심 논리를 일관되게 비판해왔다. 인간의 본질은 신적 이념의 실천이고, 그러한 실천은 세계사의 움직임 속에서 국가(國家)를 이루어 내는 것이겠다. 기독신앙은 세계적으로 근대 국민 국가 중심의 사고관을 회복하는 것을 존재의 이유로 한다. 신좌파 문화가 힘을 가졌던 1960년대 이후의 서구 사회는 근대 국민 국가 문화가 없었다. 대학가에서 좌파가 장악한 1980년대 이래 대한민국 사회에서 근대 국민 국가 문화는 형편없이 밀려 났다. 글로벌 시대인 지금에 있어서, 자본과 물질 중심으로 바라볼 때에는 국경은 허물어졌다. 그러나, 문화와 정신을 중심으로 바라볼 때는 글로벌 시대에 걸맞을 근대 국민 국가 문화가 분명히 지속되고 있다.
마르크스와 니체가 휩쓸고 간 자리에, 보편이념을 통한 조화는 사라지고 물질적 욕망에 기초한 무질서가 차지하고 있다. 민요섭은 마르크스와 니체 중심의 문화가 가져다주는 사회적 재앙에 많은 눈물을 흘려야 했다. 그리고, 신적 이념의 실천일 대한민국 사회의 조화로운 질서를 깨닫고, 민요섭이 파괴하려 했던 이성 중심의 논리에 굴복하게 되어야 한다.
민요섭이 마르크스와 니체를 넘어선 지점에서 하나님을 찾고 울부짖을 수 있다면, 그때에야 [사람의 아들]은 완결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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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대학원 교육을 살리려면, 친북좌파 코드를 수용해야 논문을 쓸 수 있는 시스템을 고쳐야 한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등이 친북좌파 문화 지식인들을 띄우고, 그러한 바탕으로 친북좌파 유행 흐름을 만들어서 전국의 대학교 대학원 논문 유행을 친북좌파 코드로 몰아버리려는 피드백시스템을 고치지 못하면, 구조조정은 친북좌파 문화장악을 위해서 마음에 안드는 이들에 견제하여 숙청시키는 논리로 전락하기가 매우 쉽다.
친북좌파 코드로 언론에서 때려 버리면 열심히 공부 안하는 대학교수들과 과외등으로 수입을 채우기 위한 대학생들은 앞장 서서 복면복창해 버린다. 그러니, 서울대학 등 특정대학 출신의 박사학위자들의 직장 만들기와, 과외 등으로 수입을 메꾸려는 이들의 경력만들기가 합세하여 전문연구를 사실상 봉쇄하는 인문학 대학원 박사과정이 생기는 것이다. 서울대학 등의 특정대학 출신의 특정한 코드를 전파하기 위한 시스템과 과외를 통해서 유사직장으로서 생계를 이어가는 이들의 연합은, 창조정신을 가진 인간들을 적대적으로 볼 수 밖에 없다. 특정대학의 지식 권력 확장을 위해서 창조적인 논문을 쓸 수 없는 환경을 다른 대학에 만들어야 하고, 금전으로 환산하기 위해서 살아있는 지식을 죽은 개딱지로 만들어버려야 하는 동반자 관계가 형성된다.
대학원 구조조정의 흐름은 특정대학 중심의 단일한 코드 장악을 얼마나 부술 수 있느냐가 핵심이다. 나는 ‘교육부’와 ‘대학교육협의회’는 학문생산논리까지 관장하지 못하고 있음을 여러 차례 지적한 바 있다. 자유주의 세력들은 친북좌파 중고등학교 역사교과서의 탄생에 답답해 하고 있다. 이는 학문생산논리 수준에서 좌파 코드를 가지지 않는 논문을 체계적으로 배척하는 특정대학의 학문 권력과, 과외 시장의 필요의 담합구조가 만드는 속에서 기초된다.
박사학위 과정이 너무 많이 개설되었다고 하면서 박사학위 과정이 많이 신설되었다고 보지 말고, 서울대학교등 특정대학교의 친북좌파 지식인들의 직장확보를 위해서 없어도 될 공간에 많이 생겼다고 봐야 적절하다. 친북좌파 코드로 복면 복창되는 시스템의 완수를 위해서, 그 코드 바깥에 드는 사람들을 질책해야 하고, 그리고 과외시장에 잘 팔리는 지식을 위해서 특정한 방향성의 죽은 지식 외에 살아있는 지식도 죽여 버려야 한다.
국어국문학과 학위논문을 기준으로 이야기한다. 전혀 창조성과 거리가 멀면서 서울대 국문과 연세대 국문과 학위논문의 중심 아이디어 모방해서 쓰는 논문이 부지기수인 상황에서, 그러한 모방만도 굉장한 테크닉의 획득인 것으로 하는 차원에 나도 매우 염증을 느낀다. 그런데, 모든 이들에게 알려졌으면 하는 게 그렇게 모방을 하는 쓰잘때기 없는 3류 논문을 특정대학 아닌 곳에서 쓰지 않는 게 얼마나 어려운가 하는 점이다.
대학원 구조조정은 ‘과거사법’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났지만, 친북좌파 역사학이 학문생산논리의 95% 이상을 권력 장악하는 현실에 대한 개혁만이 유일하다. 한나라당은 학계에서 역사학에 대해서 다양한 차원의 토론이 가능한 줄 알지만, 그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도록 특정대학을 제외한 곳에서 3류 논문만 쓰도록 강제하는 억압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부실 대학원에 대한 메스는 특정대학의 친북좌파 편향된 학문생산논리에 메스를 가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부실대학원의 땜빵 논문들의 땜빵 기질을 만들도록, 급조 논문을 만들도록 하는 모델을 따라배우도록 하는 흐름과, 교육의 논리 등등이 개혁대상에 올라야 한다. 그래서, 부실대학원에 대한 메스는 ‘과거사법’이 ‘당연무효’논리로 형성되는 지점에서 성공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과거사법’은 유일사학을 전제해야 가능하고 부실대학원은 유일사학에 진압되어서 자존심을 잃어서 가능한 것이니 그러하다. 한나라당은 친북좌파 부역에 대해서도 연구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나, 냉정한 현실은 국민들의 관심 없이는 그러한 한나라당의 기대는 대중적으로 발도 못붙이는 게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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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바다찾기님...새해 복 많이 받으셔요. 늘 감사합니다. 첨엔 조금 어려웠지만....이젠 편안히읽습니다.한해 동안 수고많으셨어요.^^*
바다찾기님의 건강과 행복을 빕니다. 꾸 ~ 뻑~!
좋은 게시물이네요. 조돌쇠 카페로 스크랩 해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