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번 딱딱한 정치 이야기만 했으니 오늘은 말랑말랑한 ‘잡문(雜文)’ 하나 써보려고 한다. 중국 친구들과 노래방에 갔을 때 큰 박수를 받는 방법을 알려드리겠다.
사업상 친교를 다지기 위해 중국인들과 술자리를 갖고, 이어 가끔 노래방에 가게 된다. 살며 불러왔던 노래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서먹서먹할 수밖에 없는데, 이럴 때를 위해 중국 노래 몇 곡쯤 시원스럽게 불러제낄 수 있는 것도 중국에서 사업하는 사람이 갖추어야할 ‘기본기’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 ‘가라오케 비즈니스’를 위해 일부러 중국 노래를 배우려 마음먹었다면, 이왕이면 한국과 중국에 모두 있는 노래를 배우라고 권하고 싶다.
한국 노래 가운데 중국어로 번안 소개된 노래가 많고, 중국 노래 가운데에서도 한국어로 번안된 노래가 있다. 예를 들어 녹색지대의 <사랑을 할꺼야>가 중국노래 <爱我你怕了吗>로 번안되어 중국인들의 큰 사랑을 받았고, 광량(光良)의 <童话>는 김형중이 <동화>로 번안하여 아름답게 불렀다.
이런 노래를 노래방에서 부를 때는, 한 소절씩 한국어-중국어를 번갈아 부르거나 하이라이트 부분에서 갑작스레 언어를 바꾸어 불러보면 가히 반응이 ‘폭발적’이다. 안재욱의 노래 <친구>는 원래 저우화젠(周华健)의 노래 <朋友>를 한국어로 번안한 것인데, 대부분의 중국인들은 이 노래를 알고 있다. ‘친구’라는 뜻 깊은 제목의 노래를 한국어와 중국어로 번갈아 부르는데도 감동을 받지 않는 중국인을 만나본 적이 없다.
◆ “인터내셔널은 머잖아 반드시 실현되리라”
이른바 영도(領導)라는 사람들 앞에서 반주없이 노래를 불러야 한 적이 있었는데, 노래가 끝나자 모두의 기립박수를 받았던 쑥스러운 기억이 있다.
노래의 제목은 <구어지꺼(国际歌, 국제가)>이다. “일어나라 굶주리고 핍박받는 노예들이여(起来饥寒交迫的奴隶), 일어나라 전 세계의 고통 받는 인민들이여(起来全世界受苦的人)”라는 장엄한 가사로 시작되는 이 노래의 원곡은 프랑스어로 된 랭테르나시오날(L'Internationale)이다. 알고 있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렇다, 19세기말 국제공산당의 당가처럼 불리웠던 노래이다. 수십 개 언어로 번안되며 전 세계로 퍼져나가, 크리스마스 캐롤과 함께 가장 많은 언어로 불리고 있는 노래로도 꼽힌다. 사회주의자들이라면 대체로 이 노래를 알고 있어, 세계 어디를 가든지 이 노래의 음을 흥얼거리면 알아차리는 사람들이 있다. 중국공산당원들이 모두 이 노래를 알고 있음은 물론이다.
한국에도 <인터내셔널의 노래>이라는 제목으로 번안되어 운동권들 사이에서 널리 불렸다. 필자도 학생운동권 시절에 배웠고, 지금도 1절 가사는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러다 이 노래가 중국에서는 <国际歌>로 번안되어 불리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음이 이미 익숙하니 노래를 익히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았다. 중국어 공부하는 셈치고 사전을 펼쳐가며 반나절 가량 불러 외웠던 것 같다.
이 노래의 첫 소절은 한국어로 시작하였다. “깨어라 노동자의 군대, 굴레를 벗어던져라, 정의는 분화구의 불길처럼 힘차게 타온다……”. 그랬더니 자리에 앉아있던 ‘영도’들이 깜짝 놀란다. ‘한국에도 이 노래가 있어?’하는 표정들이다. 물론, 그렇지, 있고 말고! 나는 그런 표정으로 미소지으며 다음 소절을 이어나갔다. 지루한 만찬이 빨리 끝났으면 하고 심드렁하게 의자에 몸을 기대고 있던 늙은 영도자 한 분도 자세를 바로잡는다. ‘국제가’가 불려지고 있는데 감히(?) 삐딱하게 앉아 있을 수 있겠는가.
1절을 한국어로 부르고, 곧이어 중국어로 1절을 다시 불렀다. 좌중들이 더욱 놀란다. 英特纳雄耐尔就一定要实现(인터내셔널은 머잖아 반드시 실현되리라)는 마지막 소절에 이르렀을 때에는 몇몇 사람들이 일어나 억세게 주먹을 휘두르며 함께 따라부리기까지 한다. (한국어판의 마지막 소절 가사는 “참자유 평등 그길로 힘차게 나가자”이다.) 반주 없이 노래를 불러 그렇게 뜨거운 박수를 받았던 적도 처음이었다. 이 노래가 무슨 노래인지 잘 모르는 한국측 인사들만 어리벙벙한 표정이었다.
어쭙잖은 운동권 경력이 중국에서 사업을 하면서 도움이 되는 때가 적잖은데, 무엇보다 사회주의에 대한 이해가 남들보다는 약간 깊었기 때문에 중국 사회의 작동원리를 쉽게 터득할 수 있었고, 바로 위와 같은 경우에 유리하였다. 운동권 시절에 배웠던 것은 아니지만, 마오쩌둥(毛泽东)이 좋아하던 싯구를 중국어로 한번 더듬거리며 말해보거나, 한국 사람들은 잘 모를 것이라 생각하는 중국 현대 정치인의 이름과 경력에 대해 몇 마디 아는 체 해보거나, 혹은 중국 교과서에 실려있는 당시(唐詩)나 명언 몇 구절을 외워두었다가 읊어보는 것이 중국인들과의 딱딱한 분위기를 풀어놓는데 특효약 가운데 특효약이었다.
◆ “會當凌絶頂 一覽衆山小”
얼마전 김관진 국방장관의 중국 방문시 중국인민해방군 천빙더(陈炳德) 참모장이 10여분 동안 미국을 비난하며 외교적 결례를 범한 것을 두고 한국 언론들이 들끓었다. 결례를 딱 부러지게 지적해두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애초에 그런 가능성 자체를 원천 차단하지 못한 우리측의 준비 미흡은 없었는지 되돌아볼 일이고, 또한 그런 일이 벌어졌을 때 우리의 대응방식도 차제에 되돌아보아야 한다.
똑같이 흥분하며 응수하면 ‘똑같은’ 수준이 되고 만다. 오히려 배짱 좋게 웃으면서 선문답 같은 시(詩)나 한 수 읊었더라면 중국측이 더욱 뜨금하지 않았을까. 예를 들어 뜬금없이 두보(杜甫)나 이백(李白)의 시를 읊거나, 고려 때의 우리 시인 이인로(李仁老)를 소개하며 ‘두견제백주 시각복거심(杜鵑啼白晝 始覺卜居深, 두견새가 한낮에 우는 것을 보니, 비로소 내가 사는 곳이 깊음을 깨닫네)’이라고 나지막이 읊조리는 것이다. 그 시에 담겨있는 의미가 무엇인지 파악하느라 중국 공무원과 기자들이 머리깨나 아팠을 것이다.
2006년 후진타오 국가주석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미국에 대한 섭섭한 심정을 한시로 표현했던 것은 익히 알려진 유명한 일화다. 당시 후 주석은 국빈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굴욕을 참으며 워싱턴 땅을 밟았고, 중화인민공화국이 중화민국으로 소개가 되거나 파룬궁(法轮功) 수행자가 후 주석의 연설을 방해하는 등 숱한 해프닝을 겪어야 했다. 그때 후 주석이 오찬 자리에서 건배사를 하며 ‘회당릉절정 일람중산소(會當凌絶頂 一覽衆山小, 반드시 저 산의 정상에 올라, 뭇 산의 자그마함을 내려다보리라)라는 두보의 시를 읊었다. 부시 대통령이 싯구의 의미를 알았을 턱이 없지만, 나중에야 뜻을 전해 듣고 뜨끔하였을 것이다. 우리도 충분히 이런 식으로 중국을 ‘갖고 놀 수’ 있는 것이다.
여하튼, 굳이 손자병법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선이고, 이왕 싸우려면 부드럽게 능청스럽게 이기는 것이 중국을 상대하는 방법이다. 그들의 언어와 표현법으로 그들을 비판해주면 더욱 깜짝 놀라며 부끄러워하는 사람이 중국인들이다. 중국 시, 중국 노래, 중국 속담 몇 개쯤 알아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터내셔널’은 그렇게 형성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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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말 하나. 중국어판 <国际歌>는 딱딱한 관용(官用) 버전도 있지만, 그룹 탕차오위에두이(唐朝乐队)가 부른 락 버전도 있다. 락 버전으로 배워보시라. 무척 재밌다.
덧붙이는 말 둘. 최근 중국에서 공산당 창건 90주년을 기념해 개봉한 영화 <건당위업(建党伟业)>의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노래가 바로 <国际歌>이다. 그런데 가사가 지금 것과 약간 다르다. 1920년대에 불리던 가사를 고증하여 삽입했다 한다.
덧붙이는 말 셋. 중국어판 국제가에 이런 가사가 있다. 要创造人类的幸福 全靠我们自己 …… 인류의 행복을 창조하길 원한다면 오롯이 자신의 힘에 의지하여라! 오늘의 중국에게 하고 싶은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