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윌의 시
1월 / 오세영
1월이 색깔이라면 아마도 흰색일 게다.
아직 채색되지 않은 신(神)의 캔버스
산도 희고 강물도 희고 꿈꾸는 짐승 같은
내 영혼의 이마도 희고,
1월이 음악이라면 속삭이는 저음일 게다.
아직 트이지 않은 신(神)의 발성법(發聲法).
가지 끝에서 풀잎 끝에서 내 영혼의 현(絃) 끝에서
바람은 설레고,
1월이 말씀이라면 어머니의 부드러운 육성일 게다.
유년의 꿈길에서 문득 들려오는 그녀의 질책
아가 일어나거라 벌써 해가 떴단다.
아! 1월은
침묵으로 맞이하는 눈부신 함성!
1월 / 이외수
이제는 뒤돌아 보지 않겠다
한밤중에 바람은
날개를 푸득거리며 몸부림치고
절망의 수풀들
무성하게 자라오르는 망명지
아무리 아픈 진실도
아직은 꽃이 되지 않는다
내가 기다리는
해빙기는 어디쯤에 있을까
얼음 밑으로 소리 죽여 흐르는
불면의 강물
기다리는 마음이 간절할수록
시간은 날카로운 파편으로 추억을 살해한다
모래바람 서걱거리는 황무지
얼마나 더 걸어야
내가 심은 감성의 낱말들
해맑은 풀꽃으로 피어날까
오랜 폭설 끝에
하늘은 이마를 드러내고
나무들
결빙된 햇빛의 미립자를 털어내며 일어선다
백색의 풍경 속으로 날아 가는 새 한 마리
눈부시다
1월의 시 /정성수
친구여
최초의 새해가 왔다
이제 날 저무는 주점에 앉아
쓸쓸한 추억을 슬퍼하지 말자
잊을 수 없으므로 잊기로 하자
이미 죽었다
저 설레이던 우리들의 젊은 날
한마디 유언도 없이
시간 너머로 사라졌다
스스로 거역할 수 없었던
돌풍과 해일의 시절
소리없는 통곡과
죽음 앞에서도 식을 줄 모르던 사랑과
눈보라 속에서 더욱 뜨거웠던 영혼들
지혜가 오히려 부끄러웠던 시대는 갔다
친구여, 새벽이다
우리가 갈 길은 멀지 않다
그믐날이 오면 별이 뜨리니
술잔이 쓰러진 주점을 빠져나와
추억의 무덤 위에 흰 국화꽃을 던지고
너와 나의 푸른 눈빛으로
이제 막 우주의 문을 열기 시작한
저 하늘을 보자
지치지 않는 그 손과 함께
우리가 걸어가야 할 또 다른 길 위에
오늘도 어제처럼
투명한 햇빛은 눈부시리니
일월 / 유치환
나의 가는 곳
어디나 백일이 없슬소냐
머언 미개적 유풍을 그대로
성신과 더불어 잠자고
비와 바람을 더불어 근심하고
나의 생명과
생명에 속한 것을 열애하되
삼가 애련에 빠지지 않음은
-그는 치욕임일레라
나의 원수와
원수에게 아첨하는 자에겐
가장 옳은 증오를 예비하였나니
마지막 우러른 태양이
두 동공에 해바라기처럼 박힌 채로
내 어느 불의에 즘생처럼 무찔리기로
오오, 나의 세상의 거룩한 일월에
또한 무슨 회한인들 남길소냐
1월 /장태숙
새벽을 더듬으며 비가 온다
축축한 한기 겨울 그림자 따라 스미고
성탄절의 설렘과 제야의 가파름이
썰물처럼 사라진 개펄 같은 시간
침울한 손가락들 세상의 구멍마다 동그라미를 그린다
딱딱한 가슴팍 깊숙이 후벼 파면
하옇게 부푼 새순 같은
별 하나
소망처럼 건질 수 있을까?
묘비처럼 서있는 1월의 썰렁한 어깨에 흘러내리는
긴 어둠의 눈망울에서 죽은 영혼의 냄새가 난다
눈은 먼 곳에서만 내리고
눈은 높은 곳에서만 내리고
새해의 기도 / 이해인
1월에는
내 마음을 깨끗하게 하소서
그동안 쌓인 추한 마음 모두 덮어 버리고
이제는 하얀 눈처럼 깨끗하게 하소서
2월에는
내 마음에 꿈이 싹트게 하소서
하얀 백지에 내 아름다운 꿈이
또렷이 그려지게 하소서
3월에는
내 마음에 믿음이 찾아오게 하소서
의심을 버리고 믿음을 가짐으로
삶에 대한 기쁨과 확신이 있게 하소서
4월에는
내 마음이 성실의 의미를 알게 하소서
작은 일 작은 한 시간이 우리 인생을 결정하는
기회임을 알게 하소서
5월에는
내 마음이 사랑으로 설레게 하소서
우리 삶의 아름다움은 사랑 안에 있음을 알고
사랑으로 가슴이 물들게 하소서
6월에는
내 마음이 겸손하게 하소서
남을 귀히 여기고 자랑과 교만에서
내 마음이 멀어지게 하소서
7월에는
내 마음이 인내의 가치를 알게 하소서
어려움을 참고 오랜 기다림이 없는 열매는
좋은 열매가 아님을 알게 하소서
8월에는
내 마음에 쉼을 주시옵소서
건강을 지키고 나와 남을 여유있게 볼 수 있는
쉼을 갖는 시간을 갖게 하소서
9월에는
내 마음이 평화를 느끼게 하소서
마음의 평화는 내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성숙할 때 함께 자라는 것임을 알게 하소서
10월에는
내 마음이 은혜를 알게 하소서
나의 오늘이 있게 한 모든 이들의 은혜가
하나하나 생각나게 하소서
11월에는
내 마음이 욕심을 버리게 하소서
아직도 남아 있는 욕심과 미움과 갈등을 버리고
빈 마음을 바라보면서 만족하게 하소서
12월에는
내 마음에 감사가 일어나게 하소서
계획한 일을 이루었던 이루지 못했던
지난 한 해의 모든 것을 감사하게 하소서
1월의 시 / 손희락 詩
아, 큰일이다
잠잠하던 역마살
부활하여 솟아오르고 있다
매캐한 연기 뿜어내는 신음소리 허공에 흩어지고
이미 오장육부는 숯덩이로 변한 듯
목이 말라 견딜 수 없다
이 세상 어딘가에 내가 찾고 있는 샘이 있을까
이 세상 어딘가에 이슬 같은 영롱한 눈빛이 있을까
1월에 떠나 헤매고 헤매다
빈손으로 허무의 산 넘을지라도
동(東)에서 떠서 서(西)로 지는 저 불덩이같이
온 세상 떠돌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것 같다
설날 아침에 / 김종길
매양 추위 속에
해는 가고 또 오는 거지만
새해는 그런 대로 따스하게 맞을 일이다
얼음장 밑에서도 고기가 숨쉬고
파릇한 미나라 싹이
봄날을 꿈꾸듯
새해는 참고
꿈도 좀 가지고 맞을 일이다
오늘 아침
따뜻한 한 잔 술과
한 그릇 국을 앞에 하였거든
그것만으로도 푸지고
고마운 것이라 생각하라
세상은 험난하고 각박하다지만
그러나 세상은 살 만한 곳
한 살 나이를 더한 만큼
좀 더 착하고 슬기로울 것을 생각하라
아무리 매운 추위 속에
한 해가 가고
또 올지라도
어린 것들 잇몸에 돋아나는
고운 이빨을 보듯
새해는 그렇게 맞을 일이다
정월 / 문인수
농촌 들녘을 지나가는데 춥고 배고프다
저 노인네 시린 저녁이 내 속에서
등 달 듯 등 달 듯 불을 놓는다
꽃 같은 불 쪽으로 빈 들판이 몰린다
거지들 거뭇거뭇 둘러앉은 것 같다
발싸개 벗어 말리며 언 발 녹이며
구운 논두렁도 맛있겠다
그 뱃속 깊은데 실낱 같은 도랑물 소리
참 남루한 , 어두운 기억을 돌아오는데도 피를 맑히는
이 땅의 神이옵신 그리움이여
새해 첫 기적 / 반칠환
황새는 날아서
말은 뛰어서
거북이는 걸어서
달팽이는 기어서
굼벵이는 굴렀는데
한 날 한 시 새해 첫날에 도착했다
바위는 앉은 채로 도착해 있었다
새해인사 / 김현승
오늘은
오늘에만 서 있지 말고
오늘은
내일과 또 오늘 사이를 발굴러라
건너뛰듯
건너뛰듯
오늘과 또 내일의 사이를 뛰어라
새옷 입고
아니, 헌옷이라도 빨아 입고
널 뛰듯
널 뛰듯
이쪽과 저쪽
오늘과 내일의 리듬사이를
발굴러라 발 굴러라
춤추어라 춤 추어라
새해의 기도 / 이성선
새해엔 서두르지 않게 하소서
가장 맑은 눈동자로
당신 가슴에서 물을 긷게 하소서
기도하는 나무가 되어
새로운 몸짓의 새가 되어
높이 비상하며
영원을 노래하는 악기가 되게 하소서
새해엔, 아아
가장 고독한 길을 가게 하소서
당신이 별 사이로 흐르는
혜성으로 찬란히 뜨는 시간
나는 그 하늘 아래
아름다운 글을 쓰며
당신에게 바치는 시집을 준비하는
나날이게 하소서
새해 아침에 /송길자
백지 한 장 앞에 놓고 새해 아침 바라보면
고즈넉 한 장 백지는 눈부신 설원인데
그 누가 발자국 찍으며 이 정적을 끌고 가리
가만히 선을 그으면 길이 되어 나타나고
포물선 던져보면 산이 되어 둘러서고
한 줄기 오르는 연기 인기척도 들려오리
산 위엔 동그라미 민들레꽃 같은 해님
점점이 먹물 떨구며 뛰어노는 아기 사슴들
새 천년 동트는 마을 샘물 잣는 까치 소리
새해 아침 / 송수권
새해 아침은 촛불을 껐다 다시 켜듯이
그렇게 떨리는 가슴으로 오십시오
답답하고 화나고 두렵고
또 얼마나 허전하고 가난했습니까
그 위에 하얀 눈을 내리게 하십시오
지난 밤 제야의 종소리에 묻어둔 꿈도
아직 소원을 말해서는 아니 됩니다
외로웠습니까? 그 위에 하얀 눈을 내리게 하십시오
억울했습니까? 그 위에 하얀 눈을 내리게 하십시오
슬펐습니까? 그 위에 하얀 눈을 내리게 하십시오
얼마나 하고 싶은 일들이 많았습니까?
그 위에 우레와 같은 눈을 내리게 하십시오
그 위에 침묵과 같은 눈을 내리게 하십시오
낡은 수첩을 새 수첩으로 갈며
떨리는 손으로 잊어야 할 슬픈 이름을 두 줄로 지우듯
그렇게 당신은 아픈 추억을 지우십시오
새해 아침은
찬란한 태양을 왕관처럼 쓰고
끓어오르는 핏덩이를 쏟아 놓으십시오
새해 아침은
첫날밤 시집온 신부가 아침나절에는
저 혼자서도 말문이 터서 콧노래를 부르듯
그렇게 떨리는 가슴으로 오십시오
새해를 향하여 / 임영조
다시 받는다
서설처럼 차고 빛부신
희망의 백지 한 장
누구나 공평하게 새로 받는다
이 순백의 반듯한 여백 위에
무엇이든 시작하면 잘될 것 같아
가슴 설레는 시험지 한 장
절대로 여벌은 없다
나는 또 무엇부터 적을까?
소학교 운동회날 억지로
스타트 라인에 선 아이처럼
도무지 난감하고 두렵다
이번만은 기필코 ..
인생에 대하여
행복에 대하여
건강에 대하여
몇번씩 고쳐 쓰는 답안지
그러나 정답은 없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재수인가? 삼수인가?
아니면 영원한 미지수인가?
문득 내 나이가 무겁다
창문 밖 늙은 감나무 위엔
새 조끼를 입고 온 까치 한 쌍
까작까작 안부를 묻는다, 내내
소식 없던 친구의 연하장처럼
근하 신년! 해피 뉴 이어1
새 해를 기다리는 노래 / 이기철
아직 아무도 만나보지 못한 새 해가 온다면
나는 아픈 발 절면서라도 그를 만나러 가겠다
신발은 낡고 옷은 남루가 되었지만
그는 그런 것을 허물하지 않을 것이니
내 물 데워 손 씻고 머리 감지 않아도
그는 그런 것을 탓하지 않을 것이니
퐁퐁 솟는 옹달샘같이 맑은 걸음으로
그는 올 것이니
하늘을 처음 날아 보는 새처럼
그는 올 것이니
처음 불어보는 악기소리처럼
그는 올 것이니
처음 써본 시처럼
처음 받아든 연서처럼
그는 올 것이니
화려하지는 않지만
어디에도 때 묻지 않은 새 해가
햇볕 누이의 마중을 받으며
작은 골목 작은 대문을 향해
종종 걸음으로 그는 올 것이니
새해 기도 / 도종환
새해 첫 아침 햇살은
창문 열고 기지개를 켜는 아이의
밝은 얼굴 위에
제일 먼저 비치게 하소서
숲의 나뭇가지 하나하나에
햇빛이 골고루 내려앉듯
이 땅의 모든 아이들 빛나는 눈동자 위에
맑게 출렁이는 가슴 위에
빠짐없이 내리게 하소서
골짜기 깊은 곳에도
손잡을 곳 하나 없는 바위 벼랑에도
늪가의 젖은 풀 위에도
아침 햇살이 환하게 번져 가듯
그늘 지고 가파르고 습한 곳에
서 있는 아이들에게도 새날의 햇볕이
따뜻한 걸음으로 찾아가게 하소서
산과 개울과 숲 어디에나 내리는 햇빛이지만
산은 산대로
개울과 나무는 개울과 나무대로
저마다 저를 위해 햇빛이 와 있다고 믿듯
아이들도 늘 저를 위해 준비된
사랑이 따스하게 떠오르고 있다고
믿게 하소서
그 사랑과 따뜻함으로
아이들 몸에서 푸른 잎이 돋아나고
때가 되면 열매가 자라고
꽃이 피어나게 하소서
그렇게 자란 튼튼한 뿌리로
무너지는 언덕을 지키고
그렇게 크는 싱그러운 힘으로
막힌 물줄기를 열어 가게 하소서
월간 <생명의 삶> 2009년 1월호에서
새해 /피천득
새해는 새로워라
아침같이 새로워라
너 나무들 가지를 펴며
하늘로 향하여 서다
봄비 꽃을 적시고
불을 뿜는 5월의 태양
거센 한 해의 풍우를 이겨
또 하나의 연륜이 늘리라
하늘을 향한 나무들
뿌리는 땅 깊이 박고
새해는 새로워라
아침같이 새로워라
|
첫댓글 너무나 좋은글 마음에 닿는 군여 오신님 올한해 싯귀 처럼만 되소서 마음에 담구 갑니다~~^^
고맙습니다... 우리 여기에 오신님들 올 한해 무탈하시고 가정에 행복과 사랑이 깃들길 기원합니다..^^*
좋은시어들감하고 갑니다`감사해요
매우 춥습니다..감기조심하시고 편안밤되세요..^^*
너무도 좋은글 읽으며 머물다 갑니다 ^^*
감사합니다.. 내일춥다고 하니 건강에유의하세요^^*
멋진추억님도 한파에 건강챙기소서
감사해요
좋은글 잘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