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천안북일고와 공주고의 경기를 직접 보셨다구요? 흠흠.... 그럼 박찬호가 천안북일전 방어율이 왜 18점대 가까운줄 아시겠네요? ^^
잠시 옛 생각이 나서...
전체적으로 읽어 보니 제가 이해한 바로는...
박찬호는 한명의 야구선수일 뿐 이제 영웅이라 불릴만한 선수가 아니다라는 말씀이신거죠?
또 박찬호로 인해 이루어진 미국행 러쉬, 그로 인한 프로야구 침체 등 부작용도 있었다(물론 박찬호 때문이 아니라고 하셨고요)
이런 의견이시고요.
저도 박찬호를 신격화하고 영웅시하는 것은 반대입니다.
하지만 그냥 이런 생각이 드네요.
한국프로축구리그에서 한경기도 뛰지 않은 박지성(프로입단 거부 후 일본 교토퍼플상가 입단 - PSV 아인트호벤 - 맨체스터유나이티드)이 나중에 축구 황혼기에 접어들었을 때... 그 때도 박지성은 미아가 될까요?
답은 저도 모릅니다. 하지만 좀 슬프네요.
분명 박찬호는 한 개인이고, 그가 꿈을 쫓아 메이저리그에 가서 성공했고 거기서 대박이 났고, 그 뒤에 수많은 부진과 부상이 있었지만 30대 후반까지 롱런했고 이제 황혼기를 맞아 마지막 해를 한국에서 보내고 싶어한다라는게 그냥 우리가 아무 의견도 넣지 않은 팩트입니다.
애국심이 어떻네 하는 건 말하고 싶지 않네요.
몇가지 변명만 좀 할께요. 제가 왜 해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박찬호 선수가 메이저리그에 가서 성공한 덕에 많은 선수들이 메이저러쉬가 있었던 건 맞습니다. 그러나 좀 생각해 보셔야 하는 문제는 그들 대부분은 가진 기량에 비해서 엄청 높은 계약금을 받고 갔습니다.
메이저리그가 연봉이 높으니까 100만달러 계약금은 껌깞인 줄 아는 분도 계시던데, 블라디미르 게레로 같은 대타자들도 만달러가 안되는 계약금으로 입단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즉 메이저리그는 박찬호 이전에는 아시아 야구를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도미니카 등 중남미 선수풀이 풍부했고, 쿠바 망명선수도 많았기 때문이죠. 미국내인프라는 말할 것도 없고요.
한국선수들이 과연 도미니카 선수들보다 대단했을까요?
적어도 한국에서는 실력에 비해 헐값을 받고 입단한 선수는 없었습니다.
이건 분명한 박찬호의 공입니다.
둘째, 박찬호가 메이저리그를 선보임으로써 한국야구의 인기가 떨어졌다... 뭐 사실일 수도 있습니다. 그 당시 제 친구들도 박찬호 경기 보고 나면 한국야구 짜증나서 못 보겠다라고 했거든요.
문제는 이건 아주 작은 편린일 뿐이라는 거죠. 그들이 과연 미국 야구의 수준만 봤을까요? 미국 야구장 시설...그들의 팬서비스... 프로구단의 선수보호를 위한 각종 노력 등도 같이 스며들어야 했는데 그렇지가 못했죠.
또한 박찬호가 전성기를 달리던 96년부터 야구 인기가 떨어진게 아니라 슬슬 떨어지면서 2000년 초반이 완전 암흑기로 바뀌었죠.
당시 많은 변수가 있었습니다. 현대가 프로에 진출하기 위해 수많은 대표급 아마선수들을 입도선매해서 시장에 풀지 않은 문제도 있었고요.
호남팬들의 희망이던 해태가 길을 잃고 헤매게 됐습니다. 선동렬도 이종범도 간게 저 때구요.
쌍방울은 완전히 존재감이 없어서 해태와 현대, 삼성과 현대 말고는 사실상 상위팀과 하위팀이 완전히 갈라졌던 시절 아닌가 싶네요. 그걸 양대리그로 해결하려 했는데 오히려 뜬금없이 한화가 우승을 해 버렸고요.
이승엽과 심정수의 홈런경쟁 말고는 눈에 띄는 이벤트도 없었죠. 그게 아마선수들 빠져나가서라면 할 말은 없는데, 메이저리그에서 갔던 선수들이 국내에 있었다 해도 전부 성공했을까요? 그 당시 미국 간 선수들이 정말 우리나라에서는 성공이 보장된 특급이었을까요? 그건 아니라 봅니다.
결국, 그건 야구행정, 야구장 수준, 야구 인프라가 복합적으로 연결되어서 일어난 문제지 박찬호 때문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아닌 말로 월드컵 경기 끝나고 나면 우리나라 축구장은 잠시동안이지만 미어터지잖아요. 근데 우리 축구 선수들이 세계수준이라 그럴까요?
이청용, 박지성, 기성용 때문에 우리 축구가 인기 없다고 할 말은 아니라 봅니다.
셋째, 그는 메이저리그에서 성공가도만 달리다가 화려하게 은퇴한 선수는 아닙니다. 비록 우리나라 선수들 중 박찬호를 제외한 모든 선수들 승수를 합쳐도 박찬호의 반에 반도 안되는게 현실이지만, 그는 초반의 화려한 성적 뒤에 엄청난 비난과 조소까지 들으면서도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바로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고 미국에서 재기하는 길을 택했다고 보입니다.
텍사스와의 계약기간만 채우고 퇴단했어도 적어도 돈이 부족하지는 않았겠지만, 그는 싱글에이까지 내려가서 재기를 위해 절치부심했습니다. 이건 그가 얼마나 정신력이 강한지를 보여 주는 단면이라 생각하고요.
마지막으로 제가 가장 불만인 부분입니다.
박찬호 때문에 메이저리그 갔던 선수가 돌아오는데 2년간 선수생활 못한다는 규정이 생겼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상당히 많으신데요. 사실 그 규정이 생긴 거는 박찬호 때문이라기보다는 최창양 때문입니다.
박찬호 계약직후 바로 최경환이 계약을 했지요.그는 사실 본인이 원해서 간 성격이 강했습니다. 한국 선수들 가운데는 가장 헐값(10만달러) 받고 갔고요. 그 다음에 최창양이 상당한 계약금을 받고 갔습니다.
최창양도 중앙대에서 설종진과 좌우에이스를 하면서 박찬호 다음 갈 정도의 직구를 보여줬고 그에 따라 최창양이 미국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당시 최창양은 국가대표 선발에는 번번이 밀릴 정도의 선수였습니다. 그런데 돌연 미국에 갔다가 얼마 되지 않아 삼성과 필라델피아의 현금트레이드로 국내에 돌아오게 됩니다.
미국과의 현금트레이드는 유례가 없는 거죠. 그 전에도 삼성은 재일동포가 아닌 한국말은 하나도 못하고 이중국적을 가지고 있던 최용희라는 선수를 꼼수로 한국에 데려 옵니다. 이 선수가 롱비치 주립대 다니던 시절 18승을 하는 등 대단한 포장을 했었지만 그는 당시 기준으로 메이저리그에 389번째로 픽된 선수였을 정도로 가능성에서는 낙제점을 받던 선수였습니다. 그런 선수도 2억 5천만원이라는 당시로서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들였죠. 국대 에이스 정민태와 구대성이 2억이 안되는 돈을 받고 입단하던 그 때 말입니다.
최창양 역시 이상한 방향으로 한국에 거액을 받고 재입단합니다. 결국 모두 실패를 했기에 많이 기억을 못하시겠지만.. 많은 야구인들은 삼성이 우수선수 확보를 위해 꼼수로 최창양을 미국에 내보냈다 데려왔다는 의심을 받았습니다.
최창양은 마산고 출신이죠. 당시 92학번 부산경남권 선수가 차명주와 강영수가 있었지만, 가능성 면에서는 국대 단골이었던 차명주보다 혹사 안 당하고 공 빠른 최창양이 좋다고 판단을 했던 것 같습니다.
여튼 연고권의 롯데도 아닌 삼성과 덜컥 트레이드라는 꼼수로 계약을 하자 서둘러서 메이저 진출선수들 중 한국유턴파에 대한 징벌적 제도를 마련한 겁니다.
그런데 그 징벌적 제도를 왜 박찬호가 적용받아야 하는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적어도 박찬호는 꼼수 쓰려고 간 것도 아닌데요.
규정을 적용하려면 그 선수가 도미했을 당시의 규정을 적용하면 됩니다.
당시 규정이라면, 최용희나 최창양처럼 쉽게 국내에 복귀할 수 있었을텐데 말입니다.
박찬호가 돌아올 수 있던 시점이 있었는데도 안 왔다는 분들은 언제를 그 시기로 잡고 계신지 그게 궁금합니다.
그걸 알려 주신다면 다시 한번 박찬호 선수를 대신하여 변명을 드리고 싶습니다.
첫댓글 저도 님과 같은 의견입니다. 박찬호 비판이 아니라 엄격히 말하자면 박찬호로 인해 촉발된 한국의 문제점입니다. 그리고 최창양 문제도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근원은 박찬호였죠. 방어율 18점.. 볼넷 볼넷 사구. 볼넷 볼넷 사구. -_- 공은 무진장 빨랐습니다. 어쨋건. 그당시 박찬호는 절대 공주고의 에이스도 아니었지요. 그리고 박찬호 말고도 노모의 경우를 보았을 때 메이저리그는 아시아 시장을 계속 눈여겨 보았지만 선수가 없었거나 본격적으로 스타몰이할 선수를 찾던 시기라고 보여지구요. 그리고 계약금 문제는.. 사실상 많은 돈을 받아도 한국의 선수들이 그 온전한 금전적 혜택을 보기는 힘듭니다. 최근 메이저리그 진출한 이학주
당시에 야구를 세심히 보시지는 않은 모양이네요. ^^ 박찬호는 공주고 에이스였습니다. 전국대회만 나가면 에이스였는데 북일고전에서는 스타라이크존이 박찬호에게는 담배갑 하나였습니다. 성격이 좀 안 좋다 보니 자기가 스트라이크라 생각한 공을 안 잡아 주면 그냥 몸에 꽂아버리는 문제점이 있었죠.
지금이야 공주고가 실력대 실력으로 해도 북일에게 발리지만 당시에는 정말 심한 편파판정이었죠.
오죽하면 당시 공주고 내에서 서열 3-4번 투수였던 김종국 선수가 심판에게 욕을 하고 유니폼을 찢어버리고 퇴장을 당했겠습니까?
지역예선 없이 나갔던 화랑기에서 당시 공주고는 박찬호의 완투로 대통령배 청룡기 우승팀 경남상고를 제압하고 결승에서 부산고에 무너졌습니다.
봉황기에서는 1회전에서 강릉고를 손혁의 완봉으로 제압하고 16강전에서 박재홍의 광주일고를 박찬호의 2안타 완봉으로 물리쳤고요. 준결승(신일고전)을 염두에 두고 박찬호를 아낀다는 오판으로 손혁을 배명고 전에 내보냈다가 의외의 연타석 홈런을 맞고 무너지지 않았다면 지금도 회자될 조성민과 박찬호의 빅매치가 있었을텐데.. 쩝...
-그랬었나요? 죄송요. ^_^ 그당시 박찬호는 볼넷의 제왕이었죠. ㅎㅎ 다시 원글로 돌아가서. 이학주의 경우만 보아도 기사자료를 보면 상당히 금전적 어려움과 생활의 어려움을 겪는다고 나와있죠. 그런 금전의 혜택이 적다고 해도 한국 프로야구의 경우 식사, 숙소, 장비지원등을 생각하면 사실 어디가 낫다고 말하기 힘듭니다. 또한 야구 외적으로 그다지 스트레스 받을 것이 없지요. 그것도 뭐 한국야구의 고질적인 지역선수 우대나 선수혹사등의 문제도 있구요.
전 그런 자세한 사항까지는 기억을 못합니다. ^_^ 그냥 박찬호 선수가 당시 공은 빨랐는데 사구, 볼넷. 그리고 얼굴 벌개졌던 것만 기억해서요. 그리고 그당시도 엉덩이는 정말 컸습니다. 그당시 다른 경기는 몰랐습니다.
그래도 다른 초고교급 선수들보다 더 엄청나게 대우받을만한 상황은 아니지 않았나요? 뭐 이건.. 지금 중요한 건 아니니까요.
천상의독수리님 말씀처럼 마이너리그 생활은 우리나라 2군만도 못하죠. 근데 이걸 선수 혼자 하는게 아니고, 에이전트라 불리는 이른 바 낚시꾼들이 온갖 감언이설로 꼬시기 때문이겠지요.
박찬호 선수의 당시 능력은 유일한 야구 주간지에서 박찬호를 임선동 조성민보다 높게 평가한 것만 봐도 어느 정도 견적이 나옵니다.
2학년 겨울방학 때 팔꿈치 부상으로 구속이 147km 정도밖에 안 나와서... ㅎㅎㅎ 또 북일에 막혀 전국대회 출전이 안되면서 막힌 케이스죠. 그는 실력이 급성장한 게 아니라, 주머니 속의 송곳이었죠.
아.. 그리고 제가 북일 출신으로써 변명하자면.. 북일이 강한적이 있었고 공주고가 강한적이 있었습니다. 그럴때는 선생들 말로는 우리가 잘나갈때는 일부러 한번정도는 져줘서 공주고가 출전하도록 해주었다고 합니다. 모든 경기가 거의 북일고 구장에서 예선이 치루어진 것은 아시죠? 그만큼 공주고는 항상 응원에서 열세인 측면이 강했죠. 꼭 북일이 막았다기 보다 그런 식으로 우리가 강할때는 공주고에게 한번 정도는 기회를 주고 반대로 공주고가 강했을 때는(그렇게 많지는 않지만) 우리가 한번 정도 기회를 대신 얻고.. 뭐 이랬다 합니다. 지금은 모르겠지만요.
ㅎㅎ 북일고 선생님들은 그렇게 말씀하시나보군요.
사람 입장이라는게.. 그게 그 후로는 그런지 모르겠는데 박찬호 재학 당시에는 그렇지가 못했어요.
왜냐 하면 4강에 들어야 대학을 갈 수 있었기 때문에요. 만일 북일고가 1학기 대회에서 4강에 들었거나 우승을 했다면 쉽게 그렇게 할 수 있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양보할 수가 없는 사안이었죠.
1990년 공주고는 대통령배, 청룡기, 전국체전 등 지역예선 경기는 모두 이겨서 나갔고요. 황금사자기만 우수팀초청으로 나갔습니다. 화랑기와 대붕기는 같은 기간에 해서 나눠서 나갔죠. 봉황기야 예선이 없으니까요. 91년에는 황금사자기 한 경기만 공주고가 출전했네요.
지금은 님 말씀대로 경기를 나누어서 나가는데 그건 서로 봐주기해서라기보다는 학기중 경기출전을 제한하는 조치의 영향일 겁니다. 아마도... 지나간 이야기지만.. 당시 공주고가 북일에게 진 건 판정 문제도 있었지만, 팀을 이끌 리더가 없어서였어요. 신재웅과 강준기가 공주고 3학년 때는 두 선수가 투타의 오장으로 팀을 잘 잡고 있었는데, 박찬호 학번에는 오중석, 고경찬, 홍원기, 손혁, 박찬호 등 너무 잘난 선수들이 많아서 오히려 팀웍이 안 좋았거든요.
제가 많이 배우네요. 사실 고교야구는 거의 잘 모릅니다. ^_^ 그냥 학교에서 단체 응원할때 빼고는요. 아마 선생님들이 말씀하신 건.. 그런 경우인듯한데요. 아시다시피 북일고 초창기에 잘할때는 엄청 잘했죠? 그때 공주고에게도 일부러 한번이라도 기회를 주었다. 그런 걸 말씀하신 듯 하네요. 북일고가 워낙 잘할때와 못할 시기의 격차가 커서요. 그런데 궁금한게요. 공주고도 야구부 애들은 입학부터 졸업때까지 수업한번 안 들어옵니까? 얼굴 한번도 못보구요?
흠... 수업요... 이거 말 잘못해서 새나가면 징계먹을 사안인데.. ㅎㅎ
수업 잘 안 들어오죠. 단 훈련이 없을 때는 들어와요. 전국대회 직후라던가 이럴 때요. 쉽게 생각하면 감독님이나 코치님 휴가 때죠. 수업 들어올 때도 수업을 듣는다기보다 한자로 이름쓰기 등등 야구부원들 나름의 숙제를 하더라고요. 1년으로 치면 수업들어오는 날이 한 2-30일 정도? 그 정도 되지 않았나 싶네요.
얼굴 한번도 못 볼 정도면 친해지지도 못하겠죠. 친해질 만큼은 수업 들어와요. ㅎㅎ
그럼 저희보다 몇배는 낫네요. 제가 야구부 애들을 본적이 딱 두 번 있습니다. 한번은 야구장 풀뽑으러(우리가 왜?) 갔을 때와 한번은 야구부 애들이 단체로 집단 탈퇴? 그런 소동을 벌인 적이 있습니다. 그때 한 일주일인가 학교 수업 들었었죠. 심지어 시험때도 본 적이 없습니다. -_- 정말 사립의 병폐입니다. 제가 북일고 출신이지만 북일고 싫습니다. 사립 정말 거지같았죠. 친해지기는 커녕 우리반에 야구부가 있는지 없는지도 졸업때까지 모르는 경우가 일반적이었습니다. 지금은 모르죠. 자사고로 바뀌었다는데 정나미 떨어져서..
노모의 경우는 좀 다릅니다. 그는 메이저리그에서 불러서 계약을 한게 아니라, 일본 프로야구에 환멸을 느껴 스스로 일본 무대 은퇴를 결정하고 미국으로 날아간 케이스죠.
어차피 미국세금상 총각선수가 가면 최소 29-41%는 세금으로 공제하지만, 계약금보다 연봉이 천문학적으로 높은 미국 풍토를 볼 때, 적어도 그들은 계약금만으로도 몇년 고생은 땜빵할 수 있다는 판단이 있기도 했을 거라 보이네요.
노모의 경우는 다르지만.. 그때부터 메이저리그가 지속적으로 아시아시장을 노크하고 있었다는 징조는 보였습니다. 선구자의 역할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선구자때문에 다른 선수들이 모두 혜택을 받았다는 것은 너무 인물론적인 역사해석 같구요. 중간으로 선구자의 역할과 메이저리그의 아시아시장 관심이 잘 맞물려졌다 정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만일에 말입니다... 지금 한국프로야구가 2000년대 전후처럼 연 관중수가 쪽박이고, 과거 롯데 꼴지하던 때처럼 관중 세명이 앉았다 일어났다 하면서 파도응원하는 상황이라면 박찬호를 어찌 처리했을까요?
2000년대 당시 구대성, 정민철, 이상목이 한번에 빠져나가고 정말 지금보다 못하면 못했지 좋지 않은 투수진을 보유한 적도 있었지요. 저도 그 당시에 덕 좀 봤습니다. 혼자 야구 보러갔는데 맥주 이벤트 한다고 아무 여쟈분이나 붙들고 오면 커플로 인정해 준대서 맥주 한박스 받은 적도 있고요. ㅎㅎ 우리에게 그런 시절이 있었습니다.
뭐.. 그런 상황이면.. 박찬호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기본적으로 야구의 시스템 개편이나 본질적인 차원에서 점검이 필요하겠죠. 박찬호 하나에게 뭘 어떻게 하자는 것.. 이것도 좀 너무 지나치게 박찬호를 신격화하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박찬호는 훌륭한 선수입니다. 하지만 애국심과 국가논리로 인해 지나치게 포장하면 박찬호에게도 해가 되고 야구 유망주에게도 해가 됩니다. 그리고 크게 보면 한국 야구는 메이저리그 아래라는 이상한 서열논리도 발생할 수도 있어서요. 굳이 서열을 말 안해도 충분히 훌륭한 선수고 즐거움을 주면 그것만으로도 훌륭한데요. 그게 메이저던 한국리그던요.
신격화하자는 것보다도요. 예전에 일본에서 퇴단한 조성민의 경우처럼 데려오려고 하지 않았겠느냐 그런 생각이죠.
조성민의 경우요? 어떤 걸 말씀하심인지.. 잘 모르겠네요.. 조성민과 박찬호는 완전 다르지 않나요? 조성민에게 긍정적인 이미지가 조금이라도 남아있었나요?
긍정적인 이미지가 있었다는 것보다는요. 투수진이 너무 안 좋으니까 조성민이라도 받아쓰자는 것이었고요. 한때는 일본야구에서 아주 잠시지만 날렸던 선수라 스타성이 있기에 헐값이지만 계약을 한 거지요. 저는 당시 조성민의 투구능력보다는 그래도 조성민을 기억하는 팬들이라도 오지 않을까 해서 찬성을 했었거든요.
흠.. 좀.. 글쎄요. 다른 것 같기는 한데요... 그런데 저희 댓글끼리 별로 다른 의견도 아닌 것 같은데 지지리 물고 늘어집니다. ㅎ ^_^ 다음에 또 뵙죠. 제가 하신 말씀의 기본취지를 충분히 이해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지금 야구 인기가 대단하지요. 이럴 때 어찌 보면 더 확실히 불을 당길 수 있는게 박찬호라 생각합니다. 하일성 위원 말처럼 야구 몰라요. 더불어 야구 인기는 더 모릅니다.
당장 내후년 류현진이 사라지고, 김광현이 구위 회복 못하면.. 작은 희망이라도 남기자는 생각입니다. 저는....
글쎄요.. 그게 불을 당길지 아니면.. 실망감이 될지는 보아야 알겠죠. 헤유.. 하다못해 일본 안가고 그냥 한국 왔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정말 일본 안가고 바로 왔으면 그럴 수 있었겠죠. 일본 갔다는 사실만으로도.. 상당히 반감 가지는 사람들이 정말 많아졌네요.
박찬호가 작년에 한국에 오려고 했으나 규정이 문제라 오지 못했다는 걸 잘 모르는 분들이 많은 것 같네요.
그건 비단 작년만의 문제가 아니었고 올해도 마찬가지니까요. 뭐 자세한 사항은 모르지만 박찬호가 본격적으로 한국행을 직접 혹은 강력히 타진하거나 요청만 작년에 했더라도 상황이 달라졌을거란 생각은 들어요. 아쉬운 부분이죠.
박찬호는 작년이나 올해나 한국으로 오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규정이 해결될 기미가 안 보이니까 중간기착지로 우선 일본을 택했고요.
올해도 무조건 한국에서 받아달라고 하고 있지는 않지요. 희망을 드러내는 수준이랄까요. 선수 한명이 직접 나를 받아달라 하고 팀에 요청을 하기는 어렵습니다.
이러다 대만이나 가면... ㅡㅡ'
대만리그까지 갈 딱히 동기가 없을텐데요.. 글쎄.. 그 부분은 저희가 선수 관련자가 아니라 단순히 언론기사만으로 판단할 수 밖에 없는데요.. 누구를 욕하기가 그러네요. 한화 구단에서는 강력한 제의가 있었는지.. 아니면 야구협회에서는 어느정도 제안이 있었는데 박찬호가 거절을 했는지.. 그런 건 어떤 절차나 그런 것보다 풍기는 뉘앙스나 성의 그런 문제가 크니까요. 전 가능하면 한국 안 올꺼면 일본보다 미국에서 은퇴하는 것을 바랬던 사람이라서요.
어쨋든 관련 사항이 해소되면 오면 좋지만.. 박찬호 하나를 위해서 조항을 개정했다는 것에 반감 가지는 사람들의 비난도 어느정도 감수는 해야될 것 같아요.
그리고 재미있는 뒷얘기랑 이런 저런 얘기 감사하고 즐거웠습니다. 기본적인 취지는 어느정도 일치하고 단지 세부적인 사항이나 해석에 있어서 차이가 있었던 것 같네요. 남은 하루 잘 보내시구요. 저녁 맛있게 드세요. ^_^ 감기 조심하시구요. 다음에 또 뵈요~
넵... 감사합니다. 본의 아니게.. 도배질을.. ㅡㅡ'
그래도 감정상하는 이야기가 아닌 건전한 토론인 것 같아서 좋습니다. 건승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