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비록 농알못이지만 추 감독의 여러 면모를 꼭 한번 정리해서 쓰고 싶었는데 미루다보니 벌써 한달 반이 되었네요. 추 감독님이 이 글을 보실 리야 없겠지만 오리온스 원년 팬의 한 사람으로서 추 감독님께 드리는 제 나름의 헌사입니다. 부족하지만 재밌게 봐주셨으면 해요 ^^
I. 성적
2003-04시즌 (프로감독 데뷔) 여수 코리아텐더 감독 취임, 8위 기록
모기업 KTF로 변경 및 연고지 부산 이전
2004-05시즌 (6강) KTF 4위 기록, 플레이오프 4강 탈락(vs 동부[우승팀])
2005-06시즌 (6강) KTF 4위 기록, 플레이오프 4강 탈락(vs KCC)
2006-07시즌 (준우승) KTF 3위 기록, 챔피언결정전 준우승(vs 모비스)
2007-08시즌 KTF 8위 기록
2008-09시즌 KTF 10위 기록
2011. 6월 대구 동양 오리온스, 연고지 고양 이전
2011-12시즌 고양 오리온스 감독 취임, 8위 기록
2012-13시즌 오리온스 5위 기록, 플레이오프 4강 탈락(vs KGC)
2013-14시즌 오리온스 6위 기록, 플레이오프 4강 탈락(vs SK)
2014-15시즌 오리온스 5위 기록, 플레이오프 4강 탈락(vs LG)
2015-16시즌 오리온스 3위 기록, 챔피언결정전 우승(vs KCC)
추일승 감독 이력을 정리하면서 제가 받은 느낌을 몇가지 정리하면
첫째, 의외로 감독경력이 11년이나 되는 베테랑 감독
둘째, 구단의 신임을 바탕으로 한 구단에서 장기근속한 준프랜차이즈(?) 감독
※ KTF에서 2003-04시즌부터 6시즌, 오리온에서 2011-12시즌부터 5시즌
셋째, 우수한 성적 : 11시즌동안 우승 1회, 준우승 1회, 6강진출 5회(각각 2연속 및 3연속)
넷째, 2번째 시즌만에 하위팀 6강 진출 견인(KTF 및 오리온 모두)하는 등 리빌딩 역량
II. 포워드농구 창시자
2015-16시즌 이전까지를 기준으로 추일승 감독을 평가한다면
저는 슬램덩크의 풍전을 이끈 ‘노선생님’을 보는 듯했고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고 봅니다.
첫째, 본인이 추구한 농구의 큰 틀을 끝까지 고수한 점(지금이야 바로 그점 때문에 칭찬 일색이지만, 이번시즌 전까지는 센터 없는 농구의 한계라는 비판이 오히려 지배적이었죠)
둘째, 참신한 스타일의 농구(포워드농구-런앤건)로 준수한 성적을 거둔 점
셋째, 새로운 실험에 대중들과 농구계의 일시적 호평이 있었으나 이내 기대치가 높아져 비판에 시달린 점
그러나 2015-16시즌 및 플레이오프를 거치면서 추 감독님에 대한 평가가 많이 바뀌셨을 것 같습니다. 큰 경기에 약하다는 우려를 불식시켰구요. 포워드농구에 자신만의 철학을 가미하고 다양한 맞춤형 공격/수비전술로 단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극대화했죠.
III. 혁신가
추 감독님은 우승도 당연히 원했겠지만 본인이 그간 추구해 온 팀컬러를 바꿀 생각까지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건 일종의 자기부정으로 느낄 만큼 포워드농구에 대해(확신까지는 아닐지라도) 애착이 있지 않았나 싶어요. 성적을 떠나 내가 하고 싶은 농구를 하고 싶다는 그의 인터뷰는 빈말이 아니라 정말 진심이 느껴졌습니다.
2015-16 시즌 개막 전 인터뷰 - “성적을 떠나서 (마지막이니깐) 내가 하고 싶은 농구, 내가 원하는 농구를 원없이 하고 싶다. 그만두더라도 빠르고 시원하고 공격적인 농구를 후회 없이하고 싶다. 이것이 나도 살고, 농구도 살고, 팬도 즐거운 길이 아닌가 생각한다”
우승직후 인터뷰 - “죽을 때까지 우승 못 하더라도 열심히 살았다면 제 자식들한테, 누구한테도 부끄럽지 않다고 생각한다”
또한 농구인이 아닌 직장인의 한 사람으로서 보더라도 저는 승진 등 현실적인 기준 못지 않게 사명감, 재미, 보람 등 이상적인 기준을 중시하는데, 비슷한 부분이 있다고 느껴서인지 추일승 감독이 참 존경스러웠습니다.
이번 우승은 포워드농구에 대한 국내 농구계의 통념을 뒤집었죠. 그래서 뭐랄까요, 다른 여느 승부사가 아니라, 스티브 잡스처럼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 내는 혁신가(Innovator)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당연히 부단한 노력과 연구가 있었기에 가능했을 테고, 우승을 통해 증명해내지 못했다면 이런 찬사는 듣지 못했겠죠)
IV. 인간미
선수로서 조기은퇴를 한 추감독님 본인의 경험 때문인지 선수에 대한 배려도 남달랐던 것 같습니다.
상무 감독 시절 박재일 선수 등 부상 선수들을 무리하게 훈련시키지 않고 재활을 적극적으로 지원하셨다죠.
"예전에 오리온 팬들은 알겠지만 박재일선수 기억할꺼다 상무시절 고질적인 무릎 부상때문에 잘못뛰었는데 복무기간동안 추일승 감독님이 재활만 시켰다고 지금 농구대잔치보다 앞으로 선수생명이 중요하다고 박재일은 그이후 오리온스에서 소금같은 역할을 했지 겉모습은 카리스마있게 생겼지만 추일승감독 정말 사람 하나하나 소중히 생각했다 심판에게도 정중하고 매너좋고 하지만 할말은 다하시고 점때 오심때 재경기 요청은 그가 얼마나 빡쳤는지 알수있었다 꼭 지도자생활하면서 우승반지껴봤으면 동갑내기 유재학 전창진은 이미 가지고있으니 이제 추감독님 차례네"
그리고 우승직후 인터뷰에서 마지막에 종료 5분 쯤인가 남기고 김강선, 김도수 등 후보선수들을 출전시킨 이유에 대해 질문을 받고 그 친구들도 똑같이 열심히 훈련하고 고생했는데 영광스러운 이 코트를 꼭 밟게 하고 싶었다는 얘기를 하는데, 마치 기아 벤치시절 본인의 모습을 상기하셨던 것인지, 감정이 복받쳐 오르는 듯 보였죠. 참 멋진 분이다 싶더군요.
잠재력 있는 선수의 고른 기용에도 각별히 신경을 많이 쓰셨죠. 아래 인터뷰를 보니 추 감독님의 ‘공산농구’가 어떤 경험에서 비롯되었는지 알 것 같기도 합니다 ^^
“기아에서 은퇴를 하고 매니저 생활을 하면서 느낀 게 잠재력 있는 선수가 못 뛰는 걸 많이 봤다. 그 선수들을 살려주고 싶었다. 주인공이 너무 많이 지배하다 보면 재밌는 농구가 안 된다고 생각했다. 될 수 있으면 그런 선수들이 팀에 기여하는 농구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비주류’였던 본인의 아픈 경험을 다른 비슷한 처지의 선수들을 배려하는데 십분 활용하신, 그야말로 보기 드문 선한 품성의 지도자가 아닌가 싶습니다.
“주류, 비주류냐 이런 게 항상 따라다녔다. 남몰래 스트레스도 받았다. 하지만 열심히 살았다면 부끄럽지 않다고 생각한다. 학교를 어디 나왔냐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연세대, 고려대를 나오지 않은 사람이 더 많은 세상에 살기 때문에 주류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다큐멘터리에서 폴 포츠가 브리튼즈 갓 탤런에서 우승하는 것을 봤다. 나한테는 그게 농구가 아닌가 생각했다. 내 젊음을 농구에 바친만큼 끝을 보겠다는 생각을 했다“
“좋은 선수들이 많이 들어오면서 이번 시즌만큼은 우승을 놓쳐선 안 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 때마다 내가 되뇌는 말이 있다. 폴 포츠(성악가) 다큐멘터리를 봤는데, 폴 포츠가 부른 노래 마지막 구절이 ‘빈체로’(Vincero)다. 빈체로 뜻이 영어로 하면 ‘I Will Win’이다. 그 말을 새기면서 정말 이기고 싶었다”
폴 포츠 – 네순 도르마
P.S : 우승 타이틀이 없어서 아직 출판을 미루고 있는 책이 있다시는데 이제 스펙까지 모두 갖췄으니 어서 출판되기를 기대합니다 ㅎㅎ
“우승이 없어 그동안 못했던 일이 있다”고 운을 뗀 추 감독은 이제 당당하게 책을 펴낼 것이라고 했다. 추 감독은 “원고는 다 썼는데 챔피언타이틀이 없어서 머뭇거렸다. 농구 코칭에 대한 책인데 내 경험도 들어가 있고, 미국코치협회 지침서들에서 좋은 내용도 발췌해 우리 실정에 맞게 설명해봤다”고 했다.
P.S.2 : 글을 쓰면서 자료를 검색하다가 소름돋는 사실을 확인했는데 오리온제과(동양제과)의 전신이 용산 소재 엿공장인데, 그 공장 이름이 '풍전'이었다는... 신기하지 않나요?
"한편 찢어지게 가난한 농촌 생활이 싫어 20살 때 무작정 상경한 정주영은 지금의 고려대학교 신축 공사장에서 막노동을 하며 경성에 정착할 수 있었다. 이어 용산역 근처에 자리한 풍전엿공장(지금의 동양제과)에 잔심부름꾼으로 들어갔으나 장래가 보이지 않자 다시금 경성 거리를 쏘다녔다."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좋은 글 고맙습니다. :)
감사합니다. 우승 이후에 팬으로서 추감독님께 보답(?)하지 못했다는 마음의 짐이 있었는데, 이제야 내려놓은 느낌입니다 ㅎ
참 좋은 글이네요.
이승현 선수 땜에 오리온을 좋아하게 되었는데 추감독님을 보고 더 좋아졌다는...
아웃사이더도 아끼고 내편으로 ..
풍전엿제과에서 소름한번...ㅎㅎ 양질의 글 잘 읽었습니다^^ 추감독님이 이글을 꼭 보셨으면 좋겠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