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초였응게 거의 한달 전 쯤이었겠네. 아침 먹고 커피 한 잔 내리고 있는데 전화 벨 소리가 울린다. 내일이면 칠순인 내게 웬 전화? 먼저 국번이, 070은 아니고 010인 걸 보니 보이스피싱은 아닐 터, 그럼 누군감? 으잉, 나와 고교 동기인 K군?!
뜻하지 않게 K군이 서울 을지로에서 볼일 마치고 이름 없는 날 만나러 오겠단다, 그것도 40여 Km나 떨어진 내가 사는 곳으로, 그것도 마치 조선시대 봉홧불 올리듯 일방적인 통보로 말이다.
1시간 30분의 여유밖에 없응게 급히 샤워를 한 후 거울 앞에 앉아서 분을 바르고 깊게 팬 목덜미의 주름을 감추느라 열심히 파운데이션을 발랐다. 왜 그러냐고? 왜 있잖은가, 사마천의 사기(史記) 자객열전 예양전(豫讓傳)에서 진(晉)의 예양이 한 말, 여위열기자용(女爲悅己者容) 말이다. 여인은 무릇 자기를 기쁘게 해 주는 자를 위해 화장을 한다는 거 있잖아, 알면서 뭐 떠보는 건 아니긋지? 왜 이러시나, 이 구절의 댓구(對句)도 알거등, 사위지기자사(士爲知己者死)잖여. 아마도 오매불망(寤寐不忘)이란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일 게다. 반세기나 되는 세월을 떨어져 살아오면서도 단 며칠도- 혹여 누군가 '단하루도'라 하면 거짓말이라면서 나무랄지 모르니- 잊을 수 없었던 K군을 만난다니 얼굴을 꾸미는 건 당연한 일 아니겠는가.
11시 30분 G역의 출구에서 K군을 만났다. 그는 반 세기 전 고교 3년 때 같은 교실에서 고작 나와는 1년을 함께 공부했을 뿐 아니라, 앞 자리에 앉은 나를 그는 맨 뒷 줄에서 지긋이 내려다 보고 있었을 터였으니, 파를 꺾어 피리를 불고 대로 만든 말을 함께 탔던 총죽지교(蔥竹之交)의 우정을 나눈 사이는 아니었다. 그리고 뭐 미수(米壽)를 식은 죽 먹기로 넘기는 이 시대로 봐서는 그를 알고 지낸 1년은 어쩌면 찰나라고도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여자처럼 자그마한 얼굴에 커다란 눈을 화등잔맹키로 뜬 그의 얼굴은 옛날과 전혀 변함이 없었고, 반가이 나를 맞아주는 그의 성정(性情)이 그때처럼 여전함에 우린 너무도 쉽게 반 세기를 훌쩍 건너뛸 수 있었다. 두어 달 전 총동문회 주최 바둑대회의 단체전 준결승전을 치르고 있을 때 응원차 찾아온 50년만에 나와 만난 K군은-그때 동기회 총무 H군도 찾아 주었다- 마음에 없는 빈말이나마 내게 크나큰 감동을 주는 말을 건넸다. 나를 만나려고 왔다면서 말이다. 그래도 난 K군의 말을 곧이 곧대로 믿었고, 잠깐의 짬을 내어 수담(手談)까지 나누었으니...
그리고 이 날 두 번째로 K군을 만나 어느 허름한 식당을 찾아 소줏잔을 몇 잔 기울이고 점심을 함께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속이 좁기로 밴댕이 소갈머리인 내게 그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이야기 하나하나가 반추해 보건대 금과옥조(金科玉條)가 되는 가르침이었다.
식사 후 가게를 나오자 K군은 바둑을 두자고 제안했다. 헐! 이를 어쩌나, 우리집 근처이니 근방에 기원이 하나 있었지만 최근에 없어졌다는 건 내가 잘 알기에, 이웃 G 동네에 있는 기원이 생각나서 그리로 가는 버스를 함께 탔다. 하! 거기 역시 기원은 언제부터인지 문을 닫은 먼지 쌓인 공실이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이제 그만 포기할 만도 하련만 K군은 기어이 나랑 바둑을 둬야 된다고 우기면서 다른 곳의 기원을 찾아가자고 하면서 휴대전화를 검색하더니 J 마을로 가자면서 택시를 불렀다. 인터넷으로 검색한 결과 J마을엔 기원이 세 개 있다고 해서 그 중 하나를 정해서 택시를 내리자, K군은 스타벅스에 들어가더니 커피 두 잔을 주문해서 갖고 나왔다. 그리곤 "기원에서 제공하는 커피랑은 다르니까 갖고 가서 마시자." 하면서 6층에 있는 기원으로 올라갔다. 근디 이게 뭔 변고여? 역시 기원은 폐업하고 공실이었고, 이젠 다른 두 곳의 기원을 찾아가기 전에 먼저 전화부터 해봤다. 예상대로 어느 곳도 받는 곳이 없었으므로 내가, "이건 하늘이 오늘 우리 두 사람이 바둑을 두지 말라고 명하는 게 분명한 듯한데 안 그려?" 했지만, K군은 막무가내로 다른 마을로 가보자고 단호하게 말했다.
해서리 또 모바일로 검색해 보니 반경 4km 이내에 S기원이 있는 걸로 나와서, 우선 전화를 해 보았더니 영업을 하고 있다는 응답이 왔다. 택시로 10여 분 가니 드디어 S기원이 저 앞에 떠억 하니 간판을 달고 있었다. 따뜻한 차를 마시면서 K군과 바둑을 몇 판 두었지만 승패는 우리들의 관심사가 될 수 없었으니, 바둑 격언에 승고흔연 패역가희(勝固欣然 敗亦可喜)라 하지 않았던가. 바둑도 두 사람이 실력을 겨루는 게임이니 이기면 좋지만, 지는 것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말이다. 내가 오랜 세월 잊지 못하고, 잊을 수 없고, 잊어서도 아니 되는 K군과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중요했으니까...흐음! 이걸로 나의 100대 버킷리스트 중 한 가지를 지울 수 있었네그랴, 비록 힘은 엄청 들였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