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민왕도 다른 고려의 왕자와 마찬가지로 원나라에서 교육을 받고 원나라 여자와 결혼하였단다. 공민왕의 부인인 노국대장 공주는 원나라 공주였지만 공민왕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공민왕은 공주의 후원을 받으면서 개혁에 박차를 가하였지. 그러나 안타깝게도 노국대장 공주가 아기를 낳다 죽으면서 공민왕은 정치도 개혁도 그만 손을 놓고 매일같이 그림만 그리며 세월을 보내고 말았단다. 만약 노국대장 공주가 죽지 않았다면 어쩌면 조선이라는 나라는 탄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르지. 역사를 움직이는 여성의 역할을 잘 알 수 있지? 호호~~"
"선생님, 공민왕은 왜 살해 당하였나요?"
"공민왕의 시해 이유에는 차마 학생들에게 밝히기에 부적절한 이유가 있어 교과서에서는 설명을 전혀 하지 않는 것이란다. 하지만 선생님은 중학생 정도면 그 이유를 알아도 잘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공민왕은 노국대장 공주를 비로 맞아 매우 사랑하였는데 그만 난산 끝에 죽고 말았단다. 그 후로 정치를 모두 신돈에게 맡기고 술과 그림으로 세상을 살았지. 당시 궁중에는 명문자제 미소년들이 자제위라 하여 들어 와 있었는데 그 중 한 명이 그만 공민왕의 비와 정을 통하여 임신을 시켰단다. 홍륜(洪倫)이라는 사람이었는데 공민왕은 비밀리에 이들을 처단하려고 하였지만, 오히려 홍륜과 환관 최만생에게 살해당하고 말았다. 이후로 고려는 부흥의 길에서 영영 멀어지고 말았지."
5. 다음 사료를 읽고 공민왕이 왜 하필이면 스님인 신돈을 혁명의 칼로 사용하게 되었는가 생각해 보자. 공민왕은 신돈을 재상으로 쓰지 못하겠다고 지적한 세 부류에 속하지 않는 사람이라 발탁하였다. 그렇다면 그 세 부류란 어떤 사람들을 말하는가?
공민왕이 재위한 지 오래 되었으나 재상들이 뜻에 맞지 않으므로 왕은 "세신 대족은 친당이 뿌리를 이어서 서로 엄폐하고 초야의 신진은 마음을 속이고 행동을 꾸며서 명예를 탐하다가 귀현이 되면 문자가 한미한 것을 부끄럽게 여겨 대족과 혼인하여 모두 그 처음의 뜻을 버린다. 유생은 유약하여 강직함이 적고 ...서로 당을 이루고 사사로운 정을 따른다. 이 셋은 모두 쓰기에 부족하므로 세상을 떠나 독립한 사람을 얻어 크게 써서 전부터 내려오는 폐단을 고쳐야 겠다."고 하였다. 그런데 신돈을 보니 도를 얻어 욕심이 적고 또 미천하여 친당이 없으므로 대사를 맡기면 반드시 뜻한 바대로 하여 자신의 몸을 아끼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마침내 선발하여 국정을 맡겼다.
☞공민왕 때 전민변정도감을 설치하고 권문세족의 농장에 개혁의 칼날을 휘둘렀던 신돈에 대하여서는 두 가지의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요승이라는 평과 사심이 없는 개혁가 라는 평이다. 다음 글들을 읽어 보고 신돈에 대한 자신의 주장을 글로 써 보자.
*신돈은 도(道)를 얻고 욕심이 적으며 미천하여 권문세족 같이 친당이 없으며 큰 일을 맡기어도 소신껏 국정을 살필 수 있을 것이라는 개혁지향적인 공민왕의 판단에서 등용되었다. *신돈은 ‘전민변정도감’의 판사가 되어, 전(田)과 민(民) 즉 토지와 노비를 판단(변정)하여, 토지를 원래의 주인에게, 노비를 원래의 신분으로 되돌려 주었다. 신돈의 개혁이 실시되자, 서울이나 지방의 백성들이 모두 기뻐하였고, 해방된 노비들은 성인(聖人)이 났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이제현은 신돈의 골상(骨相)이 옛날 흉인(凶人)의 것과 같아 후환을 끼칠 것이라 하여 왕에게 가까이하지 말 것을 요청하기도 하였다. * 홍건적을 물리친 명장 정세운은 요승이라 하여 죽이려고까지 하므로 왕이 피신시키기도 하였다. *당시 영향력이 컸던 고승 보우로부터는 사승(邪僧:사악한 승려)으로 지목되기도 하였다. *왕의 신임을 기회로 점차 오만해져서 방탕과 음란을 일삼았으므로 점점 배척을 당하게 되었다.
아전들 벌써 세금 걷는다 야단이네. ... 붉은 알몸 갈 옷으로 가리고 하루에도 밭갈기를 얼마였던가? 그리하여 벼싹 파릇 파릇해지면 가라지 피매기에 괴로울 따름 풍년 들어 천 종의 곡식을 거둔다 해도 한 갓 관청에 바치는 것일 뿐 어쩌지 못하고 다 빼앗긴 채 돌아 오니 가진 것이라고는 한 알도 없네
-이규보 『동국이상국』에서-
★재미있는 사료 학습★
7.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신돈이(가)(000000)두기를 청하여 스스로 판사가 되어 전국에 방을 붙여 알리기를 "요즈음 기강이 크게 무너져 욕심이 많고 마음이 검은 것이 풍속이 되었다...... 대대로 지어 내려오는 땅을 힘있는 집이 빼앗고, 또는 이미 땅 주인에게 주라고 판결을 내린 것도 그대로 가지며, 또는 백성들을 노예로 삼았다. 주, 현, 역리, 나라의 노비와 백성의 역을 회피하는 자들이 모두 농장에 몸을 숨기니 백성을 병들 게 나라를 궁핍하게 하였다... 이제 (가)(000000)을 두어 이를 추정케 하되 서울은 15일, 각 도는 14일 기한으로 그 잘못을 알고 스스로 고치는 자는 묻지 않을 것이며, 기한을 지나 일이 발각되는 자는 조사하여 다스리되 거짓으로 호소한 자는 도리어 죄를 줄 것이다." 라고 하였다. 이 명령이 나오자 (나)권세가와 힘있는 자들이 빼앗은 많은 땅을 그 주인에게 돌려주므로 모든 사람을이 기뻐하였다.... 무릇 천한 무리들이 양인이 되기를 호소하는 자는 모두 양인으로 만들어 주었다. -고려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