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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사람들 / 최일남
“언제 날을 잡아서 우리끼리 여행이나 한번 갔다 오면 어떨까?”
마침 화제가 시들해서 별다른 의도도 없이 한 말인 것 같았는데 의외로 윤경수나 김성달이도 금방 동의를 하고 나섰다. 여행이 갑작스럽게 결정되었음을 말함.
“그거 좋지. 맨날 서울바닥에서 비비적거리고 살다 보니까 고단해 죽겠어. 계절이 어떻게 바뀌는지도 모르겠고 말야.” 서울이 생활의 근거지임
“사실 그러고 보니까 우리끼리 이렇게 만나면서도 한 번도 여행을 해 본 적이 없군그래. 지금쯤 시골은 좋을 거야. 추수도 끝났것다, 뜨뜻한 아랫목에 지지고 앉아서 동동주라도 한 잔 마시면, 아 그 기분 서울 사람들은 모를걸.” 시골 생활의 추억을 공유할 수 없는 서울사람들에 대한 자부심을 나타냄
얘기의 방향이 좀 엉뚱하다 싶었지만 나 자신도 그것이 굳이 싫은 것은 아니었고 가능하다면 언젠가 그런 기회를 만들어 보자고 말했다. 그랬는데 최진철이는 이런 일은 기왕 얘기가 나왔을 때 아주 결정을 보고 말아야지 차일피일하다가는 흐지부지되고 마는 법이라고 우습게 다그치는 바람에 오늘의 모임까지 발전하고 만 것이다. 그날 밤 내친걸음에 날짜까지 정해 놓고 나머지 몇 가지 원칙까지 세웠다. 우선 목적지를 미리 정하지 말고 어느 날 어느 시 버스 터미널에 모여서 가장 멀리 가는 버스를 집어타고 갈 것, 짐은 일체 갖지 말고 되도록 빈 몸으로 갈 것 등이었는데, 그것은 이번 우리의 여행이 도시의 문명이나 잡답(雜沓) 등을 피해서 다만 며칠이라도 깊숙이 자연의 품에 안기러 가는 것이므로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쓰던 잡동사니들을 끌고 가지 말자는 의도에서였다. 누군가가 그러나 최소한도 치약, 칫솔 따위는 있어야 할 것이 아니냐고 하자, 제안자인 최진철이 시골에 가면 왜 돌소금이라는 게 있지 않느냐, 그걸로 닦아야 그런 곳에 간 기분이 나는 법이라고 우겼다.
“그래 좋았어. 비록 우리들의 고향은 아니라도 좋아. 고향과 엇비슷한 데로 가서 우리를 키워 준 고향 같은 무드 속에 며칠 묻혔다 오는 거야. 알고 보면 우리들 넷이 모두 산골 촌놈들 아니니? 먹고 사느라고 너무 오래 그런 정경과 등을 지고 살아왔어.”
비서실장으로 있는 김성달이 마침내 이렇게 결론을 내리는 바람에 넷은 이구동성으로 그러자 그러자 하고 손뼉을 치고 말았다. 김성달의 말마따나 넷은 한결같이 산골 출신이고 그런 속에서 뼈가 굵었는데 어쩌다가 서울서 부산하게 살다 보니 십 년 이쪽저쪽 고향에 다녀온 녀석이 없는 것도 퍽 우연한 일치였다. <중략> ▶도시를 떠나 시골로 여행을 가기로 정함
“야 이거다. 옛날 맛이다. 맛나니(화학 조미료)를 안 쳤어. 집에서는 그렇게 맛나니를 치지 말라고 해도 말을 안 듣는단 말야. 또 혀가 그렇게 단련이 되었는지 그걸 안 치면 미심심하고 말야. 그런데 여기서는 비로소 순수한 제 맛이 나는군.”
“그렇군. 그러고 보면 우리들의 미각이 그동안 얼마나 잡스럽게 변했는가를 알 수 있지. 누가 들으면 그까짓 입맛 하나 가지고 뭐 그리 대단치도 않게 후라이를 까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흥, 그게 다 촌에서 살아 본 사람이 아니면 이 맛 모르지. 가을 무의 이 시원한 맛.”
우리는 희멀건 뭇국 한 대접씩을 놓고 입에 침이 마르게 감격해했다. 그것은 다분히 어떤 분위기에 애써 자기를 함몰시키고, 거기에서 자기 나름의 기쁨을 얻으려는 의식적인 노력이 가세된 것 같기도 했으나 꼭 그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구석이 있었다. 우리는 아무리 돈을 준다고는 하지만 생판 알지도 못하는 껄렁한 손님을 넷이나 자기 집에 재워 주고 먹여 주는 인심이 도시 같으면 어림이나 있겠느냐고 고마워하면서 종일 그 집에서 뒹굴기도 하고 산책을 나가기도 하였다. 낮에는 또 그런 반찬에 옥수수로 빚었다는 노란 막걸리가 들어왔다. 짐작하겠지만 우리들은 또 한바탕 너스레를 떨면서 배가 띵하도록 마셔 대었다. 이날 저녁에도 우리는 아침과 비슷한 밥상과 옥수수술을 받았다. 주인은 이번에도 찬이 변변치 않다고 노상 같은 말을 했으나, 우리는 그게 무슨 말씀이냐고, 이런 걸 맛보기 위해서 일부러 여기까지 왔노라고 조금도 그런 생각 마시라고, 되레 미안해했다. ▶시골 생활을 만끽하는 즐거움
그러나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우리는 아침이나 어젯밤처럼 그렇게 호들갑을 떨지는 않았다.
시골 생활에 더 이상 흥미를 느끼지 못함-도시 생활에 적응된 소시민성이 드러나는 계기
마지못해 국물을 몇 숟갈 떠 넣었을 뿐 모두 입에 당기지 않는 것 같았다. 우선 나부터도 그랬다. 간밤부터 마신 막걸리가 쉰 냄새와 함께 목구멍에 괴어오르고, 돌소금으로 이를 닦다가 생채기가 난 잇몸이 이따금 아렸다. 간밤에는 못 느꼈는데 남폿불에서는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찌르고, 한옆으로 쌓아 놓은 이부자리에서는 퀴퀴한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그리 넓지 않은 들판에 섰을 때는 그렇게도 속이 시원했는데, 이틀째가 되면서부터는 들판은 그냥 들판일 뿐 별다른 감흥을 가져다주지 않았다. 산천이 마음속에 있을 때는 그렇게 좋았는데 막상 그 속에 파묻혀 보니까 갑갑하기만 하다고 윤경수도 말했다. 그는 더 말은 안 했지만 서울서 떠나올 때의 마음과는 달리 누가 자기의 생활을 이런 곳으로 끌어내릴까 봐 겁을 먹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우리는 주인집에서 빌려 온 화투로 섰다를 했으나 별로 신명이 나지는 않았다. 하루에 커피를 7, 8잔씩은 마셔서 지긋지긋하다던 김성달이가 화투짝을 던지며 벌렁 나자빠졌다.
[“커피 한 잔만 했으면 좋겠는데.”
“그러게 말이다. ……오늘 밤 텔레비전에서 쇼를 하는데 놓쳤군.”
“쇼뿐야? 프로 레슬링도 있다구.”]⇒도시 문명 생활에 대한 그리움
윤경수와 최진철이도 덩달아 화투를 팽개치고 길게 가로누우며 말했다. 우리들의 마음은 너무 일찍이 허무하게 무너져 가고 있었다. 처음 여행 얘기가 나왔을 때부터 그저께까지 내리 우리들의 마음을 들뜨게 하고 몰아세웠던 힘이 이렇게 쉽게 허물어지는 데 대해서 자기혐오 비슷한 감정이 있었으나 당장 눈앞에서 겪는 일들은 우리들의 얄팍한 감상(感傷)을 그렇게 덧없는 것으로 만들어 놓고 있었다. <중략> ▶시골 생활에 흥미를 잃고 도시를 그리워함
서울로 오는 버스 속에서 우리는 너무 말이 없었다. 그까짓 3박 4일을 제대로 채우지도 못하고 하루를 앞당겨 온다든가 하는 것보다도 달라진 환경 속에 다만 며칠을 견디어 내지 못하고 도망하듯 그 마을을 떠나온 데 대한 부끄러움 같은 것이 있었는지도 몰랐다. 무교동이나 종로 바닥에서 맥주를 마시며 산촌(山村)의 정경을 얘기하던 자신들이 얼마나 얄팍하고, 배부른 여담(餘談)이었던가를 느끼는 순간이기도 했는데 그러나 우리는 그런 한편으로 숨이 칵칵 막히는 지점에서 쉽게 빠져 나온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는 것 같은, 안도감을 느끼는 자신들을 발견하고 있었다.
우리는 밤늦게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그길로 다방에 들러서 커피를 마시고 다시 무교동으로 나가 5백cc짜리 생맥주를 단 한 번에 꺾어 단숨에 들이켰다.
“이제 살 것 같군.”도시 생활에 젖은 소시민성
우리는 동시에 이런 말을 뇌까리고 그전에 그랬던 것처럼 떠들고 웃곤 하였다. 초가을, 이 서울 동네에서 풍기는 술 냄새, 여자 냄새, 고기 냄새, 하수도 냄새에 자기를 휩쓸어 넣었을 때 비로소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이 헤헤거리며 지껄여 댔다.
“우린 이제 별수 없이 서울 사람 됐는갑다.”
한참 만에 윤경수가 퍽 힘없이 얘기하자 김성달이나 최진철이도, 그래 그런 모양이야 하고 동의를 했다. ▶도시에 돌아와 느낀 안도감과 만족감
■ 해제 : 이 소설은 시골 출신 도시인의 허위의식과 소시민적 삶을 다루고 있다. 옛 추억에 대한 동경으로 도시의 일상을 벗어나 시골로 여행을 떠나지만 도시 문명에 젖은 현대인으로서 황급히 도시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소시민의 내면을 예리하게 포착하고 있다.
▶주제 : 시골 생활에 대한 도시인의 감상과 소시민적인 안일한 삶
▶특징 :
① 시골과 도시라는 상징적 공간을 설정하고, 이 공간의 이동이 갖는 의미를 통해 주제를 드러내고 있다.
② 서술자를 작중인물의 1인칭 관찰자로 설정하여 사건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구성 :
발단-‘나’는 친구들과 함께 서울을 빠져나가 어린 시절 추억이 서린 시골로 여행을 가기로 약속한다.
전개-시골의 정취를 느끼기 위해 깊은 산골로 들어간 일행은 이장 집에서 머물며 김치와 우거짓국뿐인 소박한 밥상에도 흥겨워하면서 마음껏 시골의 정취를 즐긴다.
위기-하지만 하루가 지나자 시골 생활에 싫증을 내고 커피와 맥주를 떠올리며 서울을 그리워하여 다음날 돌아가기로 한다.
절정-아침차를 놓친 일행은 산행을 하다가 미군기지 군인들을 상대하는 술취한 작부들과 마주치게 되어 황급히 산에서 내려온다.
결말-일행은 모두 씁쓸한 기분을 안고 서울로 돌아와 생맥주를 들이키며 안도와 만족감에 젖는다.
■ 줄거리
건축 설계사인 ‘나’는 모 기업체 비서실장 김성달, 고등학교 선생님인 윤경수, 가게를 하는 최진철과 함께 답답한 서울을 떠나 여행을 다녀오기 위해 터미널에서 만나 즐거운 마음으로 강원도로 향한다. 종착지에서 내린 이들은 암묵적인 약속이나 한 듯 시골 정취를 느끼기 위해 더 깊은 산골로 향하고, 이들을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는 시골 사람들의 시선을 느끼며 3박 4일을 머문다. 그리고 김치, 우거지밖에 없는 밥상이지만 달게 먹으며 진정한 고향의 맛이라며 좋아한다. 그러나 그런 기쁨도 잠시, 이내 커피를 먹고 싶어 하고 TV 쇼나 보며 맥주를 먹고 싶어 한다. 이에 일행은 하루 일찍 시골을 떠나 씁쓸한 시골 풍경을 뒤로 한 채 서울로 돌아온다. 서울에 도착한 이들은 커피숍에 들러 커피를 마시고 맥주를 마신 뒤 각자의 집으로 돌아간다.
■ <서울 사람들>의 소시민성
이 작품은 시골 출신 서울 사람들의 고향에 대한 회귀 의식에서 사건이 전개되고 있다. 호롱불, 김치와 우거짓국, 막걸리 등에 감격하지만 곧 커피와 맥주를 그리워하다 여행 기한을 채우지 못하고 황급히 서울로 돌아온다. 이는 끊임없이 일상의 탈출을 동경하지만, 결국 일상 탈출의 즐거움을 버리고 자진하여 돌아오고 마는 소시민성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다. 결국, 이 작품은 소시민의 일상에 대한 탈출은 한낱 감상적인 꿈일 수밖에 없음을 역설하고 있다.
■ 기본 감상 체크
1. 등장인물은? 시골 출신으로 서울에 정착한 ‘나’와 친구들
2. 중심 사건은? 옛날 추억대로 시골 생활을 즐기려고 하다가 적응하지 못해 황급히 서울로 돌아옴
3. 배경은? 산업화 시대 서울과 시골
4. 시점은? 1인칭 관찰자 시점
5. 주제는? 시골 생활에 대한 도시인의 감상과 소시민적 안일한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