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만찬과 겟세마네에서의 기도로 십자가의 길을 떠날 준비를 끝내신 예수님은 배신자인 가룟 유다의 입맞춤에서 시작하여 십자가로의 여정을 시작하십니다. 배반하는 유다와 검을 사용하는 베드로 등 여러 사람들의 모습 가운데서도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그것을 이루어 가는 데 초점을 맞추십니다.
1. 입을 맞추어 예수를 팖
예수님께서 죽음을 위한 준비를 마치시자, 배신자인 가룟 유다가 검과 몽치를 가진 큰 무리와 함께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47절). 그는 자기가 입을 맞추는 사람이 예수님이니 그를 체포하라고 군호까지 짜고 왔습니다. 그는 태연하게 예수님 앞에 나와서 “랍비여 안녕하시옵니까?” 하며 입을 맞추었습니다. 누가는 이 때 예수님께서 “유다야 네가 입맞춤으로 인자를 파느냐?”(눅 22:48)고 말씀하셨다고 기록합니다. 배신자가 자기 스승을 마치 강도처럼(눅 22:52) 잡아 넘기려고 입을 맞춘 것은 참으로 유다다운 발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가 얼마든지 허울 좋은 구실과 행태로 하나님을 거역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입맞춤과 같은 화려하고 긍정적인 허울과 아름다운 이름 아래서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2. 검으로 하나님의 일을 이룰 수 없음
미리 짜놓은 군호에 따라 예수님을 체포하려고 검과 몽치를 가진 사람들이 예수님께 접근하자,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 검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쳤습니다. 하지만 귀를 자르는 것에 그쳤을 뿐입니다. 공관복음서에는 이들의 이름이 나오지 않지만, 유독 요한은 그 제자가 베드로이고 그 종의 이름은 말고라는 사실을 밝힙니다(요 18:10). 아마도 베드로는 이전에 예수님 앞에서 했던 맹세(26:33)를 기억하고 앞장서서 일을 벌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지키기 위해서 검을 들고 싸우는 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검을 집에 꽂으라고 하시면서 검을 가지는 자는 검으로 망한다고 말씀하십니다(52절). 검으로는 하나님의 일을 이룰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검으로 이룩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신앙의 이름으로 검을 쓰고자 하지는 않습니까?
3. 하나님의 방법으로 그 뜻을 이룸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검이 필요했다면 예수님은 열 두 영이 더 되는 천사들을 동원시킬 수도 있다고 말씀하십니다(53절). 여기서 ‘영’은 6천명으로 구성된 로마의 군단을 가리킵니다. 열 두 영은 문자적으로 72,000명이지만 여기서는 무수한 수를 가리키는데, 인간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무수한 천사들을 동원시켜도 이룰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이 정하신 방법, 즉 예수님의 체포와 십자가에서의 죽음을 통해서만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유다가 하는 배신의 입맞춤을 받아들이셨고, 베드로가 검을 들어 예수님을 지키려는 시도를 막으셨던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결국 제자들이 다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갔다는 사소해 보이는 예언까지도 모두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56절). 우리는 이런 예수님께 감사할 뿐 아니라, 우리를 통해서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은 배신의 입맞춤도 함부로 휘두르는 검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와 그것을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그것에 순종하려는 확고한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물론 인간의 연약함을 극복하게 해주는 기도와 성령의 역사하심도 필요합니다.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는 고백은 기도를 통해서만이 아니라 우리의 구체적인 행동 하나 하나를 통해서도 고백되고 실천되어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