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6.10 화폐개혁시 영국에서 제작해서 가져온 500원권 지폐
5․16혁명을 주도한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이 해운대 동백섬을 찾아 군 별장에서 일박을 하고 떠났다.
해운대 051탄약창 수송부 차량 수십대가 동원되어 부산2부두에서 서울 한국은행까지 내용을
알 수 없는 나무 탄약상자를 운송했다. 그리고 얼마후에 화폐개혁을 발표(1962.6.10)하였다.
알고 보니 그것이 ‘독립문’을 ‘득립문’으로 ‘한국조폐공사’를 ‘한국조페공사’로 영국에서 잘못
인쇄되어 새로 나온 화폐였다.
1966.8.16-1975 한국조폐공사에서 발행한 500원권 지폐
1967년 중학교2학년때 1달에 500원 하던 월사금(공립학교 수업료) 3달치를
띵가 묵은 적이 있기 때문에 유난히 기억나는 돈이다.
버스비 학생3원(2원 ?) 어른5원(3원 ?), 전차비 2원50전 하던 시절이다.
이본동시 상영하던 3류극장 영화비가 10원 하던 시절이니 500원은 거금이었다.
1973.9.1-1993 한국조폐공사에서 발행한 500원권 지폐
이순신장군과 현충사가 인쇄된 화폐이다.
공고3학년때 중견 섬유회사에 실습나가 다니기 시작했는데 2년차 사원이었던 1973년
내 월급이 1만 5천원 이었다. 당시 하숙비는 1개월에 4,000원. 막걸리 한 되 30원,
택시 기본요금 90원, 맥주 한 병에 70원 하던 그런 시절이었다.
1977년 당시엔 과자나 아이스하드가 20원정도 했기 때문에 500원 지폐는 거금이었다.
짜장면도 200원 할때니까 이 돈으로 짜장면 두그릇을 먹을 수 있었으니 지금으로 보면
거의 만원짜리 가치다.
1980년 공무원 9급 3호봉 (군필자) 월급 총액이 8만7천원 이었다. 거기서
기여금(공무원 연금),의료보험,소득세,기타 때고 나면 실수령액은 7만7천원 정도였다.
서울 지하철1구간 요금 90원, 버스요금 90원, 짜장면은 350원 하던 시절이다.
1982~현재 500원권 동전
1982년에 500원권 주화가 나왔다, 처음에는 신기해서 모으는 사람도 있었다,
이 동전은 지금도 사용중이다.
고속도로 휴게소 등에 있는 자판기에서 커피 뽑아 먹을때 많이 쓰이고 점백이나
점오백 고스톱, 그리고 500원 단위 훌라 할때 많이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