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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명절 잘 보내셨나요?
남은 가을도 풍성하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될 수 있으면 실크로드를 여행하고자 하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쓰려고 합니다.
혹시 궁금하신 사항이 있으시면 질문해 주세요. 아는 것에 한해서 말씀드릴께요.
그럼 이어서 보고 하겠습니다.^^
5월 19일
강풍으로 열차가 정차하는 바람에 6시간 늦어져 오후 2 시가 넘어 투루판에 도착했다. 투루판 역사는 사막의 벌판 한 가운데 있었다. 우선 매표창구로 갔다. 하지만 막상 어디로 가는 표를 사야 할 지 막막하게 여겨져서 숙소를 정한 다음 생각해 보기로 하고 밖으로 나왔다. 인터넷에 의하면 장거리버스터미널 부근에 교통빈관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터미널을 찾아가기로 하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길을 물었다. 그런데 장거리버스터미널을 가는 정기노선버스는 없고 다시 봉고차를 타고 30분 정도 가야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내가 말을 잘못 알아들은 줄로 여겼다. 그래서 거리 구경도 할 겸 무작정 길을 따라 가보기로 했다. 그때 마침 열차 안의 맞은 편 좌석에 앉아있던 중국인 남자를 길에서 만났다. 그가 반가웠다.
투루판 시내를 가는 버스 정류장을 찾고 있다고 말하자 중국인 남자는 옆에 서 있는 젊은 여자에게 다시 물었다. 그러자 여자는 내게 장거리버스정류장에서 어디를 가려느냐고 묻는다.
교통빈관을 갈 거에요.
그녀는 자기들 일행 차에 함께 타고 가자고 한다. 그녀가 가리키는 버스에 타고 보니 남자는 투루판을 거쳐 우루무치까지 패키지로 여행을 하는 중이었고 젊은 여자는 마중 나온 여행사의 가이드였다.
중국인과 나는 강풍으로 열차가 정차하는 바람에 6시간 동안의 지루함을 그저 지켜본 사이에 지나지 않은 것뿐이다. 그런데도 그는 내게 여러 가지로 친절히 대해 주었다. 버스 안에서 그는 내가 만약 우루무치로 간다면 그 버스를 타고 곧장 가도 좋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투루판까지 만이라도 갈 수 있게 된 것이 그저 다행이고 고맙게 여겨졌다. 안내양도 내게 자리를 만들어주는 등 여러 가지로 호의를 보여주었다.
시내는 역으로부터 50키로 이상 떨어져 있었다. 사막 한가운데 역사가 있다는 것은 상상 밖의 일이었다. 버스는 30 분가량 허허 벌판의 황량한 사막을 달려 투루판 시내에 도착했다. 친절한 두 중국인 덕에 나는 어렵지 않게 투루판 시내에 도착할 수 있었다.
교통빈관은 허름했다. 4인실 도미토리는 4층에, 화장실과 공동샤워장은 3층에 있었다. 방에는 이미 일본인 한 사람이 쉬고 있었다.
나는 배낭을 내려놓고 거리 구경을 나갔다.
우선 서점에 가서 신장지역과 투루판의 지도를 각각 사고 시장으로 갔다. 시장 안의 사람과 물건들은 지금까지 지나 온 곳들과 확연히 달랐다. 여자들은 한결같이 머리에 헝겊을 뒤집어쓰고 남자들은 신장지역 특유의 모자를 썼는데 남녀 모두 옷차림은 치렁치렁하다. 우람한 체격에 코도 크고 눈이 유난히 움푹 패인 얼굴 모습은 마치 서양인 같다. 화려한 물감의 수 많은 천들이 진열되어 있는 포목가게, 철제와 도기류의 그릇가게, 화덕을 사용하여 빵과 만두를 굽고 음식을 볶아내는 식당, 하미과와 수박 등 여러 가지 열대과일과 각종 견과류를 파는 노점상 사이를 돌아다니다 보니 비로소 내가 멀리 낯선 나라에 와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시장 안의 식당에 들어가 신장에서 유명하다는 빤미엔을 시켜먹었다. 그런데 그 집 뿐 아니라 그 후 투루판의 모든 판미엔은 이번 여행 중 가장 맛있는 음식이었다. 지금도 그 국수를 생각하면 입에 침이 가득 고인다. 다시 그 국수를 먹어 보기위해 그곳을 가고 싶을 정도다.
허기를 해결하고 시가지로 나갔다. 거리는 안개 낀 듯 뿌옇고 매캐한 먼지 냄새가 가득했다. 노점상들이 진열해 놓은 음료수 병과 전화기 위에는 먼지가 뿌옇게 쌓여 있고, 거리의 시멘트 불륵은 발을 옮길 때마다 먼지가 폴폴 일어나는 먼지 밭이었다. 고목이 된 뽕나무와 무성한 그늘을 이루고 있는 포도넝쿨의 가로수가 신기하기도 했지만 잎사귀마다 먼지가 수북이 쌓여있어서 나는 조형물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어 만져보기도 했다. 도시 전체가 거대한 공사장처럼 여겨졌다. 얼마 걷지 않아 피곤하기도 하고 눈과 목이 따가워 빈관으로 돌아왔다.
숙소로 돌아오니 일본인은 창문 쪽의 커튼을 내린 채 책을 읽고 있었다. 먼지가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커튼을 내린 것 같다. 나는 침대 머리 부분에 쌓여있는 먼지를 화장지로 닦아내고 배낭을 풀어놓은 후 샤워장에 갔다. 군데군데 허연 먼지가 쌓여있는 객실 복도를 지나 욕실로 들어갔다. 욕실 선반에도 먼지가 쌓여있어 나는 갈아입을 옷을 손잡이에 걸어놓고 샤워를 해야 했다.
다음 날은 날이 환하게 밝은 후 잠이 깨었다. 창가의 일본인 남자는 에어콘이 너무 추었는지 이불을 둘둘 말은 채 자고 있었다. 나는 사과와 바나나로 아침을 해결하고 지도를 들고 숙소를 나왔다.
빈관 앞에서 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내려 삼륜차로 갈아탔다.
문짝도 떨어져나간 삼륜차는 이열 종대의 백양나무 가로수들이 하늘을 찌를 듯 무성하고 주변이 온통 포도밭으로 펼쳐진 길을 10 여분 달린 후 교하교성 입구에 내려주었다.
그렇게 교하고성에 도착했는데 문이 닫혀있었다. 9시가 된 다음 매표가 시작되었고 그때서야 들어갈 수 있었다.
교하고성은 지금도 투루판에서 제일 인상 깊은 곳으로 기억된다.
흙이나 돌로 성을 쌓은 것이 아니라 땅을 파서 성벽을 만들었다는 것이 신기했다. 성 밑에는 물이 흘러내리고 있어서 밖에서 보면 물줄기에 의해 성이 고립된 상황이다. 성의 내부에는 기원전의 절터와 관공서 그리고 거주지의 터 등이 흔적으로만 남아있었다. 둘러보면 주위는 황량한 사막벌판이다. 성 안의 사람들도 성 밖의 사람들도 이곳을 지키고 탐낼 것이 없을 듯 여겨졌다. 그런데도 마른 바람과 높은 고도의 사막 한복판에서 그들은 무엇을 지켜내고 가져가려고 했을까? 어쩌면 스스로를 유폐시키려고 했던 사람들이 만든 성이 아니었을까? 수많은 어린아이들의 무덤이 나의 상상을 더욱 부채질했다.
교하고성의 구경을 마치고 나오니 삼륜차는 보이지 않는다. 이른 아침이기는 하지만 3원짜리 고객을 위해 기다려 줄 것이란 생각을 한 것은 아니다. 나는 삼륜차를 타고 왔던 길을 거슬러 걷기 시작했다.
햇살은 어느 덧 따갑다. 성 밖의 강물에서 빨래를 하고 있는 여자의 모습이 환상처럼 가물가물하다. 언덕 위에서 한 여인이 가파른 비탈길을 내려서서 마주 걸어왔다. 나는 버스가 없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말을 걸었다.
버스 정류장이 어디에요?
없어요.
그럼 어떻게 차를 타지요?
기다렸다가 지나가는 차를 타야해요.
고마워요.
나는 그녀와 의사소통이 이루어졌다는 것에 안도감을 느낀다. 바람이 불어 걸을만했다. 여자가 내려왔던 언덕으로 포도밭이 보였다. 나는 그곳을 향해 도로를 가로질러 가파른 비탈길을 올라갔다. 밀가루같은 먼지가 하얀 양말 위에 금방 소복해진다. 언덕에 오르니 멀리 강 건너 교하성터가 아득한 곳에 앉아있다. 포도밭의 잎사귀는 무성한데 포도송이는 콩알만하다. 흙벽돌 집 한 채가 포도밭 한 가운데 있다. 허물어지기 시작한 지 오래된 집이다. 그곳에 살던 사람들은 이 열기와 먼지를 떠나 지금 쯤 북경이나 대련이나 서안이나 우루무치나 또는 내가 알지 못하는 중국의 어느 대도시로 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포도밭 사이를 걸어내려 오다가 가시덤불에 발가락이 찔렸다. 내려오는 길은 가팔랐다.
다시 길을 걷는데 길에서 조금 떨어진 뽕나무 그늘 아래서 두 여자가 물통을 놓고 앉아있다. 그녀들에게 다가갔다. 그녀들은 땅 속에 묻힌 호수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받고 있다
물 먹을 수 있어요?
두 여자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인다.
맛있네요.
물을 한 모금 마신 나는 그녀들이 방금 씻어놓은 야채바구니에서 채소도 한 잎 집어 씹어 먹어 본다. 쌉싸름하고 달콤한 것이 향긋하다. 내가 채소 잎을 먹자 그녀들이 놀란 눈빛으로 쳐다본다. 나는 그녀들의 표정이 재미있어 보란 듯이 한 잎 더 입에 넣어 씹었다.
너 한족이냐?
아니
어디서 왔느냐
한국에서 왔다. 우리는 이런 야채를 된장과 함께 밥을 싸서 먹는다. 너희는 날 것으로 먹지 않니?
우리는 날 것으로 먹지 않는다.
아하! 그렇구나. 그래서 나를 그렇게 짐승 보듯 했구나. 너 결혼했니?
아니
몇 살?
20살
어려 보인다. 15살 정도 되어 보인다. 이곳은 포도가 유명하다고 들었는데 언제 포도를 먹을 수 있느냐?
7월에 수확한다.
그녀들과 헤어져 걷다가 커다란 뽕나무 밑에서 한 소년을 만났다.
옷에 흙먼지를 잔뜩 묻힌 채 오디나무 아래서 오디를 따고 있는 소년의 손은 검은 콜타르를 만진 듯 시꺼멓다. 눈도 입 가장자리도 새까맣게 칠해져 있었다. 그의 바구니에는 제법 오디가 수북하다.
맛있니? 맛있다. 연노란 오디를 나도 한번 따 먹어본다. 그러나 아직 풋 냄새가 나고 비릿하기까지 해서 뱉어내었다. 그러자 나를 쳐다보고 있던 소년이 검은 오디를 하나 내민다. 소년이 준 오디는 달콤했다. 소년은 이내 바구니를 들고 뽕나무 아래의 붉은 벽돌집으로 들어가 버린다. 이제 소년은 저 바구니의 오디를 다시 골라 작은 바구니에 담아 터미널이나 시장으로 갈 것이다. 소년이 들어간 집을 내려다보니 마당에는 여자들이 두어 명 둘러앉아 도란거리고 있다. 그 허름한 벽돌집과 여자들이 환상 속의 인물 같기도 하고 영화 속의 한 장면 같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방금 성터에서 내려온 사람들 같기도. 주위의 모든 풍경이 흑백사진처럼 보였다. 내가 더위에 지쳐가나 보다. 먼지 때문이기도 하다. 마침 삼륜차가 지나간다. 그런데 두 사람이나 타고 있다. 그래도 손을 흔드니까 멈춘다. 카레즈까지 갈 수 있느냐? 간다. 얼마냐? 5원. 4원에 해다오. 안 된다. 그냥 물러서려고 하자 올라타라고 한다.
카레즈는 비가 거의 오지 않는 사막도시 투루판이 거대한 포도농사지가 되고 풍요의 땅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진 지하관개수로를 말하는 것이었다. 지하관개수로를 만드는 과정이 조형물로 만들어 전시되어 있었다. 천산산맥의 만년설에서 녹아내리는 물을 지하로 3 천KM나 끌어 들이다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닌가. 그것이 만리장성의 역사만큼이나 중국다운 역사로 여겨졌다. 그리고 만년설까지 풍요로운 자산이 되고 있는 중국이 무궁무진한 자원을 지닌 땅으로 생각되었다.
카레즈를 돌아보고 난 후 숙소로 돌아와 쉰 후 저녁 무렵 소공탑에 갔다. 마침 석양이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저녁놀 속에 이슬람 양식의 독특한 소공탑이 어우러지는 모습은 뜨거웠던 투루판에서의 모든 낯설음을 날려버리는 듯 했다. 갈 때는 택시를 타고 갔지만 올 때는 걸어서 왔다. 포도나무 가로수 길을 지나고 백양나무 길을 지나고 고목처럼 우람한 오디나무 길을 지났다. 땅거미가 내려앉는 거리는 사람도 거리도 차도 모든 풍경이 먼지로 뒤덮혀 회색빛이었지만 나는 마치 어린 시절의 어느 여름 저녁으로 되돌아 가 있는 느낌이 들었다.
빈관에 들어가기 전에 포식을 했다. 면발은 쫄깃하고 콩줄기 모양의 채소를 넣어 볶은 판미엔이 전날 먹은 것보다 더 맛있었다. 양꼬치도 2개를 먹었고 군만두도 2개나 먹었다. 그 바람에 9원이란 거금이 지출되었다.
교하고성의 아기무덤 앞에서, 폐허의 쓸쓸함이 참으로 아름답게 느껴진 곳이었습니다.
투루판 뿐 아니라 신장지역의 대부분의 사막도시가 카레즈라는 지하관개수로에 의해 농사를 짓고 생활용수로 사용하고 있더군요. 이렇게 울창한 포도나무 가로수 역시 카레즈로 가능했겠지요
지금도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저 빤미엔 장사를 하면 대박이 터질 것 같은데..ㅎ ㅎ ㅎ
첫댓글 실크로드를 여행하고자 하는 회원 여러 분들에게 도움이 되겠네요 진심으로 감사드림니다 비오리님 덕분에 추석도 잘보냈습니다 다음 산행때는 꼭 같이 가셨으면 함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