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시절 불가사의한 일중에 한가지 입니다만 제가 14살되던해. 그해 8월에 본격적으로 제게 신(神)이 들어와서, 밤이면 자다말고 가위에 눌려 비명을 지르며 몇차례씩 깨어나곤 할때 였습니다. 아침마다 이불을 짜면 땀이 한바가지씩 나올 정도로 베개며 이불이 흥건히 젖고, 제가 잠자리에서 입은옷은 잠에서깨어나 입고 앉아있으면 땀때문에 곧바로 오한이 날정도로 늘 흠씬 젖어있기 일쑤 였습니다.
잠을 자는건지, 꿈을 꾸기위해서 단지 눈만 감고 있는건지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저는 꿈속을 헤메고 다녔습니다. 제대로 잠을 못이루니, 입속은 깔깔해서 밥은 모래씹는것 같고 잠을 제대로 못자니 정신은 어질어질하면서 몽롱할 지경이였습니다. 몸은 꼬챙이처럼 빼빼 말라 가고, 자다 깨다를 반복하면서 여름을 나고 가을을 지나 어느덧 겨울이 찾아왔습니다.
그날도 몹씨 추운날이였습니다. 흰눈이 사박사박 내리며 산골 마을을 한없이 조용하게 만드는 중이였습니다. 가끔 눈이 많이 오는날이면 내린눈의 무게를 못이겨 나뭇가지가 부러져 내리기도 합니다.종종 나무 부러져내리는 소리가 들리고, 먼데선 간간이 개짖는 소리만 산골 마을의 고요를 깨뜨릴 뿐이였습니다.
제고향 청양은 호서지방에서도 오지에 속하는 시골입니다. 평지보다 산이 많고 유달리 춥기로 소문난 그곳은 밤낮의 기온차가 심하기 때문에 일조량이 풍부하고 기온차가 많이 나는 환경을 좋아하는 구기자가 특산물일 정도로 추운곳입니다.
비몽사몽 잠을 자는데 꿈에 시커먼 옷을 입은 남자가 제가 자는 방으로 들어와서 저를 덥치려하는 것이였습니다. 순간, 본능적으로 퍼뜩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그때는 하도 땀을 흘리며 신음을하고 자다가, 느닷없이 놀라 소리를 질러대는 바람에, 저는 혼자 잠을 자고 있었지요. 시커먼 옷을 입은, 아니! 검은색 두루마기 같았습니다. 그아저씨의 하얗게 빛나는 창백한 얼굴이 너무도 섬찟해서 제몸에있는 털이란 털은 순간 모두 일어났습니다.
아이쿠~이제는 꼼짝없이 죽는구나. 도와줄 사람도 없는데, 저 손에 잡히면 나는 이세상과는 끝장이구나.... 봄이면 친구들과 진달래를 따서 입속이 빨간해질때까지, 머리가 빙빙돌때까지 배를 채우며 먹어대던 생각과 친구들과 나무하러가서 뱀꼬리를 밟는 바람에 뱀에 물릴뻔한일. 지난 여름 민물고동 잡으러 가서 그많던 고동을 일등으로 많이 잡아다 으쓱하며 엄마앞에 쑥 내밀었던 일과, 쑥을 캐다 엄마가 기가막히게 맛있게 해주는 쑥버무리를 식구끼리 둘러앉아 맛있게 먹던일과, 아카시아꽃을 따서 입에서 향내가 나도록 야금야금 씹어먹으며 놀던일. 가을이면 밤을 따러가서 심하게 나무를 뒤흔드는 바람에 밤송이에 머리가 얼얼하도록 맞은일. 그 밤을 따다가 칼집도 내지않고 아궁이에 구워먹다가 뻥하고 터져서 뒤로 나자빠질뻔 했었던일. 눈오는 밤이면 무우며, 배추꼬랑지를 깍아먹으며 온식구가 행복했던일...등등
솜씨좋은 엄마가 화로위에서 바글바글 끊여내던, 그맛있는 청국장도 다신 못먹어 보는구나. 내가 잡혀서 죽어버리면 불쌍한 우리엄마는 누굴믿고 어떻게 살까? 그래도 내가 장남인데, 파평윤씨의 대가 끊기는구나. 그 잠깐 순간의 긴박하고 피말리는 찰라에도 슬라이드를 보는것 마냥 선명하고도 빠르기가 뭐라 이루 표현할 수 도없을 정도의 온갖생각들이 파바박하고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잡히면 안돼. 잡히면 안돼. 잡히면 너는죽어. 너는 죽어. 다시는 엄마도 못보고 죽으러 가야하는거야. 잡히면 안돼....잡히면 안돼. 도망가자. 도망가자.생각이 거기에 이르자 방문을 걷어차고 저는 냅다 맨발로 뛰기 시작했습니다.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눈속에서 오직 살아야 겠다는 일념하나로 뛰고 또 뛰다 얼핏 뒤를 돌아보니 저승사자(死者)가 따라오는것이 보였습니다. 저는 정신없이 뛰었습니다. 잡히면 죽는다는 생각에 어디를 어떻게 뛰어서 도망을 갔는지 등줄기에선 한겨울인데도 땀이 줄줄 흘렀습니다.
미친듯이 뛰고 뛰다가 아버지께 빌었습니다. 아버지 나 죽기 싫어요. 어떻해요. 죽기 싫다구요.... 나 죽으러 안가요. 살려줘요. 무서워요. 머릿속에선 사람살리라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데, 정작 목구멍에선 너무 무서워 외마디 비명 조차도 나오질 않는 것이였습니다. 뛰고 또 뛰고, 얼핏뒤를 돌아보니 아직도 저승사자(死者)는 죽어라고 쫓아오고 눈앞엔 뽀얗다 못해 시리디 시린 하얀눈이 빛을내며 온 밤을 휜하게 비춰주고 있었습니다.
한참을 뛰고 또 뛰다 아니...정확히는 몇분을 뛰었는지 아니면 몇시간을 뛰었는지 그것 조차도 모릅니다. 뛰다보니, 차라리 그냥 잡혀가서 콱 죽어버릴까 할정도로, 심장은 터질것같고, 아랫배는 콕콕 쑤시며 아파오고 숨은 턱에 차오르고,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찬바람에 뱃속까지 냉기가 가득찰때까지 뛰고 또 뛰었습니다.
그러다 시냇가가 있는곳으로 와서 저는 시냇물을 건너 뛰었습니다. 철퍼벅 철퍼벅....미친듯이 시냇물을 뛰어서 건넜는데 순간 저승사자(死者)가 쫓아 온다는 느낌이 안드는 겁니다. 그래도 한참을 뛰어가다 뒤를 돌아보니.... 시냇물을 건너면서 부터 저승사자(死者)가 안쫓아 온것 같았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거였습니다. 아무것도.아무것도.
그곳에서 가쁜 숨을 고르며, 볼때기를 꼬집어 보았습니다. 아야야...아픈데.이건 진짜인데. 쫒아오다 어디로 갔을까? 죽기살기로 나를 잡으러 뒤쫓아오다 갑자기 사라진 저승사자(死者)가 대체 어디로 가버렸는지가 오히려 궁금해 지는것이였습니다. 발목밑의 감각이 죽어서, 두발은 너덜너덜하게 닳아 없어진것처럼 힘이 풀려 후들후들거리고, 눈과 흙이 범벅이 되어서 제꼴이 말이 아니였습니다.발은 감각조차 없어서, 언발에 오줌이라도 누워 녹이고 싶은 마음도 들었었습니다. 눈에선 눈물이 흐르고 코에선 뜨거운 김과함께 쉴새없이 콧물이 흘러 내렸습니다.
그다음엔 어떻게 해야할지 멍하니 아무생각도 안나는 것이였습니다. 손등으로 콧물을 연거푸 닦아내자 코밑이 쓰라려 오기 시작해서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게 되었습니다. 둘러보아도 아무도 없는데 그럼 방안으로 들어와서 나를 잡아가려던 그 저승사자(死者)는 누구이며 여기까지 뛰어와서 오밤중에 떨고 서있는 나는.... 도데체 뭐가 어떻게 된거지?
순간 근처를 쳐다보니 눈에 제발자국 외에는 다른 아무 발자국도 나있질 않은 것이였습니다. 그럼 또 내가 가위에 눌려 꿈에본 저승사자를 피해 여기까지 뛰어 온건가? 차츰 마음이 가라앉기 시작 했습니다. 발이 아리다 못해 화끈화끈 불이 났지만 시냇가로가서 다시금 시냇물을 건넜습니다. 건너던 제눈에 발자국 두개가 어지러이 나있는것이 보였습니다. 분명코 발자국은 두사람의 것이였습니다. 너무나도 눈위에 선명하게 나있는 저승사자(死者)의 발자국을 보는순간 저는 아찔하여 쓰러질뻔 했습니다. 등줄기에선 오싹 소름이 돗고 무서워서 이빨 부딪치는 소리가 제귀에까지 들렸습니다.
무슨 기운으로 집으로 돌아와 쓰러져 잠을 잤는지 아무 생각도 할 수 가 없었습니다. 해가 중천에 뜰때까지, 간밤에 눈길을 놀라 뛰어다닌 바람에 널부러져 죽은듯이 잤습니다. 늦은 아침을 먹는둥 마는둥 하고 어제의 발자국을 따라 시냇가까지 다시 가보았습니다. 분명 두사람의 발자국이 선명하게 나있는것 이였습니다. 저승사자(死者)의 발자국은 마치 하늘로 날아가버린 것처럼 어디로든 되돌아간 흔적도 없이 그냥 그렇게 시냇가에서 딱 끊겨 버린 것이였습니다.
만약 그때 하얗게 내린 눈이 없었더라면 저는 가위에 눌려서 혼자 뛰어 달아난걸로 알고, 마무리 할뻔한 희안한 사건 이였습니다. 눈길을 도망다니느라 꽁꽁언 발때문에, 한참동안을 아랫목 에만 발을 넣으면 근질근질 가려운 통에 한동안 고생을 한건 말할것도 없는 일이였지요.
첫댓글 정말 신기한 일이네요. 글 가운데 선생님의 어린 시절에 대한 묘사는 산골 출신인 저가 보기에도 너무나 정겹습니다.
저승 사자란 말은 들어밧는데 진짜 실지 있은 사실이라 희한하네여 참 .. .. 눈앞에 정경이 떠 오르는거 같애여//
나무아미타불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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