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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5월 2일 유달산
주왕산(720.6m)은 우리나라 중앙부에 해당하는 태백산의 지맥에 위치하는 산으로 1976년 3월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주능선과 금은광이 부근은 급경사로 되어 있으나 외주왕 계곡은 기암이 용립해서 절경을 이루고 있다.
주왕산은 대전사, 학소대, 연화굴, 망월대, 주왕굴, 그리고 제1-제3폭포 등 뛰어난 외관을 자랑하는 자연경관이 주왕산 주봉을 중심으로 반경 2-3km내에 밀집되어 있어 산행을 하면서 수 많은 경탄을 자아내게 하는 그런 산이다. 비록 산 자체가 그리 웅장하지는 않고 조그마한 면적으로 이뤄져 있으나 기암괴석과 청량한 깊은 계곡이 아기자기 한 곳에 응축되어 있는 아주 아늑하고 편안한 산이구나!...하는 느낌이다.
아즈닉하고 수줍은 봄처녀같은 산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그런 산뜻한 느낌을 나에게 선사한 주왕산!,, 편안한 주왕산과 2코스를 산행한 어제는 따스한 봄기운과 함께 모처럼 심신이 편안하고 유쾌했던 하루였다.
이번 주왕산행은 3가지 코스로 산행을 준비했다. 1코스는 절골-가메봉-내원동-상의매표소(약 5시간)코스로 약 20여명의 주로 우리산악회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참여했으며, 2코스는 대전사-정상-후리메기-2폭포-상의매표소(약 4시간)코스로 서구팀을 주축으로 한 마이너리그 선수들이 참여했다. 3코스는 대전사-주왕굴-1.2.3폭포-내원동-대전사(약3시간)코스로 트렉킹 위주의 코스인데 이 쪽을 선택한 산우님들은 없었다.
아무튼 이 3가지 코스중 난 가장 무난해 보이는 2코스를 선택하여 모처럼 서구의 주력팀들과 같이 산행하는 기쁨을 맛보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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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4시 50분! 우렁차게 울어대는 알람소리에 자리에서 벌떡일어나 산행준비를 한다. 산행준비라고 해봐야 별 것은 없다. 도시락과 과일 몇개를 주섬주섬 배낭에 넣고 집을 나선다. 새벽녁임에도 불구하고 바깥 공기는 선선한 봄기운이 완연하게 느껴져온다.
새벽이 이 정도이면 산행을 시작되는 정오무렵은 꽤 덥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짧은 상의와 조끼를 입고 집을 나선다. 날은 이미 밝아져 곧 해가 뜰 무렵임에도 청송을 타러가는 길에 아직 사람들은 드문드문 보일뿐이다. 간혹 계양산을 가는듯한 복장의 중년 부부들의 모습이 간혹 눈에 띄일 뿐 아직 계산동의 새벽은 한가롭고 적막하다.
일요산행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새벽 일찍 일어나는 게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이렇게 잠자리를 털어내고 집을 나설때면 웬지 모를 뿌듯함과 상쾌함이 물 밀듯 일어난다. 아마도 오늘 하루를 남보다 먼저 시작한다는 게 스스로 생각해도 기특해서 그런 것 같다. "먼저 일어난 새가 먹이도 많이 줍는다"는 말도 있지 않는가?
청송(오늘가는 곳이 청송의 주왕산인데 우리 리무진 이름도 청송이네....)을 타기 위해 천년부페앞으로 가 보니 멀리서 노란 조끼를 걸치고 있는 물사랑님의 모습이 보인다. 반갑게 인사와 이런 저런 애기를 나누고 청송에 올라탄다. 오늘 산행은 원래 차 2대로 갈 예정이었는데 오늘 전국적으로 비가 온다는 소식에 많은 산우님들이 예약을 취소하여 1대만 간다고 한다.
그래도 정원을 오버하여 약 48명의 산우님들이 참여한 바람에 좌석이 부족하여 간이용 의자를 버스 통로에 놓고 앉아 가는 등, 영남의 명산 주왕산에 대한 산우님들의 참여 열기가 매우 뜨겁다. 이는 본격적으로 산행하기 좋은 봄을 맞이하여 우리 경인산악회가 더욱 발전하는 것같아 흐믓한 기분이 든다.
청송은 경북의 오지를 돌고 돌아 약 6시간정도 운행한 후 1코스를 타려는 22명의 산우님들을 절골에 먼저 하차시킨 후 나머지 산우님들을 상의매표소에 내려 놓는다.
시간은 오전 11시 55분!
너무 차를 오래 타서인지 산행 시작도 하기전에 허리와 다리가 뻐근하면서 몸이 통 풀리지를 않는다. 간단하게 몸풀기 체조를 한 후 약 20여명의 산우님들과 탐방안내소를 지나 대전사를 우측에 끼고 주왕산 정상을 향해 발걸음을 옮겨 본다.
지금 날씨는 약23-4도 정도로 그냥 활동하기에는 적당한 기온이기는 한데 서서히 정상을 향해 약 5분정도 산행을 하니 벌써 몸속 깊이 뜨거운 열기가 솟아 나고 땀이 송글송글 맺히기 시작한다. '오늘 꽤나 땀 좀 빼겠구나!'하는 예감이 든다.
정산을 향하는 산행로는 처음부터 확끈하게 급경사로 시작한다. 정상까지는 비록 2km가 채 되지 않은 까닭에 거의 40-50도에 이르는 경사로가 계속 이어지면서 초반부터 심신을 긴장시킨다. 등산로 양 편에는 초록이 상큼한 갖은 초목들이 군데 군데 응달을 지우고 있기는 하나, 경사가 지고 날씨마져 등산하기에는 조금 높은 탓인지 산행한지 20여분이 지나자 상의는 벌써 땀으로 거의 젖어 버린 듯 런닝구와 몸이 따로 놀기 시작한다.
그래도 정상까지 약 1시간만 가면 그뒤부터는 거의 평탄한 길의 하산로가 이어지므로 희망을 마음 한켠에 품고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본다. 헐떡이며 약 40여분을 올라가니 정상 직전에 평평한 바위가 나타난다. 거기에 올라서서 맞은 편을 바라보니 초목사이로 연화굴이 위치한 기암이 한 눈에 들어온다. 한마디로 '장관'이다.'
주왕이 신라의 마장군과 일전을 벌일때 쌀 뜨물을 흘려 보내 적을 현혹시켰다는 그 웅장한 자태의 기암은 주왕산의 첫 인상을 강렬하게 각인시키기에 충분했다. 눈으로 구경만 하기에는 너무나 절경이 아름다워 비록 디카는 없어 선명한 사진을 남기지는 못했으나, 최근 없는 살림(?)에 구입한 최신 휴대폰의 동상 캠코더 기능을 활용해 잠시 땀도 시킬 겸 촬영을 해본다.
이제 정상까지 약 500여미터 남은 듯하다. 힘을 내어 올라가는데 갈수록 몸안은 뜨거운 열기로 확끈거리고 땀은 물에 젖은 스펀지를 짤때처럼 아무리 닦아내도 계속 흘러 나온다. 근래 들어 이리 땀을 많이 흘려보기도 처음이다. 그런데 등산은 이렇게 진한 땀을 빼낸후 찾아오는 상쾌함을 즐기는 게 아닌가? 몸속의 온갖 노폐물을 뽑아 내는 것이니까.....
이왕 땀 이야기가 나온 김에 "의학 건강 강의"를 한번 해야 겠다.
우리 몸은 약 6조 내지 7조개의 세포로 구성되어 있다. 각 세포는 우리 신체가 생명을 유지하고 기본적인 기초대사활동에 필요한 산소와 영양분을 필요로 한다. 그 영양분과 산소는 이 지구를 2바퀴 반을 돌 정도로 광범위하게 우리 몸 구석구석에 퍼져 있는 모세혈관을 통하여 각 세포로 운반된다. 모세혈관으로 부터 영양분과 산소를 공급받은 세포들은 자체적으로 이를 사용하여 기초대사를 하고 기초대사 후 생긴 이산화탄소 및 노폐물등을 추출해내 모공이나 혈액을 통하여 몸밖으로 배출해야 우리의 몸은 건강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등산 등의 유산소 운동을 함으로써 우리 몸의 지방을 태우고 이런 세포들이 노폐물이나 이산화탄소 등의 나쁜 가스를 원활히 배출할 수 있도록 혈액순환 및 땀의 배출을 촉진시킬 필요가 있는 것이다.
운동을 통한 몸의 신진대사를 촉진시키는 것이 최상의 건강 비법인 셈이다. 물론 인위적으로 사우나에서 강제로 땀을 빼는 방법이 있기는 하나 이는 지방을 태우는 게 아니라 우리 몸의 근육이나 수분만을 빼는 것일뿐 원할한 혈액순환 기능은 없으므로 피부만 건조해질뿐 건강 기능에는 별반 도움이 되지를 않는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인간사는 공평하여 고통스럽지만 사지를 활발히 움직여 인체의 신진대사를 활발히 해야지, 편안히 않아서 빼는 땀은 별반 의미가 없다'는 결론이다. 이야기가 길어 졌다.
이렇게 진한 몸속에서 우러 나온 육수(?)를 흠뻑 빼고 나니 주왕산 정상이 나타난다. 그런데 막상 정상에 올라서니 정상에 조그만 푯말 하나만 덩그러니 서 있을 뿐 약간은 허망한 기분이 든다. 태백산, 지리산, 소백산 등 太山 정상의 개념을 상상하면 곤란하다.
시간은 벌써 오후 1시가 되었다. 오늘 2코스를 택한 마이너리그 선수들중 최대장님, 최고문님, 그리고 오늘 처음 나온, 산을 아주 유연하게 잘 타시는 산우님과 나, 이렇게 4명은 허기도 지고 하여 점심을 할 만한 장소를 물색하러 후리메기를 향하여 조금 나아가기로 한다.
약 5분 정도 진행하니 완만하게 하향 경사진 등산로 옆에 바람도 적당히 불어오고 풀도 듬성듬성 나있는 장소를 잽싸게 접수하고 좌판을 깐다. 약 5분정도 휴식을 취하고 있으니 홈지기님, 김태완님 등 서구의 고정 멤버들이 속속 합류하여 약 10명이 산상 부페연을 준비한다.
"먹는 게 남는 것!" 이라는 절대 명제에 우리는 충실해야만 한다.
이 순간 최대장님 무전기로 최근 우리 산악회의 신진 선두대장으로 부각한 정빈님한테 연락이 왔다. 1코스 산행조가 가메봉에 도착했다한다. 엄청 속도를 냈나 보다. 이렇다면 잠시후 제1코스 조와 제2코스 조가 합류할 지점인 제2폭포에 동시 합류할 가능성이 있다. 1조와 2조의 등산소요시간이 약 1시간 정도 차이가 남을 고려하면 무척 줄기차게 산행 속도를 올린 듯하다. 날씨도 이렇게 더운데 꽤나 힘들었겟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2조를 선택한 게 탁월했던 것 같다.
아무튼 신문지 몇장을 바닥에 펼치고 산상부페연을 차려보니 별의별 산해진미가 쏟아져 내린다. 정성드려 준비한 오징어 꼬치말이, 이름모를 생선조림 등등 가히 지상의 부페 수준이다. 여기에 복분자, 오가피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온갖 술들이 이 순간을 애타게 기다렸다는 듯 산우님들의 베낭에서 그 모습을 나타낸다.
"아! 서구팀들의 식탁이 환상적이라는 소문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는데, 그 말이 한 점 보탬없는 사실이었던 것이다" 2코스 팀들은 산의 멋과 음식의 풍류를 아울러 즐기는 것 같았다. 앞으로도 자주 합류하여 산과 풍류를 같이 즐겨야 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그런데 후에 들으니 1코스 팀들은 술과 음식이 남았다고 한다. 흔하지 않은 현상이다. 날씨가 너무 더운 탓에 그랬나?
즐거운 분위기속에 술과 음식을 즐기다보니 어느덧 2시가 되어간다. 약 30분 정도 부페연을 즐긴 것 같다. 주섬주섬 주변을 정리하고 제2폭포를 향하여 발걸음을 옮긴다. 날씨도 더운 상태에서 여러 종류의 술을 한 탓인지 몸이 알딸딸해져 온다. 다행이 하산 등로가 그리 험하지 않아 다행이지 험로이면 곤란하겠다는생각이 든다. 어째듯 산에서는 술 한잔을 하더라도 적당히 해야겠다는 교훈을 떠올려 본다.
제2폭포까지 약 1.5km를 40여분 걸려 내려가는데 모두에서 내가 밝혀듯이 주왕산은 참 편안한 산이라는 것이다. 하산길 능선이 그리 경사지지도 않고 완만한 하향도를 유지하면서 마치 동네 야산의 오솔길 마냥 그리 편안한 느낌을 줄수가 없다. 혼자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하면서 하산 등로를 따라 발길을 옮긴다. 근래 산행에서 이렇게 마음 편안히 상념에 젖어 하산길을 걸어보기는 처음이다. 나 뿐만 아니라 타 산악회에서 온 듯한 산우님들의 얼굴 표정도 여간 밝은게 아니다.
제2폭포에 도착했다. 제1폭포와는 약1km 거리에 있는데, 두줄기로 이루어진 2단폭포로서 한줄기는 호박처럼 움푹 파인 곳에 일단 쉬었다가 다시 떨어지는 모습이 한편의 조각품을 보는 것같다. 유명 조각가의 창작품같이 오묘한 미를 보여주고 있다. 다시 인위적으로 잘 조성해 놓은 느낌이 드는 계곡을 죄측에 두고 상큼한 바람냄새를 음이하며 천천히 걸어 내려온다.
약 20여분 정도 내려왔을까? 여기에 주왕산의 명물들이 다 모여있다. 학수대, 급수대 망월대, 관음봉, 아들바위 등 제각각 특색있는 모습으로 사연들을 간직하고 천년 무상세월을 유유히 견뎌온 자국들이 곳곳에서 베어나온다.
경사 90도의 가파지른 절벽위에 급수대와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는 학소대가 나타난다. 학수대는 옛날 청학과 백학 한 쌍이 살고 있었는데 포수가 백학을 쏘아 잡아 버리자 인근을 배회하던 청학은 자취를 감추고 옛 보금자리만 고스라히 남은 게 학수대이다.
그리고 그 옆 급수대는 신라 37대 선덕왕이 후예가 없어 무열왕 6대손인 김주원을 38대왕으로 추대했는데, 즉위 직전에 김경신이 왕위에 오르고자 내란을 일으켜 김주원이 왕위를 양보하고 석병산으로 은신하여 대궐을 만들었는데, 그 곳이 급수대 정상이라고 전해지며 지금도 그 유적이 남아있다고 한다.
급수대 뒷쪽으로는 높이 솟아 오른 봉우리가 하나 보이는 데, 이 곳이 관음봉이다. 관음봉은 주왕암 뒷 편에 있는 묘한 암봉으로 그 생김새가 관음보살을 닮았다고 하는데, 정말 멀리서 비스듬히 바라보니 그런것 같다. 소용돌이 치듯 백팔번뇌가 쌓이고 구만리 장전을 찌를듯이 우뚝 솟은 바위가 대자연과 그 숨결을 같이 하고 있는데 그 숭고함이란 이루 비할데가 없어 보인다.
이외에도 현재 서 있는 급수대를 좌우로 하여 연화봉, 연화굴, 촛대봉, 아들바위 등이 자리잡고 있다. 가히 주왕산의 천하 대자연이 한 곳에 이렇게 응집되어 있는 까닭에 보는 이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가보다...
정신을 못차릴 정도로 기암절벽과 비경에, 청량한 계곡에 취하면서 하산길을 재촉하다보니 어느덧 시간은 오후 3시30분이 되었다. 오늘 귀경시간은 5시경으로 잡혀 있어 시간도 넉넉하기도 하여 잘 닦여진 하산등로를 벗어나 잠시 계곡쪽으로 자리를 옮긴다.
오늘 흠뻑 흘린 땀도 닦을 겸 계곡물에 발을 담그니 발이 얼얼할 정도로 물이 차갑다 못해 시러울 정도이다. 간단히 몸을 씻고 계곡옆 바위틈에 등을 기대고 누워 하늘을 보니 구름 한점 없는 하늘은 서러우리만치 파란 물감을 풀어 놓은 듯 시원함으로 내게 다가오고, 좌우에 펼쳐진 신록의 녹음은 나의 가슴속 깊은 곳에 波瀾의 기쁨을 선사하고 있다. 그야말로 '신선놀음'이 따로 없구나 하는 생각이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물질의 풍요로움도 중요하겠지만 이렇듯 대자연의 품속에 나를 맡긴 채 無心無感의 경지속에 빠져 보는 것,,,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없는 기회라본다. 이런 자연의 품에 안겨 있노라니 천하를 얻은 듯, 어떤 욕심과 번민도 나의 가슴속 틈으로 끼어들 겨를도 없이 사라져버린다.
다시 적당한 큐션 역할을 하는 널찍히 잘 닦여진 하산등로를 따라 내려 오다보니 대전사(大典寺)가 나타나고 그 뒤 상의매표소가 저 멀리 보인다. 시간도 넉넉하여 대전사에 들러 본다.
이 사찰은 672년(신라 문무왕 12년) 의상(義湘)이 창건하였는데, 919년(고려 태조 12년) 놀웅이 창건했다는 설도 있다. 창건이후의 자세한 연혁은 전해지지 않고 있는데,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 유정(惟政)이 승려를 훈련한 곳으로 알려져 있기도하다.
그리고 이 사찰 오른쪽 밭에는 우물을 메운 자리가 남아 있는데 이 우물에 얽힌 전설이 전해져 온다. 본래 이 사찰에서는 부처에게 올리는 물을 매일 냇가까지 가서 길어 왔는데 이를 귀찮게 여긴 승려들이 조선 중기에 앞뜰에 우물을 파고 그 물을 길어 淨水로 사용하였다. 그러나 곧 불이 나서 전각이 타고 말았다.
뒷날 한 도사가 와 불이 난 이유를 설명하기를, 이 사찰의 地勢는 배가 바다에 떠서 다니는 부선형(浮船形)인데 우물을 판 것은 마치 배바닥에 구멍을 낸 것과 같다고 하니까 이 말을 듣고 다시 우물을 메웠다 한다 . 또는 미 물을 마신 승려들의 힘이 넘쳐 난폭해지는 바람에 인근 주민들의 원성이 자자해지자 메웠다는 설도 있다.
아무튼 이 사찰의 대웅전에 들러 부처님께 삼배합장을 드리고 다시 청송이 주차되어 있는 관리사무소 앞 주자창을 향해 아스팔트 길을 따라 내려오고 있는데 뒤에서 누군가가 부르는 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거북님이 웬 주막에서 그리 오라고 손짓을 하신다. 들어가보니 경인의 주력(酒歷) 멤버들이 모두 모여들 계신다.
쌀로 빗은 듯한 하얀 막걸리에 주왕산 표 도토리묵이 안주삼아 나오는데 그 맛이 참으로 시원하면서도 뒷 끝이 깔끔한 것 같다. 정상 부페연에서 마신 술이 아직도 아딸딸한데 하산주로 막걸리 몇잔을 마시고 나니 전신이 다시금 노른해져 온다. 정말 오늘 하루는 산에 취하고 술에 취했다.
늦게 하산한 다른 산우님들을 기다려 오후 5시15분!.. 우리의 애마, 청송은 나의 가족이 있는 인천을 향해 가속페달을 힘껏 밟는다.
몸도 노근하고 술기운도 있는 상태여서인지 귀경하는 차속에서 예의 잠에 골아 떨어진다. 그러면서도 몸과 마음은 아른한 옛 고향의 추억에 깊이 깊이 잠겨오는 듯 행복스럽기 그지없다.
고속도로 밖, 차창 밖의 어두운 침묵속에 잠겨 재빨리 스쳐가는 이름모를 곳의 새까만 풍경들과 주행소음이 새롯새롯 아기를 재우는 자장가 마냥 이따금 잠에서 깻다 들었다하는 나의 심신을 어루만지고 있다. 그 꿈속에서 난 오늘, 참으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