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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과 이혼/ 마 5:31-32; 19:6-9/ 06. 12. 3./ Elder Son
작년 4월 월드컵 스타 송종국 선수가 이혼했습니다. 2003년 6월에 결혼했으니 2년도 채 되지 않아 헤어진 것입니다. 평소 골을 넣은 뒤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던 그의 모습을 보며 진실한 기독인이라고 생각하던 많은 분들에게 조금은 충격적인 소식이었습니다. 이제 이혼은 기독인들에게도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교회에서 이혼에 대해 설교하는 것은 가능한 피하고 있습니다. 회중 가운데 혹시 이혼한 분들이 있어 상처를 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존 스토트 목사는 “목사로서 개인적으로 말하자면, 누군가가 나와 이혼에 관하여 이야기하기를 요청할 때마다 나는 여러 해 동안 단호히 거부해 왔다”고 고백했습니다. 이혼문제는 그만큼 난제 중 난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상보훈을 강해하다보니 오늘은 불가불 이혼에 대해 말씀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기독인 가정에도 이혼이 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물론 여러 개인적, 사회적인 요인들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결혼 당사자들이 가정과 결혼을 향한 하나님의 뜻에 무지하거나 혹은 무시하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 저는 성적 타락에 대한 하나님의 뜻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비록 하나님을 믿고 있지만 여전히 자신을 잘못된 성적 행위에 방치하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무지와 무시 때문이듯이, 이혼 또한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이혼에 대한 다양한 세속적이고 주관적인 견해는 잠시 접어놓고 과연 하나님께서는 이혼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시는지 상고해 봅시다.
1. 예수님과 바리새인들 간의 이혼논쟁
산상보훈의 말씀을 통해 예수님은 당시 유대종교지도자들이 왜곡한 율법 즉 하나님의 말씀에 담겨 있는 진정한 뜻을 6가지 사례를 들어 새롭게 알려주셨습니다. 우리는 그 가운데 이미 두 가지 살인금지와 간음금지의 계명에 대한 예수님의 해석을 살펴보았습니다. 산상보훈은 예수님께서 공생애 초기에 하신 설교입니다. 이때 이미 오늘의 주제인 이혼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밝히셨습니다. 그 후 이 사실을 알고 있던 유대지도자들은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리려는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예수님께 이혼에 대해 질문을 하였습니다. 이에 대한 내용이 마태복음 19장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19장의 말씀을 통해 5장에서 각각 한절로 기록된 이혼에 대한 유대인들의 해석과 예수님의 해석을 보다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의 함정: 이혼은 정당한 것인가
먼저 19장 3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가로되 사람이 아무 연고를 물론하고 그 아내를 내어버린 것이 옳으니이까” 바리새인들이 갑자기 이혼에 대해 질문을 던진 의도는 예수님을 시험하고 곤경에 빠뜨리고자 함이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모세가 신명기에서 말한 이혼계명에 대해 다양한 해석을 하였습니다. 대표적으로 샴마이 학파와 힐렐 학파의 논쟁이 유명합니다. 신명기 24장에서 모세는 “아내를 맞이하여 데려온 후에 그에게 수치 되는 일이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면 이혼 증서를 써서 그의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보낼 것이요”(1절)라고 했습니다. 이에 대해 샴마이 학파는 간음에 준하는 수치스런 음행의 죄가 있을 때 이혼이 가능하다고 다소 엄격하게 해석하였습니다. 반면에 힐렐 학파는 아내의 음행 외에도 남편이 기뻐하지 않거나 미워할 경우 이는 이미 수치스런 일로서 이혼이 성립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예를 들면 아내가 음식을 잘하지 못한다거나, 심지어 더 이쁜 여자로 인해 아내에게 흥미를 잃었다면 이는 아내의 수치이며 이혼 사유가 된다는 거의 방종에 가까운 해석입니다. 바리새인들은 바로 이 힐렐 학파의 주장에 대한 예수님의 견해를 질문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 아니라고 대답하실 것이고, 그러면 당시 다수파인 힐렐 학파의 적이 되며, 동시에 아내와 이혼을 하고, 동생의 아내와 결혼한 분봉왕 헤롯의 미움을 사게 될 것을 계산한 교활한 질문이었습니다. 그의 잘못을 지적한 세례 요한은 벌써 목이 잘려 죽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역습: 하나님이 맺어주신 짝은 나눌 수 없다
그들의 의도를 간파하신 예수님은 직접적인 대답을 피하시고, 이혼논쟁의 근거가 된 신명기 말씀 대신 창세기에 나타난 남자와 여자의 창조와 결혼에 대한 말씀을 그들에게 상기시키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저희를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말씀하시기를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4-5절) 그리고 난후 그 말씀에 근거하여 결혼의 영속성과 결혼의 신적 기원을 설명하시면서 단호하게 이혼의 부당성을 선포하셨습니다.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6절)
바리새인들의 반론: 모세는 이혼을 허용했다
허를 찔린 바리새인들은 다시금 전열을 가다듬어 예의 신명기 말씀을 가지고 예수님께 질문의 화살을 던졌습니다. “여짜오되 그러하면 어찌하여 모세는 이혼 증서를 주어서 내어버리라 명하였나이까”(7절) 바로 산상보훈에서 예수님께서 인용하신 율법학자들의 주장과 유사한 내용입니다. “또 일렀으되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거든 이혼 증서를 줄 것이라 하였으나”(마 5:31) 둘 다 모세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변칙적으로 인용하였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성경의 참 뜻에 대해 무지하고 왜곡하고 무시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이혼을 보다 용이하게 하기 위해 신명기 본문(신 24:1-4)에서 ‘이혼 증서’를 강조하였습니다. 그러나 히브리 원문을 보면 이혼을 하려면 이혼증서를 주어라는 명령이나 권고의 내용은 전혀 없습니다. 단지 당시의 관행에 따라 그렇게 이혼증서를 주어 헤어진 아내가 재혼 후 다시 과부가 되었다 해도 전 남편은 그와 재결합하지 못한다는 금지의 명령이 본문의 요점으로, 오히려 성급한 이혼에 대한 경고의 뜻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결론: 이혼 허용은 하나님의 원래 뜻이 아니다
바리새인들의 억지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결론적으로 이혼에 대한 규정은 하나님의 명령이 아니라 타락한 인간들의 완악함으로 인한 하나님의 양보이며, 하나님의 원래 뜻이 아님을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함을 인하여 아내 내어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8절) 마치 노아 홍수 이후 급격히 변한 자연환경과 타락 이후 계속된 체질적인 변화로 인해 할 수 없이 본래의 뜻인 초식 이외에 육식을 허용하신 것처럼(창 9:3), 당시에 이미 보편화되어 있는 이혼의 제도를 단지 묵인하신 것뿐입니다. 심지어 예수님은 중대한 성적 범죄 외에 다른 이유로 이혼 후 타인과 재혼하는 것이나, 그렇게 이혼한 사람과 결혼하는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또 다른 형태의 간음행위임을 밝히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외에 아내를 내어버리고 다른 데 장가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9절) 비록 법적으로는 이혼했다하더라도 하나님의 눈으로 볼 때에는 여전히 첫 번째 배우자와 결혼한 상태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첫 번째 결혼의 중요하며, 이혼은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님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산상보훈의 정신은 관용과 화목과 섬김과 희생입니다. 심지어 하나님은 그의 선지자 호세아에게 음란한 아내를 취하여 그를 용납하고 사랑해 주기를 바라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비로소 호세아로 말씀하시니라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음란한 아내를 취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행음함이니라”(호 1:2) 또한 하나님께서도 밥먹듯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을 쫓아가는 이스라엘을 음란한 아내에 비유하시면서도 끝까지 사랑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비록 예수님께서 음행의 죄로 인한 이혼은 허용하시는 듯한 발언을 하신 것 같지만, 어떤 이유에서든지 하나님이 맺어주신 짝을 버리는 것, 이혼하는 것은 하나님의 본래적인 뜻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이르노니 나는 이혼하는 것과 학대로 옷을 가리우는 자를 미워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러므로 너희 심령을 삼가 지켜 궤사를 행치 말지니라"(말 2:16)
2. 진리를 선택하고 결단하라
결혼은 하나님이 친히 제정하신 신성한 것이며, 독점적이고 영속적인 관계입니다. 이러한 성서적 진리를 늘 마음에 새기지 않으면, 타락하고 이기적인 우리들은 기회 있는 대로 늘 배우자에 대해 불평불만하며 다른 상대에 관심을 두며 이혼의 유혹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실제로 많은 신앙의 가정조차 겉으로는 멀쩡하여도 사실상 이혼상태에 있습니다. "나는 아내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아내와 이혼하고 싶습니다." 만약 우리 가운데 이런 분들이 있다면, 하나님의 뜻을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의 배우자는 하나님께서 맺어주신 짝임을 기억하십시오. 두 분이 맺어진 데는 하나님의 깊은 섭리가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두 분의 결합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온 땅을 향한 당신의 뜻을 펼치시고 두 분을 축복의 통로로 삼으심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 1:27-28) 그리고 정말 마음을 다해 배우자를 신실하게 끝까지 사랑하겠다고 결단하십시오. 그렇게만 한다면 결코 바리새인들처럼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이혼논쟁을 벌이지 않을 것입니다. 사랑하기에 바쁜 사람은 결코 이혼에 관심을 두지 않을 것입니다. 배우자에 대한 사랑이 식었습니까? 아니 없습니까? 괜찮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순종하는 마음으로 사랑하겠다고 결단만 하십시오. 나머지는 참사랑의 원천이신 사랑의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3. 남편들이여 먼저 사랑하라
특별히 이혼에 대한 유혹은 자매들보다 음란한 세상 속에서 온 몸으로 부딪치며 살아가는 남편들이 더 많이 받는 것 같습니다. 실로 하나님께서 소망하시는 가정을 위한 남자의 책임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수요새벽사경회를 통해 형제들과 에베소서 말씀을 상고하면서 우리는 남편들에게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새롭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제정하신 원래적인 결혼 제도 하에서는 아내는 남편을 존중하고 잘 따라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우선적으로 남편은 아내를 먼저 사랑해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같이 하고 아내도 그 남편을 경외하라”(엡 5:33)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교회를 사랑하시듯 해야 됩니다.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엡 5:24-25) 그 사랑은 구체적으로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먼저 아내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는 희생적 사랑입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그의 교회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주셨듯 말입니다. 두 번째로 아내의 허물과 부족함을 덮어주며 오히려 격려하며 세워주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사랑입니다. 세 번째로 아내의 현재의 모습을 보지 않고 하나님 안에서 구체적인 비전을 가지고 섬기는 꿈이 있는 사랑입니다. 형제들이 먼저 이런 사랑을 결단하고 실천한다면 우리 교회의 모든 가정은 하나님의 꿈꾸시던 원래의 모습을 회복하게 될 것입니다. 이혼은 먼 나라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맺는 말
말씀을 맺습니다. 불완전한 사람들이 불완전한 세상에 살다보니 여러 가지 사유로 이혼의 유혹을 받게 됩니다. 세속의 문화는 결혼의 신성함을 상실한 채 오히려 이혼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혼율은 전세계적으로 급증하고 있으며, 심지어 교회 안의 가정도 예외가 아닙니다. 이혼의 아픔과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믿음의 가족들이 어쩔 수 없이 늘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런 분들에 대해 우리는 결코 정죄하거나 비방하지 맙시다. 오히려 그 분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그 상처를 싸매줍시다. 간음의 현장에서 잡혀온 불행한 여인을 향해 정죄의 말보다는 오히려 따뜻한 격려의 말씀을 주셨던 예수님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이혼은 결코 최상의 선택이 아니라 최후의 선택일 뿐입니다. 우리 교회 성도만큼은 신성한 결혼의 파괴를 당연시하지 맙시다. 지금까지는 어떠했든 앞으로는 하나님이 원래 가지고 계시던 결혼에 대한 뜻을 깊이 마음에 새깁시다. 어떻게 하면 이혼할까 생각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가정을 이룰 것인가를 늘 고민하면서 우리 함께 이혼율 제로에 도전합시다. 나의 뜻, 세상의 환경보다 하나님의 뜻을 더 존중하며 순종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허락하신 모든 복을 이 땅에서부터 영원토록 누리며, 하나님의 복을 온 땅에 흘러보내는 축복의 통로가 되는 우리 모두와 복된 가정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첫댓글 진정한 결혼의 의미를 깨달아 위기에 처했을때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승리하는 공동체가 되기를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