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모월간지에서 한무(55·도미니코)씨를 우리나라 희극인 가운데 코미디언을 웃기는 코미디언 1위로 선정했다. 그는 설문에 응한 코미디언들로부터 가장 많은 표를 얻었다고 하니 코미디언을 웃기는 코미디언이 분명한 듯 하다. 동료들이 왜 그 같은 질문에 그를 제일 먼저 꼽았을까. 그를 만나자마자 그 이유부터 물어봤다.
“제가 원래 순발력 있는 애드립에 강한 편입니다. 동료들의 몸 동작 등을 눈여겨 봐두었다가 무대 뒤에서 가끔씩 그것을 흉내내면 동료들이 포복절도를 하더군요. 물론 그 중에는 방송으로는 할 수 없는 소재들도 많지만…. 어쨌든 웃기는 사람을 웃길 때의 그 느낌, 그리 나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땅 사기를 당한 일화를 소개했다.
“십수년 전에 아는 사람 소개로 전남 영광군 바닷가에 땅 한 뙈기를 매입한 적이 있는데 알고 보니 썰물이 들어올 때는 땅이 보이고 밀물 때는 바닷물에 잠기는 그런 곳이더군요. 어이가 없어 '물 빠지면 내 땅이고, 물 들오면 나라 땅'이냐고 난리를 쳤죠. 이런 경험을 나중에 동료들에게 농담처럼 건네면서 그때부터 나는 '땅'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고 '땅'자가 들어가는 '땅콩'‘땅꾼'‘땅땅하는 총소리'만 들어도 소름이 돋는다고 했더니 동료들이 배꼽을 잡고 뒹굴더군요.”
그는 세월의 두께만큼이나 연기가 농익어가면서 어느덧 중견 코미디언의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지나온 삶은 그리 녹녹하지 않았다.
학창시절 축구선수로 활동한 그는 재치있는 말과 행동으로 동료들을 사로잡을 만큼 '끼'를 타고났다. 그 끼를 주체할 수 없어 60년대 초반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유랑극단을 따라 다니며 본격적인 연기수업에 나섰다.
그렇게 10여년 이상 전국을 떠돌며 코미디 연기를 몸에 익혔다. 물론 고생도 많았다. 추위와 배고픔에 떠는 고생은 그래도 견딜만 했지만 대사를 외우는 일은 고생이 아니라 '고통' 그 자체였다.
“유랑극단 데뷔 무대였습니다. 실수하지 않으려고 소개할 가수 이름을 수십 차례 외운 뒤에 무대에 올랐죠. 그런데 무대에 오르는 순간 아무 생각이 안나는 거예요. 가수 이름이 '쓰메리'였는데 도무지 생각이 나질 않아 '쓰메끼리'나 '쓰르메'라고 했던 것 같아요. 그때 관객들이 야유를 퍼붓고 환불하라고 소리를 치는 바람에 난리가 났어요.”
그 후에도 그는 연기생활을 포기할까 고민할 정도로 대사 외우는데 남모르게 애를 태웠다. 그러나 궁하면 통하는 법. '대사를 못외우면 죽는다'는 벼랑 끝에 선 각오로 대본을 붙들고 밤을 새웠다. 그런 각고의 노력 끝에 NG 없이 프로그램 녹화를 마쳤을 때는 믿기지 않을 만큼 눈물을 펑펑 쏟았다.
배고픈 유랑극단의 무명배우 신세라 TV 데뷔도 꽤 늦었다.
평소 그의 실력을 아낀 장고웅씨와 고영수씨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80년 MBC-TV의 '청춘만세'를 통해 처음 얼굴을 내민 그는 대중적인 인기를 끈 것은 아니지만 프로그램을 감칠맛 나게 하는 양념 역할로 사랑을 받았다. 화려한 주연 보다는 빛나는 조연이 바로 그였던 것이다.
웃음에 대한 그의 철학은 확고하다.
“진정한 웃음을 주는 배우는 연기력이 뒷받침돼야 합니다. 단순한 말장난은 진정한 의미의 웃음이라고 보기 어렵죠. 코미디는 탄탄한 연기력을 바탕으로 한 애드립과 아이디어가 접목될 때 비로서 꽃을 피우게 됩니다.”
이런 그의 말속에는 현재 안방극장을 주름잡고 있는 후배 개그맨들에 대한 아쉬움과 기대가 함께 담겨있다.
그가 하느님 자녀로서 신앙생활을 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어머니, 부인, 자녀들은 물론 주변의 일가 친척이 모두 가톨릭 신자일 정도로 신앙적 토대가 두터운 집안이었지만 그는 5년 전에야 어머니와 부인의 인도로 '늦깎이 세례'를 받았다. “바쁜 연예인 생활은 핑계이고 게으름과 오만 때문에 하느님을 뒤늦게 영접하게 됐다”는 것이 그의 솔직한 대답이다. 그래서 신앙생활이라고 거창하게 내세울 것이 없는 평범한 신자에 지나지 않는다고 겸손해 했다.
하지만 성당에 나가 미사참례를 하면 마음이 참 평화롭다고 말했다. 그동안 무대에서는 느껴보지 못했던 마음의 평화. 그는 “하느님께 한발 한발 다가간다는 것이 바로 이런 느낌인가 봅니다”라며 빙긋 웃었다.
“남한테 신앙생활을 소개한다는 게 쑥스럽습니다. 영세한 지도 얼마되지 않은데다 바쁘다는 핑계로 신앙생활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걸요. 다만 저에게 코미디언이라는 '달란트'를 주신 하느님께 늘 감사하면서 기쁜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을 찾아가 웃음을 선사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지만 아직 기회를 찾지 못했어요. 대신 하느님께서 불쌍한 이웃을 위해 땀 흘리는 분들에게 많은 은총을 내려달라고 기도 속에서 기억하고 있습니다.”
요즘 그는 TV에서는 뜸하지만 지방 무대에서는 제2의 전성기를 누릴 정도로 인기가 높다. 탄탄한 연기력과 애드립이 생명인 원맨쇼가 중장년층의 향수와 맞아떨어지면서 1주일에 4~5일은 지방에 내려가 산다. 그는 “이렇게 왕성한 활동을 하게 된 것도 하느님의 은총인데 그것을 어떻게 갚아야 할 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특별한 바람은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코미디라는 재능을 많은 사람들과 나누며 살아가는 것이 제일 큰 소망입니다. 신앙적으로는 부족한 점이 많지만 저의 재능을 필요로 하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 함께 기도하고 봉사하겠습니다. 그것이 하느님께서 저에게 주신 은총에 조금이나마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소박하면서도 진실이 담겨있는 그의 말속에는 하느님의 자녀로서 충실하게 살아가겠다는 각오가 배어있다. 하느님께서 앞으로 한무씨를 어느 곳에 어떻게 쓰려고 하시는지 자못 궁금해진다.【김정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