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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서부 여행기 (LA ,샌프란시스코. 라스베가스)
2010년 1월 22일
7박 8일의 여정으로 krt 여행사(1.59만원)를 통해서 미국 서부에 가기 위해서 10시에 집을 나선다. ke 017편을 타기 위해 만남의 장소에서 krt직원을 만났는데, 우리 단 두 사람만 서울에서 la로 출발한다고 한다. la에서 다른 일행과 만날 것이란다. 좌석을 예약하지 않아서 우리 둘은 나쁜 좌석에 앉게 되었다. 즉 35에 (e.f)를 지정받았다. 이 좌석은 자주 다녀서 알지만 가운데 좌석에서 정 가운데 자리로 출입이 부자연스런 곳이다. 이렇게 안내자 없이 둘이만 떠나는 일은 없었던 터라, 마음의 불안을 안고, 오후 3시에 출발하는 비행에 맞추어 모닝 캄에서 간단한 빵, 호박죽를 먹고 아침식사를 대신한다.
어제 친구들이 몸이 좋지 않아서 가슴 아픈 일이 자주 일어난다. 이제는 나이 탓인지 병이 자주 난다. 시간이 다한 우리들의 건강을 어찌 막을 수가 있겠는가. 수명 다한 동물의 세계로 돌아가는 일상의 회귀현상이 도래하나 보다. 모닝캄 라운지에서 넓은 비행장 벌판을 내려다보니 끝없는 세계로 달려가는 몸과 마음이 한층 더 드넓은 길로 가고만 싶어진다. 출발 시간이 약 15분가량 지체되어서 이륙한다. 기내에서 주는 맥주 한 잔 하고, 모차르트 음악을 감상하면서 아내가 그리던 la에 지금 가고 있다. 지금 이 음악의 곡명은 잘 모르나 현재의 나의 심정을 더 한층 촉발시키는 그런 멜로디다. 역시 음악은 정말 간절히 구하는 신의 목소리와도 같이, 형상이 없는 모습으로 나의 심금을 울려 한층 정리되게 만드는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아내 옆에 앉은 40대의 여인은 우리들의 여행에 부러움을 표시하며 자신은 아이를 못나서 부부관계가 원만치 않아 고민스러운 심정에 친구를 방문하여 회포를 풀고 싶어 간다고 한다. 사람마다 다 고민과 고통스런 번민을 안고 삶을 이어나가고 있는 현실을 여기서도 맞나본다. 사라사테의 치고이너바이젠[(독일어)Zigeunerweisen]의 화려한 기교와 애조 띤 집시풍의 선율에 매혹적인 음악소리가 더 한충 이 가련한 마음에 충동을 주고 있다.
시차는 17시간 뒤로 시간을 맞추고. 현지 시간 도착은 22일 아침 8시경이란다. 기내에는 생각보다 더운 느낌이 든다. 우리나라가 국위선양이 되어서 이제는 그 콧대가 높던 미국도 무비자로 우리를 영접한다니 세월이 많은 것을 증명하여 주고 있으며 그 많은 지난날 60년간의 세월이 이제 막을 내리는 순간이 오는가 싶다. 공항에 도착하니, 이곳에 부술 부슬 비가 내리고 있다. 미국 여권 검사는 정말 까다롭다. 며칠 묵느냐, 어디에 거주할 것인가? 양손의 지문과 엄지손가락과 또한 얼굴을 확대기로 대조하는 그 태도에, 그러나 나는 오히려 그 친구에게 당신은 참 상냥해서 좋았다고 했더니 씽긋 웃는다. 참고 정중한 인사를 하는 데는 그네들도 역시 인간적으로 대한다. 드디어 켈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 도착한다.
* 우리부부는 첫 la공항에서 krt안내자와 대면을 한다. 얌전한 40대 초반의 친구다. 이 친구는 하루 동안만 안내를 하고 다른 사람과 교대를 한다며, 우리가 묵을 호텔로 인도하면서, 길거리의 상황에 대해서 설명을 한다.
* 캘리포니아는 눈 덮인 산악지대에서 부터 온도가 낮은 지역까지 큰 지역이다. 알래스카·텍사스 주에 이어 미국에서 3번째로 큰 주이며, 남북길이가 약 1,300km, 동서길이 400km이다. 1841년 최초의 조직적인 미국인 이주민 집단이 미주리 주에서부터 대규모 마차 행렬과 함께 이곳에 왔다. 1846년 서 노마에서 미국인 정착민들은 통치권을 장악하고 캘리포니아 공화국의 독립을 선포했지만, 같은 해 미국이 멕시코에 대해 선전포고를 하자 공화국 안에 있는 몬터레이는 미국 국기가 게양되었으며, 멕시코 전쟁이 끝난 해인 1848년 이후 캘리포니아는 미국의 영토가 되었다. 1848년 금이 발견되면서 인구가 급속히 늘었으며, 1850년 미국의 31번째 주가 되었다. 농산물이 대량생산되는 곳이고, 모하비 사막은 미국의 캘리포니아 주 남동부를 중심으로 네바다 주, 유타 주, 아리조나주에 걸쳐 있는 고지대 사막이다. 사막 가운데 라스베가스가 자리 잡고 있고. 사막의 이름은 아메리카 토착민인 모하비 족에서 유래하였으며 넓이는 약 57,000km²이다. 사막 한 가운데 자리 잡은 현대, 기아 자동차 시험대 장소가 마련되어 있다는 말에 정말 호감이 간다. 사막에는 그 넓은 들판에 서지부러시(숙과에 일종)라는 풀이 둥글게 엉켜진 것이 신기할 정도로 많은 이 풀들이 사막의 모양을 새롭게 하고 있다. 또한 사막 가운데 소나무와 같이 자라는 나무는 (선인장과에) 드문드문 자라고 있다. 좀 지나서 모자비 비행장이 있는데 중고 경비행기 값이 15.000불 한다고 한다. 풍력발전기가 무수히 많이 자리 잡고 있는데 1대당 15만 불이고 1년 가동 율이 25%면 성적이 좋은 편이란다.
* 도착 첫날 아침부터 비행기에서 잠도 못잔 시달린 몸으로 여행이 강행된다.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각지에서 모인사람들로, 즉 호주에서 부부 한 쌍, 서울 타 여행사에서 온 안산에서 불 갈비를 한다는 부자, 40대 중반에 남자 한분. 딸 둘을 데리고 온 젊은 부부와 함께 시내로 구경을 다니기로 하고 미니버스에 탄다. 출발과 동시에 비가 조금씩 오더니, 명품 상가의 대명사인 로데오 거리를 둘려 보는 순간에 비가 몹시도 오고 있어 다들 추위와 싸움을 하면서 안내자의 설명을 들으며, 첫발을 내디딘다. 지나는 길에 과일농장이 있어 들어가 과일을 사는 가운데 별명이 붓다의 손이란 과일을 처음 본다. 물론 먹은 것은 안이고 관상용이란다. 평소 한인 여행객들이 자주 가이드의 소개로 이곳 쇼핑센터에 들렸는데 별다른 것은 살 것이 없고 아내가 권해 벌(서울에서도 있는데 이렇게 비싼 줄은 몰았다.)에서 축출한 물약을 20불 주고 샀다. 입안에 이물 냄새를 제거한다는 약이다.
* 이곳의 할리우드의 로데오 거리는 서울에 압구정거리와 같은 명품점이 즐비하게 구성된 거리로 나에게는 별 감흥이 없으나 여인들은 호기심에 몹시 반긴다. 비가 많이 오는 관계로 버스 안에서 구경을 하는데, 헐리웃의 근처 비버리 힐의 부촌거리를 돌아본다. 생각 했던 대로 넓은 대지에 잘 지어진 대저택으로 구성된 깨끗하고 조용한 마을이다. 헐리웃의 bright land를 방문하여(우리나라의 평범한 놀이 공원 같다) 이곳에 개설한 공원에 아이들의 놀이공원이라서 일행 중 여자와 아이들이 들어가 구경을 했다.
* 이곳을 지나 헐리웃 거리에 있는 극장 앞(서울 단성사와 피카데리가 서로 마주보고 있는 듯한 곳)에 170명의 유명 스타들의 손도장을 새겨진 장소를 방문하여 마린 몬로의 손도장을 보았는데 생각보다는 작은 우리 동양인의 것과 비슷함에 놀랐다. 역시 손발이 작아야 미인이란 말이 정답이라고 안내자가 말을 한다. 영화에서 본 이곳의 풍경이 생각보다는 초라하다고 느껴지며 옛날 상상하던 초호화 건물과 거리가 않이라서 실망했다. 점심은 한인이 하는 한인 타운의 “여수” 집에서 육개장을 먹고,
* 유니버설 시설물을 구경하는데, 100불이라서 3명이 불참하고 다들 구경했다. LA에는 영화 스튜디오가 많이 있지만 그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인기 있는 곳은 당연히 유니버설 스튜디오(Universal Studio Hollywood)다. 세계 최대의 영화 스튜디오답게 약 170만㎢ 라는 광대한 부지에 설립된 이곳은 트램 투어와 스튜디오 센터, 엔터테인먼트 센터 등으로 나누어져있으며 스튜디오 옆에는 1950년대 풍의 쇼핑센터와 유니버설 시티워크도 있다. 입구에 들어가면 바로 엔터테인먼트 센터와 레스토랑, 쇼핑 숍들이 있고. 영화장면마다 각 세트장이 진열된 상태에 우리에게 진기하게 보여주는 것들이 많았다. 특히 콰이강의 다리 폭파장면을재연하는 곳에는 더한층 흥미를 갖게 한다. 너무나 많은 세트장이 있어서 다 열거는 못하나 우리나라도 갖고 싶을 정도로 부러움을 갖게 한다. 너무 많은 구경을 하다 보니 다들 피곤에 몸들이 무거운지 지처 보인다.
* 근처 한인 타운 유일의 호텔(rotex)에 여장을 풀었다. 보통 한국의 장급정도의 시설로 조용한 편이다. 저녁은 호텔 내에 있는 식당에서 된장찌개로, 미국에 온 것이 안이라 서울거리를 방황하는 뜻한 오늘의 하루 일정이다.
23일(2일째)
날씨가 화창하다. 호텔은 보통의 집기가 있는 방이다. 역시 한식으로 육개장. 8시 40분에 출발이다. la에는 비가 오지 않는 사막지대였는데 겨울에 비가 오면 좋아들 한다고 한다. 이곳 주민들은 반가운 비라면서 우산도 없이 비 맞기를 즐기고 있는 듯하다. 외곽지대 흰 산이 보이는 것은 어제 비가 와서 고도 2 천미터 이상의 산에 언 눈 모양이 이와 같이 흰 산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켈리포니아는 한국의 1.3배란 큰 주다.
우리일행과 여러 곳의 일행을 이곳 한인이 운영하는 la아주관광(미국에서 관광 사업을 26년간을 경영한 대표 박평식)이 주도 하여 다 같이 여행을 하게 된다. 무려 50명(10여명은 재미 교포로 미국각지를 여행하는 사람들과, 나머지는 반대로 동부에서 구경하고 서부를 구경하려는 여행객들)이나 된다. 이미 미 동부를 구경하고 온 일행과 타 지역에서 온 모든 사람들이 이곳 여행사의 지시로 움직이게 된다. 여러 나라의 한인과 미국에 거주하는 한인들을 각 지역의 명소를 소개하는 업을 하고 있다. 식당도 대형으로 하도 많은 한인 여행자들이 오기 때문에 정리도 잘 되어 있는 그런 장소다. 음식 맛은 서울과 별 차이 없는 한국식이다. 육개장은 이곳 돈으로 10불 한다. 반듯이 철칙이 있는데 이곳의 안내자의 일방적인 버릇인지는 모르나, 음식을 먹고 꼭 일인당 일불을 내라고 강요 비슷한 말을 할 때마다 정말 밥맛이 없다. 내 생각에는 태불 당 얼마의 팁을 주는 것은 모르나 일행이 각자 준다는 방식은 처음 듣는 말이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미주지역은 이렇게 일인당 팁을 별도로 준다는 것이 관행이라고 한다.
* 산베르난디노 산맥도로를 지나 모하비 사막을 통과 한다. 모하비 사막의 주요 도시로는 라스 베가스가 있다. 네바다 주에 속하는 라스 베가스에는 2006년 현재 190만명이 거주하고 있다. 여기는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베드워러(Badwater). 여기도 모하비 사막의 '죽음의 계곡 (데쓰밸리). 해수면보다 856m나 낮은 곳으로 북미대륙에서 가장 낮은 지점이다. 한여름에는 49도나 올라간다니 정말 죽음의 계곡이라 불릴 만하다. 사막한가운데 소금이 잔뜩 있는데 옛날에는 이곳이 바다였다.
* 가는 길옆에 파란 잔디 군데군데 피어있는 노란 꽃들의 무리가 마치 물감을 쏟아 놓은 거 같고, 모하비 사막에 깔린 환상적인 카페트 같아 보인다. 그 해 비의 양과 기온에 따라서 거의 아무것도 볼 수 없는 해가 있는가 하면 정말로 현란한 광경을 보고 황홀해 질 수도 있는 정말로 예측할 수 없는 곳이다. 그런대로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야생화를 보고 탄성을 지르는데, 멀리 보이는 다른 색깔이 바로 야생 양귀비란다.
* 바스토우에 도착 하였다. “여기서 점심 식사를 하고 학교(화장실) 다녀오실 분, 다녀오시고, 식사 후에는 근처에 있는 팩토리 아울렛을 방문하여 쇼핑하는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사막 한 가운데 웬 아울렛?” 모두들 의아 해 하자, 가이드가 보충 설명을 한다. 바스토우는 교통의 요새이기 때문에 물류 창고업이 발달되어 있지요.” 오고가는 유동 인구가 많아 아울렛이 성업을 이루고 있다. 바스토우는 서부 지역 관광객들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중간 기착지이기도 하다. 사막을 장시간 달려 온 관광버스가 연료를 보충하고 관광객들이 중식과 화장실을 해결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바스토우로 가는 고속도로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무료(bill free)란다. 노란선 안은 2인 이상일 때 사용하고 이를 어겼을 경우 345불을 부과한다. * 네바다주로 가는 도중에 험난한 준령을 달려간다. 옛날에는 이곳이 사막지대였던 것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넓고 넓은 들판을 이루고 있는 시가지가 부럽기만 하다. 이 넓은 들판을 말로만 듣고 영화로만 보던 기차의 긴 행렬은 정말로 누구나 할 것 없이 지나가는 차량을 재대로 세어보지 못할 것이란 말이 사실로 인정되는 순간이 나의 눈앞에 전개된다. 나도 해어보아도 끝이 정말로 보이지 않는 긴 차량 행렬에 기가 찬다. 사막 한 가운데 긴 꼬리를 늘어뜨린 기차가 가는 듯 마는 듯 아득하게 시야에 들어온다. 승객 칸은 없고 모두 화물칸이다. 프레즈노에서 곡물을 싣고 오는 열차란다. 사막 한 가운데서 열차를 본다는 것은 분명히 신기한 일이다. 먼 산 중턱에 풍력 발전기가 수도 없이 서있는 것이 보인다. 여행객들은 몇 시간째 달리는 여정에 지쳐 바깥 풍경에는 관심도 없어 보인다. 달리는 버스에 몸을 맡긴 채 비몽사몽 헤맨다.
* 오후 4시 경 도깨비 마을(Ghost Town)로 불리는 은광 촌(Calico)에 도착 하였다.
고스트라고도 하고 은광 촌이란 이름의 옛 광산촌. 라플린을 향해 가는 도중, 칼리코라는 옛 은을 캐던 은광 촌이 있는 소위 말하는 민속촌에 들렀다. 일명, CALICO GHOST TOWN. 사람이 살지 않는 현재의 상황 때문에. 여기 있는 현재 사람들은 출퇴근한다. 은광촌의 역사를 알려주는 현판. 1881년 은광촌의 화려한 역사를 보존하고자 하는 이 나라의 생각이리라. 이곳이 바로 칼리코 유령 타운이다. 이곳은 미국의 서부개척시대 1881년도에 은과 붕사가 이곳에서 발견되어서 그것을 파내기 위한 소위 광산촌이 만들어 졌다. 당시만 해도 사람들이 붐비던 곳이었는데 26년 뒤 1907년에 채광 량이 부족하여 문을 닫게 되고 마을은 빈 곳이 되어 버렸다고 한다. 그러다가 1951년도에 이곳에 한 돈 많은 사람에 의해 개발되어 광광지로 사랑을 받는 곳이 되었다고 한다. 비록 광산촌이지만 소방서, 동사무소, 이발소, 전화국 등 있을 것은 거의 다 갖추어져 있다. 돈을 벌어 행복을 추구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돈줄이 막혀 떠난 자리에 또다시 돈의 위력 앞에 다시 모인 곳이 바로 이곳이다. 사막의 광산촌에서 인생을 사막처럼 척박한 삶에서, 애환을 겪으면서도 때로는 사랑의 노래를 부르며, 두고 온 고향과 처자식을 그리워하며, 술 한 잔 기울였을 지난날들의 모습에 옛정감이 절로 나는 현재의 풍경이다. 또한 서부활극에 자주 나오던 젊은이들의 총잡이 모습이 나타나는 그런 장소이기도 하다.
* 진 바지의 유래 ;서부개척 당시, 리바이스 형제가 사막에서 사금을 캘 때, 바지가 헤어져서 천막을 찢어 만든 것이 진 바지의 원조라며, 그 형제가 이태리 "젠" 이란 지방에서 가져온 텐트 천 등이 " 진 "바지 이름을 탄생시켰다.
우리 일행이 타고 다니는 버스는 최신형으로 좋아 보인다. 장거리 버스여행으로 윌리암스로 이동한다. 기사는 멕시칸이다. 말이 별로 없는 순둥이 같다. 역시 자국이 빈곤하면 국민자신도 기가 약해지는 감을 느꼈다. 오늘도 긴 여행의 질주였다. 호텔 harrah' casino에 묻는다.
24일 (3일 째)
4시에 기상하여 네바다주에 오는 도중에 아침식사로 북어해장국을 먹고 열심히 사는 여주인의 태도에 놀랐다. 한국여성이 유별나게 지구상에 퍼져 살아가는 특별한 인내심에 감복한다. 그랜드 캐니언 국립공원은 복잡하게 깎인 이 넓은 협곡 바깥쪽에 당당한 봉우리와 평지에 우뚝 솟은 산, 깎아지른 뜻한 골짜기가 수없이 펼쳐지고 있다. 폭은 0.2~29km이고 길이는 약 443km인데, 애리조나 주 북쪽 경계선 근처에 있는 파리아 강 어구에서 시작하여 네바다 주 경계선 근처에 있는 그랜드위시 절벽까지 구불구불 이어져 있다. 이 주류에서 갈라져 나온 수많은 협곡들과 주변의 고원지대를 통틀어 그랜드캐니언이라고 한다.
* 그랜드캐니언 국립공원에서 가장 깊고 가장 아름다운 부분은 파월 호(湖)에서 미드호까지 강을 따라 뻗어 있는 약 90㎞의 협곡이다. 협곡의 전체적인 빛깔은 붉은빛이지만, 각각의 지층 또는 지층군은 독특한 색조(황갈색, 회색, 미묘한 초록색, 분홍색, 깊숙한 곳은 갈색, 푸른빛이 도는 회색, 보라색)를 띠고 있다. 해발 2,500m에 이르는 노스림은 사우스림보다 365m나 더 높다. 그랜드캐니언을 처음으로 발견한 유럽인은 1540년 이 지역을 조사한 코로나도 탐험대이며, 그 후 스페인 성직자인 프란시스코 가르세스와 실베스트레 벨레스데 에스칼란테가 1776년에 다시 이곳을 발견했다. 1800년대 초반에는 사냥꾼들이 이곳을 조사했고, 서부를 탐험하여 지도를 만든 몇 개의 정부 탐험대가 이 협곡에 대한 정보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1870년대에는 존 웨슬리 파웰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이곳을 탐험한 뒤, 이 지역의 지형과 지질·생물·원주민 등에 대하여 다양하고 광범위한 보고서를 발표함으로서 미국 정부는 1919년 이곳을 그랜드캐니언 국립공원(당시 면적은 4,930.76㎢)으로 지정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 협곡은 미국 애리조나주 북부 콜로라도강이 콜로라도 고원을 가로질려 흐르는 곳에 형성된 것이며, 세계7대 불가사의 중하나다. 1975년 예전의 그랜드캐니언 천연기념물과 마블 캐니언 천연기념물 및 그랜드 캐니언 국립휴양지의 일부를 비롯한 주변지역을 추가하여, 국립공원의 면적은 훨씬 넓어졌다. 협곡의 노스림(북쪽 가장자리)과 사우시림(남쪽 가장자리)은 포장도로와 협곡을 가로지르는 오솔길로 이어져 있다. 포장도로를 자동차로 달리거나 횡단도로를 걸으면 협곡에서 가장 중요하고 아름다운 부분을 모두 볼 수 있다. 노새 관광과 뗏목이나 동력선을 타고 강을 따라 내려가는 여행은 협곡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맛보고 체험할 수 있는 적극적인 방법이다. 수많은 푸에블로 인디언과 암굴 거주인의 유적은 거기에 남아 있는 유물과 더불어 선사시대에 이 땅에 살았던 푸에블로족((스페인어로 '읍'이라는 뜻이며, 미국 남서부지역에 사는 푸에블로 인디언들의 부락.)의 생활상을 보여 준다. 가까운 보호구역에는 인디언 5개 부족이 살고 있다. 나바호 민족 3백만 명(Navaho 나바호 족 미국 New Mexico, Arizona, Utah 주에 사는 원주민)을 연방정부에서 인정한 나라로 이곳 길 양편에 표시된 곳을 지나면서 약자로 전락한 처량한 원주민의 삶에 탄식을 할 수 밖에 없는 심정을 갖게 된다.
사우시림 지역 관광을 하는데 일부 사람들은 옵션(150불)으로 경비행을 단행한다. 타본 젊은이와 아이들은 즐거움을 표현하다. 캐니언을 소개하는 영화를 15불이나 받는 이곳의 상술에 혀가 나온다. 이런 간단한 영상물은 자신들의 고장을 선전하기 위해서 어디서나 무료인데 유독 이곳에서 징수한다는 것에 좀 난감한 기분이 든다. 킹 멧시에서 잠시 휴식을 하고, 장장 5시간의 긴 여정을 잠을 자는 듯 마는 듯 졸면서 라스베가스로 왔다.
* 끝없이 펼쳐지는 사막 길을 달려 도착한 라스베이거스(Las Vegas, 문화어=라스베가스)는 미국 네바다 주 남동부 사막 가운데에 있는 오락장이 많이 모인 도시이다. 전 세계에서 많이 알려진 도시 가운데 하나이다. 이곳은 로스앤젤레스에서 약 360㎞에 있으며, 목축이나 광업도 있지만, 관광과 도박의 도시로 불리며, 결혼과 이혼 수속이 간단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전력은 후버 댐에서 공급하고 있다. 라스베이거스는 1905년에 사막 위에 세워졌다. 그리고 6년 뒤에 도시로 정식 등록되었고. Sin city 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1910년에 도박을 위법인 것으로 판결하였으나 1931년에 비로소 적법이 되었다. 도박과 환락의 도시로서 알려져 있다. 근처에 원폭 실험장이 있다. 인구는 60만 정도며, 가구 수는 22만가구가 있다.
* 라스베가스에는 수많은 호텔들이 거대한 성같이 줄지어 서있다. 파리 에펠탑을 재연한 호텔 파리, 뉴욕 거리의 모습을 재연했다는 뉴욕 호텔. 온통 꽃 바다 같은 호텔 벨라지오(분수로 유명함), 드라마 올인에도 나온 화산쇼로도 유명한 미라이 호텔등 호텔 투어만 해도 눈이 어지러울 지경인 황홀한 밤의 도시다. 그 중에도 거대한 성과 같이 보이는 호텔답게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며 실내 장식 역시 이태리풍의 고급스러움이 물신 풍기는 베네치안 호텔에 들어가 보았는데. 이곳은 투숙객이 않이라도 엄청난 관광객들이 돌아다닐 수 있는 곳이다. 이 건물 안에는 1층 도박장과 2층 광장 옆에는 유명명품들의 상점이 자신들의 진열방식에 열을 올려 호화롭게 외국인들을 유혹한다. 그리고 광장 중앙에 펼쳐진 장면에 놀랐다. 천장이 마치 생생한 하늘과 같이 체색한 그림으로, 구름이 뒤덮이고 정상적인 푸른 하늘에, 온통 넓고도 크나 큰 홀을 진짜 로마의 베네치아 모습처럼 만들어 놓고 콘도라도 다니는 그런 호화스러운 시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별안간 내가 또다시 작년에 다녀왔던 바로 그 로마에 온 느낌마저 들어 황홀해 진다. 호텔 전체가 지붕이 있는 축소 로마도시와 같고, 온통 미술관에 온 듯 한 느낌마저 든다. 곤도라를 실지로 이곳내부에서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타며 즐기고 있다. 정말 거대한 투자로 여행객과 시민의 돈을 흡수할 정도의 시설이다.
* 도박장을 구경하는데 내부 규모가 정말 큰 장소에 놀랐으며, 정신없이 놀고 있는 고객들의 진지한 모습에 또한 놀랐다. 모자의 앞창은 뒤로 써야하고, 선 그라스는 절대 금물이고, 사진기 물론 않된다. 입장료는 10불이다. 도박을 하던 안하던 간에 입장료는 기본이다. 외부에서 음료수를 사먹는 것보다 싼 팁1불을 주면, 아름다운 엉덩이꼬리를 달고 머리에 리본을 단 아가씨가 금방 갖다 준다. 입장객들은 거의 흑인이 많아 보였고 다음이 이민자들인 멕시칸들과 중남미 사람들 특히 여성들도 많아보였다. 출입구에는 경비자가 철저한 경비를 서고 있다. 대낮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북적 거린다. 가이드가 도박하는 방법을 아르켜 주면서 약간씩 하는 것도 재미라며 가능한 한 20불 정도는 해보란다. 하지만 처음부터 이것에 취미가 없어서 오히려 상점에서 물건 구경을 한다.
이곳에서 시내야경 관광은 30불이란다. 여행사에서 받아먹는 것인지는 모르나 미국이란 나라는 거리구경을 시켜도 돈을 받는다. 버스를 타고 다니는 것도 안이며, 단지 각자가 걸어서 구경하는 정도의 구경인데도 말이다. 각 영업장마다 자기들의 업을 선전하기위해서 현관 정면에 사자 상. 또는 특별히 고안한 불 쇼, 분수 물을 잘 이용하여 특색있는 물쇼를 한 것 등, 색다르게 자사의 선전에 열을 올리고 있는 풍경이 현란하게 보인다.
* 특히 우리 일행이 들린 곳은 프리몬트 스트리트의 아케이드의 천장에 설치한 전구 쇼인데 우리나라의 LG가 led로 만든 전광판이 매시간 마다 쇼를 하는 것을 보려고 각국의 여행자들이 이 시간대에 많이 모여 구경한다. LG전자 광고는 아이디어가 독특하다. 상가 전체의 지붕을 만들고 이곳에 LED로 전자 쇼를 하게 만들어 많은 선전이 될 것 같은 이상적인 광고 시스템에 반했다. 우리의 선진화된 현실에 감사하면서, 보다 더 한민족의 노력이 성실히 열매를 맺기를 바랄 뿐이다. 이런 시설물을 볼 때마다 우리의 앞날 행보가 자랑스럽다. 파리 호텔의 아름다운 야경도 보고, 세계 4대 호텔이란 벨라지오 호텔 연못에서 1.000여개의 물줄기가 최고 26층까지 치솟은 분수 쇼를 보며, 거리를 산책한다.
* 저녁에 주빌리(jubilee) 쇼을 관람하기 위해서 부지런히 호텔에 짐을 내려놓고 모여 쇼(90불)를 보았는데 그저 그런 얄팍한 쇼다. 워커힐 쇼 정도의 수준이다. 다만 출연 인원이 많고 육감적인 것은 유방 노출에 색다른 맛을 보여주며. 그들의 상업적인 의도에서 이든 간에 화려하고 늘씬한 미모 여성들이 춤을 추어주니 정신이 다시 들기는 든다. 하지만 계속적인 연기에 너무나 강행한 여정이라 쇼를 보면서도 간혹 하품도 난다. 쇼가 끝나고 (저녁 11시30분)각자 자유시간인데도 호텔침실로 가지 않고, 젊은이들과 일부 사람들은 노름을 하기 위해 부지런히 카지노에 간다. 이곳에서 하는 것도 기념이라면서 대부분의 일행이 노름판에 기웃거리며 밤샘을 할 모양이다. 하지만 나 자신은 호기심이 나면서도 할 줄도 모르지만 그렇게 흥미가 날정도의 일은 안인 것 같아서 잠을 청하기로 한다.
1월 25일(4일째)
아침 7시에 기상하여 8시에 출발한다. 오는 도중에 본고장의 양식으로 식사를 한다. 오히려 미국에서 원조 음식을 먹기가 더 힘들게 여행 일정을 정해서 이곳이 외국 같지 않는 기분으로 식사를 하게 된다. 이것은 오히려 여행의 2중 고민이 되고 있다. 여행을 왔으면 그곳의 생활과 습성을 보고 배우려고 온 것인데, 엉뚱하게 한국의 입맛만 고집하는 이상한 습관으로 변질되고 있다. 식당에서 유독 현지가이드(교포)가 무안하게도 자주 1불 팁을 강요하는 데에는 밥맛이 없을 정도다. 테이블 당이나 가족단위가 안이라 한사람씩 개인별로 지불하고 보니 그 금액도 만만치 않다. 하루 세끼를 다 먹는 우리로서 또한 이것에 익숙지 않는 탓 으로 좀 어색하다. 그래서 그런지 이곳 식당의 종업원이 물을 병에 담아가라고 친절히도 안내한다. 물은 모두 사먹어야 하는 것인데도 말이다.
이동 중에 점심도 역시 오던 길에 있던 “sonmorket”에서 나이든 한국 교포 여주인이 옛 그랜드하우스 차고 자리였던 땅을 구입하여 이렇게 여행객들에게 음식을 팔고 있다. 우리 말고도 여러 여행사에서 찾아오는 손님은 참 많아 보인다.
가이드는 정동근(시민권자)으로 서울에서 이곳에 온지는 16년이란다. 사람이 좀 허풍과 과격한 행동을 저질을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다. 처음에 탑승한 인원은 52명인데, 다른 곳으로 친지를 방문하는 여행객들이 있어, 이곳에 모여 같이 갈 사람은 모두 합해서 42명이 된다.
하늘의 구름이 서울과 다른 점은 칼로 베어 놓은 듯 가로로 길게 늘어진 모습이 신기하게 보인다. 하루 종일 버스로 긴 여정에 피곤함을 달래며, 호텔에 들어선다.
각각의 여행목적 장소가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어 자주 긴 버스 운행으로 피곤함을 감수해야 하는 이곳의 여정이다.
1월 26일( 5일째)
샌프란시스코(영어: San Francisco)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 서해안에 있는 도시로 미국에서 14번째로 큰 도시이며 캘리포니아에서 4번째로 큰 도시이다. 인구는 약 74만 명 (2005년)으로 샌프란시스코 반도 끝에 자리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는 또한 미국 대도시 중에 두 번째로 과밀한 도시이다. 1776년에 스페인이 이곳에 처음으로 정착했으며 1848년의 캘리포니아 골드러시로 인해 크게 성장하였다. 1906년의 샌프란시스코 대지진으로 인해 도시가 크게 파괴되었으나 빠르게 재건되어 지금에 이르렸다. 샌프란시스코는 자주 끼는 안개와 가파른 언덕길로 유명하다. 만남의 도시, 항구의 도시, 다리의 도시, 유명한 건축물로는 금문교, 알카트라즈 감옥 등이 있다.
* 금문교는 미국 서남부의 골든게이트 해협을 사이에 두고 남쪽의 샌프란시스코와 북쪽의 마린반도를 연결하는 강철로 만든 현수교(懸垂橋)가 있는데 이것이 바로 금문교(金門橋)라고 한다. 길이 2.825m. 1933년에 착공하여 37년에 완공되었다. 탑은 오렌지색으로 칠해져 있고, 2줄의 케이블을 지탱하고 있는 탑의 위용은 멋이 있었다. 그 다리 밑에 선박들이 오고 가고 하는 풍경이 또한 이곳의 경치를 잘 나타내 주고 있다. 노후를 막기 위해 매년 보수공사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배를 타고 금문교 밑을 지나가는데 감회가 새롭다. 영화 속에서나 보던 금문교가 눈앞에 나타나니 내가 마치 영화주인공이나 된 듯 느껴진다. 우리일행은 바로 밑에까지 내려가 보면서 그 옛날에 이미 지어진 놀라운 기술에 반하고 만다. 차고 거센 조류와 안개가 많은 날씨 그리고 수면 아래 지형이 복잡하여 건설이 불가능할 것으로 예측되었으나 4년 만에 완공하여, 미국 토목학회에서 7대 불가사의의 하나로 꼽는다. 그런데 이런 금문교가 자살로도 유명하다. 그 이유는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끌면서 자기가 왜 죽는지. 너무 억울하다는 걸 온 국민이 알아주기를 바라면서 자살하려는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기 때문이란다. 유명한 샌프란시스코 금문교에 자살자가 많은 것도 그 때문이다. 다리 밑을 유람선으로 그 주위를 돌아보는 시원한 맛도 아주 상쾌한 느낌을 주었다. 페리를 타고 알카트라즈로 들어간다.
* 알카트라즈의 섬은 미국 캘리포니아주(州) 샌프란시스코만(灣) 가운데에 있는 작은 섬이다. 또한 알카트라즈 감옥은 샌프란시스코 만에서 바라보이는 작은 섬으로 1854년 처음으로 등대가 세워지고 남북전쟁 당시에는 연방정부의 요새로 사용되었다. 이곳은 높이 41m의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고, 주변의 조류는 흐름이 빠르고 수온이 낮아 탈옥이 불가능하다는 이상적인 감옥의 섬이었다. 1907년 최초로 군대 감옥이 만들어 졌으며 1933년 연방감옥으로 바뀌어 알 카포네 등이 수감됨으로써 감옥으로도 유명하게 되었다. 1963년까지 주로 흉악범을 수감하는 감옥으로 사용되었다. 현재는 무인도이지만 관광명소로 각광받고 있다.
* 이곳 선창가에서 가이드가 점심은 각자 알아서 먹으라면서 7불씩을 나누어준다. 유명하다는 빵 (이름은 잊어버렸지만, 빵 겉은 좀 두툼하며, 우리나라의 밥그릇 정도크기에 그 속에 여러 채소를 담아 넣은 빵으로 가격은 7불)을 우리 둘이서 먹고 별로 맛이 안 당겨서 다음에 유명한 헴버거(6불)가 있다는 가게를 찾아 줄을 서서 사먹어 보니 이것도 서울에서 먹던 것과는 다른 맛이다. 각 고장의 맛은 별도로 인정해야만 할 것 같다.
* 시청과 도서관에 볼일도 있고 해서 가이드가 이곳은 무료이니 모두다 볼일을 보라고 해, 일행은 다 같이 도서관에 갔는데, 정말 부럽기만 한 시설에 머리 숙여진다. 우리는 언제나 이렇게 개인들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공부를 할 수 있을까 하고, 그 큰 시설과 한사람의 차지하는 공부하는 공간이 너무 좋아 보인다. 시간이 남아서 길가에 바이올린을 켜는 청년의 음악성과 열정에 고마움을 느껴 몇 푼의 팁을 주었다. 주로 서양은 길거리에서 예술의 기질들을 자랑도 하지만 간혹 생계수단으로도 많이 이용되고 있다.
* 게이 스트리트는 카스트로 스트이트와 마켓 스트리트가 만나는 곳에 있는 동성연애자들을 위한 거리로. 오색 깃발이 휘날리며 손잡고 걸어가는 남자 커플이나 여성 커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이상한 광경을 보아도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행동은 삼가여야 한다고, 가이드의 주의사항이 있다. 좀 징그러운 그네들의 모습에 나로서는 이해 못할 그런 부분들이 내 눈앞에서 연출되는 것에 놀라울 뿐이다. 지금 우리나라 드라마에도 이용되는 그런 모습이 자연스럽게 방영되는 시기이지만.......
* 이곳의 명물인 전차를 보는 순간, 가파른 고개를 천천히 오르고 내리고 정말 정지 하지 안아도 약간만 뛰어 달리면 탈수 있는 영화에서만 보던 바로 그런 전차를 타고 보니 감정어린 소년과 같아져 기분전환이 최고로 달한다.
이렇게 신생국 미국은 역사가 짧아서 몇 십년 지난 것도 귀중히 사용하며 구식인 이런 전차도 후손들에게 전하고 있고. 잘 정비하여 시민들에 제공하는 그 멋에 나로서도 기쁜 마음이 절로 나온다.
저녁에는 그동안 밀린 비용을 거출한다고 해서, 가이드 비는 하루에 일인당 10불인데도 모든 날을 계산하여 100불(실지 일한 가이드 일자는 8일)을 주고 옵션 유람선(25불), 케이불 카(10불)을 각자 지불했다.
1월 27일(6일째)
4시 45분에 기상하여 5시 30분에 아침을 호텔에서 식사하고,
* 17마일거리(17마일거리라고 명명된 해안가 길)를 산채하며 바닷가를 끼고 고급주택과 그 유명한 골프장이 설치된 곳이며 바닷가 바위 위에서 물개들이 소리 높여 커억커억 울부짖으며, 꼬리를 흔드는 모습이 장관이다. 북쪽의 몬터레이, 남쪽의 카멜 사이의 몬터레이 만, 소나무와 삼나무 숲, 복잡한 해안선을 가진 만 안쪽을 일주하는 도로가 바로 ‘17마일 드라이브’다.
* 또 골프의 메카이기도 한 이 곳에는 페블 비치 골프장(Pebble Beach Golf Links) 등의 유명 골프장이 10여 곳 있다. 17마일 중간 중간 오래된 나무와 유명 연예인의 별장이 있고, 아름다운 해안이 있어, 만일 여유가 있어 살수만가 있다면 한번쯤 이런 곳에서 살고 싶어지는 장소다. 저명인들의 별장으로 사용하는 관계로 이 마을에 들어가는 입장료를 모든 외부인들은 지불하여야만 한다. 또한 영화 촬영장으로도 각관을 받은 곳이란다. 공기 좋고 산과 어우러진 주택과 바다 이 3박자가 어울리는 훌륭한 곳이다. 역시 돈은 좋은 것이다. 부자들의 무한한 금전적 풍요는 정말로 행복할 것인가? 극심한 물질적인 공항을 느끼게 하는 곳이기도 하다. 끝없는 길 양편에 이곳의 유명한 체소재배 꽃씨농장은 넓고도 광활해 보이며, 마을 주위에는 고급스럽고, 고가로 매매되는 골프용품점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바다와 절벽이 만나는 절경 빅서 (Big Sur)는 유명한 작가인 헨리 밀러가 살았던 마을이자, 깎아지른 절벽과 웅장한 바다의 모습이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는 곳이다. 카멜에서 출발하면 허스트 캐슬에 갈 때까지 이런 풍경을 볼 수 있다. 빅서는 영화 「원초적 본능」에서 샤론 스톤이 드라이빙을 하던 멋진 경치의 해안가로 스크린에 등장하기도 했다.
* 18홀로 구성된 골프장은 양탄자와 같이 포근하고 부드럽기 한이 없어 손으로 가만히 만져본다. 보들보들한 촉감이 마치 아기 손을 만져보는 것 같이, 이렇게도 고운 잔디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초록색을 띤 정원풍경이 나를 황홀 하게 만든다.
* 덴마크 민속촌 쏠뱅은 LA에서 북쪽으로 3시간 30분 정도 차를 몰면 ‘서해안의 덴마크 마을’ 솔뱅(Solvang)에 도착한다. 이곳은 풍차와 흰 벽, 나무 지붕과 창가에 걸린 꽃들이 마치 동화의 나라처럼 아기자기하고 북유럽의 향기를 물씬 풍긴다. 관광객들에게 ‘덴마크보다 더 덴마크답다’는 말을 들을 정도. 선물 가게나 레스토랑의 직원들은 모두 덴마크 민속 의상을 입고 환영해 준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늙은 노인들로 이루어진 듯 백발이 휘날리는 멋있는 주민들이 자주 보이는 그런 마을 풍경이다. 2시간여 만에 돌아볼 수 있는 작은 마을이다. 그 유명한 차이나타운도 상가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지만, 미국 내에 이렇게 온통 한 민족들로 이루어지고, 주택이 구성된 마을은 톡특한 일이라 보여 진다. 오른쪽에 나란히 있는 카페와 빵집에서 솔뱅의 명물 페이스트리(빵)를 먹어 보는 이도 있다. 퍼스트 스트리트 모퉁이의 솔뱅 공원에서는 시민들과 함께 휴식하는 시간을 갖는 이곳 마을 주민들의 한가로운 모습이 더 한층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과도 같다. 솔뱅의 선물 가게는 대부분 덴마크제를 취급하는데, 세계적으로 유명한 로열 코펜하겐 그릇을 판매하는 곳도 있다. 잠시 후 해안 별장 도시인 산타바바라 경유하여 LA로 간다.
* 다음 LA로 가는 길 양편에 마치 호랑이가 긴 잠을 자듯 누어있는 탐스러운 능선에 온통 초지로 이루진 야산들이 초록색을 짙게 가지런히 줄을 대고 있다. 이번 여행도 마찬가지로 외국에 여행을 하는 것은 그곳의 모든 환경과 일반서민들, 음식도 그 나라의 토속적인 것을 먹어보고, 그 나라의 실정과 참 뜻을 알려고 여행을 하는 것인데, 하필이면, 왜들 한국인이 여행을 하면 거의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에 보내서 왜 이곳에 왔는지 모를 정도로 완전히 한국에 온 느낌을 주는 그런 여행은 삼갔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외국인들에게는 한사람도 없는 이상한 행동(자국의 음식에 대한 집착)에 유독. 일부 한국 여행객들은 입맛이 없다면서 라면, 김, 고추장, 멸치복음, 김치 등을 갖고 다니는 그런 여행은 앞으로는 지양되었으면 하고, 진정한 여행의 의미를 갖은 여정이 되길 바랄 뿐이다.
1월 28일(7일째)
서울로 가는 ke006편에 몸을 싣는다. LA 공항에서 서울 인천 공항까지 12시간 40분이 소요된다고 한다. 기내에서 참한 여승무원 김수민 양을 만나서 몇 마디 말을 주고받았는데, 시바스시갈 한 잔을 주길래 잘 먹었다. 노인에게 친절을 베푸는 심정에 감사를 느끼며, 김양에게 메일로 친찬을 해 주었으면 하고 생각했다. 돌아가는 기내에서는 느낌이 좋았다.
자주 있었던 집으로 돌아오는 여행길에 오늘 따라 유난이 반가움을 주는지 얼마 남지 않은 짧은 착륙 시간만이 그리워진다. 여행기간 동안 몸에 이상을 느껴서인지, 집이 그리워진다. 세상에는 많고도 많은 아름다움이 나의 주위를 맴돌고 있다. 하지만 아직 찾지 못한 현재의 처지에 더 열심히 노력하여 소망을 이루어지길 바랄뿐이다.
* 삶이란 자체가 남에게 보이려고 하는 점도 있지만 자신 스스로의 문제 해결에 목적을 두고 하나하나씩 풀어 나가는 그 오묘한 맛도 잊어버리지 말고 나 자신의 몸도 등한시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 하면 시간이 삶의 결과를 말하여 주듯이 일초의 순서대로 진행됨을 끝까지 명심하고 이 모든 것을 한 거풀 한 가닥 씩 순리대로 풀어가는 그 자체가 삶의 진정 의미가 안이겠나? 싶다.
1월 29일 (8일째)
인천 공항에 새벽 5시에 도착할 것이다.
끝없는 하늘에 몸을 던지며 나는 부르짖는다.
<아~ 하!, 행복의 본질은 그렇게 복잡한 것이 아니었구나! 그 동안의 멀고 긴 여정은 행복을 위한 사다리와 같은 조건에 불과 하였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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