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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텐부르이의 이단 재판(야나세 요시이 지음, 스베덴보리의 삶과 사상 중에서..)
스베덴보리가 1769년(81세) 가을에 스톡호름에 닿았을 때에는, -그는 하-트레이에게
쓴대로- 자기는 그 이름난 벗이나 친척들이 따뜻하게 맞아주리라고 바란 것은 옳은 생각
이었다는 생각에, 그 영국 친구가 염려한 박해(迫害)가 몸에 내리덮치리라고는 조금도 생각
하지 않았다.
그는 황태자 (훗날에 구스타브스 3세)에게서 회식에 청함을 받고서, 황태자와 그 황태자
비와 오랜시간 이야기를 나누었다. 후에는 약간의 상원의원과 회식하고, 교직원의 지도자들
과 의논하고, 국회에 참석한 모든 감독은(한 사람의 예외는 있었지만) 몸소 그를 맞았다, 고
베이엘 박사에게 써서 부쳤다.(스톡호름, 1769년(81세) 10월 3일).
그러나 벌써, 요-텐부르이 교회회의에서는, 대학의 교사 몇 사람의 뒷받침을 받고 있는
"스베덴보리의 가르침"이 바른지 아닌지를 지나서, 다시, 새로운 생각을 발표하는 권리의
맞고 안맞음에 관하여, 전반적으로는 종교문제에서, 자유의 권리 그것의 맞고 안맞음을
둘러싸고, 힘든 이론다툼이 터지고 있었다.
람베르이 감독과 수석사제 에케봄은, 전에는 스베덴보리에게 의좋은 편이었으나, 지금은
베이엘박사와 로센에 대한 앙심을 드러내서, 종교의 사상 그것의 맞고 안맞음보다도, 자유
로운 생각의 권리에 대한 맞고 안맞음이 문제가 되어있었다. 그 새로운 생각이 교회회의에서
제정한 믿음조목에 맞서는 성서의 뜻풀이 문제에만 한정되어 있을 때에는, 신학부 교수들
중에서 아주 많이는, 특히 강사 렘프게와 요테뉴-스는 거기에 흥미를 보여, 렘프게는, 스베덴
보리의 생각을 적잖게 받아들인 논문을 교회회의에서 발표하고, 요테뉴-스는, 베이엘 박사가
그 도발적인 설교집을 내는 데 거들끼까지 하였다.
그 때까지 스베덴보리가 지은책은, 다만 라틴어를 읽을 줄 아는 학자들만이 배울 수 있었다.
그러나 로센이 "계시에 의한 계시록 풀이"의 책평을 일반에게 내고, 베이엘이 스웨덴말로
"가정설교 모음"을 낸 뒤에는 형편이 확달라졌다. 종교의 새로운 생각이 쉬운 말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 딴길(이단)이, 일반사람의 가정에 파고들기
전에, 그것을 송두리채로 제쳐버려야 한다. 지금까지 인가된 가르침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양무리들은 뒤집히고, 양치기들은 어찌할 바를 모를 것이다!
이것이 에릭 람베르의 생각이요(그는, 기록에 따르면, 그 교회구역에서 별로 존경을 못받고,
몸도 허약한, 좀 허영꾼 같은, 사내로 적혀 있는데), 또 그것은 오호르 에케봄의 생각이기도
하였다. 이 감독은 인기는 있었지만 성질이 급한 사내이며, 새교회를 거스리는 원수의 우두머리,
교회회의라는 큰 가맛 속에서 빚어내는 마녀가 좋아하는 뜨거운 국 알맹이의 임자였던 자라고
되어있다. "이 감독님들은 저 자신을 알 필요가 있다"고 요테누-스는 적었다. "이 사내는 우리들
에게서 아는 것이 없는 자들을 그 교회의 예배하는 자로 불러 모으고.......아주 얕은(천박한)
사내요, 그가 전문으로 연구하는 과목에서조차 아는 것이 없다".
1768년(80세) 9월 2일, 페테르 아우레류-스가, 스베덴보리의 책은 어디까지 물리쳐야 하는
지를 밝혀 달라고 감독에게 원하였다. 거기에는 단지 죄가 없는 신학에 관한 것이 담긴 것 뿐인가,
아니면, 그것은 사실로 딴길(이단)인가, 만약 딴길(이단)이라면, 가르치는 사람들이 이런 종교의
원리를 다른 사람에게 번지게 하는 것은 죄를 저지르는 것이 아닌가,
교회회의는 능갈맞게도 약살빨리, 베이엘 박사에게 사정을 잘 알고 있으니까 보고서를
내라고 하였다. 그는 그대로 하기는 했지만, 다음해 2월이 될 때까지 내지 않았다. 그는 말하기를
스베덴보리는 사람복이 있는 시민, 학문세계에서 큰 사람, 하나님의 말씀을 더할나위 없이
존중라는 분으로 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의 종교문제를 철저하게 낱낱이 검사도
않고, 성급히 옳지 않다고 보아서, 책망하거나 들추어내고 공격할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는 사람은 누구나 이 가르침이 하나님에게서 난 것인지, 아니면 내 마음
대로 말한 것인지, 그래서 그것을 물리쳐야 할 것인지를 알것입니다.(요한복음 7장 17절).
으뜸자리 사제인 에케봄은(그는 람베르이 감독이 국회에 나가서 없는 동안은 의장의 일을
보았다) 그 한 달 뒤에, 매우 세게 생각을 말했다. "나는 감사관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종교의
가르침은 잘 모르며, 또 그것을 알기 위해서 수고를 하고 싶지도 않습니다"고, 그는 의기양양
하게 말해 밝혔다. "그러나 이 지은이와 말해보고, 또 그 계시록에 의한 계시록 풀이를 살펴
보고 ..................그 가르침은 사람을 타락시키고, 딴길(이단)이요, 해롭고, 가장 높은 정도로
물리쳐야 할 것이라는 생각을, 나는 고백해야만 하겠습니다" 그는, 감독이 회의의 명령을
바탕으로 곧 열릴 국회의 교직원에 이 일을 알리자고 안을 냈다. 교직원은, 스베덴보리의
가르침이 번져 퍼지는 것을 막는 데 필요한 방법을 취하겠지.
베이엘은 교회회의가 스베덴보리의 가르침을 하나하나 검사하지도 않고, 그 제안을
가결하는 것을 세게 반대하고, 이 일은 왕에게 곧 바로 내자고 제안하였다. 왕은 어떤 방법을
써야할 지를 정하겠죠. 로센 박사도, 스베덴보리가 지은책을 넉넉하게 연구하지도 않고 성급히
손쓰는 데는 반대하였다.
에케봄이 한 일은, 스베덴보리가 암스텔담에 있을 때에 그에게 알려왔다. 그는 매우 성내어
베이엘 박사에게 곧 편지를 썼고, 그 비난에 대답할 글을 같이 넣어서, 그 편지를 일반에게
알리도록 제안하고, 그 으뜸자리 사제가 그 비난을 걷어들이지 않으면, 그를 범죄소송에 걸겠
다고 썼다. 그는 으뜸자리 사제가, 자기는 스베덴보리의 책을 읽지도 않으며, 스베덴보리의
가르침을 넉넉히 알지도 못한다고 하면서도, 이 가르침은 "사람을 타락시키고, 이단이요,
해로은 것이어서" 티끌만큼도 용서할 수 없는, 뿌리부터 잘못으로 꽉차있다고 언명한 것에,
그를 비난하고, 에케봄이, 그 가르침은 소쯔니우스 설이라고 말해 밝힌 것을 "저주받을
욕되게 함(모독)과 거짓" 이라고 하여 고발하는데, 왜냐하면, 소쯔니우스 설은, 주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됨을 아니여기기 때문이다. "나는 소쯔니우스 설이란 말을, 까놓은 모욕과 악마같은
조롱이라고 생각합니다................으뜸자리 사제의 생각은, 계시록의 용이, 입에서 토해내서
여자를 빠져 죽게 하려고 했던 홍수에 비길 수 있겠습니다"(암스텔담, 1769년(81세) 4월 15일).
***소쯔니우스 설. 소쯔니우스(1539-1604).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아니다. 그러나 또 보통사람도
아니고, 특별한 사람이다"고 하는 것이, 그 가르침의 중심. 유니테리안 파의 신학자. ***
바야흐로 요-텐부르이 종교회의 의원들은 두 갈래로 갈라져, 한 쪽은, 이른 바 정통파의
가르침에 터무니 없는 열렬한 마음을 보이고, 다른 쪽은, 못살게 굶을 받게 되지나 않을까 불안했다.
헤아리기 어려운 고소인인 저 시골 목사 페테르 아우레류-스의 아들인 감사관이요, 변호사이기도
한 안델스 아우렐은, 미워함으로 불타서 에케봄에 부추기어서, 나중엔 베이엘 박사가 가르친
학생의 공책을 딴길(이단)의 증명으로 내놓고, 교회회의에 앞서 학생들을 불러서, 스승에 대하여
증거 말하라고 하였다.
람베르이와 에케봄을 우두머리라고 한다면, 그 특별한 아우렐은 같은 굴의 졸개였다.
"저와 뜻을 같이 하는 자에게는 정나미가 좋고, 그렇지 않은 자에게는 그가 누구이든 대든다는
사내였다" 그는 기독교의 참이치를 옹호한다는 것보다, 싸움꾼 같은 절개와 지조가 없는 사내
라고 적혀 있다. 그는 교회와 가르침의 순수함을 찾기 위한 열렬한 맘으로 행동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행동은 조심성도 모르는 엉터리 변호사라고 도장 찍혔다. 그가 잡혀 있는 생각
의 한 이유는, 그가 베이엘 박사에게 개인적으로 앙갚음하려는 마음을 품고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그는 능갈맞게도 약삭빠르게 적으로서 맞서는 자이며, 다른 사람은 제 편으로 끌어
들이기 위하여 달콤한 말을 뿌렸다. 요테뉴-스는 기록하기를 "나를 대하는 그의 사랑은
전혀 눈먼것 같고, 여기 내 일벗 앞에서, 나를 학문쪽에서는 겨눌 자가 없다고 높이 칭찬할
만큼이었는데,
(계속)
그 단하나의 까닭은, 그의 생각으로는 다른 아주 많은 사람은 그 재능을 자랑삼아 보이는데,
나는 그런 일은 전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요테뉴-스는 일의 참모습을 뚜렷하게 하려는 나머지, 스톡호름의 한 기자에게, 베이엘 박사를
박해하는 숨은 원인을 밝히고 있다. "박사이기도 한 크린 목사의 열렬한 마음은, 베이엘 박사를
일터에서 내쫓는데 있는데, 그 뜻은, 그는 지금의 나이 많은 철학 강사지만, 나중에는 신학의
교수직을 얻는데 꼭 있어야할 대성당에 딸린 사제의 신분을 꼭 마련하는 것입니다." 크린은
이 고발에서는 대성당 으뜸자리 사제인 에케봄의 오른팔이라고 되어있다.
가브리엘 안델슨 베이엘 박사는 이 때에 50줄이었고, 25년 동안 대학에서 히브리어와
그리스어를 가르치고 있었다. 이 이론 다툼은, 그에게 다른 어려운 사정이 더하여서, 견디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는 참이치를 위해서 싸워야 할 때가 오는 것을 보자, 용감하고 또 굽히지
않았지만, 몸은 튼튼하지 못하고, 그의 말로는 "열을 지닌 가슴쪽의 질환으로 쇠약하였다"
그는 어느 역사가의 말로는, 앞서 아우렐과 소송하는 일로 맞섰기 때문에, 이 엉터리 변호사를
마음 속 깊이 박힌 원수로 삼는 데 이르렀다.
1769년(81세) 가을, 베이엘의 아내는 그에게 아이 다섯을 남기고 죽었다. 그 여자의 죽음에는
그의 남편에게 견디기 힘든 깊은 상처가 따랐다. 아내는, 두 사람이 그 때까지 참된 것이라고
마음에 간직했던 새 가르침을 죽으면서 버렸다. 그 남편은 그 일을 스베덴보리에게 편지를 보내서
알렸다. 그는 답장에서, 그 여자의 마음을 흐트러지게 한 것은, 그 죽음의 자리에 목사 두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일어났으며, 그 가운데 한 사람은 으뜸자리 사제인 에케봄 그 자였던 것을 설명하였다.
"당신이 죽어가는 아내를 말하는 것은, 특히 목사 두 사람의 인상에서 일어난 것입니다.
그들은 그 여자의 생각을 저들의 영들과 묶고, 그 영들에게서 그 여자는 그 때에 말하게 된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에겐 죽어갈 때, 영의 상태에 있는 일이 종종 일어납니다. 그 여자를 거쳐서 처음에
말한 영들은, 하늘에서 쫓겨난 용을 따른 패거리에 붙습니다.(요한계시록12장). 그들은 내쫓겼을
때에, 구원하시는 주님에 대한 미움으로 꽉찼으며,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새교회에 붙은
모든 것에 대한 미움으로 차고 넘쳐서, 그리스도의 이름을 입에 담는 것을 견디어 내지 못합니다.
우리 주님의 영의 기운이 하늘나라에서 그들에게 내려오면, 그들은 미쳐서, 계시록6장 16절 말씀대로
굴과 산에 있는 바위들 틈에 숨어서, 저 자신을 살리려고 합니다. 죽은 당신의 아내는, 어제 나와 함께
있어서, 남편인 당신에게 말하기도 하고, 생각하기도 한 많은 일과, 또 그 여자를 거기에 빠지게 한
자들과 말한 것을, 내게 말했습니다. 만약에 지금, 내가 당신 가까이에 있다면, 이 일에 대해서 많은
것을 말할 수가 있지만, 그러나 그것을 쓰도록 허락되지는 않았습니다......."
(스톡호름, 1769년(81세) 10월 30일).
베이엘 박사가, 스베덴보리의 제안에 따라서 그 편지를 인쇄에 붙었을 때에 박해는 꼭대기에
이르렀다. 교회회의는 미쳐 날뛰었다. 그들은 인쇄인을 불러서 막말로 욕을 퍼부었다. 그들은
베이엘과 로센을 그 자리에서 내쫓는다고 서슬이 대단했다.
이것이, 스베덴보리가 1769년(81세) 가을, 스웨덴에 상륙하였을 때의 속형편(정세)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