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값이 뛰자 소비자들이 유(油)테크에 나서고 있다. 기름값을 깎아 주거나 일정 금액을 적립해 주는 신용카드를 쓰기도 하고, 정유사 보너스 포인트 카드도 알뜰하게 챙긴다. 하지만 할인 또는 적립 금액이 기껏해야 7% 수준을 넘지 못해 노력에 비해 ‘수익’은 적은 편이다.
기름값을 절약하고 싶은 운전자라면 디젤 차량을 선택하는 게 효율적이다. 디젤차는 가솔린차에 비해 평균 20% 이상 연비가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내에서 디젤 승용차는 아직 큰 인기를 끌지 못하고 있다. 디젤 엔진은 가솔린 엔진에 비해 소음과 진동이 심하고 배기가스 배출량이 많다는 등의 오해 때문이다.
반면 유럽시장에서는 승용디젤 차량의 점유비가 1991년 12%에서 최근 50%대에 육박할 정도로 급성장하고 있다. 특히 프랑스·오스트리아·벨기에 등에서 판매되는 승용차의 70%가량이 디젤이다.
어릴 때부터 디젤 택시에 익숙한 유럽인들은 디젤차에 대한 편견이 덜한 편이다. 메르세데스-벤츠의 블루텍(Bluetech), 아우디의 TDI(Turbo Direct Injection), 푸조의 HDi(high Pressure Direct Injection) 등 세계 최고의 자동차 메이커들도 저마다 독자적으로 개발한 디젤 엔진을 내세우며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가솔린 위주의 자동차 시장을 가지고 있던 미국에서도 디젤차는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2005년에는 하이브리드 차량이 21만 대밖에 판매되지 않았지만 디젤차는 55만 대가 판매됐다.
유럽은 ‘디젤 르네상스’
유럽은 차세대 자동차에서도 디젤이 경쟁력이 있다고 보고 있다. 도요타가 선도하고 있는 하이브리드 차량에 비해 디젤차는 연비나 환경적 측면에서 결코 뒤지지 않는다고 그들은 분석한다.
푸조의 폴츠 전 회장은 “하이브리드 자동차가 환경보존에 기여하는 정도는 매연 여과장치인 DPF (Particulate Filter)가 장착된 디젤 차량에 비해 높지 않다”며 “연비 또한 디젤 차량과 비슷한 수준인 반면 비용면에서 훨씬 비싸기 때문에 비효율적”이라고 말했다.
최근 승용디젤이 개발되면서 디젤 특유의 힘과 연비는 물론 승차감에서도 기존의 가솔린 엔진에 비해 뒤지지 않는 등 기술 발전이 꾸준히 이뤄지고 있다. 승용디젤이란 세단의 장점인 정숙성·승차감·안정성 등을 그대로 살리면서 최첨단 VGT 엔진을 탑재해 경제성과 동력성능을 대폭 향상시킨 승용차다.
가속 성능과 등판 능력·연비·유지비용에서 가솔린 차량보다 좋을 뿐만 아니라 이산화탄소가 가솔린보다 적게 배출되는 친환경 차량이다.
5세대 엔진이라 불리는 VGT 엔진은 CRDi 엔진의 기계식 터보차저(WGT)를 대체해 배기가스를 효율적으로 정밀 제어할 수 있는 전자식 가변용량 터보차저(VGT)를 적용했다.
저속뿐만 아니라 고속까지 전 구간에서 최적의 동력 성능을 발휘하는 최신 디젤 엔진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디젤 엔진은 가솔린 엔진에 비해 가속 성능·힘·연비·내구성·친환경 면에서도 뛰어나다.
디젤 엔진은 고온·고압으로 공기만을 압축하다가 디젤 연료를 고압으로 분사하여 순간적인 마찰에 의해 점화가 이루어지는 구조다. 가솔린 엔진과 달리 불완전 연소가 거의 발생하지 않아 연비가 높다.
보통 승용디젤차는 가솔린 대비 20~30% 연비가 좋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아반떼 디젤의 경우 13.8km/ℓ인 가솔린 모델보다 19.6% 높은 16.5km/ℓ에 달한다. 특히 아반떼 디젤(수동)은 21km/ℓ로 국내 차종 중 연비가 가장 높다.
최근 현대자동차는 고객들을 대상으로 한 번 주유로 서울과 땅끝마을 해남을 왕복(1017km)하는 ‘아반떼 디젤 연비체험 행사’를 열었다. 그 결과 참가한 13팀 모두 추가 주유 없이 1017km를 왕복하고도 기름이 남았다. 또 참가팀 대부분이 공인연비 이상의 결과가 나왔고, 최고 22.7km/ℓ의 연비를 나타내기도 했다.
최근 한 자동차 전문지에서 실시한 쏘나타 디젤 연비 테스트에서도 한 번 주유로 1308km를 완주하기도 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탁월한 연비는 디젤 차량과 가솔린 차량의 가격 차이를 상쇄하고, 주행하면 할수록 가솔린 차량보다 경제적”이라고 밝혔다. 특히 베르나는 4만km를 주행했을 때 차량 구입 대금을 포함, 유지비 측면에서 이득인 것으로 나타났다.
디젤 터보차저를 공급하는 하니웰코리아에서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1500cc급(베르나) 디젤차 구입 후 1년 타고 중고차로 판매하면 가솔린에 비해 83만원, 3년 타고 판매하면 300만원 이득인 것으로 나타났다. 연비와 중고차 가격에서 디젤차가 우수하기 때문이다.
디젤차의 단점으로 손꼽히던 소음, 진동과 매연의 경우도 지속적인 기술향상으로 대폭 개선됐다. 아반떼 가솔린차의 소음은 아이들(공회전) 상태와 100km 주행시 40㏈(데시벨), 66㏈로 디젤차의 45㏈, 66㏈과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주행시에는 소음의 차이가 거의 없다는 의미다.
진동도 아이들 상태에서 가솔린차의 핸들 진동이 110㏈이고 디젤차는 114㏈로 일반인은 거의 느끼지 못할 정도의 미미한 차이가 있다.
특히 최근 현대가 출시한 베라크루즈의 V6 3.0ℓ 디젤 엔진은 최고 출력 240마력, 연비 ℓ당 11km(2륜구동 모델)를 기록하면서도 소음은 가솔린차와 비슷할 정도의 뛰어난 정숙성을 보였다. 물론 배기량에 따라 저속에서 소음이 귀에 거슬리는 차도 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진동과 소음은 상당부분 개선됐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디젤 차량은 또 유럽연합이 환경보호를 위해 제정한 자동차 배기가스 기준인 유로Ⅳ 기준을 만족시키고 있다. 유로Ⅳ는 자동차가 1km를 주행했을 때 배출하는 질소산화물이 1.25g, 미세먼지는 0.025g 이하로 규정하고 있는 엄격한 환경규제다. 특히 디젤 차량은 높은 연비로 연료 소비가 적어 지구 자원을 오래 보존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는 더 환경적이라 할 수 있다.
한국서도 승용디젤 경쟁 치열
VGT 엔진은 앞서 설명한 대로 배기가스 통로를 효율적으로 정밀 제어하기 때문에 동급 가솔린 모델 대비 폭발적인 가속 성능 및 등판 성능을 보이고 있다. 엔진의 회전력, 즉 엔진의 힘을 의미하는 토크에서 그 차이를 확실히 알 수 있다.
현대자동차 아반떼(자동변속기)의 경우 가솔린 모델인 1.6VVT는 최대 토크가 15.6kg. m/4200rpm이지만 디젤 모델인 1.6VGT는 26.5kg. m/2000rpm을 자랑한다. 가솔린은 엔진의 분당 회전 수가 4200번일때 15.6kg의 물체를 1m 끌 수 있다는 것이고, 디젤은 2000번 회전할 때 26.5kg의 물체를 1m 끌 수 있다는 말이다.
디젤차는 무리하게 가속 페달을 밟지 않아도 큰 힘이 난다는 뜻이고, 이 때문에 대형 트럭이나 버스 등 큰 힘을 필요로 하는 차에 디젤 엔진을 장착한다.
지난 11월 한국모터스포츠협회가 실시한 아반떼 디젤과 가솔린의 가속성능 테스트에서 세 차례의 테스트 모두 디젤의 가속성이 우수하다는 점이 증명됐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가속하는 데 걸린 시간은 디젤이 11.26초, 가솔린 모델이 11.72초였고, 400m지점까지 도달하는 데 걸린 시간은 디젤이 17.09초, 가솔린이 17.78초였다.
이미 업계에서 디젤 자동차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꾸준히 디젤 모델을 출시하고 있다. 현대차는 이미 베르나·아반떼·소나타·산타페·베라크루즈 등 소형에서 대형에 이르기까지 디젤 라인업을 갖추고 있다. 기아차도 프라이드를 내세워 디젤 승용차 시장에서 선전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물론 세계의 디젤자동차 시장에서 한발 앞서나가겠다는 계획이다.
지난해 5월 국산차 업계에서 처음 출시한 프라이드 디젤 모델의 경우 올 들어 10월까지 총 8501대가 팔려 같은 기간 전체 판매 대수(1만9000대)의 44.7%를 차지했다. GM대우도 토스카 디젤을 지난 11월 내놓으면서 경쟁에 뛰어들었고, 르노삼성도 내년 중에 SM3 디젤을 내놓을 예정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승용디젤 차량이 성능이나 경제적 측면에서 우수하기 때문에 유럽과 미국에서 판매가 늘고 있다”며 “연비가 중요한 소형차는 물론 앞으로는 중형차 이상에서도 디젤 모델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