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척의 땅에서 보물섬으로 변한 ‘남해’
그곳에 가면 마음 품새도 넉넉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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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마을', 독일에서 들여온 자재로 지은 집들이 이국적이며, 바로 아래 남해 바다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어 더없이 좋은 곳이다.
남해는 대교가 없다면 분명 한점 섬이다. 다리를 놓고 길을 닦아 육지처럼 된 이후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며 1년 내내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넘실대는 바다, 포근한 어머니 품새 같은 그곳에는 자연풍광을 이용한 체험 프로그램이 발달돼 있다.
먼저 1960~70년대 간호사와 광부로 서독에 건너가 정착했던 한국 이주민들의 귀향을 위해 조성된 ‘독일마을'이 우릴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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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마을을 가려면 창선대교를 건너 좌회전하여 2차선 바닷가를 왼쪽으로 끼고 8km정도를 달려야 한다. 쪽빛바다를 바라다보는 것만으로도 왠지 행복해진다.
독일에 외국인 노동자인 간호사, 광부로 파독되어 한국경제성장에 밑거름이 되었던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 독일교포, 그들의 귀국과 남은 여생동안 국내 정착을 돕기 위해 남해군과 정부가 마을을 분양한 것.
독일의 선진건축양식을 엿보며 독일식 홈스테이를 통해 유럽의 선진 주거생활양식을 직접 체험할 수도 있다. 지금처럼 여름방학 또는 휴가철에는 민박 예약을 미리 해야 하며 성수기와 비수기 때 이용료는 조금 차이가 있을 정도.
현재 20여 집들이 들어서 있고 앞으로 20채가 더 들어설 예정이라 여기 저기 공사가 진행중이다. 약간 어수선한 분위기지만, 이미 민박 운영을 하고 있는 곳은 관리가 잘돼 한 번 다녀간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고 있다.
독일마을은 가난에 찌들어 꿈도 희망도 가질 수 없었던 1960년대 젊은이들은 남자는 광부란 이름으로, 여자는 간호사라는 이름으로 이역만리 타국 땅 독일로 떠난 사람들의 땀방울로 조성된 것이다.
교포들은 파독하여 조국에서 못 이룬 꿈을 위해 이를 악물고 버텨야 했고, 가족을 위해 악착같이 살아남아야 했다. 당시 그들이 벌어들인 외화는 3500만 불로, 우리나라 총 수출액의 30%에 해당하는 거대한 금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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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개 층을 이룬 남해 가천 '다랭이논'.
독일마을에서 잠시 머물다 후텁지근하지만 부는 바람에 고마움을 전하며 가천 다랭이 마을로 옮겼다.
설흘산 자락이 급하게 바다로 치 내린 기슭에 집과 논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논 계단 수가 108개나 된다고 한다. 삿갓에 감춰질 정도로 작다는 삿갓배미에서부터 300평짜리 너른 논까지 680여 개의 논이 바다에서부터 켜켜이 쌓여있다.
밭 갈던 소도 한 눈 팔면 절벽으로 떨어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가파른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는 이곳은 농경지가 적어 다랑이논을 만들었는데, 산 능선을 그대로 따른 논두렁은 영락없이 지도의 등고선 모양이다. 석축으로 떠받친 논두렁은 주먹만한 것부터 머리통만한 것까지 일일이 손으로 쌓아 올렸을 것이다. 순간 나도 모르게 마음이 짠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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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무덤
가파른 길을 달리다시피 내려가다 밥무덤 앞에서 잠시 멈췄다. 밥무덤은 마을에 3군데나 자리하고 있는데, 음력 10월 15일 저녁 8시경에 주민들이 모여서 중앙에서 통제를 지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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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 미륵바위로도 불리는 가천 암수바위가 무척 인상적이다.
가천마을에 간다면 또 하나 놓치지 말아야 할 볼거리가 있다. 주택가가 끝나는 지점에 잘생긴 자연석 두 개가 보이는데, 이 바위가 가천 암수바위이다. 1990년에 경상남도 민속자료 제 13호로 지정된 암수바위는 전국에서 가장 잘생긴 남녀 성기 형상의 바위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일명 미륵바위라고도 불린다.
영화 ‘맨발의 기봉이’ 촬영지로도 유명한 이곳에는 영화 속 기봉이의 집 세트장이 그대로 있다. 그 아래 할머니가 손수 빚은 맛좋은 막걸리와 가오리찜으로 목을 축이고 배를 채워 다시 여정을 시작했다.
고은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