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가정복지 다문화 신문
2016년 7월 15일 금요일 <문화면> 소프라노 민은홍 기사
노래 듣기 원하는 곳이 바로 무대
받은 도움 더 큰 나눔으로 봉사하는 소프라노 민은홍씨
소프라노 민은홍(37·춘천시 서면·강원대 외래교수).
그녀에겐 늘 도움의 손길이 있었다.
삶과 죽음의 고비에서 끈을 놓지 않았던 어머니, 성악가의 꿈을 이루게 해 준 은사님,
잃어버린 목소리를 되찾게 해준 은인….
그녀의 삶엔 고비마다 보이지 않는 손길이 지켜줬다.
목소리에 담긴 그윽한 울림과 따뜻함은 많은 이들에게 받은 사랑의 징표일까?
어머니, 나의 어머니
세 살 되던 해 뇌막염으로 혼수상태에 빠졌다.
전신이 마비되고 말도 할 수 없을 만큼 병증이 깊었다.
“약물과 주사 치료를 시작했 다.
어머니는 하루에 두 번 온 몸이 늘어진 딸을 업고 선착장까지 걸어가 배를 타고 시내 병원으로 갔다.
자식을 살리기 위해 하루 도 빠지지 않고 1년을 치료에 매달렸다.
자식을 살려야 한다는 굳 은 마음에 힘든 줄도 몰랐다고 하셨다.
어머니가 아니었다면 살지 못했을 것이다.”
묵묵히 지켜보며 쉬지 않았던 부모님의 기도가 이루어졌음인가,
치료가 끝나갈 무렵 말문이 트이고 마비됐던 몸도 정상을 찾아갔다.
재능에 날개를 달아 주신 윤병하 선생님
초교 3학년 때 어머니를 졸라 피아노 학원에 등록했다.
학교에서 배 터까지 30분을 걸어 배를 타고 시내로 나갔다.
피아노를 한 시간 치고 다시 배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것을 초등학교 졸업 때까지 되풀이 했다.
“어려서 꿈은 엄마의 바램처럼 어른이 되면 피아노학원 원장님이 되는 것이었다.
중학교 때 윤병하 선생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성악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음악시간, 반주자여서 가창시험에서 제외됐지만 선생님은 ‘너도 한번 해봐라’며 노래를 시켰다.
소녀 은홍의 노래를 들은 선생님이 “너 집이 어디냐. 부모님을 만나야 겠다.”며 앞장 세웠다.
노래에 재능이 있으리란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한 부모님이 의아해 하자
‘부모님이 가르칠 형편이 안 된다면 내가 가르치겠다’며 부모님을 설득했다.
유학의 길 터 준
류재광 교수님과 김주영 시몬 신부님
강원대 대학원 재학 중이던 어느 봄날, 동네잔치인 ‘서면인의 날’ 에 초청돼 축가를 불렀다.
그녀의 공연을 지켜보던 이웃이 유학을 권유했다.
이탈리아에서 유학한 아들(삼육대 류재광 교수)에게 그녀를 소개하며 유학의 길이 열렸다.
“태어나 한 번도 부모님을 떠난 적도 없었고 유학은 꿈도 꾸지 않았다.
유학을 결정하자 아버지는 ‘너는 할 수 있다.
넓은 곳으로 나가 날개를 맘껏 펴라’며 용기를 주셨다.”
류교수는 이탈리아에 있는 제자들을 동원해 학교 선정과 입학 절차를 도우며 유학의 길을 열어줬다.
유학을 앞두고 어머니가 사고를 당했다.
6개월 여 동안 어머니를 대신해 농사일을 도왔다.
“아버지와 농사를 지으면서 비로소 얼마나 힘들게 일하시는지 실감했다.
부모님에 대한 사랑도 깊어졌고 유학생활을 견딜 만큼 체력도 좋아졌다.”
로마에서는 김주영 시몬 신부가 그녀를 기다렸다.
거처할 수녀원을 소개해 안전한 둥지로 그녀를 데려다줬다.
“매일 미사에 참여할 수 있어서 좋았다.
세상에서 가장 안전 한 곳에서 보호받는 안락함으로 공부에만 매진할 수 있었다.
유학 초년생의 연주 파트너 노리스 할아버지
그녀가 2003년 입 학한 로마의 산타 체칠리아 국립음악원은 이탈리아에서 가장 유서 깊은 곳이다.
소프라노 조수미의 출신학교다.
입학 실기시험을 치르는 그녀를 유심히 본 안젤로(현지 매니저역)씨의 소개로
오르가니스트이며 작곡가인 노리스 할아버지를 만났다.
그녀의 노래를 들은 노리스 할아버지가 즉석에서 함께 연주하자고 제의해 왔다.
“아버지가 다치셔서 어머니 혼자 집안을 꾸려나가던 때였다.
마침 유로화도 많이 올라 힘든 상황이었다.
함께 연주여행을 하며 생활비를 벌었다.
아끼던 자작곡 ‘자비로운 성모’를 유산으로 주셨다.”
목소리를 되찾아 준 레베카 베르그 선생님
유학 3년 만에 큰 위기가 찾아왔다.
수석입학으로 2년차로 월반을 할 만큼 재능과 노력을 인정받았으나
4년차 통과시험을 앞두고 갑자기 목 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노래에 욕심을 부려 성대를 혹사시킨 결과였다.
내가 할 줄 아는 것은 노래 밖에 없었다.
이 상황을 ‘엄마, 아빠께 어떻게 얘길 해야 하나’ 그 생각 밖에 나질 않았다.”
1주일 고민 끝에 담당교수를 찾아갔다.
레베카 베르그 선생님은 도움을 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선생님은 ‘좋은 발성을 하면 성대 결절을 고칠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줬다.
1년 동안 노래를 하지 못하고 발성연습만 했다.”
1년 후 치른 중요한 테스트, 졸업시험에서 10점 만점에 9.75을 받았다.
모든 심사위원이 놀랐고, 자신도 놀라운 결과였다.
레베카 선생은 ‘이젠 엄마가 필요 없다. 하고 싶은 대로 하라’며 어려움을 이겨 낸 제자를 독려했다.
그녀에게 음악이란 원하는 모든 사람들이 공유하는 것.
“클래식이 반드시 격조 있는 자리에서 연주되어야 한다는 원칙은 없다.
배움의 높낮이, 경제적 논리와 상관없이 음악은 듣고 싶은 이들의 것이다.
음악을 연주하는데 하찮은 장소란 없다.
어느 곳이든 노래를 듣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갈 것이다.”
그녀의 노래엔 날개가 달렸다.
아름다운 목소리로 인해 축하의 자리는 더 빛이 나고 초라한 장소는 기쁨의 자리로 변한다.
빛나는 재능으로 세상을 아름 답게 만드는 소프라노 민은홍에게 박수를 보낸다.
전경해 기자.
김현숙 시인, 김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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