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9회 산행일지 : 바위산의 진수
(서울시 도봉구 도봉산)
일시 : 2010년 1월 23(토)
날씨 : 맑음
며칠 날씨가 풀리는 듯 하더니 어제부터 다시 추워졌다. 지난 달 관악산에 이어 연이은 서울행이다. 서울이라는 도시에 사는 사람은 자녀교육과 일자리의 기회 외에도 많은 문화적 혜택과 함께 특별시민이란 자부심 등 여러 장점들이 높은 집값과 생활비, 교통 등 단점들을 덮고도 남음이 있어 서울을 고향처럼 푸근하게 여기고 좋아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비록 퇴직 후에라도 여러 핑계를 끌어서라도 고집스럽게 서울에 살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내 두형님도 은퇴는 오래 전에 하셨지만 막내 동생이 고향으로 오십사 하고 그렇게 권유해도 결혼까지 마친 다 큰 자녀들을 핑계 삼아 아직 그 자리에 똑같이 살고 계신다. 서울에 살아보지도 않은 사람들에게 서울이란 대부분 살기에 많은 돈이 들고, 정붙이기에 어렵고, 공해와 복잡함 등을 선입관적으로 내세우며 살아가기엔 힘에 부치고 살고 싶지도 않은 괴물같은 도시라고 치부하기 일쑤다. 2년 가까이 서울부근에서 직장생활을 한 적이 있는 내게서 서울이란 그저 ‘살아볼 수도 있는 공간’과 ‘편리하고 좋아 살고 싶다’의 중간, 그 정도의 지점에 있다. 한국의 100대 명산 중 서울지역에 위치한 산은 관악산, 북한산, 도봉산인데 77회 북한산, 88회 관악산에 이어 오늘 도봉산이 그 마지막이다. 매송이 노래처럼 말하는 ‘강북5산 종주’가 남아 있지만 그 부분은 필수 아닌 선택사항이니 산을 목적으로 다시는 서울을 찾기는 당분간 어려울 것 같다. 이렇게 몰아치기로 서울을 찾은 것은 아마도 ‘숙제하기’의 표현이 가장 적합한 것 같다. 자발적으로 하기에는 썩 마음에 내키지는 않지만 반드시 해야 하는 그런 숙제 말이다.
다른 날들보다는 이른 시간인 7시30분 서대구 IC에 모였다. 물리적인 거리는 강원도나 경기도 그리고 남도의 먼 산들보다는 가깝지만 아무래도 서울이라는 대도시가 주는 교통의 중압감은 다르다. 집에서 나설 때는 제법 새벽 기운이 남아있었는데 중부내륙고속도에 얹자 곧 해가 뜬다. 괴산휴게소에서 평소의 자판기 커피에서 한 단계 격상된 아메리카노 한 잔 씩 들고 따뜻한 온기를 즐기며 휴게소내의 홍보용 안마의자에 줄지어 앉아 한참을 쉬었다. 동서울 IC를 지나 외곽순환고속도를 타고 네비에 의지하여 도봉산 주차장에 10시 40분에 도착, 종일 10,000원의 비싼 주차비를 지불하고 11시에 도착한다는 후배 손교수를 기다린다. 서울이라 그런지 참으로 사람이 많다. 추운 날씨에도 무슨 장터 같이 분주하고 오가는 사람의 차림새도 화려하다. 시간을 맞추어 도착한 후배 손교수와 함께 먼저 식당에 들었다. 서울이기에 총무는 아예 점심 준비를 해오지도 않았다. 라면 넷과 만둣국 하나를 시켰는데 만두국 대신 떡국이 나오기에 떡국을 받아놓고 다시 만두국을 추가로 주문하였다. 주인은 미안했던지 떡국값은 받지 않겠다고 했으나 여섯 그릇 모두 계산하였더니 서비스라며 커피를 내어 온다. 11시 30분, 벌써 점심이 끝났다. 인파와 함께 시장과 같은 입구길을 지나 시멘트로 덥힌 도봉산 길로 접어든다. 계곡의 얼음이 두껍고 응달엔 쌓인 눈이 그대로다. 오늘은 수도 없이 많은 등산로 중 금강암-도봉대피소-만월암-포대정상-자운봉-도봉주능선-우이봉-보문능선을 거쳐 하산하기로 작정하고 광륜사쪽으로 시작한다.
섹소폰을 부는 아저씨를 지나 삼거리까지 시멘트 길이 이어진다. 도봉산탐방안내도 옆에는 오늘 예정된 우이봉 경유 출발지점까지의 칼로리 지도가 있는데 9171보로 895칼로리가 소모된다고 표시되어 있다. 이곳 삼거리에서 우측의 자운봉 방향으로 이제 본격적인 산행길로 접어든다. 산악구조대 부근에 이르면 정상의 우람한 바위덩어리가 훨씬 가까이 보인다. ‘인절미바위’라는 바둑판 모양의 줄이 난 바위와 그 설명도 유익하다. 우측 작은 계곡엔 하얀 얼음폭포가 걸쳐있다. 12시 30분, 만월암 바로 아래의 너른 바위에서 바나나를 먹으며 숨을 고른다.
다소 힘에 부치는 경사길을 20여분 오르면 포대정상에 이른다. 이 포대능선에서부터는 능선길이긴 하나 자운봉까지는 오르막과 바윗길이 험하게 가파른 부분도 있어 다소 위험해 보이기도 하는 곳이 더러 있다. 포대능선의 바위 위에서 바라보는 자운봉(740m), 만장봉(718m), 선인봉(708m)의 위용이 대단하다. 눈에 잘 띄는 곳곳에는 산짐승들을 위한 옥수수와 고구마 등이 뿌려져 있다. 일행 중 제일 젊은 교수가 조금씩 늦어지더니 10여분 후에 우리가 기다리는 곳에 얼굴을 보이더니 다시 먼저 자리에 앉는다. 아마 바쁜 직장 생활에 운동이 부족했나 보다. 준비해 온 따뜻한 물을 한잔하니 몸이 한결 가벼워지는 듯하다. 손교수는 한국증권금융에 근무하는 후배인데 그 이름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물으니 대학 당시 친구들이 부모님께 자기 이름을 많이 팔아먹었다는 얘기며 또 한 때 자기 회사의 4대 거짓말, 즉 직책이 팀장인 박상무, 키가 162인 사장 김거인, 또 키가 160인 유중형, 그리고 나면서부터 지금까지 교수인 자기 이름으로 크게 웃긴다.
도봉산 바위산행의 백미는 바로 ‘Y계곡 구간’이 아닐까 한다. Y계곡이 시작하는 곳에는 우회로 표시와 함께 안전산행을 위하여 우회하라는 권고 간판이 서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좁고 험한 이 구간을 지나기에 정체가 일어난다. 어느 부부가 기분 좋게 도봉산을 왔다가 이 구간에서 아내가 남편을 원망하며 무척 화를 내었다는 뒷사람의 얘기를 들으며 천천히 바위를 즐겼다. 마지막 오르막 부분의 바위틈은 뚱뚱한 사람에게는 다소 부담스러울 정도로 좁은 간격이다. 청죽이 앞서 빠져나가며 “배에 기스 나겠다”고 너스레를 떤다. 이 구간을 나오니 앞쪽에 일방통행을 알리는 현수막이 붙어 있다. 즉, 주말과 공휴일에는 포대능선에서 신선대 방향으로의 일방통행만 하도록 한다는 내용이다. 오늘 우리가 만약 코스를 거꾸로 잡았다면 Y계곡은 구경도 못하고 지나쳤음에 틀림없다. Y계곡 출구 앞, 맨 발에 검정고무신을 신은 눈에 띄는 아저씨는 다름 아닌 막걸리를 팔고 있었다. 빈 막걸리 병을 반을 잘라 두껑을 막은 윗부분을 잔으로 사용하는데 안주도 없이 한잔(반병)에 2,000원씩 팔고 있었다. 옆에 세워둔 배낭에는 막걸리가 가득 들어있을 터였다.
자운봉 부근에 사람이 많기도 하고 올랐다가 되돌아내려 오는 것도 마음에 차지 않아 생략하고 우이봉 방향을 향하다가 좌측의 볕이 잘 드는 곳에 휴식을 취한다. 생각보다 덩치 큰 까마귀들과 건너편 바위 위에 모여 앉은 고양이 가족들을 보며 곶감을 나누다. 도봉주능선에서 우측의 송추남능선으로 이어지는 곳의 나란한 오봉이 줄지어 있다. 우이암을 200미터 앞둔 지점에서 좌측의 길로 들어서면 우이암을 거치지 않고 보문능선을 만난다. 거의 평길과 같은 능선을 한참 지난 후에야 경사의 하산길로 접어 들어 4시가 다되어 하산완료. 입구의 여러 식당 중 ‘대를 잇는 맛집 손두부’에 들러 저녁식사를 한 후 먼 길을 되돌아 왔다.
登?苦?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