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담양을 사랑하고 아끼는 가사문학 해설가 김정숙이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관광과 여행의 차이를 아시는지요.
관광은 어떤 곳에 가면 눈으로만 보면서 먹고 마시고 상품을 사는데에 먼저 관심이 쏟아지는 것은 관광이라 할수 있습니다.
그러면 여행에 대하서 알아보죠.
여행은 유적지에 가서 조상들의 숨결을 느끼며 그곳의 경치와 유래, 인심을 가슴속으로 느끼며 체험하는 것이 여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담양을 누구보다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으로써 담양에 오시는 어떤 분이라도 아! 이곳에 오면 담양의 인심을 느낄 수 있고 하루가 아닌 2박3일이라도 부족하다는 것을 알릴수 있다는 자부심과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담양에는 누정문화 뿐만이 아니라 곳곳에 아름다운 곳이 많고 도예촌과 더불어 구석구석 경치 좋은 곳을 알릴 수 있어 정말 행복합니다. 현장체험을 하면서 느끼고 설명을 듣고 다시 찾아오는 사람들을 보면서 보람과 기쁨을 느끼며 담양이 고향이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단체로 오신분들과 원하시는 분에게는 마지막으로 작은 음악회도 마련하여 우리 남쪽 특유의 맛과 멋을 보여 드리고 있습니다.
그럼 먼저 담양군의 연혁에 대하여 알려 드리겠습니다.
◎담양군의 연혁
담양군은 전라남도 최북단에 위치하고 있으며 1개읍 11개면의 행정구역을 이루고 있습니다.
○ 선사시대 ⇒ 술지 1 호
○ 마한·백제시대 ⇒ 추자혜군
○ 고려 성종 14년 - 추성군
○ 고려 현종 9년 - 담양군
○ 1914년 3월1일 - 담양군과 창평군이 통폐합하여 담양군으로 현재에 이름.
가사문화권이란?
16세기에 이르러 각종 사화로 인하여 정계에서 은퇴한 선비들이 담양을 중심으로 일련의 누정과 별서정원을 만들어 놓고 강호 자연을 벗하면서 시화를 열고 풍류를 즐기면서 자연스럽게 유학자들과 그들이 활동하는 장소를 중심으로 가사문화가 형성된 곳을 가사문화권이라 합니다.
가사문화권이란 이러한 시가 모임의 활동장소였던 누정과 별서정원 등의 유적지에서 나타난 "가사문화"라는 공통적인 문화 주체를 갖는 권역을 의미하고, 이러한 활동무대에서 활발히 펼쳐진 것이 가사문학입니다.
◎ 가사문화권의 특성
· 전통적 자연주의와 풍류사상이 깃들어 있습니다.
· 가사문학의 모임장소로서의 누정과 별서정원 등의 문화 유적지가 있습니다.
· 가사문학의 유적지를 포함한 주변지역은 자연의 경치가 뛰어나며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 건축적, 조경학적, 문학적으로 다양한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가사란?
조선시대에 들어와 발달한 우리나라 고유의 문학 형태입니다.
형태적 특징은 3.4조,4.4조의 음수율을 가진 구절이 대구를 이루어 1행이 되며 대체로 100행 내외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운문 문학이 산문묵학으로 넘어가는 중간 형식이며 시조와 같은 단형시가 아니라 정형시입니다.
대상이나 감정을 표현할 때 길고 완만한 호흡으로 노래하면 가사가 되고 그것을 짧고 간렬하게 함축적으로 표현하면 시조가 됩니다.
정자란 무엇인가?
가사문학권 지역은 식영정을 비롯하여 유명한 정자들이 30여개가 모여있고 그래서 이 지역을 정자골이라 합니다. 우리나라 역사에 있어서 선비들의 지적인 활동공간으로 무엇보다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통해 합일하는 공간을 제공하는 가장 한국적인 건축형식의 하나입니다. 옛 사람들은 물과 돌과 수려한 자연이 이루어진 곳에 중접을 두었습니다.
면앙정(지방기념물 제 6호)
봉산면 제월리 제월봉 자락에 위치.
송순이 조선 중종 28년(1533) 중추부사 대사헌 관직을 그만두고 고향인 이곳에 내려와 정자를 짓고 퇴계 이황 선생을 비롯한 강호 제헌들과 학문을 논하고 후학을 길러내였던 유서 깊은 곳. 면앙정 손순의 문하에는 제봉 고경명, 고봉기대승, 백홍임제, 송강정철 등이 있으며 많은 작품 활동을 통해 면앙정가를 비롯한 면앙정 오륜가 등을 집필하였다. 또한 면앙정 주변 경치를 노래한 면앙정 30영과 면앙정 삼언가 등이 있으며 정자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이며 추녀 끝은 4개의 활주가 받치고 있습니다. 면앙정 송순은 욕심이 없고 관대하며 유순한 학자로 기록되었고, 벼슬살이를 했던 생애 동안 그 수 많았았던 전쟁의 와중에도 안주하지 않고 순탄하게 관직을 수행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송강정(지방기념물 제 1호)
고서면 원강리 산 1번지에 위치
송강정은 조선 선조 17년(1584)에 송강정철이 대사헌을 지내다 당쟁으로 물러나 죽녹정을 중수하여 송강정이라 이름하고 이곳에 4년동안 은거하면서 유명한 사미인곡과 속미인곡을 비롯한 수많은 가사와 단가를 지었던 곳으로 사미인곡은 선조 대왕을 사모하는 자신의 심정을 남편과 이별하고 사는 부인의 심사에 비켜 자신의 충정을 고백한 내용으로 아름다운 가사문학의 정취가 베어있다. 정자 앞을 흐르는 증암천은 당시에는 송강이라 했으며 정철의 호도 이 강이름을 따 지었다고 합니다.
송강정철의 성격은 곧고 바른말만 하는 그를 좋아하는 사람보다는 적대시하는 사람들이 많아 왕의 총애에도 불구 하고 정치적 부침을 거듭하였습니다.
정철의 삶은 송강정에서 멀지 않은 원림의 주인이었던 양산보의 삶과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비슷한 시대를 살았지만 시대와 세상 앞에서의 그들의 자세는 사뭇 달랐습니다. 정철은 한사코 세상으로 나아가려 했고, 양산보는 한번 물러난 후 다시는 세상에 뜻을 두지 않았습니다. 정철은 정적들에 의해 여러번 세상 밖으로 내처졋지만, 세상에 대한 욕심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고, 또 번번이 권력의 중심으로 복귀하곤 했습니다. 그는 탄핵을 받아 송강정에 내려와 있는 동안에도 「사미인곡」과 「속미인곡」을 지어 사랑에 빠진 연인의 수사를 통해 세상으로 나아가려는 강렬한 의지를 표현했습니다. 그는 권력의 이해 관계 앞에서는, 자신 앞의 섬세한 시인을 업악하며, 정적들을 향해 잔인하고 모진 칼날을 휘두를 줄도 알았습니다. 정철과 양산보의 세계관의 차이는, 그들의 정신이 투사된 정자와 원림이, 하나는 세상을 굽어보는 언덕에, 다른 하나는 대숲으로 가리워진 계곡에 자리잡고 있는 데서도 드러납니다.
소쇄원(사적 304호로 지정)
담양 남면 지곡리 123소재.
한국 민간 정원의 원형을 간직한 곳으로 자연에 대한 인간의 예의가 가장 탁월하게 드러난 문화유산의 보배라고 불리는 곳입니다. 전체적인 면적은 1400여평의 공간에 불과 하지만 그안에 주인의 의도에서 조성된 물이나, 돌, 나무와 꽃 등의 각각의 의미와 상징성을 뛰어넘어 그 시대와의 대화를 연결하는 끈의 역할을 합니다.
소쇄원은 양산보가 30대부터 짓기 시작하여 40대에 완성한 것으로 보이며 이때 면앙정을 지었던 송순과 김인후가 도움을 주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소쇄원 정원은 자연 그대로를 살리면서 꼭 필요한 부분에 적절하지 인공을 가하였습니다. 소쇄라는 말은 본래 공덕장의 북산이문에 나온 말로 깨끗하며 시원함을 의미합니다. 양산보는 그 뜻을 따서 정원의 이름을 붙이고 그 주인이라는 뜻에서 자신의 호를 소쇄옹이라 했습니다.
소쇄처사 양산보는 1503년에 태어나 1557년 생을 마감했습니다.
메타세과이어 가로수길
담양읍내에서 전북 순창으로 이어지는 국도를 달리노라면 색다른 감흥을 불러 일으키는 메타세콰이어 가로수길을 만날 수 있습니다.
1947년 당시 내무부로부터 시범 가로수로 지정된 가로수 숲길이며, 봄에는 연초록색의 나뭇잎과 여름에는 시원한 숲속 동굴을 연상케하고 가을에는 단풍이 들어 연인들의 가슴을 한껏 낭만적이게 할 것이며 겨울에는 씩씩한 남정네의 힘찬 몸직과 눈이 오면 눈꼿 터널을 이루어 환상적인 모습으로 변해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해줄 것입니다.
메타세콰이어는 현대까지 살아남은 화석 식물의 한가지인 삼나무와 낙엽, 침엽교목이라 합니다. 또한 가로수 길이 시작되는 담양의 종대 삼거리에는 보물 제 505호인 석당간과 보물 제 506호인 오층석탑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