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드라마 서울1945 에서 두가지 큰 수수께끼는
박창주(김창룡)는 평생 단 하루도 경찰 신분이었던 적이 없는데
어째서 경찰로 등장하느냐의 문제와,
대한민국 군대에는 방첩대라는 것이 존재한 적이 없는데
어떻게 박창주(김창룡)가 방첩대 장교로 등장하느냐의 문제이다.
하여간 이 드라마의 요술은 대단하다.
처음에는 방첩대가 경찰복을 입고 나타나며 장택상씨 지휘를 받는다.
어느날 방첩대 제복이 군복으로 바뀌더니
62회에서 방첩대가 특무대로 확장되었다고 한다.
그게 아니라, 방첩대(CIS)와 특무대(CIS)가 똑같은 명칭인데 말이다.
미군 방첩대와 혼동되지 않도록 국군 방첩遊?특무대로 불렸다.
박창주는 전투병과 군인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총을 쏘지 않았다.
1950년부터 박창주(김창룡) 대위는 육군본부 정보4과에서 근무하였는데,
사람들이 "육군본부 정보4과"의 약칭으로 특무대라고 불렀다.
방첩대와 특무대는 다르다.
미군 C.I.C. 는 방첩대라고 번역한다.
그러나, "육군본부 정보4과"는 아직 하나의 독립된 부대가 아니었다.
단지 별명이 특무대였을 뿐이었다.
특무대가 발전하여 보안사로 성장하고 다시 명칭이 기무사로 바뀌었으며,
특무대 출신 중에서 군복을 벗게 하여 1961년 미국 C.I.A. 에 상응하는 정보기관을 출범시킨 것이
중엉정보부의 시작이었으며, 훗날, 안기부, 국정원 등으로 그 명칭이 바뀌었다.
그래서 군부의 기무사든 정부의 국정원이든 한국 정보 업무의 첫 시작이
특무대였으며, 특무대 창설은 박창주(김창룡) 대위의 공이었으므로
그 명칭을 바꾸면 안된다.
박창주(김창룡) 대위는 특무대 출범 초창기부터 혁혁한 공을 세웠다.
한국 전쟁 직전에 군부 고위층 누군가가 평양의 지령을 받아
한국군 삼분의 일을 휴가 보내고, 전방과 후방의 병력을 교체시키고,
육본과 수도권 장교들을 그 다음날까지 계속되는 술파티에 모두 초대하고,
전선 상황과 다른 뉴스를 방송하여, 예를 들어 전방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등의
허위 정보를 퍼뜨려 아군을 내부로부터 교란시키고 있었다.
외부의 적과 내부의 적 때문에 조국이 그처럼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해 있었을 때에
박창주(김창룡) 대위는 북한군의 남침이 시작된 새벽 3시부터
육본 지하벙커에서 밤샘근무를 하면서 적군이 어떤 작전을 가지고 어느 경로로
남침하고 있는지를 파악하여 한국전쟁 발발 사실을 명확하게 공식 발표하였다.
박창주(김창룡) 대위의 발표가 있었기에 한국 전쟁 발발 사실이 전세계에 알려지고
유엔에 그 문제가 상정되게 되었다.
몸바쳐 조국을 지키던 박창주(김창룡)는 1956년 결국 조국의 적 총에 맞아 쓰러지지만
그가 양성한 특무대원들이 훗날 중앙정보부 산업첩보 요원들이 되었다.
그리고, 1960~70년대에 중앙정보부 산업첩보 능력이 세계 1위였다.
1960년 초의 한국은 연필 하나 생산할 능력이 없는 나라였다.
그러나, 1970년대 말에 한국은 세계 5위 안에 드는 중화학공업 선진국이 되었다.
그것은 박정희 대통령의 산업첩보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정보 전문가들이 있었기 때문인데,
이렇듯 정보 분야 전문 인력을 양성함으로
박창주는 훗날의 한국 경제 발전에도 크게 기여하였던 것이었다.
62. 프랜세스카 영부인 비망록 / 북괴, 유엔군패배 유언비어 퍼뜨려 뒤숭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