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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12시 30분이면 문을 닫는 '옛촌'에 젊은 층도 즐겨 찾는다..../이강민(lgm19740@jjan.kr) |
노란 양은솥은 찌그러질 대로 찌그러지고 달궈질 대로 달궈졌다. 뚜껑을 여니 천장 높은 곳까지 하얀 김이 올라퍼진다. '보글보글'. 소리까지 내며 끓고있는 돼지고기 김치찜에 침부터 고인다.
오래 묵은 김치의 간이 배도록 푹 쪄낸 돼지고기는 젓가락을 대자마다 결을 따라 갈라진다. 여기에 구수한 막걸리 한잔이면, 캬-. 그래, 바로 이 맛이다.
전주시 서신동 '옛촌막걸리'에는 해 떨어지기가 무섭게 손님들이 들이닥친다.
89년생들이 오는 물 좋은 막걸리집이라면서도 60대 할아버지에게도 '민증' 좀 보자며 손 내미는 최인덕씨(47)가 '옛촌막걸리' 전주서신본점 대표다.
막걸리집은 푸짐해야한다는 최인덕씨가 김치찜을 담고 있다..../이강민(lgm19740@jjan.kr) |
어떤 손님이라도 한번 보면 기억하는 눈썰미에 곰살맞은 성격까지, 전주 시내에서는 '통 큰 이모'로 통한다. '이모' 뿐만이 아니다. 때로는 '엄마' '누나' '언니' 등 나이와 촌수를 무시한 호칭들이 막걸리사발 위로 거침없이 오간다. '사장님'이라는 호칭이 제일 불편(?)하다.
"막걸리집은 일단 푸짐해야죠. 막걸리가 곡주라서 빈 속에 밥 대용으로 먹으러 오는 분들이 많거든요. 그래서 처음부터 푸성귀보다는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안주들을 '팍팍' 내놨죠."
'옛촌'이 유명한 것은 안주 몫이 크다. 계절마다 다르지만, 막걸리 한 주전자를 시키면 옛날 맛 그대로인 돼지고기 김치찜과 담백하면서 시원한 삼계탕, 쫀득쫀득 고소한 족발이 깔린다. 두 주전자 째는 계란후라이, 해물전, 생선구이가 나오고, 더 마시다 보면 대하소금구이에 낙지도 맛볼 수 있다. 고급안주인 데다, 그 때 그 때 즉석에서 만든 것들이라 맛이 좋다. '옛촌' 오는 날이면 입이 호강하는 날이다.
"막걸리요? 옛날에는 어떻게 먹는 건지도 몰랐어요. 막걸리집이야 먹고 살려고 시작했죠. 다들 힘들게 살잖아요."
자영업을 하던 남편 일이 부도가 났고 보증을 잘못 서서 집 한 채 값을 날리기도 했다. 전세집 얻을 돈 3000만원만 들고 익산에서 전주로 왔다. 처음에는 음식점 매니저로 취직했다. 눈치가 빨라 6∼7년 일하는 동안 손님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이후에는 동생과 함께 고기집을 하기도 했다.
'옛촌'을 연 것은 2004년. 그 때도 경기가 좋지 않아 바람 타지 않는 '종목'을 찾다보니 막걸리집이 눈에 띄었다. 오빠가 있지만 딸 중에서는 8남매 중 큰 딸이었던 그는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농사 짓는 부모님 '샛거리'를 날랐었다"며 "소띠가 소가 한창 논 갈 때인 6월에 태어났으니 일할 팔자였다 보다"고 웃었다.
"전주 시내 막걸리집을 돌아보면서 두달 정도는 메뉴 개발에만 매달렸어요. 스무번도 넘게 서점을 다니면서 '맛집' '맛기행'에 관한 책들을 모조리 사들였어요. 손님들 시식도 하고 주변 평가도 받으면서 '옛촌'만의 안주를 개발했죠."
딱 한달 만에 입소문이 났다. 문 밖에는 번호표를 들고 대기하는 손님들이 생겨났다. 주말이면 70%가 외지 사람. 2년 간 외국에 나가있던 단골은 귀국하자마자 '옛촌'부터 들렀다고 했다. 눈치 빠른 손님들은 전화로 예약부터 한다.
"지금은 많이 없어졌지만, 아직도 옛날 대포집을 생각하고 오는 손님들이 있으세요. 같이 술한잔 하자고 하면 '술 마시면 사장님한테 짤린다'고 거절하죠. 그럴 때면 미안한 마음에 안주를 더 드려요."
막걸리집을 하면서부터는 아예 화장을 하지 않는다는 최씨. 옷차림도 직원들과 똑같이 빨간 유니폼 티에 청바지를 입는다. 신발도 운동화 아니면 슬리퍼. 주방이고 홀이고 바쁘게 뛰어다니다 보면 멋낼 시간도 없다. 덕분에 그를 직원으로 오해하는 손님도 많아 나중에는 오히려 "오래 일한다"며 반가워하기도 한다.
"늦게 오는 손님들은 대개 2, 3차로 오는 분들이세요. 1차 소주, 2차 맥주, 3차로 막걸리 드시러 오는 거라 벌써 취해서 술김에 술을 먹는 거에요. 그렇게 섞어먹고 나면 다음날 고생하잖아요. '옛촌'에서 막걸리 먹었는데 머리 아프다는 말 나오면 괜히 마음도 안좋고, '옛촌' 이미지에도 안좋을 것 같아요."
'옛촌'은 새벽 12시 30분이면 문을 닫는다. 새 손님은 저녁 11시 30분까지만 받는다. 안주 재료도 꼭 그만큼씩만 준비해 놓는다. 취한 손님에게 꿀물을 타줄 정도로 정이 넘치지만, 영업시간만큼은 꼭 지킨다.
"손님들이 '이모는 갈수록 젊어진다'는 말씀을 많이 해주세요. 막걸리 먹어서 그렇다고 대답하지만, 사실 다 손님들 덕분이에요. 제가 집에 혼자 있었으면 하루에 말 몇마디나 했겠어요? 손님 오면 이야기하게 되고 웃게 되고, 사람 사는 재미가 생기잖아요."
막걸리집에는 사람 사는 인정이 있어야 한다는 최씨. 그러나 아무리 '사람 좋은 이모'라도 '옛촌' 안주 비법과 하루 막걸리 소비량은 비밀이다. 막걸리 한 주전자가 1만2000원. 두 주전자까지는 별로 이문도 없다. 세번째 주전자부터서야 1500원씩 남는다.
"'옛촌' 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이렇게 팔아서 돈이나 남겠냐'는 거예요. 박리다매(薄利多賣)죠. 그게 바로 전주 인심이기도 하고요."
한 상 가득한 안주에, 미안해서라도 먹지도 않을 막걸리를 더 시키고 가는 손님이 있을 정도. 막걸리집 주인 마음은 손님들이 더 잘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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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언제 한번 찾아가 보리라 마음만 먹고서 못가봤는디, 다음번 전주가면 필히 칭구들 불러서 한잔 꺽어야겠다
그려 전주오면 막걸리가 유명 하다 내가 한잔 거 하게 살께...ㅎㅎㅎ
나 도 불 려 ㅎㅎㅎㅎ친구 날씨도 추운데 몸조심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