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습니다. 문재는 부족하면서 일찍 등단한 편입니다. 83년도 <한국 수필> 봄호를 통해서지요. 작품다운 작품을 쓸 껌목(수필 문학의 태두이자 한글학자이셨던 정신득 은사님께서 쓰시던 말)이 못 됩니다. 돌이켜보면 몇 개월 안다미씌우기나 하며 지낸 것 같습니다. >
<열아홉 살 과부가 스물아홉 살 딸을 데리고> 신국판 265쪽/ 도서 출판 '정인'(2010년 7월 10일 발행)
* 엄마는 앞을 못 보시는 분이셨습니다. 한번도 당신을 어머니라 불러 보지 못했습니다. 당신이 이승을 떠나신 지 40년만에 밀양의 어느 노인 대학에서 노인 학생 120명과 함게 엄마의 애창곡을 불렀습니다. "열아홉 살 과부가 스물아홉 살 딸을 데리고---" 지척인 천상낙원에 엄아와 아버지를 모셨거든요.
<천주교야 노올자> 신국판 250쪽 도서 출판 /'지평' (2010년 8월 1일 발행)
* 개신교 교회 부설 노인 학교도 천주교 성당 노인 학교도 불러만 주면 갑니다. 불교 재단에서 운영하는 요양원도 마찬가지지요. 종교의 밑바탕엔 사랑과 자비가 흐르는 것 아닙니까? 불자들 앞에서 찬불가를 부르는 것, 이걸 저는 종교 간의 화합이라 생각합니다.
영광도서 김교섭 차장에게 문의하시면 안내해 드릴 겁니다.

<기념 콘서트를 열었습니다. 모두가 세상사와 얽히고설켜 萬端愁心에 젖어 있을 거라 짐작하면서, 노래나 한번 실컷 불러 보고 싶어서입니다. 혹자는 제 가식을 통해 마키아벨리즘을 읽었을지 모릅니다. 이제 제가 읍소하다시피해서 사람을 모으는 콘서트는 끝났습니다. 14번째의 공식(?) 콘서트로----.'교도소'를 찾을 생각입니다. 거기 囚人들에겐 大笑가 아니라, 눈물이 필요할 겁니다. 울면 영혼이 맑아진다고 거길 거쳐 나온 사람한테서 들었습니다. '불효자는 웁니다'/ 꿈에 본 내 고향/ '가슴 아프게'/ '배내리는 고모령'----.
이번에 14곡을 부를 계획이었는데, 그럴 시간이 없더군요. 어쨌든 무사히 마쳤습니다. 그러나 어느 一夫一婦한테서 꾸지람을 '되우' 들었습니다. 교만하다는 거지요. 맞습니다.
<저는 이분 이해주 학장님(수필가/ 시인)을 정말 존경합니다. 우리 나라 수필 문학의 태두 정신득 선생님만큼이나---. 제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으신 분이거든요. 지금도 아침 대용식을 찹쌀떡 2개/ 고구마 1개/ 베지밀도 때우는데,
학장님 말씀을 좇아서입니다. 교수나 학장보다 시인 혹은 수필가라는 호칭을 좋아하시는 이 시대의 선비가 한 말씀
하셨습니다. 유네스코 시절의 추억담을 한 마디 하셨습니다. 치열했었지요, 그 업무들이. 신바람을 절로 나게 하던 일들, 특히 시조창 강습 주선을 하면서 학장님을 모시고 '한산섬 달 밝은 밤에----'를 연습하던 열정! 그분의 작품을 제가 감히 말씀드릴 계제가 못 됩니다만, 언어가 아니라 향기 그 자체라 여깁니다.

<뒷 모습만 바라봐도 누군지 알 수 있습니다. 보라색 티셔츠/소설가 김광수, 흰 와이셔츠 깃이 조금 보이는 분/ 이규정 전 신라대 사범 대학장(소설가), 여자 분 지나서 김천혜/ 문학평론가(독문학자, 부산대 명예교수), 그 바로 앞/ 조재흥 수필가, 맨앞/ 삼랑진 성당 노인 대학장 한철수>
<유재중 국회의원이 축하 인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는 국회 보사위 소속이고, 이번에 박사 학위를 얻었습니다. 평화의 마을 자문위원으로 같이 일하고 있습니다. 정흥태 자문 위원장도 당일 자리를 같이했습니다. 요산 선생 기념 사업회 이사장이기도 하지요.
그 앞에 시각 장애 이경혜 시의원의 뒷모습이 보이는군요. 하나도 안 보이는 눈으로 어떻게 그렇게 단정하게 머리를 빗을 수 있는지, 도무지 그의 자세에서 흐트러진 곳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美人 중의 美人이지요.>
<
<이화 여대 졸업/ 프랑스 유학/ 박사 학위 취득/ 귀국 후 촉망 받는, 대학 강사/ 대학 4학년 때부터 앓기 시작한 포도막염이 원인이 되어 2001년 완전 실명/ 부산시 장애인 연합회 회장 역임/ 점자 도서관장 역임/ 어느 정당 비례 대표 1번으로 시의회 진출! 내면에서부터 외간에 이르기까지 보기 드문 미녀 이경혜 시의원이 축하 인사를 해 주고 있습니다. 그의 語錄에서 한 마디만 발췌, "나는 앞이 안 보여 시의원이 된 게 아니라 시의원이 앞을 못 볼 따름이다!" >

<봄내 류영남 박사의 한 마디
"저자가 이르기를 '수고한다를 한자로 쓰면, 手苦인 줄 알아 온 걸 부끄러워 한다'고 했는데, 어떤 출판사에서 근래에 펴낸 수전에 '수고'를 한자로 묶어 '受苦'로 표기해 두었습디다."
어느 쪽이든 고통은 마찬가지겠지요. 후자가 더 무섭습니다. 방금 죽을 사람을 문병했다가 돌아나오면서 수고하십시오,
저는 그런 인사말을 예사롭게(?) 써 왔거든요. >

<박양근 교수가 한 말씀, 글쎄 칭찬을 했습니다만 채찍으로 여겨야지요. 그분의 작품에서 많은 걸 본받고 있습니다. 제가 불러 테이프에 담은 '부산 노래'를 보낸 적이 있었습니다. 획기적인 말씀을 전해 왔을 때, 아하 이분은 표현을 이렇게 문학적으로 하(시)는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에게서 수필에 대한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

<이규정 교수님! 딸애가 천주교 재단 수원 안법 고등학교 과학 교사 공채 시험을 치렀는데, 추천서에 서명해 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서류를 이분께 내밀었더니 두말 없이 만년필을 잡으시더구요. 이분과 같은 자리에서 상을 받은 적이 있습니
다. 이분은 문화 에술 부문, 저는 지역 사회 부문. 저는 다 죽어갈 때라서 자리에 앉아 있기도 불편했지요. 피골상접---.
제가 못 일어날까봐 기도도 많이 해 주셨지요. 당신이 편찮으실 때 제자들이 보내 준 기도문을 복사해 보내 주시기도 했고요. 지금은 제가 나았으니, 이분의 영향이 컸습니다. 참, 이경혜 시의원의 고등학교 은사이셨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콘서트 장 안에서 탄성이 흘렀습니다>

<김광수 소설가가 제 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미리 책을 다 읽었기 때문에, 꿰뚫는 그의 평에 가슴이 조마조마했습니다. 청문회 앉은 장관 후보자들이 심경과 비슷했을 겁니다. 무사히(?) 넘어갔습니다. 그가 이번에 <빈들>이라는 전작 장편 소설집/ 3부작을 냈습니다. 읽어야지요, 열심히! 그의 미소는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합니다.>

<새로운 동생이 생겼습니다. 시각 장애인 나영곤 베드로, 하모니카로 '꿈에 본 내 고향' 등을 연주하여 모든 사람들의 가슴을 울렸습니다. 무대 위에 역시 시각 장애인 김명호 동생이 진지한 표정으로 감상하고 있습니다. 오른쪽 아래에 뒷모습만 보이는 여자분은 무남독녀를 평화의 마을 수녀님으로 키웠습니다. 수녀님은 약간 장애를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아름답지요.>

<하루 1백원씩만 이들을 위해 투자할 수 있다면? 1년에 36,500, 그들도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평화의 마을 후원 문의는 055)354-4241/ 초량 시각 장애인 복지관 051)464-3909입니다.

<아래 사진 속에서도 시각 장애인이 세 분 있습니다. 이기태 변호사 옆에 앉은 분도 앞이 점점 안 보이기 시작해서 이제 큰 글자도 잘 못 읽지요. 예비역 장교지요. 부인의 내조가 눈물겹습니다. 한 분은 오른쪽에 앉았는데, 제 옆 모습에 가려 보인지 않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