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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 (無比) 큰스님 妙 法 蓮 華 經 문수원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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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偈頌 148. 爾時世尊이 欲重宣此義하사 而說偈言하니라 이시세존 욕중선차의 이설게언 ㈎ 頌結緣因由 ㉮ 頌遠由 ㄱ. 頌大通成佛 (1.頌成道前事 2.頌正成道 3.頌十六王子請轉法輪)
149. 大通智勝佛이 十劫坐道場하대 대통지승불 십겁좌도량 佛法不現前일새 不得成佛道어늘 불법불현전 부득성불도 150. 諸天神龍王과 阿修羅衆等이 제천신용왕 아수라중등 常雨於天華하야 以供養彼佛하며 상우어천화 이공양피불 諸天擊天鼓하고 幷作衆伎樂하며 제천격천고 병작중기악 香風吹萎華하야 更雨新好者러니 향풍취위화 갱우신호자 過十小劫已에 乃得成佛道라 과십소겁이 내득성불도 諸天及世人이 心皆懷踊躍하니라 제천급세인 심개회용약 151. 彼佛十六子가 皆與其眷屬 피불십육자 개여기권속 千萬億圍繞하사 俱行至佛所하야 천만억위요 구행지불소 頭面禮佛足하고 而請轉法輪하대 두면예불족 이청전법륜 聖師子法雨로 充我及一切하시니 성사자법우 충아급일체 152. 世尊甚難値라 久遠時一現이로다 세존심난치 구원시일현 爲覺悟羣生하야 震動於一切로다 위각오군생 진동어일체 ㄴ. 頌十方梵王請 (1.頌威光照耀 2.頌十方梵天尋光來請轉法輪 [1.頌東方梵天 2.頌九方梵天]) 153. 東方諸世界 五百萬億國에 동방제세계 오백만억국 梵宮殿光曜하대 昔所未曾有라 범궁전광요 석소미증유 154. 諸梵見此相하고 尋來至佛所하야 제범견차상 심래지불소 散華以供養하대 幷奉上宮殿하고 산화이공양 병봉상궁전 155. 請佛轉法輪하며 以偈而讚歎커늘 청불전법륜 이게이찬탄 佛知時未至하시고 受請黙然坐러니 불지시미지 수청묵연좌 三方及四維와 上下亦復爾하야 삼방급사유 상하역부이 散華奉宮殿하고 請佛轉法輪하사대 산화봉궁전 청불전법륜 156. 世尊甚難値라 願以本慈悲로 세존심난치 원이본자비 廣開甘露門하사 轉無上法輪하소서하니라 광개감로문 전무상법륜거 ㉯ 頌近由 ㄱ. 頌轉二乘法輪 (1.頌受請 2.頌正轉二乘法輪 3.頌時衆聞法得益) 157. 無量慧世尊이 受彼衆人請하사 무량혜세존 수피중인청 爲宣種種法인 四諦十二緣하대 위선종종법 사제십이연 無明至老死히 皆從生緣有라 무명지노사 개종생연유 如是衆過患을 汝等應當知니라 여시중과환 여등응당지 158. 宣暢是法時에 六百萬億孩가 선창시법시 육백만억해 得盡諸苦際하고 皆成阿羅漢하며 득진제고제 개성아라한 159. 第二說法時에 千萬恒沙衆이 제이설법시 천만항사중 於諸法不受하고 亦得阿羅漢하며 어제법불수 역득아라한 從是後得道도 其數無有量이라 종시후득도 기수무유량 萬億劫算數로 不能得其邊이니라 만억겁산수 불능득기변 ㄴ. 頌轉大乘法輪 (1.頌王子出家 2.頌正轉大乘請 3.頌二萬劫間說方等般若 4.頌二萬劫後說法華 5.頌說經入定) 160. 時十六王子가 出家作沙彌하야 시십육왕자 출가작사미 皆共請彼佛하대 演說大乘法하소서 개공청피불 연설대승법 161. 我等及營從이 皆當成佛道호리니 아등급영종 개당성불도 願得如世尊의 慧眼第一淨하노이다 원득여세존 혜안제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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妙 法 蓮 華 經
(묘법연화경)
卷第三
오늘 법화경 화성유품의 게송부분이 되겠습니다.
이 법화경은 경전의 어떤 구성이 어떤 경전보다도 뛰어나게 잘 되었다라고 그렇게 모두들 평하는데, 어떤 점이 그런고 하면 이 한문과 운문이 아주 배열이 잘 되었다, 이렇게 봅니다.
경전은 최초에는 사실은 한문은 없었고, 운문만 있었다,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다시 말해서 게송만 있었는데 그걸 좀더 구체적으로 드러내기 위해서 산문부분이 있게 되었다, 이런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어요. 확실한 건 모르지만 왜그런고 하니 옛날 사람들은 글이 없고, 말로 이렇게 전해주고 그 말을 듣고 외우고 이렇게 했습니다.
외우려면 외우기 좋은 그런 글 형식이 되어야 되니까, 그래서 시형식으로 해놓으면 외우기 좋다, 라고 해서 그래서 초기의 경전들은 거의 다, 법구경이 그렇듯이 전부 운문으로, 불교에서는 그것을 ‘게송’이라고 하는데 ‘게송’형식으로 기록이 되었었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좀더 보완이 되었다는 거죠.
여기서는 산문 부분이 앞에 있고, 게송이 뒤에 있고, 뒤에 가서는 경전의 성립이 구체적으로 제대로 될 때는 산문이 앞에 있고, 운문이 뒤에 있고, 이렇게 짜여지고 그것을 ‘중송(重頌)’이라 이렇게 이야기를 해요. 중송이란 거듭 중(重)자, 게송이란 송(頌)자, 거듭 게송으로써 앞의 뜻을 요약 설명한다, 이런 뜻이죠. 다시 말해서 시로써 요점을 정리한다, 이렇게 이해해도 좋습니다. 요점정리로.
여기 화성유품의 이야기가 두 가지가 있죠.
뭔가 하면 대통지승불이 시험을 해서 성불하고, 또 성불하고 난뒤에 그 제자이면서 또 아들인 열 여섯명이 말하자면 시방에서 흩어져서 교화를 펴고 있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은 서가모니였다, 하는 인연이야기입니다.
과거 인연을 죽 이야기하고, 그 다음에 화성유품이라고 하는 그 품명이 밝히고 있듯이 부처님이 만든 성, 만든 마을, 실재하지 않는데 일부러 어떤 요술로써 만들어서 멀리 먼 길을 가는 사람들이 가서 잠깐 쉬었다 가는 그런 성을 만들고, 그리고 나서 실컷 쉰 뒤에는 어마어마한 보물을 구하기 위해서 앞길을 또 재촉해서 가게 한다.
그러나 그 성은 잠깐 쉬는데 필요했을 뿐이지, 실재하는 것도 아니고, 또 거기가 인생의 목적지가 아니다, 다시 말해서 법화경에서는 그 장소가 우리가 가려고 하는 그 장소가 아니다, 그 장소는 좀더 앞에, 멀리 있다, 라고 하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대통지승불과 서가모니불과의 인연 이야기, 수 많은 세월이 거기서 논의가 되죠. 아주 오래고 오랜 시간이 거기선 이야기가 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처음에도 말씀 드렸듯이 말하자면, 우리의 삶은 70년, 80년, 뭐 한 100년, 이렇게 짧은 시간으로 살다가 마는 것이 아니고, 무한한 시간을 우리는 살아가고 있고, 무한한 시간을 살아가는 그 과정에서 우리는 이런 인연, 저런 인연을 만나게 되고 또 그러면서 우리는 차츰차츰 우리가 성숙되어가는 것, 보다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해 간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1년 이나 아니면 일생 중에 70~80년 가운데서 성장해 가는 것도 물론 있어요.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 보면 70~80년 정도 사람이 되어가는 정도가 아니고, 수 억만년이라고 하는 긴 세월을 두고 우리는 차츰차츰 사람이 되어간다, 참으로 인간다운 삶을 사는 그런 사람이죠.
보통 그냥 보고, 듣고, 먹고, 숨쉬는 그런 차원의 사람이 아니라, 정말 참으로 인간다운 삶을 사는 사람들, 그것을 ‘부처’라 그러죠.
그를 흔히 우리가 ‘성불’이다, ‘부처’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데 그런 경지의 사람으로 우리는 수 억만년이란 세월을 두고 성장해 간다. 그러니까 너무 조급하게 굴 것도 없고, 그 원대한 꿈을 잊지만 않고 살아간다면 크게 조급하게 굴 것도 없고, 또 뭐 성불을 그렇게 안 되는 것이라고 또 잊어버릴 일도 아닙니다.
그러나 단, 그렇게 길고 긴 세월이 지난다 하더라도 그래도 우리는 최상의 삶, 다시 말해서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궁극적인 이상,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궁극적인 이상인 그런 부처의 삶, 이것은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만 놓치지 아니하면 느긋하게 그저 그렇게 살아왔듯이 꾸준히 쉬지 않는 정진만 있으면 그 속에 다 포함되어있다, 이렇게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그 인연의, 길고 긴 인연의 선상에 다 올라있어요. 어쩔 수 없이 인연의 선상에 다 올라 있고 , 경전에서도 이야기가 있었듯이 서가모니 부처님이 그때 많은 사람들에게 교화를 폈는데, - 그때 십육왕자의 한 사람으로서 이죠. - 십육왕자의 한 사람으로 대통지승불에게 법화경을 공부하고 그러고 나서 대통지승불이 선정에 들어가서 상당한 세월을 가만히 계셨어요.
그때 대신 교화를 했는데, 대신 교화한 사람이 십육왕자라.
그 중에 한 사람이 서가모니였어. 그럼 그때 석가모니가 많은 사람들에게 대통지승불을 대신해서 법화경을 설해서 중생을 교화했는데 그때 우리가 모두 동참했었다, 하는 것입니다.
동참했었다 하는 말이 뭔 말인고 하니, 이 법화경을 설할 때, 부처님이 그런 말씀을 하시죠. 바로 이 앞에 있는 성문 제자들이 역시 그 사람이고, 또 미래에 이 법화경과 인연을 맺을 그 사람들이 다 그 사람들이다, ‘그때 그 사람들’이다, 라고 하는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래서 이런 장구한 세월의 인연선상에 우리는 다 동참 되어있다, 라고 하는 그런 것을 이 화성유품에서 우리가 알 수가 있죠.
그리고 또 ‘화성유(化城喩)’라고 하는, ‘변화해서 잠깐 쉬었다 가게하는 성’그 성이라고 하는 그 말은, 너무 장구한 세월이니까, 사람들은 모두 조급하고, 그러니까 가까이에다가 조금만 노력을 들이면 어떤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 그런 장소에다가 목표지경을 우선 설정해 놓고, 그 목표는 쉽게 도달할 수 있도록 그렇게 한 거죠.
그게 소위 ‘방편’입니다.
그러나 그 목표지점은 궁극의 어떤 이상이 아니고, 사실은 근기 약한 사람들을 성장시키기 위한 보다 더 성숙시키기 위한 그런 지점이다, 라고 하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밑으로도 끝없이 끝없이 내려갈 수가 있어요.
위로도 마찬가지로 우리가 끝없이 끝없이 올라 갈 수가 있습니다.
이게 법화경, 특히 화성유품에서 비유의 중요한 뜻이 담겨있는데, 법화경 초기에 말씀드렸지만, ‘일념삼천(一念三千)’이라고 해서 인간에게는 ‘한 순간의 삶 속에 삼천가지의 요소가 내재되어있다.’그랬어요. 삼천가지의 요소가 내재되어있다!
그 속에는 물론 아주 정말 부처님 같은 그런 면도 있는가 하면, 아주 축생보다도 더 못한 아귀나, 무슨 아수라나, 이런 요소도 인간의 한 순간 속에 다 포함되어있다, 그랬습니다.
우리가 밑으로 내려가려면, 현재 이 모습 이대로 얼마든지 아수라나 아귀나 무슨 뭐 지옥이나 축생이나 이런 식으로 살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밑으로도 그렇게 얼마든지 내려갈 수가 있습니다.
위로는 뭐 부처님이나, 보살의 그런 행위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왜냐? 인간의 한 순간의 삶 속에는 그런 요소가 다 내재되어있으니까, ‘무엇을 키울 것이냐?’‘어떤 면을 우리는 그것을 개발하고 발굴해서 그 쪽으로 발전시켜갈 것이냐?’하는 거기에 달렸어요. 그러니까 어느정도, ‘아유, 난 이제 어느 정도 사회적으로 이 정도면 별로 뒤지지 않는 삶을 산다 .’ 라고 하는 그런 상태, 그걸로 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거기서 얼마든지 더 앞으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그런 여지가 우리가 있다는 거죠. 그걸 좀 알고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살아있는 동안, 쉬지 말고 정진하고, 자기 창조를 위해서, 자기 발전을 위해서 꾸준히 꾸준히 노력해 가는 그것이 가장 바람직한 삶이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전번에 ‘인생 14대 교훈’중에 보면 ‘정진이 인간이 가지고 있는 것 중에서 제일 부?한 면이다.’ 그랬던가 봐요? 항상 차고 다녀야할 것은 정진이다, 그랬던가?
인생최가패복적시정진 (人生最可佩服的是精進) ,
그렇습니다.
정진은 그만치 우리가 늘 지니고 다녀야할 내용입니다.
왜냐? 우리는 살아 있어서 그래요.
살아 있는 사람은 늘 자기 창조, 자기 발전을 위해서 노력하면서 살 수 밖에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삶의 진실한 모습, 삶의 바람직한 모습을 우리는 알고 살아야한다는 거죠. 뭐 숨쉬고 산다고 해서 사는 게 아니에요.
삶을 살 줄 알고 살아야지. 어떻게 하면 가장 바람직한 모습으로 사는 것인가?
이걸 우리가 알고 살아야하는 것입니다. 이 화성유품에서는 참 아주 그 비유가, 우리의 삶에, 우리의 일상생활에 아주 좋은 교훈이 되고, 아주 다각도로 우리가 이해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게 이 화성유품의 내용이죠.
중간에 쉬게 했다 이거예요. 예를 들어서 여러분들 어느 정도 교육을 마치면 ‘아 이정도는 뭐 됐다.’, 또 아니면 예를 들어서 결혼을 해서 살림을 이뤘다, 그러면 ‘아 이걸로 인생은 끝이다.’‘이 정도면 뭐 더 이상 뭐 있나? 됐다.’라고 이런 생각을 하고 거기에 주저앉는다면 그것은 삶을 제대로 이해 못하고 사는 거죠. 살 줄 알고 사는 게 아니에요.
그때 ‘됐다.’라고 생각하고 여러분들이 다 살아 봤지만 아니죠?
결혼해서 살림 차려서 살면 그걸로 인생이 도달할 수 있는 어떤 목적지에 도달한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잖아요, 생각해 보니까.
아니면 또 뭔가 또 자기의 발전, 자기의 시간, 자기의 삶을 위해서 자기의 표현을 위해서 뭔가 몸부림 치고 있다구요. 어쩌면 이런 시간을 갖는 것도 그런 꾸준히 하는 중의 하나, 그런 본능 중의 하나일지도 모르고... 그러니 부처님은 그런 것을 너무 잘 아시는 거예요.
살아있는 모든 인간은 본능적으로 뭔가 자기 발전, 자기 창조를 위해서 살게 되어있는 거다, 이 말이에요.
그러니까 바람직한 방향으로 끝없이끝없이 우리는 정진하면서 사는 것, 그러니까 삼천 가지의 요소가 있으니, 잘못가면 밑으로 끝없이 내려갈 수가 있어요.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뭐 얼마든지 그쪽으로 내려갈 수가 있고, 올라가면 성문, 연각, 보살, 부처 그런 삶도 펼칠 수가 있다.
그러니까 그런 인간의 삶의 실상을 정확하게 파악을 하고, 거기에 그 어떤 이치에 맞게 그렇게 살도록 가르친 것, 뭐 이게 화성유품의 근본취지다, 이렇게 보면 되겠습니다.
그걸 염두에 두고, 다시 앞에 있었던 내용을 게송으로 요약해서 살펴보는 그런 시간이죠.
나. 偈頌 148. 爾時世尊이 欲重宣此義하사 而說偈言하니라 이시세존 욕중선차의 이설게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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爾時世尊이 欲重宣此義하사 而說偈言하니라
이시세존 욕중선차의 이설게언
그때 세존께서 그 뜻을 거듭펴고자 설해 말씀하시기를,
㈎ 頌結緣因由 ㉮ 頌遠由 ㄱ. 頌大通成佛(1.頌成道前事 2.頌正成道 3.頌十六王子請轉法輪) 149. 大通智勝佛이 十劫坐道場하대 대통지승불 십겁좌도량 佛法不現前일새 不得成佛道어늘 불법불현전 부득성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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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通智勝佛이 十劫坐道場하대
대통지승불 십겁좌도량
대통지승불이 십겁동안 도량에 앉아 있었는데,
보리도량, 말하자면 수양하는 곳을 도량이라 그럽니다.
십겁동안 도량에 앉아있었는데,
佛法不現前일새 不得成佛道어늘
불법불현전 부득성불도
불법이 앞에 나타나지 않아서
그래도 불법불현전이야, 불법이 앞에 나타나지 않더라 이거예요.
도대체 깨달음이 오지를 않더라 이거죠.
부득성불도라, 불도를 이루지 못했다. 이거 유명한 말입니다. 이건 선가에서도 상당히 선사들이 자주 이야기하는 그런 네 구절이에요.
大通智勝佛이 十劫坐道場하대
대통지승불 십겁좌도량
佛法不現前일새 不得成佛道어늘
불법불현전 부득성불도
어떤 사람들은 잘만 하면 1주일에 끝낸다, 라고 했고, 늦어야 한 철, 90일이면 끝난다, 아무리 둔한 사람도 90일이면 끝내고, 빨리 하면 1주일에 끝낼 수 있다라고 했는데 십겁이라고 하는 이 수천만년이란 세월이 걸렸어도, 어떻게 해서 불법이 안 나타났느냐?
그러니 여기에 상당히 문제를 가지고 있는 거죠.
그러니까 과거 조사스님들이 여기에 대해서 화두로 많이 활용합니다.
요것만 잘라서 생각하면 화두 같죠. 그러나 그동안의 어떤 우리의 마음의 깊이, 인간의 장엄함, 이런 것으로써 설명을 했습니다만.
150. 諸天神龍王과 阿修羅衆等이 제천신용왕 아수라중등 常雨於天華하야 以供養彼佛하며 상우어천화 이공양피불 諸天擊天鼓하고 幷作衆伎樂하며 제천격천고 병작중기악 香風吹萎華하야 更雨新好者러니 향풍취위화 갱우신호자 過十小劫已에 乃得成佛道라 과십소겁이 내득성불도 諸天及世人이 心皆懷踊躍하니라 제천급세인 심개회용약 |
諸天神龍王과 阿修羅衆等이
제천신용왕 아수라중등
제천신용왕, 아수라 무리들이
常雨於天華하야 以供養彼佛하며
상우어천화 이공양피불
항상 아주 아름다운 꽃[天華;]으로써 비내리듯이 쏟아서 부처님께 퍼부으면서 공양을 올리죠. 공양을 피불(彼佛), 저 대통지승불에게 항상 공양을 올렸다.
諸天擊天鼓하고 幷作衆伎樂하며
제천격천고 병작중기악
하늘에서는 하늘 북이 울리고 온갖 기악들을 다 연주하며
하늘에서는 하늘 북이 둥둥둥둥 울리고, 곧 이제 성불할 그런 차제예요.
공부가 이제 완전히 무르익은 그런 차제니까,
幷作衆伎樂하며
병작중기악
온갖 기악들을 다 연주하며,
香風吹萎華하야 更雨新好者러니
향풍취위화 갱우신호자
아주 향기로운 바람이 불어와서 그 꽃을 쓸어가고,
아주 향기로운 바람이 불어와서, 앞에 꽃을 올렸는데 시간이 흐르니까
하루하루 가니까, 꽃이 시들 것 아니여? 꽃을 전부 불어가는데 그냥 바람이 아니라, 향풍이 와서 그 꽃을 쓸어가고, 그리고 나서는 또다시
更雨新好者러니
갱우신호자
아주 싱싱하고 좋은 꽃들을 하늘에서 비내리듯 그렇게 많은 꽃 공양을 올렸더라.
여기도 보면 항상 목요일에는 새로운 꽃이 이렇게 올라와 있어요.
이건 딱 법화경에 있는대로라! 법화경에 있는대로...
更雨新好者
갱우신호자
항상 새로운 꽃이 올라와 있더라.
過十小劫已에 乃得成佛道라
과십소겁이 내득성불도
그리고 나서 십소겁이 다시 지난 뒤에야 비로소 불도를 다 이루었더라!
諸天及世人이 心皆懷踊躍하니라
제천급세인 심개회용약
마음에 전부 용약(踊躍)을 품었다는 이 말은 그냥 뛸 듯이 기뻐하는 그런 환희로움을 가슴에 가득 가지게 되었다 그 말이에요.
용약(踊躍)은 그냥 ‘환희’예요. 너무 기쁘면 그냥 펄쩍펄쩍 뛰잖습니까? 뛸 듯이 기뻐하는 것.
그저 축구하는 얘들이 골 한골 넣고는 펄쩍펄쩍 뛰는 것 봤죠? 그게 용약(踊躍)이야. 기뻐가지고... 마음에 그런 뛸 듯이 기뻐하는 그런 기쁨을 품고 있더라!
많은 사람들이, 세상사람들이 대통지승불이 부처가 되었다, 라고 하니까 그렇게 기뻐했다!
151. 彼佛十六子가 皆與其眷屬 피불십육자 개여기권속 千萬億圍繞하사 俱行至佛所하야 천만억위요 구행지불소 頭面禮佛足하고 而請轉法輪하대 두면예불족 이청전법륜 聖師子法雨로 充我及一切하시니 성사자법우 충아급일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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彼佛十六子가 皆與其眷屬
피불십육자 개여기권속
그 부처님이 출가하기 전에 열여섯 아들이 있었다 그랬죠? 그 부처님 열여섯 아들이
皆與其眷屬
개여기권속
부처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십육 아들들이 다 오죠.
그리고 할아버지까지 오죠, 아이들의 할아버지, 즉 대통지승불의 아버지까지 오죠.
千萬億圍繞하사 俱行至佛所하야
천만억위요 구행지불소
그 천만억 권속들이 에워싸서 부처님 처소에 모두 함께 모여서 이르르서,
頭面禮佛足하고 而請轉法輪하대
두면예불족 이청전법륜
머리와 얼굴로써 부처님 발에다 예배하고 두면(頭面), 머리와 얼굴로써 발에다 예배했다, 이게 예배의 최상을 나타내는 말이죠.
머리는 제일 높은 것, 얼굴과 머리는 제일 높은데, 발은 제일 낮은데,
제일 높은 곳에서 제일 낮은 데다가 이렇게 대니까 예배 중에서는 최상의 예배가 됩니다.
예배도 하는데 따라서 우리가 반절이 있고, 큰절이 있듯이 뭐 일배가 있고, 삼배가 있듯이 그 예배도 천차만별이죠.
그러니까 부처님 발에다 예배를 머리로써 하는 것이 제일 최상의 예배다, 이렇게 보면 됩니다.
而請轉法輪하대
이청전법륜
법문을 굴려달라고 이렇게 청했다 이말입니다.
‘법문 좀 해 주십시오!’당신께서 오랜 세월동안 수행을 해서 비로서 깨달았으니까 그 깨달음의 이치, 무엇이 그 깨달음인지 좀 설명을 해 주십시오, 라고 청을 합니다.
법을 청하는 태도가 이렇게 하는 거죠.
여러 사람이 몰려와서 같이 에워싸고, 꽃공양을 올리고, 그리고 머리로써 예배를 드리고 그리고 법을 청한다.
聖師子法雨로 充我及一切하시니
성사자법우 충아급일체
성인이신 사자가 법의 비로써 우리들과 모든 일체중생들에게 충분하게 적셔주시니,
성인이시고, 또 짐승 중의 왕이라고 해서 부처님을 사자라고 그렇게 비유를 해요.
짐승으로 치면 사자와 같은 그런 격이다.
그래서 성사자(聖師子)라, 성인인 사자가
充我及一切하시니
충아급일체
법의 비로써 충분하게 적셔주시니,
152. 世尊甚難値라 久遠時一現이로다 세존심난치 구원시일현 爲覺悟羣生하야 震動於一切로다 위각오군생 진동어일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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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尊甚難値라 久遠時一現이로다
세존심난치 구원시일현
세존은 매우 만나기 어려운 분이라 오랜 세월동안에 한번 나타나는 분이 부처님이십니다!
久遠時一現이로다
구원시일현
오랜 세월동안 한번 나타나는 분이 부처님이다.
지금 뭐 우리가 부처님, 부처님, 하지만 많은 세월동안 깨달은 분이 있었지만 그래도 부처님이라고 하는 분은 지금 서가모니 부처님 한분이라고요.
설사 깨달은 분이 그동안에 많이 나왔다하더도 어디 서가모니 부처님과 비교라도 됩니까?
그 덕이라든지, 온갖 것이 비교가 안 되죠. 그래서 그런 부처님은 참으로 만나기 어렵다.
오랜 세월 중에 한번 나타나시는 것이다.
爲覺悟羣生하야 震動於一切로다
위각오군생 진동어일체
여러 중생들[羣生;군생]을 깨닫도록[爲覺悟;위각오]하기 위해서 일체세계, 일체중생들을 진동(震動)시킨다.
부처님이 이렇게 깨달음을 성취했다, 라고 하면 온 세상이 그냥 떠들썩 하죠.
ㄴ. 頌十方梵王請(1.頌威光照耀 2.頌十方梵天尋光來請轉法輪[1.頌東方梵天 2.頌九方梵天]) 153. 東方諸世界 五百萬億國에 동방제세계 오백만억국 梵宮殿光曜하대 昔所未曾有라 범궁전광요 석소미증유 |
東方諸世界 五百萬億國에
동방제세계 오백만억국
동쪽으로 오백만억국에서
梵宮殿光曜하대 昔所未曾有라
범궁전광요 석소미증유
범천의 궁전에 일찍이 있지 않던 빛이 비치기 시작했더라!
부처님이 깨달았다고 하니까 범천의 궁전이 빛이 아주 환하게 밝아졌어. 일찍이 있지 않던 빛이 비치기 시작했더라!
154. 諸梵見此相하고 尋來至佛所하야 제범견차상 심래지불소 散華以供養하대 幷奉上宮殿하고 산화이공양 병봉상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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諸梵見此相하고 尋來至佛所하야
제범견차상 심래지불소
여러 범천들이 이 상서로움을 보고서 부처님 계신 곳에 곧 찾아와서[尋來],
워낙 빛이 밝게 비치니 그 쪽을 향해서 아니갈 수가 없는 거죠.
散華以供養하대 幷奉上宮殿하고
산화이공양 병봉상궁전
꽃을 흩으면서 공양을 올리되 아울러 궁전까지 부처님께 올리고,
꽃 공양만 올리는 게 아니고 아울러 궁전까지 부처님께 올렸고,[奉上]
155. 請佛轉法輪하며 以偈而讚歎커늘 청불전법륜 이게이찬탄 佛知時未至하시고 受請黙然坐러니 불지시미지 수청묵연좌 三方及四維와 上下亦復爾하야 삼방급사유 상하역부이 散華奉宮殿하고 請佛轉法輪하사대 산화봉궁전 청불전법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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請佛轉法輪하며 以偈而讚歎커늘
청불전법륜 이게이찬탄
법륜을 굴려주시기를 청하며 게송으로써 찬탄하거늘,
부처님께 법문해 주기를 청했다 이말이여. 그럼으로써 게송으로써, 시로써, 노래로써, 아주 아름다운 시를 지어서 곡을 붙여서 노래로써 찬탄했다. 저 앞에 있었죠? 동방의 범천, 서방의 범천, 남방의 범천, 북방의 범천, 이렇게 해서 범천에서 주욱 돌아가면서 그렇게 찬탄을 했었습니다.
佛知時未至하시고 受請黙然坐러니
불지시미지 수청묵연좌
부처님이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다’는 것을 아시고 묵묵히 앉은 채로 받아들이시니,
동방에 있는 범천들이 그렇게 많이 와서 공양을 올리면서 법을 청해도 부처님이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다’는 것을 아시고
부처님은 알았다, 무엇을? 시미지(時未至),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다는 것을 아시고, 묵묵히 앉은 채로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그저, 법문 한번 청한다고 쑥 그냥 하는 게 아니에요.
‘아직도 안되었다’ 이 말이여.
사람들이 듣고 싶은 욕망이 가득히 찼을 때, 한껏 고조되었을 때 그때 부처님이 법문을 해야 귀에 쏘옥쏘옥 들어가고, 정말 가뭄에 단비를 만난 것 같이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요즘 법문이 너무, 뭐 하는 사람도 시원찮지만, 법문이 너무 흔해.
그 다음에 보면
155. 三方及四維와 上下亦復爾하야 삼방급사유 상하역부이 散華奉宮殿하고 請佛轉法輪하사대 산화봉궁전 청불전법륜
삼방[三方;남방, 서방, 북방] 사유[네 간방(間方);四維;동북(東北)의 간(艮), 동남(東南)의 손(巽), 서북(西北)의 건(乾), 서남(西南)의 곤(坤)] 상방(上方), 하방(下方)에서 다 또한 다시 그렇게 꽃을 뿌리고, 궁전을 바치고 와서 부처님께 법륜을 굴려주시기를 청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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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方及四維와 上下亦復爾하야
삼방급사유 상하역부이
삼방[三方;남방, 서방, 북방]
사유[네 간방(間方);四維;동북(東北)의 간(艮), 동남(東南)의 손(巽), 서북(西北)의 건(乾), 서남(西南)의 곤(坤)]
상방(上方), 하방(下方)에서 다 또한 다시 그렇게 와서 청하더라.
아직 동방에서 그러는데 아직 때가 안 되었다 그랬죠.
그런데 여기서 삼방(三方), 즉, 남, 서, 북방이죠. 동방은 나왔으니까.[四方]
그 다음 사유(四維)는 네 간방(間方)이죠.
[동북(東北)의 간(艮), 동남(東南)의 손(巽), 서북(西北)의 건(乾), 서남(西南)의 곤(坤)]
그 다음 상방, 하방, [사방(四方)과 상(上) · 하(下)를 합해 육합(六合)]
그러니까 순서대로 그렇게 동방이 오니까 남방, 북방, 서방이 오고 그 다음에 각 사유에서 오고, 상방, 하방에서 다 또한 다시 그렇게 와서 청하더라.
위에서 청한 것처럼 그렇게 청했다.
저기 저 산문에서는 구체적으로 다 나와있죠.
散華奉宮殿하고 請佛轉法輪하사대
산화봉궁전 청불전법륜
꽃을 흩으면서 궁전을 받들고 부처님께 법륜 굴려주시기를 청하시되
156. 世尊甚難値라 願以本慈悲로 세존심난치 원이본자비 廣開甘露門하사 轉無上法輪하소서하니라 광개감로문 전무상법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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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尊甚難値라 願以本慈悲로
세존심난치 원이본자비
세존은 본래 만나기 어려우니 본래의 자비로써
부처님은 자비가 있는 분 아니냐 이거여. 본래 중생들을 위해서 법문 해 주기로 되어 있지 않느냐? 그런 의미로서 본자비(本慈悲)라 했습니다. 부처님은 본래의 자비로써,
廣開甘露門하사 轉無上法輪하소서하니라
광개감로문 전무상법륜거
감로의 문(甘露門)을 널리 여시사 무상법륜[최고의 법륜, 가장높은 법륜]을 굴리소서! 하거늘,
감로, 감로는 법문을 감로문이라 그러는데, 왜냐? 오랜 가뭄에 단 이슬, 아주 참 모든 만물을 다 살리는 그런 비다, 라고 해서 그래서 감로문이라고 그래요. 말하자면, 비가 와서 온갖 초목들을 살리듯이 정말 메마른 인간의 삶에 부처님의 법문을 통해서 정말 촉촉이 적셔주고, 정말 인간다운 인간으로서 살도록 해주는 그런 의미가 있다고 해서 감로, 감로 법문 또는 감로문 그렇게 해요.
감로문을 널리 여시사,
㉯ 頌近由 ㄱ. 頌轉二乘法輪(1.頌受請 2.頌正轉二乘法輪 3.頌時衆聞法得益) 157. 無量慧世尊이 受彼衆人請하사 무량혜세존 수피중인청 爲宣種種法인 四諦十二緣하대 위선종종법 사제십이연 無明至老死히 皆從生緣有라 무명지노사 개종생연유 如是衆過患을 汝等應當知니라 여시중과환 여등응당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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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量慧世尊이 受彼衆人請하사
무량혜세존 수피중인청
한량없는 지혜를 가지신 세존이 저 많은 사람들의 청을 받아들이시사
爲宣種種法인 四諦十二緣하대
위선종종법 사제십이연
가지가지 인연의 법[四諦十二緣]을 펴셨으니,
맨 처음엔 서가모니 부처님도 사제십이연 법문을 했구요, 대통지승불도 역시 사제십이연 법문했어요. 그러니까 그 순서가 딱 들어맞다는 거죠. 불교의 어떤 기초라든지, 불교 입문, 또는 불교 개론 이런 것을 보면 으레 처음에 사제십이연 법문이 있어요. 그것을 선설하시되,
無明至老死히 皆從生緣有라
무명지노사 개종생연유
무명(無明)에서 노사에 이르기까지, 다 인연으로 생겨서 있다.
그러니까 사제(四諦)는 고·집·멸·도(苦·集·滅·道)이고,
십이연(十二緣)은 무명(無明) · 행(行) · 식(識) · 명색(名色) · 육입(六入) · 촉(觸) · 수(受) · 애(愛) · 취(取) · 유(有) · 생(生) · 노사(老死)에 이르기까지,
皆從生緣有라
개종생연유
다 인연으로부터 생겨서 있다.
전부 무엇에 인연하고 무엇이 무엇을 일으키고, 무엇이 무엇을 일으키고, 저 앞에 죽 나왔었죠. 전부 연결이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독립된 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예를 들어서 나이가 30이면 30이 어디 딱 그냥 있나요? 29세로부터 30이 있는 거야. 29세는 28세로부터 있고, 28세는 27세로부터 있고, 그렇듯이 모든 우리의 삶이 그렇게 연결되어 있다.
크고 작은 고리에 얽혀있다라고 하는 그런 이치를 부처님은 깨달았고, 그래서 그것을 우리에게 설명해 주는 것이 ‘인연의 도리’다, 하는 것입니다.
如是衆過患을 汝等應當知니라
여시중과환 여등응당지
이와 같이 해서 온갖 허물과 환란 이런 것들을
너희들은 마땅히 잘 알라!
그러니까 우리가 이 몸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게 여러 가지가 전부 인연으로 이뤄져서 온갖 어려움과 고통과 그런 것이 많다 이거여.
그렇게 많은데, 그런 이치를, 그렇게 관계 속에서 산다고 하는 그 이치를 너희들은 마땅히 알아라! 이런 이야기입니다.
전부 관계속에 있어요, 보면은.
뭐 크게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경우도 있고, 간접적인 영향을 받는 경우도 있고, 예를 들어서 지금 미국의 경제가 어렵다, 그러면 요즘 뭐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게 아니여. 우리나라는 직접 영향을 받아버려, 그냥.
저 아프리카 어느 나라에서 설사 받게 하더라도 역시 우리나라에도 영향을 받게 된다구요. 그 파장이 크냐, 작으냐, 그 차이만 약간 있을 뿐이지 받게 되어 있습니다.
158. 宣暢是法時에 六百萬億孩가 선창시법시 육백만억해 得盡諸苦際하고 皆成阿羅漢하며 득진제고제 개성아라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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宣暢是法時에 六百萬億孩가
선창시법시 육백만억해
이러한 법을 베풀고 드러낼 때(宣暢;선창)할 때, 해는 백조(百兆), 조(兆)를 백(百)
이라는 것을 백조해라 그래요. 그러니까 육백만억 해, 육백만억 조보다도 훨씬 더 백배나 더 많습니다.
得盡諸苦際하고 皆成阿羅漢하며
득진제고제 개성아라한
그러니까 고집멸도 사성제, 그것은 곧 십이인연과의 관계속에서 우린 이런 어려움을, 이런 고생을, 또 늙고, 죽고, 병들고 하는 이런 인간의 모든 문제와 고통을 겪으면서 산다라고 하는 그 이치, 그 원리를 환히 이렇게 부처님이 설명하고 나니까, 육백만억해나 되는 그런 많은 사람들이 고제를 괴로움의 세계, 괴로움의 경지[고제]를 전부 다 해버렸다, 다 끝냈다는 것입니다. 진(盡)자는.
온갖 문제와 온갖 고통을 다 해결했다.
그리고는 아라한을 이루었다 이말입니다. 이게 어째서 그러냐? 어째서
사제, 십이인연의 도리를 설명했는데 괴로움의 문제를 다 해결했단 말이냐?
그건 제대로 우리가 그 원인과 그 관계를 알게되면요, 괴로움의 문제를 해결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어서 내가 돈을 누구에게 100만원 빌렸는데 그 100만원을 오늘 내가 갚았다, 이렇게 생각합시다. 그 갚은 것을 내가 빌린 것을 알고 갚았다고 주니까 그건 손해보는 건 아니고, 조금 섭섭할른지는 몰라. 약간 남의 돈에 생각이 많은 사람들은. 그런데 또 어떤 사람들은 ‘시원하다. 짐 벗었다.’이렇게 시원하다는 생각도 있을 거예요. ‘아주 기분좋은 날이다, 왜냐? 100만원 그 빚이 있었는데 갚았으니까.’
또 어떤 사람들은 생각나름이긴 하지마는,‘아 그거 좀 더 있다 갚을 건데...’하고 약간 아깝게 생각할 수도 있을 거고.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어쨌든 빌린 것을 갚았다라고 생각을 하면 이것은 문제가 안됩니다. 100만원이 내게서 나갔다 하더라도 그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아요.
그런데, 그런데 이것이 빌린 돈을 갚은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100만원을 손해봤을 경우는 이건 큰 문제입니다. 큰 문제예요.
그럼 왜 그렇게 내가 손해를 보게되었느냐는 원인을 몰라서 큰 문제인거예요.
그럼 빌린 것을 갚았다고 할때는 원인을 알 때 문제가 안돼. 문제가 안된다구요.
기분이 좋아. 가뿐해. 기분이 아주. 빚을 갚았으니 기분이 좋다구요.
그럼 같은 돈이 100만원이 나간 것을 원인을 알고 나간 것은 기분이 좋고, 기분이 안 좋다 하더라도 그냥 그대로고, 모를 때에는 ‘큰 손해를 봤다.’해서 영 밤잠을 못자는 거예요.
여기서 사제, 십이인연의 도리를 부처님이 설했는데, 그를 통해서 이 육백만억해나 되는 이 많은 사람들이 고통의 세계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得盡;득진]
진, 자는 다 했다 이말이여. 고통의 문제가 다 끝났다 이말이여. 어떻게 다 끝났느냐?
원인을 알기 때문에. 내가 현재 받고 있는 어려움과 고통, 슬픔, 아픔은 뭐든지 이러이러한 인연으로 해서 생긴 것이구나 하는 사실을 환히 알았으니까 그 고통의 문제가 다 해결될 수 밖에 없는 거예요.
요는 그렇게 된 겁니다.
고통이 안 되도록 하는 게 아니고 고통을 왜 받느냐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아니까, 그렇게 알아버리면 크게 고통스럽지 않은 거예요, 사실은.
예를 들어서 수술하기 위해서 배를 쨌다. 자기는 안에 있는 병을 완전히 치료하기 위해서 배를 짼 줄을 아니까 그거 뭐 의사보고 화내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어요. 왜 남의 배를 째느냐고 화내는 사람도 없고, 그걸 문제라고 생각 안 해.
‘잘 째달라고 하고, 잘 기워달라.’고 하지, 그걸 문제라고 생각 안 한다구요. 그런데 그 어떤 관계를 모르면 사람 죽이는 줄 알고, 분노와 어떤 화가 치밀 수 밖에 없는 게 아니겠어요?
배째는 것은 고통이야. 원인을 알든 모르든 고통은 고통이라구요.
그런데 왜 그건 고통이 아니냐 이말이여. 고통이 아닌 줄 아는 것은
왜 째는지를 소상히 다 아니까, 그 인연을 아니까, 그 인연을 다 아니까 고통이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십이인연 도리를 설했는데 여기서 모든 고통이, 그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다 해결했다, 이겁니다.
결국은요 전부 그냥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뭔가 그 만한 원인이 다 있고, 그 만한 의미가 다 있어. 어떤 문제는, 어떤 일에는 의미를 다 갖게 되고 그 만한 원인이 다 있고.
그걸 우리가 소상히 알면 그건 이미 고통이 고통이 아니에요.
빌렸던 돈을 갚은 것에 불과한 것이지, 다른 것이 아니에요. 그래서 여기서 고통을 말하자면 다 해결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 아라한을 얻었다.
아라한은 성인 아닙니까? 성인이 되었다, 하는 거예요.
이게 그냥 말은 간단해두요, 정말 올바른 말입니다.
십이인연 도리를 설했는데 육백만억해나 되는 그런 사람들이 고통의 문제를 다 해결하고 성인이 되었다.
그러니까 우리가 어떤 문제가 나에게 닥치면, 그래서 괴로우면, 그래서 가슴이 아프고, 마음이 아프면 ‘아! 이건 뭔가 이럴 만한, 이런 문제가 생길 만한, 이렇게 아플 만한 그런 이유가 있겠구나! 원인이 있겠구나!’
그게 인연의 도리를 아는 거예요.
불교에서는 인과 인연, 얼마나 쉽게 이해를 합니까? 제일 많이 인연이야기 되는 게 그거거든요. 그러니까 예를 들어서 수술하기 위해서 어디를 쨌다, 그러면 ‘아! 이것은 보다 더 큰 고통을 없애기 위해서 잠깐 아픈 거다.’라고 생각을 하니까 아무 문제가 안 된다 이거야.
오히려 의사가 고맙지. 자기 살을 짼 의사가 고마운 거예요. 오히려.
원인을 아니까.
이걸 또 달리 해석을 하면요, 잠깐 괴로움이 닥치면,
‘아 이것은 보다 더 큰 괴로움을 해결하기 위한 그런 괴로움이겠구나!’
오히려 고맙게 받아들 수가 있겠죠. 고맙게 받아들일 여지가 충분히 있습니다.
만약에 살을 안 째고 그냥 두면 어떻게 돼요? 죽죠.
아주 더 큰 문제가 생기게 된다, 이렇게 우리가 이해를 해야됩니다.
이런 법화경에서는 다른 경전을 전부 설하고 나서 종합적으로 재정리하는 그런 입장이기 때문에 부분, 부분을 그렇게 소상하게 말은 그렇게 하지를 못하고 이렇게 그냥 간단하게 짚고 넘어갑니다마는 이 간단한 말속에 그런 이치가 다 포함되어있다라는 것을 아셔야되는 거죠.
159. 第二說法時에 千萬恒沙衆이 제이설법시 천만항사중 於諸法不受하고 亦得阿羅漢하며 어제법불수 역득아라한 從是後得道도 其數無有量이라 종시후득도 기수무유량 萬億劫算數로 不能得其邊이니라 만억겁산수 불능득기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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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二說法時에 千萬恒沙衆이
제이설법시 천만항사중
천만 항하사 같은 대중이 두 번 째 설법할 때
천만 항하강의 모래 숫자와 같은 대중들, 하나의 항하강의 모래 수와 같은 대중이라 하더라도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런데 천만항하강의 모래수와 같은 대중들이,
於諸法不受하고 亦得阿羅漢하며
어제법불수 역득아라한
저 앞에서 개성아라한(皆成阿羅漢) 그랬죠?
여기서는 역득아라한(亦得阿羅漢), 뜻은 같습니다.
개성아라한(皆成阿羅漢)은 다 아라한을 이루었다. 여기서는,
역득아라한(亦得阿羅漢)은 또한 아라한이 되었다.
다 성인이 되었다, 그런 말인데, 저 앞에서
158. 어제법불수(於諸法不受)하고 개성아라한(皆成阿羅漢)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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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중요한 말이에요.
제법불수(諸法不受)제법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 말이거든요.
온갖 현상을 내가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받아들이지 않는다.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은 뭐냐? 거기에 집착하지 않고, 빠지지 않고,
매혹하지 않는다, 이거여. 날씨가 아무리 추워도 그 추위를 내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어떻게요? 따뜻하지요. 상관없습니다.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은 옷을 두껍게 입었다든지, 불을 따뜻하게 땠다든지, 이거예요. 그게 불수(不受)입니다.
그런데 추위만 가지고 이야기하니까 아주 간단하지마는, 이 세상에는 전부 어려움 투성이, 상처받을 일 투성이, 문제 투성이, 내 마음에 안 맞는 것 투성이, 전부 내 마음에 안 맞는 거예요. 하나도 마음에 맞는 것 없어요.
조금 맞는가 싶으면 그다음에 금방 또 안 맞고.
그런데 안 맞을 사실에 대해서 내가 흔들리지 않는 거여. 그 안 맞을 사실을 내가 받아 들이지를 안해.
안 맞는다는 것은 안 맞는다는 것에 끌려 다닌다는 소리입니다. 그것에 대해서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어떻게?
태연자약한거죠. 아무 문제 없습니다. 문제가 있어도 내겐 아무 문제가 없으면 그건 뭐여? 성인이지. 아라한이 된 거지.
요 말도요, 간단해도 정말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어제법불수(於諸法不受) 라고 하는 이 말.
그 다음에 사제십이연(四諦十二緣)을 설했는데 괴로움을 다 선창시법시(宣暢是法時)에, 즉 158번,
158. 宣暢是法時에 六百萬億孩가 선창시법시 육백만억해 得盡諸苦際하고 皆成阿羅漢하며 득진제고제 개성아라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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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창시법시(宣暢是法時),
아까 사제십이연(四諦十二緣)을 설할 때[158번],
그 많은 사람들이[六百萬億孩;육백만억해]
전부 득진제고제(得盡諸苦際)라,
모든 고통의 문제를 전부 해결했다.
159. 第二說法時에 千萬恒沙衆이 제이설법시 천만항사중 於諸法不受하고 亦得阿羅漢하며 어제법불수 역득아라한 從是後得道도 其數無有量이라 종시후득도 기수무유량 萬億劫算數로 不能得其邊이니라 만억겁산수 불능득기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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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159 번,
어제법불수(於諸法不受)하고
역득아라한(亦得阿羅漢)하며,
모든 규칙, 모든 틀, 어떤 선, 모든 통념, 또 우리들 나름의 어떤 틀, 이런 것을 우리가 만들어 놓고 거기에 대해서 받아들이지 아니하면, 거기에 흔들리지 않고, 거기에 빠지지 않고, 거기에 좌·우 되지 하지 않으면 어떻게? 아라한이 되었다, 이거예요.
태연자약한 삶을, 아주 든든한 삶을 산다.
從是後得道도 其數無有量이라
종시후득도 기수무유량
이로부터 뒤에 도를 얻은 사람들도 그 당시 바로 아라한이 되었던 사람도 물론 많았고, 그 후에, 한참 후에, 그 법을 전해 듣고 도를 얻은
사람들도 그 숫자가 한량이 없더라.
萬億劫算數로 不能得其邊이니라
만억겁산수 불능득기변
만억 겁 동안, 만억 겁 동안 그것을 헤아린다 하더라도 그 끝을 그 얼마나 사람들이 많이 제도가 되었는가, 하는 그 끝을 알 수가 없더라.
그와 같이 많고 많은 사람들이 제도를 얻었더라 하는 것입니다.
여기까지는 어떤 이야기인고 하면, 보통 우리가 고통의 문제, 고통 해결의 문제, 그래서 고통이 없으면 어떤 편안한 삶을 누린다, 하는 그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법화경에서는 그건 최고의 삶이라고는 안 해요.
법화경에서 늘 이야기했지만, 그 삶은 ‘편안하고 안온한 삶’이야.
그것을 불교용어로는 ‘열반’이라고 그러죠.
그 아라한들은 전부 열반의 경지를 얻었고, 아주 편안하고 안온한 삶을 얻었어.
세상이 아무리 어지럽고 아무리 나를 마음을 아프게 해도 나는 아프지 않아. 편안하다구요. 그런 상태에 이른 것을 여기까지 이야기하고, 이것을 ‘소승’이라 그래요, 사실은.
그 다음부터 정말 바람직한 삶, 참으로 인간다운 삶을 누리는 삶인데, 이런 삶은 뭐냐? 한 마디로 이야기하면 옆에 사람이 아프면 자기도 아픈거야.
‘옆에 사람이 아프면 나는 안 아프다.’ 좋지, 자기 사는데는.
그런데 그게 제일 좋은 삶이 아니고, 어떻게 보면 제일 좋은 삶 같애요.
그게 아니고 부처님의 말씀은 ‘옆에 사람이 아프면 자기도 같이 아픈 것’, 이게 좋은 삶이라고, ‘부처의 삶’이라고 그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니 그 다음부터,
대통지승불이 처음에는, - 석가모니도 마찬가지고- 석가모니나, 대통지승불이나, 어떤 부처님도, 처음에는 안온한 삶, 자기만의 편안한 삶만 이야기합니다. 왜냐? 자기 발등에 떨어지 불이 급한데 언제 남의 고통을 생각할 겨를이 없잖아요?
그러니까 자기 편안한 삶을 이야기하면 혹하거든요. 괴로운 사람들은 당장에 자기 문제 해결해 준다니까 전부 혹해가지고 따른다구요.
그래가지고 그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하고 나서는
‘아니야, 거기에 머물러 있지 마라. 네 혼자 편한 것은 물론 좋지. 그렇지만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옆에 있는 사람이 아프거든 너도 아플 줄 알아라!’
‘옆에 있는 사람이 기쁘거든 너도 함께 기쁠 줄도 알아라!’
‘이게 인간다운, 참으로 인간다운 삶이야!’ 라고 이렇게 가르치죠.
그게 쉽습니까?
참으로 어렵죠. 그래서 유마경에서도 문수보살이 가서 유마거사를 문병가서
“어떻게 이렇게 아프십니까?”
유마거사는 “아 그거야 나야 중생이 아프니까 내가 아프지, 내가 아파서 내가 아프냐? 중생들이 아프니까 내가 아픈 것 아니냐? 보살은 중생들이 아프면 역시 함께 아프고, 중생들의 병이 나으면 내 병도 함께 낫는다.”라고, 아주 유명한 말이죠. 유마경의 이 말씀.
그 다음에 앞에까지가 전소승(轉小乘), 이승의 법[轉二乘法]을 설한 것이 되고 여기까지, 그 다음
ㄴ. 頌轉大乘法輪 (1.頌王子出家 2.頌正轉大乘請 3.頌二萬劫間說方等般若 4.頌二萬劫後說法華 5.頌說經入定) 160. 時十六王子가 出家作沙彌하야 시십육왕자 출가작사미 皆共請彼佛하대 演說大乘法하소서 개공청피불 연설대승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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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십육왕자(時十六王子)하는 것부터[160번] 대승법문[大乘法輪], 정말 대승법문을 일러 주는 그런 내용이 됩니다, 여기서 부터는.
時十六王子가 出家作沙彌하야
시십육왕자 출가작사미
그때 십육왕자가
이 십육왕자들은 어떻게 된건지 소승 설명할 때에는 없었는지 있었는지 하여튼 출가를 해서 자기 아버지가 부처가 되었다, 라고 하니까 출가를 해서 사미가 되었죠. 그래서
皆共請彼佛하대 演說大乘法하소서
개공청피불 연설대승법
다 저 부처님께 청했어. 뭘 청했는고 하니 그동안 편안한 삶, 안온한 삶, 고통없는 삶, 뭐 다 좋은 얘기예요. 그렇지마는 그것 말고 좀더 시원한, 보다 더 차원 높은 법을 연설해 주소서 하는 것이
演說大乘法하소서
연설대승법
“대승법을 연설해 주소서!”
161. 我等及營從이 皆當成佛道호리니 아등급영종 개당성불도 願得如世尊의 慧眼第一淨하노이다 원득여세존 혜안제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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我等及營從이 皆當成佛道호리니
아등급영종 개당성불도
우리들과 우리들을 따라온 시중, 따라온 사람들, 시중들을 ‘영종’이라 그래요. 아 십육왕자니까 왕자를 따르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겠어요? 그들이 다 마땅히 불도를 이룰 것니라.
부처의 삶을 살고 싶지, 무슨 소승으로 사는 것으로 만족하진 않는다는 거죠.
願得如世尊의 慧眼第一淨하노이다
원득여세존 혜안제일정
원컨대 부처님의 제일 청정하신 지혜의 눈을 얻게 하여 주시옵소서!
첫댓글 우리들의 삶은 永遠生命,,, 잠시잠간의 시비에 물들어 흔들리지 않고 거기에 빠지지 않고 휩쓸리지 않는 으젖하고 태연자약한 삶을,,, 하오나, "중생이 아프면 나도 아픈" 삶을,,,!
감사합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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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눈을 얻게 하여지이다... 고맙습니다._()()()_
고맙습니다...()()()
명성화님, 고맙습니다.()()()
인연의 도리...고맙습니다. _()()()_
고맙습니다 _()()()_
願得如世尊의 慧眼第一淨하노이다....明星華 님! 수고하셨습니다..공부 잘 하고 갑니다..._()()()_
明星華님 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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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아미타불 관세음봘
願得如世尊의 慧眼第一淨하노이다 .........
원컨대 부처님의 제일 청정하신 지혜의 눈을 얻게 하여 주시옵소서!
녹취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명성화님 ...무슨 말씀이세요 녹취를 잘해주셔서 을 하고 있는데요.제가 감사를 드려야지요. 행복하시길 빌어요.
늘
편안하고 안은한 삶이 아니라 옆 사람이 아프면 같이 아파하는 삶을 사는 것이 부처,보살의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