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는 열린 박물관입니다. 150여 기의 청동기 고인돌, 단군과 마니산천제, 삼국시대 고구려와 백제의 요충지, 고려시대 천도 및 대몽고 항전 유적지, 조선 중기 병자호란과 해안가 5진7보53돈대 구축, 조선 후기 병인양요·신미양요·운양호 사건 등 서구 열강의 격전지 등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역사 유적지들이 널려 있습니다. 이 풍부한 관광자원에 미래의 성장동력을 비즈니스화할 계획입니다.”
안덕수(安德壽·63) 강화군수는 요즘 ‘새로운 강화’를 만들기 위해 분주하다. 하루가 모자랄 지경이다. 새벽에 일어나 밤늦게까지 짜여진 일정에 한눈 팔 틈이 없다. 다 강화의 미래 성장동력을 만들기 위해서다.
강화의 자원은 무궁무진하다. 역사적 유적에 농산물도 많다. 강화 쌀이라면 모두 알아준다. 속 누른 고구마도 유명하다. 포도와 배도 당도가 뛰어나다. 약쑥도 전국에서 최고 상품이다. 왜 강화 농산물이 우수한지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바로 특이한 토양에 전국에서 일교차가 가장 크다는 날씨 덕분이다. 큰 일교차는 과일의 당도를 높이는 결정적 이유로 작용한다. 특산품도 있다. 강화 화문석이 지금은 조금씩 사라지고 있지만 아직까지 화문석이라 하면 강화를 쳐준다. 이런 것들이 전부 강화의 성장동력이다.
그러나 무한한 성장동력을 살리지 못하고 인구가 계속 줄어들었다. 관광도 제자리걸음이었다. 연 400만 명 내외가 강화에 다녀가지만 머물지 않고 바로 돌아가는 관광지로 평가받고 있었다. 실제 관광수입이 얼마나 되는지 잡히지 않을 정도였다. 모두 기획과 아이디어를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재미를 못 주는 관광지였다.
이에 안 군수가 나섰다. 인구 감소부터 막아야 했다. 중소기업을 유치하면 중단될 것 같았다. 60여 개 중소기업에 각종 혜택을 주며 불러들였다. 성공적이었다. 중기 유치에도 성공하고 인구 감소도 막았다. 작년부터 유입인구가 2,000명 가량 늘었다. 군 단위의 인구 증가는 전국적으로도 거의 유일했다. 펜션도 생기기 시작했다. 체류 관광객이 조금씩 생겼다.
“보고 가는 관광지에서 묶고 가는 관광지로 탈바꿈하기 위해 유스호스텔 등 건전 여가시설을 더 늘리고, 산책로와 역사 탐방로도 조성하고, 고조선부터 근대까지 강화 역사홍보관도 만들 겁니다. 역사와 관광과 사업을 엮은 재미있는 관광지로 거듭나기 위해서 불철주야 뛰고 있습니다. 이 모든 작업이 강화 재창조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2025년이 되면 상주인구 20만 명에 연 1,000만 명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환서해안 자족·휴양도시로 다시 태어날 것입니다. 지켜봐주십시오.”
강·화·도우리나라에서 다섯 번째로 큰 섬면적 302.14㎢인 강화도는 1읍12면에 인구 6만7,000명으로, 동경 126도 6분에서 126도 32분 사이, 북위 37도 38분에서 37도 51분 사이에 위치한다. 1970년대 직물공업이 성할 때만 해도 강화 인구가 12만 명에 달한 적도 있었다. 특산물은 화문석, 인삼, 순무, 약쑥 등이 유명하다.
강화는 우리나라에서 제주, 거제, 남해, 진도 다음으로 다섯 번째로 큰 섬이지만 제주를 제외한 거개의 큰 섬이 그렇듯 1969년 강화대교가 놓이면서 연륙도가 되었다. 김포시에서 48번 국도가 강화대교를 건너 강화읍으로 이어지며, 남쪽으로 356번 지방도가 초지대교를 건너 초지리로 이어진다.
▲ 강화도와 주변 섬.
지리적으로는 한강 하류를 사이에 두고 북한 개풍군 땅과 마주하고 있으며, 한강과 임진강·예성강이 모두 강화도 북쪽에서 만나 서해로 흘러든다. 동쪽 김포시와는 약 22km에 걸쳐서 남북 방향으로 왕복성 조류가 흐르는 염하(鹽河)를 그 경계로 한다. 교동도와 석모도·불음도·주문도·서검도·미법도·말도 등 10개의 유인도가 강화군에 속하며, 납섬·대섬·와도 등 15개의 무인도를 거느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