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현(22·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을 처음 만나는 사람은 우선 두 번 놀라게 된다. 생각보다 키가 작아서 놀라고 차돌같이 단단해 보이는 인상에 놀란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에 등록된 김병현의 신장은 180cm. 결례가 될 것 같아 물어보진 못했지만, 필자의 눈대중으로는 175cm도 채 안 돼 보인다. 어떻게 저런 체격에서 150km의 강속구가 나오고, 자신보다 훨씬 커보이는 메이저리그 강타자들을 손쉽게 삼진으로 처리할 수 있을까. 실력과 구위 이상으로 두둑한 배짱을 필요로 하는 마무리 투수 김병현. 그는 지금까지 어떤 타자와 맞서더라도 도망가는 피칭을 한 적이 없다.
‘작은 고추’ 김병현이 ‘한국형 핵잠수함’으로 그리고 ‘BK’(병현의 영문 이니셜이자 ‘Bullpen Killer’라는 의미로도 쓰인다)라는 자신의 이니셜을 딴 ‘불펜 삼진왕’으로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우뚝 서기까지를 살펴보았다.
야구선수로서 김병현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1994년 광주 제일고등학교 1학년 시절이다. 당시 광주일고의 에이스는 현재 뉴욕 메츠 산하 마이너리그 트리플 A팀에서 뛰고 있는 서재응이었다.
서재응의 경기를 보기 위해 많은 스카우트들이 경기장을 찾았다. 하지만 정작 이들이 주목한 선수는 서재응보다 1학년생 김병현이었다. 잠수함 투수로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빠른 볼과 변화무쌍한 변화구로 상대 타자들을 제압했기 때문이다. 김병현은 2학년 때 청룡기 대회에서 한 경기 18탈삼진을 기록하는 등 팀을 우승으로 이끌며 스카우트의 표적이 되었다.
김병현이 국제적으로 눈길을 끈 것은 성균관대 1학년 시절 한미 대학야구대회에 참여한 뒤다. 빼어난 피칭으로 현지 관계자들의 혼을 빼놓았고,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 때는 8타자를 연속 삼진 처리하는 등 눈도장을 확실하게 찍혔다. 결국 김병현은 당시 국내 선수로는 최초로 계약금과 연봉 포함 225만달러라는 초특급 대우를 받고 메이저리그에 진출한다.
근성과 오기의 작은 고추
어린 시절 김병현은 태권도를 배웠다. 체격이 크지는 않지만, 독종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승부근성이 강한 소년이었다. 그와 함께 청소년 국가대표팀에서 뛰었던 동료에 따르면 공도 치기 어려웠지만, 워낙 승부욕이 강해 곁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태권도로 다져진 체력도 그의 강력한 무기였다.
지기 싫어하는 김병현의 태도는 연습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지금도 그는 연습을 거르는 법이 없다. 경기 막판, 그것도 승패가 한순간에 바뀔 수 있는 고비에서 마운드에 오르는 마무리 투수이기에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김병현은 주위에서 과로를 걱정할 정도로 연습에 매달린다.
손목을 많이 활용하는 잠수함 투수인 김병현은 불펜에서 대기하면서 쉴새없이 기구를 이용해 힘을 기른다. 투수들에게 기본적인 러닝은 말할 필요도 없고 경기가 끝난 후에도 개인 훈련을 거르지 않는 독종이다.
어쩌면 친구들과 어울려 미팅도 하고 즐겁게 놀 시기인 22세의 김병현에겐 그런 즐거움이 없다. 오히려 ‘정글의 법칙’만이 존재하는 메이저리그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채찍질할 뿐이다. 이런 김병현의 지독한 훈련태도는 미국 진출 3년, 풀타임 2년 만에 주전으로 확실히 자리잡게 만든 원동력이었다.
8월 초 김병현은 매년 그를 괴롭히는 손목과 무릎, 팔 등에 통증이 생겨 코칭 스태프가 등판을 만류한 일이 있다. 한 부위가 아니라 몸의 오른쪽 전체에 통증이 왔기 때문에 참아내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어렵게 잡은 마무리 투수의 기회를 김병현이 손쉽게 포기할 리는 만무했다. 김병현은 계속해서 등판했다. 드넓은 애리조나의 홈구장 뱅크원 볼파크를 세 바퀴나 뛰면서 땀을 쏟았다. 그는 치열한 페넌트 레이스를 펼치는 팀사정을 감안해 팀 트레이너에게만 통증을 귀띔했을 뿐이다.
김병현은 마무리가 허약한 팀 사정상 일반적인 세이브 투수보다 많은 이닝을 소화하고 있다. 지난 시즌까지 그는 시즌 막바지에 체력이 떨어져 고전했다. 그래서 그의 잦은 등판이 자칫 무리를 가져오지 않을까 우려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 전혀 굴하지 않는 김병현은 코칭스태프의 믿음을 얻고 있다. 하루도 쉬지 않는 체력훈련이 동반됐기 때문이다.
김병현은 모든 일에서 지고는 못 사는 성격이다. 좀처럼 타석에 들어설 기회가 없는 마무리 투수 김병현이 지금까지 타석에 들어선 횟수는 여덟 번. 이 가운데 김병현은 오직 한 번 성공했을 뿐이다. 김병현은 하나의 안타로 타점까지 올렸으며, 경기 막판 시소 게임에서 터뜨렸기 때문에 동료들의 박수를 받기도 했다.
김병현은 안타를 때린 뒤 동료들에게 “나도 아마추어 시절 4번타자로 타격왕을 차지한 적이 있다”고 큰소리를 치는 바람에 동료들은 그에게 은박지로 만든 ‘은방망이’ 네자루를 선물했다. 이것은 각 포지션에서 가장 방망이가 뛰어난 선수에게 주는 ‘실버 슬러거상’을 본떠서 애리조나 선수들이 김병현을 축하해준 해프닝이었다.
커피 심부름에서 NO.1까지
김병현은 메이저리그 진출 한국인 1호 박찬호(LA 다저스)와는 분명히 다른 점이 있다. 미국에 진출할 당시의 나이는 20세와 21세로 비슷하지만, 김병현은 처음부터 메이저리그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그리고 마이너리그 생활은 아주 짧게 했다. 박찬호가 2년 동안 거의 풀타임 마이너리거로 생활한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일반적으로 김병현 정도의 나이와 경력을 가진 선수들이 마이너리그에 진출했을 때는 보통 루키리그 혹은 싱글A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해서 단계별로 성장하여 메이저리그에 입성한다. 하지만 김병현은 처음부터 메이저리그 계약이었고 성장 속도도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빨랐다.
일단 마이너리그에서 가장 낮은 단계인 루키리그로 보내졌지만, 처음부터 애리조나 구단은 그를 마이너리그에 오래 처박아둘 생각이 없었다. 이미 그를 데려 올 때부터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한마디로 미국야구에 적응하고 간단한 테스트 기간을 거치게 한 것에 불과했다. 루키리그에서 단 한 경기를 뛰고 그는 싱글A를 건너뛰어 더블A팀인 엘파소로 승격했다. 그곳에서도 10경기에만 출장하고 마이너리그 최고 단계인 트리플A로 올라가 선발, 중간계투, 마무리 등을 고루 뛰고 곧장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유니폼을 입은 것이다.
99시즌 메이저리그 25경기에 출장할 기회를 잡았던 김병현이 매스컴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순식간이었다. 지난해 애리조나의 마무리 투수 매트 맨타이의 부상이 장기화되면서 팀내 마무리 투수로 뛰게 되었고 전반기에 맹활약한 것이다. 물론 전반기 막판부터 처음으로 풀타임을 뛰는 만큼 체력 저하로 고전했지만, ‘불펜의 삼진왕’으로 그리고 당시 최연소 마무리 투수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팬들은 그의 자그마한 체구가 뿜어내는 변화무쌍한 공에 감탄했고, 현재 메이저리그 삼진왕 랜디 존슨조차 “삼진에서는 김병현이 나보다 한수 위”라는 말로 김병현의 어깨를 으쓱하게 만들었다.
그의 존재가치는 단숨에 다른 팀에서 탐낼 정도로 커졌다. 올 시즌 전반기 맨타이의 부상 재발로 다시 위기를 맞은 애리조나는 긴급히 마무리 투수 수배에 나섰고 여러 팀과 협상을 벌였다. 애리조나가 원하는 선수는 경험이 풍부하고 배짱이 두둑한 마무리 투수였는데, 접촉한 구단들은 예외없이 원하는 선수 명단에 김병현을 포함시켰다. 애리조나의 대답은 언제나 ‘NO’일 수밖에 없었다. 젊은 나이에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유망주를 손쉽게 포기할 수 없다는 팀의 강경한 방침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애리조나는 7월부터 마무리 투수의 대권을 김병현에게 넘겨주었다.
날마다 스테이크를 먹어라
메이저리그에서 마무리 투수는 불펜의 에이스로 불린다. 막판 박빙의 승부에서 팀의 승리를 지키기 위해 최후의 방어선으로 기용되는 만큼, 경험과 배짱, 그리고 승부구를 필요로 한다. 그러기에 메이저리그 마무리 투수는 평균 연령 30대 초반의 한창 물이 오른 선수들이 대부분이다. 그렇게 볼 때 젊은 김병현에게 애리조나가 중책을 맡긴 것은 높은 신뢰도를 말해주는 증거다.
국내 야구처럼 철저하게 선후배 사이를 따지는 편은 아니지만, 메이저리그에도 그 나름의 위계 질서는 엄연히 존재한다. 불펜투수 중 막내였던 김병현은 올 시즌 중반 마이너리그에서 브래드 프린츠가 올라올 때까지 커피 심부름을 했다. 미국 야구에서 선후배는 나이가 아니라 누가 먼저 메이저리그에 들어왔느냐로 따진다. 유난히 고참급 선수가 많았던 애리조나 불펜에서 커피 심부름을 하던 김병현은 이제 커피를 주문할 수 있는 처지가 됐다. 고참들이 부상, 트레이드 등을 통해 자리를 떠났고, 이제는 어느덧 메이저리그 3년차로, 뭔가 돌아가는 상황을 아는 선수로 변모한 것이다. 3년 사이에 그의 위상은 커피 심부름꾼에서 NO.1으로 성장한 셈이다.
LA 다저스의 박찬호는 대식가에 음식을 잘 가리지 않는 선수로 알려져 있다. 이런 식생활 습관은 박찬호의 메이저리그 적응뿐 아니라 한 시즌 162경기의 장기 레이스를 펼치는 데 큰 힘이 되었다. 하지만 김병현은 지난해까지 짧은 입과 가려먹는 식성 때문에 고전했다. 아무리 어린 시절부터 다져진 체력에 자신이 있다고 해도 마라톤에 비유되는 장기 페넌트레이스에서 먹는 것이 부실하면 견디기 힘들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체력은 점점 떨어지고 원하는 곳으로 공을 던지기가 어려워지는 것이다.
메이저리그에 데뷔했던 1999년이나 지난 시즌 김병현은 이런 한계를 넘어서지 못했다. 오프 시즌 동안 꾸준한 체력 훈련으로 전반기에는 펄펄 날았지만, 경기 출장 수가 누적되면서 연료탱크가 서서히 바닥났다. 김병현은 고갈된 연료를 재충전하지 못한 채 대형사고를 일으키곤 했다.
지난 시즌을 끝내고 김병현은 식성을 바꾸기 위해 노력했다. 별로 즐기지 않던 스테이크를 매일 먹다시피 했고 식사량도 늘렸다. 그러면서도 웨이트 트레이닝을 충실히 했다. 지난 시즌 그의 모습을 기억하는 팬들은 올 시즌 달라진 김병현의 모습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전체적으로 두툼해졌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김병현이 마침내 메이저리그의 두터운 벽을 깨달은 것이다.
예전에는 과자 같은 군것질을 좋아해 정작 몸에 필요한 에너지를 보충해줄 식사를 게을리했지만 이제는 한 끼 식사에 정성을 기울인다. 비위가 좋은 편이 아니라서 ‘몬도가네’식 보양식은 피하고 있지만, 한약 등 자신이 소화할 수 있는 스태미나 보조식품은 마다하지 않는다. 입에 맞지 않아도 먹어야 산다는 단순한 생존원리(?)를 김병현은 몸으로 체험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라도 한번쯤은 경험해 보았겠지만, 식성을 바꾸기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김병현은 그런 어려움을 이겨내고 몸에 좋다는 음식을 닥치는 대로 먹고 있다.
첫댓글 김병현...방콕 아시안 게임때가 생각나네요..중국 선수들을 혼을 빼놓았던..중국 선수들이 잠수함 선수들을 보기란 힘들어서 그런지 김병현 공에 방망이도 데지 못하던데..이 글을 읽고 그생각이 문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