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스와 메르스
‘펩진’(종이 잡지) 시절의 「중국을 주께로」를 보관하고 계신 분들이 많은데, 그런 분들은 2003년 7/8월 호(통권 82호)를 꺼내 특집의 주제가 무엇이었는지 확인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그 잡지가 없는 분들은 ‘그 때 특집의 주제가 무엇이었기에 이런 주문을 할까?’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특집은 지난 5월과 6월, 전국을 맹렬하게 강타했고 지금도 사람들을 긴장시키고 있는 메르스와도 관계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사스(SARS)가 중국선교에 미치는 영향”이었습니다.
2002년말부터 중국은 사스의 회오리바람 속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관련된 기사들을 검색해 보면, “베이징을 비롯한 주요도시 공황상태” “중국방문객 급감” 이런 것들을 볼 수 있습니다.
십여 년 전에는 사스 때문에 중국이 큰 어려움을 겪었는데, 지금은 메르스 때문에 한국이 같은 형국이 된 것입니다.
2003년 7/8월 호의 특집에서 우리는 중국을 바라보며 사스의 신앙적 의미를 찾기 위해 힘썼습니다. 우리는 지금 눈을 안으로 돌려 ‘신앙적 해석’이라는 안경을 쓰고 메르스 사태를 보아야 합니다.
메르스는 우연히 발생한 전염병일까요?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자주 전염병을 징계의 수단으로 사용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런 관점에서 메르스 문제를 대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교훈을 찾아내지 않는다면, 사망자가 여러 명 발생했고 경제를 비롯하여 여러 분야에 큰 타격을 준 메르스는 그저 ‘불행한 손실’ 이상의 의미는 없는 일이 되고 말 것입니다.
메르스와 관련하여 역대하 7:13~14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하나님께서솔로몬에게 하신, “혹 내가 하늘을 닫고 비를 내리지 아니하거나 혹 메뚜기들에게 토산을 먹게 하거나 혹 전염병이 내 백성 가운데에 유행하게 할 때에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대하 7:13~14)라는 말씀입니다.
마침 올해는 유례없는 가뭄까지 찾아와 이 말씀은 더욱 실감있게 우리에게 다가왔습니다.
중국에서는 동성애 축제 같은 것이 없겠지
낡은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의 푸념인지 모르겠지만, 저는 저는 6월에 극성을 떤 메르스, 그리고 가뭄과, 6월에 있었던 퀴어(동성애)축제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대법원이 동성애 결혼을 허용했다는 소식이 우리의 마음을 씁쓸하게 만들고 있는데, 다른 말 할 것 없이 동성애는 창조질서를 정면으로 파괴하는 행위입니다.
더구나 6월은 현충일과 6ㆍ25 전쟁 발발일이 들어 있는 호국보훈의 달인데, 그런 6월에 서울한복판에서 이런 동성애 축제가 열리도록 허락하고 후원한 당사자들의 국가관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서울에서 퀴어축제가 벌어진 6월 28일은 1950년, 6ㆍ25 전쟁 때 인민군에게 서울을 빼앗긴 날이었습니다.
그로부터 65년 뒤의 이 날은 인륜의 기본과 미풍양속을 빼앗긴 날이 되었습니다.
1960년대, 정부는 장발과 미니스커트를 단속했습니다.
지나치게 짧은 치마를 입은 여성이 지나가면 경찰관이 그를 세우고 치마가 무릎 위 몇 센티미터인가 재기 위해 자를 들이댔습니다.
퀴어축제가 벌어진 시청 주변은 그런 단속이 아주 심하던 곳이었습니다.
퀴어축제 광경을 매스컴에서 대하면서 ‘극과 극도 이럴 수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국은 동성애 문제가 어떤가?’ 궁금하여 여러모로 알아보았습니다.
중국에 여도지죄(餘桃之罪)니, 단수지벽(斷袖之癖)이니, 용양지벽(龍陽之癖)이니, 동성애와 관계있는 말들이 전해오고 있고(이 말들의 유래는 「중주」가족들께서 스스로 알아보시기 바랍니다) 동성애와 관계된 글들을 인터넷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을 보면, 중국도 동성애의 완전청정지대는 아니지만 적어도 베이징 시내 한복판, 그것도 천안문 가까운 곳에서 거의 벌거벗다 시피 한 무리들이 행진을 하는 일은 없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그렇기를 바랍니다.
중국에 대한 우리의 전염력은 얼마나 되나?
이번 발행인 통신의 제목을 보면서 ‘아니 메르스 때문에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닌데 전염병 같은 자들이 되자니 이 무슨 이야기야!’ 화를 내실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흥분하지 마시고 사도행전 24장을 여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체포당해 가이사랴로 호송됩니다.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장로들과 더둘로라는 변호사를 데리고 와서 총독 앞에서 바울을 고발했습니다.
더둘로는 말재간이 대단히 좋은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듣기 좋은 말로 로마 총독 벨릭스를 추켜세웁니다.
이런 것을 교언영색(巧言令色)이라고 하지요.
그 다음에 바울에 대해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전염병 같은 자라 천하에 흩어진 유대인을 다 소요하게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라”라고 말합니다.
바울을 두고 “전염병 같은 자라”고 한 것은 바울이 대단한 힘을 가지고 나사렛 예수에 관한 사실을 전했다는 뜻입니다.
바울을 나쁘게 인식하도록 하기 위해서 한 말이기는 하지만 사실 자체는 바르게 말했습니다.
바울은 메르스 이상의 전파력을 가지고 참으로 넓게, 깊게, 구석구석 복음을 설파하며 그 자리까지 왔으니 말입니다.
더둘로의 이 말을 들으면서 ‘나는, 우리 교회는, 나아가서는 한국교회는 얼마나 전염병 같은 존재인가? 우리의 전염력은 얼마나 되나? 특히 중국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보고 싶지 않으십니까?
중국에 다녀왔습니다.
이번 중국 방문에서 인상적인 것은 각 도시의 야경이었습니다.
중국정부가 좋은 야경을 연출하기 위해 힘을 많이 쓰고 있는 것을 잘 느낄 수 있었습니다.
빌딩들이 야경을 조성하기 위해 들어가는 비용은 정부가 부담한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각 도시의 가로등 디자인이 모두 다른 것도 볼 수 있었습니다.
무단장(牧丹江)시의 가로등은 모란꽃 같은 느낌을 주었습니다.
거기에 십자가 네온들이 솟아있는 것을 볼 수 있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錦上添花)라고 생각하며 아쉬워했습니다.
그런 날이 속히 왔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호의 특집 주제는 “중국선교와 독서”입니다.
퍽 실제적인 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에는 가을을 독서의 계절이라고 했는데 이제는 독서의 계절이 여름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여름휴가도 있고 아무래도 시간여유가 생기는 때이기 때문입니다.
바캉스의 여장(旅裝)에 책 두어 권이 꼭 들어 있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퍽 실용적인 주제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알찬 도움이 되리라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