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古都 경주를 지나 감포를 가는 길에 감은사지 석탑을 둘러보았다.
서라벌 한 귀퉁이 야산 기슭에 외롭게 서 있는 감은사지 석탑 2개가
천년의 세월을 감싸 안고 유구한 역사를 가슴에 품고 있었다.
석탑의 상층부는 천년의 세월을 못 이겨 일부 금이 가 있고
검은 이끼가 색이 바랜 화강암 석탑에 군데군데 끼어 있었다.
그 시대에 거대한 돌덩이를 어떻게 이 언덕위로 가져와서
그 누가 무엇으로 매끄럽게 다듬어 이토록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지
옛 장인들의 석조 기술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화랑의 무리가 달렸음직한 서라벌 들녘에도 계미년의 봄은 서서히 오고 있고
따스한 봄기운은 조심스럽게 석탑 위에 내려앉아 이끼를 어루만지고
유구한 세월의 흐름 앞에서도 중생들의 극락왕생을 위한 염원을 간직하고
굳건하게 서 있는 감은사지 석탑에서 한없는 부처님의 자비를 느낄 수가 있었다.
석탑 주변에는 푸르름이 퇴색해버린 샛노란 잔디밭이 사람의 손길을 거부하고 있으며
연륜만큼이나 삶의 고랑이 이마에 패인 노인네들이 몸에 좋다는 자연산 송화 가루를
사 가라고 목이 터져라 외쳐대는 쉰 목소리를 뒤로하고 문무대왕릉으로 향했다.
탁 트인 검푸른 동해바다. 끝없이 펼쳐지는 수평선만 바라만 보아도 가슴이 시원하다.
도시의 찌든 공해에, 쌓이고 쌓인 일상 생활의 스트레스가 한 순간에 날아 가 버린다. 검푸른 바다에서 밀려와 갯바위에 부딪히며 새하얀 포말로 부서지는 파도는 마치
한 폭의 수채화로 내 눈에 가득 담겨 청량감을 절로 느끼게 한다.
동해에서는 그저 넋 놓고 말없이 바다를 바라만 보아도 좋다.
말없이 한참을 조용하게 수평선을 응시하다가 이내 담배를 꺼내 물고서
살아 온 생애와 살아가는 현실과 살아 갈 미래를 떠 올려 본다.
살면 얼마나 살겠다고 악다구니처럼 살겠는가?
루소의 말처럼 자연으로 돌아가 노자의 無爲를 느끼며 살아가고만 싶다.
탐욕도 명예도 부귀도 모두 버려 두고 바람처럼 구름처럼 살다 가고 싶다.
그런데 아무리 둘러보아도 문무대왕릉이 있다고 도로 옆에 표기는 있으나
내 눈에는 보이질 않았다. 동행자가 저 멀리 어느 조그만 갯바위를 가르킨다.
피식 웃음이 나온다. 마치 제주도 용머리 해안에서 용머리가 어디 있는지
사방을 둘러보는 관광객처럼 여기도 마찬가지로 생각과 기대만큼은 아니더라.
죽어서도 護國一念으로 용이 되어 신라를 지키겠다는 문무왕에 대한 역사는
아무래도 좀 의심쩍지만 그래도 요즘 돈 벌기에 급급한
대~한민국 대통령보다는 훨씬 바람직한 지도자가 아니겠는가?
동해안 도로를 따라서 달리다 보면 해송 사이사이로 동해가 넘실거리고
창문을 여니 바다 짭조름한 내음이 코 속으로 스며든다.
멀리 바다 가운데에는 삶을 건져 올리는 어선이 아른거리고
갈매기는 어선 주위를 선회하면서 혹시나 먹을 것을 찾아 헤맨다.
한참을 달려서 감포에 도착했다.
동해의 명물 과메기가 항구 여기저기 널려 있고
항구 양지쪽에는 어부들이 미역을 말리느라 미역 내음으로 가득 차 있다.
이곳저곳 둘러보다가 어느 횟집에 올라 생선회 모듬 한 접시를 시켰다.
이층에 올라 창문 가에 앉아 창문 너머 바라보니 항구에 정박한 어선이 보이고
어선 뒤로는 동해의 수평선이 보이고 맥주 한 잔 들이키니 카~~아 조오타~~~~.
회 한 점을 된장으로 화장하고 목구멍으로 넘겨보니 산다는 맛이 이 맛이련가?
창문 밖 도로에는 조금 전에 소주 한 병, 맥주 4병을 사이좋게 나누어 마신 남녀가
고급 승용차를 몰고 항구를 벗어나고 있었다. 차량번호는 충청도라......
틀림없이 그렇고 그런 사이. 그들의 종착역은 모텔 아니 교도소 역시 죽음이겠지.
감포읍 파출소에 전화를 하여 승용차 번호와 인적 사항을 불러 주어
음주로 인한 교통사고로 인하여 병원에서 그들의 불륜관계가 들통나지 않도록
친절을 베풀려다가 ....그냥 왔다. 회맛도 너무 좋구 해서. 저 착하죠? 그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