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의 문화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번역이 차지하는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입니다. 만약 번역을 하지 않는다면, 정말 소수의 전문가들만이 외국의 문화를 접촉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문화가 부처님의 가르침이나 그 가르침의 실천과 관련된 것이라고 한다면, 더욱더 널리 모든 대중들에게 전해줘야 할 것입니다. 대중화는 애시당초 부처님의 포교의지를 생각한다면 결코 망각할 수 없는, 중차대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우리는 번역에 많은 노고를 기울여 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성과는 동국역경원에서 행해온 한글대장경 불사입니다. 고려대장경을 완역하여 한글대장경을 집대성하였다고, 장충체육관에 모여서 고불식(告佛式)을 올린 일이 엊그제 같습니다. 참으로 큰 대작불사였고, 찬탄을 받아야 할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다 되었을까요? 우리 민족문화의 보고인 고려대장경을 완역하여 이 시대의 많은 이웃들과 함께 읽는 것은 고마운 일입니다. 그렇지만 제 개인 생각으로는 한글대장경과 고려대장경은 달라야 한다고 봅니다. 한글대장경은 결코 고려대장경의 번역으로만 이루어져서는 아니되며, 거기에다가 플러스 알파를 더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합니다. 팔리어 대장경으로부터의 번역, 산스크리트 경전으로부터의 번역, 티벳대장경으로부터의 번역 등도 우리의 대장경, 즉 한글대장경 속으로 넣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거기까지는 너무나 힘이 달린다고 한다면, 적어도 중국, 우리나라, 일본이라는 동아시아의 문헌들만이라도 다 모아서 번역하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우선은 말입니다.
고려 때 의천(義天)스님께서 교장(敎藏)을 편찬하셨을 때 송, 요, 왜로부터 널리 자료를 모았다고 하였습니다. 이때 왜는, 주지하다시피 일본을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일본불교에 전해지던 자료들까지 다 수집하였다고 배우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아직 우리의 역경불사에서는 일본불교 문헌의 번역은 고려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벌써 여러 해 전부터,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일본불교사가 낳은 문헌들을 번역하여, 널리 읽힐 수 있을까 고민해 왔습니다. 이 일에는 두 가지 언어가 개재합니다. 일본어와 한문입니다. 일본어로 씌어진 저술도 있고, 한문으로 씌어진 저술도 있습니다. 이 둘 다 해야 합니다.
일본불교사연구소가 정식으로 설립되기 전부터, 저는 나무아미타불(柳宗悅 지음) 번역 스터디를 조직하여 번역해 오고 있습니다. 금년이면 초벌번역은 완료될 것같고, 내년부터는 다시 재번역을 하면서 수정보완할 생각입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한문으로 이루어진 일본불교문헌의 번역을 도모해 왔습니다. 일본어 문헌의 번역을 위한 역경사(譯經士)는 양성하지 못하였지만, 한문문헌 번역의 역경사는 어느 정도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이러한 저의 뜻에 호응하여 이인혜 선생님과 김주경 선생님께서 각기 삼국불법전통연기(凝然)와 대승삼론대의초(玄叡)를 번역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분량이 많지만, 일본불교사연구 제6호부터 시작하여 앞으로 몇 번에 걸쳐서 연재될 것입니다. 특히 삼국불법전통연기 같은 텍스트는 번역 이전에, 독서회에서 학생들과 불자들을 대상으로 먼저 강독하였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번역을 행해 간다면, 그것은 동시에 번역 인재양성 역시 가능한 일이라 생각됩니다. 그래서 일석이조가 가능한 분야가 바로 역경입니다.
앞으로 저희 연구소에서는 이 두 권의 텍스트만이 아니라, 더 많은 일본불교의 문헌들이 우리말로 번역될 수 있도록 역경사를 모시는 일과 그분들의 번역을 지원하는 일에 보다 더 많은 관심을 갖고 노력하고자 합니다.
역경은 연구, 교육, 그리고 인재양성(장학)과 함께 저희 일본불교사연구소의 4대 사업(志業)의 하나입니다. 비록 일본불교사연구소라고 이름하였습니다만, 그것은 동시에 일본불교사역경소이기도 합니다.
많은 관심과 성원을 빕니다. 나무아미타불
불기 2556(2012)년 3월 20일
교토에서 김호성 합장
첫댓글 김춘호 선생님, 권두언 완성되었습니다. 가져가셔서 편집해 주세요. 나무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