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경기장을 품고 있는 매봉산은 매사냥을 했던 곳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매봉산은 해발 100m 정도의 나지막한 산이다. 이 산에는 봄이 되면 개나리 진달래가 피고 분홍색 복사꽃, 샛노란 산수유가 곱게 피어나는 아름다운 산이다. 매봉산 자락길 아래쪽 부분에 있던 석유비축기지는 없어지고 문화비축기지로 변했다.
오늘, 우리는 마포구 매봉산 자락길을 걷고 그 아래 쪽에서 새롭게 펼쳐지고 있는 '문화비축기지' 6곳을 샅샅이 살펴보기 위해 6호선 월드컵 경기장역 2번 출구에 모였다.
10시 30분까지 8분이 모여서 월드컵 경기장 옆에 있는 승강기를 타고 매봉산 산길에 올랐다. 산자락길을 걷다가 노란 산수유와 하얀 벚꽃이 활짝 피어서 연분홍 복사꽃 나무와 어울려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여러 꽃들과 어우러진 복사꽃 나무 아래서 기념 사진을 찍었다. 오늘 모임에 참석하신 동기들을 사진의 뒤쪽부터 살펴보면, 우형, 최형, 큰이형, 이여사, 박여사, 강여사, 백형, 권혁 등 8명이다.
월드컵 경기장 역을 나와서 '문화비축기지' 가는 방향 표시가 있는 높다란 전신주를 지나 월드컵 경기장 앞 광장을 지났다. 매봉산 자락길로 들어서니 빨간 철쭉, 하얀 철쭉이 화려하게 피어서 우리들을 반갑게 맞아주고 있는 듯 했다. 철죽은 5월 초순부터 피어 난다는데 벌써 피어 있다. 진달래, 철쭉, 연산홍은 모양이 비슷해서 구분하기가 어렵다.
진달래는 나무줄기가 깨끗하고 꽃이 먼저 피며 먹을 수 있다.
왜철쭉은 연산홍 자산홍으로 불리는데, 잎보다 꽃이 먼저 피지만 묵은 잎도 있다. 강한 붉은 색이나 하얀색의 봄꽃 대부분은 영산홍, 자산홍이다. 산철쭉은 잎과 꽃이 함께 피며 잎이 도톰하고 갸름하며 털이 있고 꽃이 약간 붉은 편이다. 진달래는 수술이 10개이지만 연산홍은 6개다.
숲속은 공기가 맑아서 좋다. 오늘은 미세먼지가 '나쁨'수준이라는데, 이 곳에 오니 마스크 쓰신 분이 보이지 않는다. 숲속에서 심폐호흡을 하면서 걸으면 삼림욕이 된다.
철학자 칸트가 매일 오후 2시에 규칙적인 산책을 했다는데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혼자하는 산책은 사색의 산책이다. 여럿이 어울려서 하는 산책은 토론과 대화의 산책이 된다. 열심히 걷고 산책하자. 걸으면 살고 누우면 죽는 단다.
소나무가 군집해서 자라는 곳에 큰 현수막이 걸러 있었다.
임(林)자 사랑해, 우리 숲과 산을 이끼는 임(林)자
우리 숲을 지켜 주세요.
* 가져 온 쓰레기는 되 가져 가자.
* 예쁜 나무, 예쁜 야생화는 손대지 말자.
* 도토리, 산나물, 산약초는 채취하지 말자.
위의 사항을 어기면 경범죄처벌법이나 기타 자연보호법에 의해 처벌 되는 경우가 많다.
다만 산나물, 버섯 등은 이견과 예외가 많은 걸로 알고 있다.
우리는 위 사항을 철저히 지킨다. 간식 시간에도 우리가 생산한 휴지나 과일 껍질은 비닐 봉지 등에 담아서 가지고 가는 게 일상화 됐다. 특히 여성 동기들이 솔선수범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나무가 소나무이다. 소나무의 종류를 따져보면 육송, 해송, 외래송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해송은 바닷가에서 자라는 소나무이고 외래송으로는 리기다소나무와 백송이 유명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소나무는 육송인데 꼬부라진 작은 소나무도 있지만 직송과 금강송이 좋은 소나무다. 직송은 곧고 높게 자라는 소나무다. 성삼문의 시조에서 '낙락장송'이라고 했는데, 그 낙락장송이 바로 직송이다. 낙락장송이 무리지어 우뚝 서 있으니 그 기개가 하늘을 찌를 듯 하다.
매봉산 전망대에 올라갔다. 산자락 아레 있는 '문화비축기지'가 아름답게 펼쳐진 모습을
뽑내고 있는 듯 했다. 월드컵경기장, 쌍둥이빌딩, 청계산, 관악산, 6.3빌딩, 국회의사당 등을 뚜렷하게 볼 수 있었다.
성산대교의 모습도 한강 위에 떠 있는 한폭의 무지개다리 처럼 아름답게 보였다.
양화대교는 희미하게 보이지만 다리 건너 있는 행주산성은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건설중에 있는 올림픽 대교가 개통된다면 월드컵 공원 일대는 교통의 요지가 될 것 같다.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문화비축 기지'의 모습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
문화비축기지의 건물들이 균형잡혀서 멋 있어 보였다. 석유저장의 탱크 원형이 한 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이야기 교실도 있었고 컴뮤니케이션 센터와 공연장도 보였다. 고개를 들고 멀리 쳐다 보면 여의도의 고층 건물들이 빼곡하게 보였다.
이 전망대는 아래도 내려 보고 위도 바라볼 수 있는 다용도 조망대였다.
매봉산 정상에 도원경 못지 않는 명당이 있는 것 같다.
돚자리 처럼 생긴 나무로 만든 눕는 의자 4개가 마련돼 있었다.
최형과 백형이 자리를 한 개씩 차지하고 누워서 눈을 감아 본다.
가만히 앉아 계시던 큰 이형은 그 모습을 보고 빙그레 웃으신다.
주변에는 복사꽃, 산수유꽃, 철축꽃이 화사하게 피어서 앉아 계시는 분과 누우신 분들께 축복을 내려 주는 듯 했다.
구름 한점 없는 푸른 하늘, 따사로운 햇살이 곱게 비치는 화창한 날씨에 눈 감고 조용히 계시는 두분, 부처님처럼 앉아서 빙그레 웃기만 하는 분, 이 모습이 바로 평화로운 세상에 온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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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여사께서 복사꽃 사진을 찍는다. 강여사는 꽃 전문가이신가 보다.
약 2년 전, 우리 동기들이 강원도 소재 권오직 동기 농장을 방문했을 때, 검은 테 노란색 국화 모양의 꽃을 보고 아무도 그 이름을 모르는데, 강여사가 척 보더니 "이 건 천인국이야!" 하고 한마디 말했다. '다음' 꽃 검색기로 검색해보니 강여사 답은 정답확률100%로 나왔다.
지금도 산행할 때 마다, 들 꽃이 나타나면 강여사는 번개 같이 사진에 담는다. 강여사는 벌써 꽃 전문가가 되신 것 같다. 강여사, 백형, 차형은 꽃 이름을 잘 아는 분들이다.
숲길에 휴식처가 나왔다, 우리들은 휴식처에 둘러 앉았다. 큰서형이 못오셔서 커피는 마시지 못했다. 일찍 연락이 왔더라면 누군가 준비해 왔을 터인데... 하고 아쉬워 하는 사람도 있었고 없으면 물만 마셔도 된다는 분도 있었다.
과자 종류가 많이 나왔고, 압권은 역시, 군계란이었다. 우리는 각자 가져 온 물을 마시며 군계란도 까 먹고 과자, 초코파이 등을 먹으면서 여러가지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최형은 한시와 시조를 읊어 보고 해설도 했다. 우리는 재미 있게 듣고 감상했다.
昨夜雨 宋翰弼<조선 선조 때>
花開昨夜雨 어젯밤 내린비에 꽃은 피었다가
花落今朝風 오늘 아침 바람에 꽃이 지는 도다
可憐一春事 가련하다 이 봄의 짧음이여!
往來風雨中 비바람 중에 피었다 지는구나
<시조>
간밤에 부던바람 淸風桃花 다지거다,
아이는 비를 들고 쓸으려 하는구나
낙화인들 꽃이 아니랴 쓸어 무얼 하리오,
<鮮于浹, 조선 인조 때>
이팝나무에 하얀 꽃이 활짝 피면 수풀 위에 눈가루를 뿌려 놓은 듯 하다고 한다.
이팝나무는 향기로운 백색 꽃이 20여 일간 잎이 안 보일 정도로 나무 전체에 피었다가 가을이면 콩 모양의 보랏빛의 타원형 열매가 겨울까지 달려 있어서 정원수나 공원수, 가로수로 심으면 좋다.
좀 큰 나무에 흰눈 내린 것 처럼 덮혀 있는 꽃은 이팝 꽃이고 싸리나무처럼 덩쿨 나무에 둥글둥글 모여 있는 흰꽃 무더기는 조팝 꽃이라고 한다. 그래서 저 꽃더미도 조팝꽃 더미라고 보아야 하겠다.
우리는 조팝 꽃의 순 백색에 취해서 조팝 꽃 더미 앞에 있는 정자 모양의 의자에 앉아서 사진을 찍었다. 한 사람은 사진 찍느라고 자기 얼굴은 나타내지 못해서 7명만 앉아 있다.
이 비탈 길을 내려가면 '문화비축기지' 시설이 곳곳에 늘어서 있다. 가마니 같이 보이는 물질을 흙 길 위에 깔아 놓았다. 비탈길의 미끄럼을 예방하는 조치로 매우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나이들면 넘어지지 말아야 한단다. 우리들은 비탈길을 조심조심 걸어서 내려왔다.
길옆의 언덕 비탈에는 조팝나무가 하얗게 피어 있었다. 이팝나무에 핀 꽃은 하얀 꽃이 나뭇가지 전체를 하얗게 가려서 눈으로 덮힌 것 처럼 보인다.
조팝 덩굴의 흰 꽃은 좁쌀을 튀겨서 매달아 둔 것 같다고 해서 조팝 꽃이라고 하는데 솜뭉치를 작게 말아서 나뭇가지에 송알송알 달아 둔 모양 같기도 하다고 한다
문화비축기지에는 곳곳에 물자루를 달아 두었다. 왜 그럴까? 구체적인 설명은 없었다.
아마도 식물의 성장에 물이 필요하니 조금이라도 사전 준비를 한다는 의미도 있을 거고 공기 청정에 기여한다는 의미, 화재 예방에 일조한다는 다각적 의미가 있을 것으로 추정해 본다.
문화비축기지는 월드컵 경기장을 품고 있는 매봉산 자락에 있던 대형 석유저장 창고를 2002년 서울월드컵을 계기로 경기도 용인으로 이전했다. 서울시가 이곳을, 시민을 위한 공간으로 재활용하기로 했다. 시민들에게 아이디어를 공모하고 토론을 통해서 다각적인 방법을 모색하기로 했다. 그래서 설계공모 당선작 '땅으로부터 읽어낸 시간'을 토대로 해서 시민들이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여 시민들에게 돌려 주기로 했다.
관에서 주도하던 권위주의를 청산하고 시민의 뜻에 따라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문화비축기지'로 개발하기로 했다. '석유비축기지'가 '문화비축기지'로 발전된 것이다. 문화비축기지는 기존의 저유 탱크시설을 문화공간으로 개조하였다. 그래서 모든 시설 탱크의 첫글자인 T1에서 T6까지의 시설을 마련 했다.
T1은 파빌리온으로 다목적 컴뮤니케이션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는 곳이다. 탱크 해체 후 남은 공간에는 지붕을 새로 만들어 옹벽 사이로 매봉산 암벽 지형이 조화롭게 펼쳐지는 멋 있는 지형 모습을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T2는 공연장이다. 다목적 공연장인데 실내 공연장에서는 워크숍도 할 수 있고 실외 공연장은 공연이 없는 날에는 시민들이 휴식이나 오락을 즐길 수도 있다고 한다.
관람석에는 강여사가 최형, 우형, 이여사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다.
강여사가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연극 이야기를 하는가?
우형과 박여사는 뒤 떨어져 있는 모습이 연극의 한 장면 처럼 보이는데...
백회장은 무대에 올라 가더니 노래 한 곡조를 불렀다. 제목은 '인생의 정답'이다.
"칠십을 살고 팔십을 살고 백살을 살면 뭐해 걱정 없이 살아야지
비단옷에 기와집 그깐 게 무슨 소용, 사랑해 줄 님이 있어야지
어떻게 사는 것이 정답이냐고 바보 질문 하지 말아요.
유람하 듯 여행하 듯 산천경계 구경하면서
즐기면서 살아요 한템포만 늦춰요
인생은 두 번 살 수 없으니까"
T3은 석유비축 당시의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석유비축기지가 세워진 역사적 배경과 당시의 사정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귀중한 문화 유산이 되고 있다. 시, 공간적 여유가 있을 때는 문화 행사 등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T4는 복합문화 공간으로 활용한다. 복합문화공간으로서 공연과 전시, 체험 등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창출하고 있다. 거대한 외벽과 철제 파이프가 탱크의 옛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T5는 이야기가 전개되는 곳이다. 전시실로 구성된 이곳은 석유비축기지가 문화비축기지로 되기까지의 과정, 이야기를 담았다. 둥그런 전시실을 한바퀴 돌면서 과거부터 현제까지의 이야기를 전한다. 석유비축기 시절에 직원들이 사용했던 작업복, 헬멧 등을 비치하여 이야기를 더욱 생생하게 한다.
T6은 커뮤니티 센터로서 철판을 사용해서 새로운 건축물을 세웠다.
이곳은 운영사무실, 창의실, 강의실이 모두 커뮤니티 활동을 위한 공간들로 이루어졌다.
2층에 올라가면 하늘을 바라 볼 수 있는 옥상 마루와 시민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생태 도서관도 있다.
문화비축기지를 한바퀴 둘러보니 우리들은 모두 마음이 흐뭇해진 것 같았다.
백회장의 제안으로 이 넓은 광장 한 가운데 나란히 서서 기념사진 한 컷을 찍었다.
우리가 '문화비축기지'를 완주하고 이 기지 광장 한 가운데 서서 사진을 찍으니
'감개무량하다.'는 분도 있었다.
사진을 찍는 폼도 모두 자신만만 하고 뿌듯한 긍지를 가지신 분들 같아 보였다.
모두 기쁜 마음과 밝은 표정으로 환하게 웃으며 사진 한장을 정답게 찍었다.
저마다 멋진 포즈를 취하며 서 있었다. 마지막으로 박정희 대통령 기념관도 관람했다.
우리는 버스를 타고 월드컵 역 근방의 농수산물 시장으로 가서 한 음식점에 들어 갔다.
자리에 앉자마자 대구탕과 막걸리를 시켰다. 술잔에 막걸리를 따루고 건배를 했다.
"우리들의 행복과 건강을 위해, 건배!" 라고 소리치며 술잔을 부딪쳤다.
대구탕은 시원하고 구수한 맛이 나는 좋은 음식이었다. 반찬은 김치 중심으로 수수했지만 대구탕 맛은 일품이었다. 음식을 먹으면서도 우리들 사이에 여러가지 이야기가 오갔다.
어떤 분은 나라 걱정을 하시고 어떤 분은 우리들의 삶과 건강문제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백회장은 동창회 행사 일정을 말했다. 6월 초에 동기회 총회, 10월에 '문화연수', 연말에 송년회를 갖겠다고 했다. 식사가 끝나니 커피도 가져 왔다. 우리는 커피를 마신 후, 월드컵 전철역까지 걸었다. 역에 오니 가는 방향이 달라 서로 헤어져야 했다."Good-by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