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참음(엡 4:2)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에베소서 1–3장을 “하나님의 은혜”, 4–6장을 “그 은혜에 합당한 삶”이라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부르심에 합당한 삶의 세 번째 덕목으로 “오래 참음”을 명령합니다. 앞서 살펴본 “겸손”이 자아의 파산을 선언하는 것이고, “온유”가 길들여진 힘이라면, “오래 참음”은 그 겸손과 온유가 “시간”이라는 시험대를 통과할 때 나타나는 열매입니다. 특별히 오래 참음은 공동체 안에서 상처받고, 오해받고, 무시당하고, 억울해질 때 필요한 덕목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자는 반드시 오래 참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오래 참음은 은혜를 받은 자의 시간 사용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2절 말씀입니다.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오래 참음”에 해당하는 헬라어 “마크로디미아”라는 말은 “길다”라는 뜻의 “마크로스”와 “마음, 분노”를 뜻하는 “뒤모스”의 합성어입니다. 이것은 “분노의 도화선이 길어진 상태”, 즉 “쉽게 폭발하지 않는 영적 안정”을 의미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어떤 상황을 잘 견디는 것을 “인내”라고 할 수 있고, 우리를 힘들게 하거나 괴롭히는 사람을 견디는 것을 “오래 참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상황은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쩔 수 없이 견뎌야 할 때가 많지만, 사람에 대해 오래 참는 것은 의지적인 선택이자 영적인 실력입니다.
오래 참음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기다림”에 뿌리를 둡니다. 우리가 타인에 대해 오래 참아야 하는 근거는 하나님이 우리에 대해 먼저 오래 참으셨기 때문입니다.
오래 참음은 하나님의 자비하심에서 유출된 성품입니다.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은 우리의 구원을 위한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오래 참지 못하는 자는 하나님의 자비를 가로막는 자와 같습니다.
오래 참음은 단순히 고통을 겪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며 주님의 때를 기다리는 거룩한 인내이며, 자기에게 가해지는 해독을 능히 견디며, 보복하지 않는 신적 성품입니다.
크리소스톰은 “오래 참음은 모든 미덕의 왕이다”라고 했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가 죄를 지을 때 즉시 징벌하실 능력이 있으나, 회개할 기회를 주시기 위해 그 심판의 시간을 뒤로 미루신다. 이것이 오래 참음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칼빈은 오래 참음을 “교회의 안녕을 지키는 필수적인 담보”라고 보았습니다. 또한, “우리가 형제의 허물을 오래 참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오래 참고 계시는지 망각했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시지만 죄인을 향해 분노를 지연시키십니다. 그 지연이 곧 자비입니다. 하나님의 인내는 우리의 구원보다 먼저 존재했습니다.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이 없었다면, 우리는 이미 사라졌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지옥에 떨어졌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참고 계십니다.
세상 돌아가는 것이 너무 빠릅니다.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 탓인지, 우리의 성격들도 급해졌습니다. 기다리지는 못합니다. 참지를 못합니다. 인내가 없습니다. 조급합니다.
아브라함의 나이 칠십 오세 때, 하나님은 그를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반드시 너에게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히 6:1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백 세에 아들 이삭은 얻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창 15: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약속이 이루어지기까지 많은 세월이 흘렸습니다.
아브라함은 오래 참아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습니다.(히 6:15)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질 때까지 참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히 10:36)라고 말했습니다.
약속은 씨앗과 같고, 인내는 그것을 자라게 하는 계절입니다. 믿음은 약속을 붙잡는 것이고, 오래 참음은 그 약속이 열매 맺을 때까지 손을 놓지 않는 것입니다. 조급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떠난 이들이 돌아오실 때까지 참고 또 참으셨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품 안에 돌아 올 때까지, 하나님은 참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능력이 부족해서 기다리시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시기 때문에 기다리십니다.
오래 참음은 자아의 죽음을 증명하는 “영적 실력”입니다. 오래 참음은 자아가 십자가에 못 박힌 상태가 지속되는 것입니다. 오래 참음은 성격이 느긋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안에서 끓어오르는 혈기를 성령의 통제 아래 두는 치열한 영적 전투입니다.
오래 참음은 다른 사람의 죄나 허물 따위를 너그럽게 용서하는 마음입니다. 누군가 나에게 상처를 줄 때, 그 화살을 주워 다시 쏘지 않고, 십자가 아래 묻어버리는 것이 진정한 용기입니다. 오래 참음은 복수할 수 있는 힘이 있을 때, 그 힘을 사용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는 약함이 아니라, 가장 강한 자만이 할 수 있는 절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보다 사람을 기다리는 데서 더 자주 실패합니다. 그러나 형제를 참아주지 못하면서, 하나님을 신뢰한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오래 참음은 공동체의 균열을 막는 접착제와 같습니다. 서로의 다름과 부족함이 드러날 때, 오래 참음이라는 접착제가 없으면 공동체는 금세 산산조각이 납니다.
오래 참음은 공동체를 지탱하는 영적 중력입니다. 겸손이 없으면 자랑이 터지고, 온유가 없으면 충돌이 일어나고, 오래 참음이 없으면 공동체는 분열됩니다. 교회를 무너뜨리는 것은 큰 이단보다 작은 성급함입니다.
여러분, 세상은 “즉각 보복하는 것이 정의”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오래 참는 자가 성을 빼앗는 용사보다 낫다”(잠 16:32)라고 말했습니다.
내 힘으로는 도저히 참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은 2천 년을 참으셨고, 지금도 나를 참고 계십니다. 그 주님을 24시간 바라볼 때 비로소 우리는 참을 수 있습니다. 오래 참음은 성령이 다스리는 힘입니다.
우리는 빠른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새벽 배송, 즉각 응답, 민원 즉시 해결. 그러나 영혼의 성숙은 즉각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급한 자와 동행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즉시 일하실 수 있지만, 우리 안에서 일하시기 위해 시간을 사용하십니다.
오래 참음은 기도의 학교에서 자랍니다. 기도는 오래 참음을 훈련하는 자리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시간을 견디는 오래 참음의 학교입니다. 오래 참음이 없는 기도는 응답의 문턱에서 돌아오는 것과 같습니다. 응답보다 더 큰 선물은 기다림 속에서 자라는 영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조급함을 고치기 위해 기다리십니다. 기도하면서 기다리는 사람은형제를 향해서도 기다릴 수 있습니다.
오래 참음은 십자가에서 완성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멸시를 당하고, 모욕을 들으셨으나 침묵하셨고, 능력이 있으셨으나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이 세상을 향해 분노를 연기하신 자리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이 인류를 향해 “아직 끝나지 않았다”라고 선언하신 자리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이 절정에 이른 자리입니다.
2천 년 전, 주님은 우리를 위해 참으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나를 참고 계십니다.
우리가 형제를 참지 못할 때, 그 순간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주님이 나를 참아주신 시간을 기억하십시오.
자녀가 기대만큼 변하지 않을 때, 하나님이 나를 기다려주신 시간을 기억하며 참으십시오.
동료가 나를 오해하거나 비난할 때, 십자가 위에서 침묵하며 끝까지 참으신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오늘 하루, 우리 인생의 시계를 “나의 속도”가 아닌 “하나님의 속도”에 맞추어 보십시오.
우리는 사람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뒤에 계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보아야 합니다. 오래 참음은 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일하실 시간을 벌어드리는 가장 고귀한 승리의 태도입니다. 오래 참음은 사건을 통제하는 능력이 아니라, 반응을 성령께 맡기는 능력입니다.
오늘 우리 모두가 이 “오래 참음의 옷”을 입고, 우리가 머무는 곳마다 하나님의 평화가 임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우리 죄를 끝까지 참아주시고 사랑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조금만 내 뜻대로 되지 않아도 조급해하고, 조금만 억울한 일을 당해도 분노를 쏟아내던 연약한 자들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수천 년을 기다리셨고,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의 허물을 덮어주며 참아주시는데, 우리는 정작 형제의 작은 허물조차 견디지 못했음을 고백합니다.
주님, 우리에게 “거룩한 인내”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내 감정의 도화선이 짧아질 때마다 십자가를 바라보게 하시고, 사람을 대할 때 비판의 칼을 뽑기보다 기도의 무릎을 먼저 꿇게 하옵소서. 상대방의 변화를 요구하기 전에, 끝까지 참아주시는 주님의 마음이 내 안에 먼저 부어지게 하옵소서.
우리 교회가 서로의 짐을 지고 오래 참아줌으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끝까지 지켜내게 하시고, 우리 성도들의 가정마다 조급함이 떠나가고 주님이 주시는 평강과 인내가 강물처럼 흐르게 하옵소서.
우리를 위해 죽기까지 참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