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비 쏟아지는 섬, 안마도
소 해수욕장과 기암절벽 절경
필자가 안마도에 관하여 이야기를 들을 건 몇 년 전이다. 당시 잘 아는 이신이라는 시인이 다른 시인 몇분과 함께 안마도에 가자고 해서 구체적인 계획까지 세웠는데 갑자기 사정이 생겨 못간 적이 있다. 안마도 여행을 제안한 이신 시인의 고향이 안마도였기 때문에 안마도는 특히 친숙한 느낌이 드는 섬이다. 그런데 필자가 참여하고 있는 섬여행모임에서 안마도여행 공지가 떴다. 반가워서 바로 신청을 했다.
안마도(鞍馬島)는 전남 영광군 낙월면에 위치한 섬으로 법성포에서 39km 떨어진 서쪽 해상에 위치하고 있다. 섬모양이 말의 안장 같다고 하여 안마도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황해로 표류해 온 중국 대신의 관(棺) 표면에 안장한 말의 조각이 있었다고 해서 안마도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설도 전해온다. 낙월면에서 가장 큰 섬으로 서쪽에는 죽도(竹島)·횡도(橫島), 남서쪽에는 오도(梧島), 북동쪽에는 석만도(石蔓島)·소석만도 등이 있는데, 이들 섬과 함께 안마군도(鞍馬群島)를 형성한다.
이곳에는 해식애와 절리 층이 발달되어 말코바위, 흔들바위, 써우리도 등 바다 한 가운데 웅장한 기암괴석이 장관을 이룬다. 섬 마을 중심에는 300~400년된 팽나무와 느티나무도 있으며, 해안선 길이 37km, 면적은 6.09㎢ 정도이다.
안마도는 영광군 계마항이라는 곳에서 출항한다. 계마항은 법성포에서 차로 20분 정도 거리에 위치하고 있는 조그만 항구이다. 계마항에서 안마도 가는 배는 출항시간이 매번 다르기 때문에 반드시 사전 배시간을 확인해야 한다. 서해안의 바다는 간만의 차가 심한 지역이고 특히 계마항과 안마도 포구가 수심이 낮다 보니 물때에 따라 배가 출항하는 시간이 날마다 다르다. 안마도는 송이도-대석만도를 거쳐 가며, 계마항으로부터 약 3시간 정도 걸린다.
우리 일행은 계마항에서 12시 30분 배를 탔다. 여객선은 철부선으로 차량 몇 대를 실을 수 있는 그리 크지않은 배이다. 배가 출발하면 곧 좌측으로 영광대교가 보이고 백수해안도로도 시야에 잡힌다.
배는 계속 파도를 헤치고 넓은 바다 쪽으로 나아간다. 얼마쯤 갔을까? 바다 한 가운데 병풍처럼 여러개의 작은 섬들이 나란히 막아선다. 함께 간 ‘섬으로’카페 대표 이승희 씨가 저 섬들이 칠산도(七山島)라고 귀뜀해 준다. 남쪽 일산도에서부터 이산도-칠산도까지 고만고만한 일곱 개의 무인도가 사열하 듯 늘어서 있다.
이곳이 과거 조기어장으로 유명한 칠산 앞바다란 말인가? 섬은 밀물 때는 6개로 보이다가 썰물 때는 7개로 보이는데 이때 보이는 섬을 뜬섬 또는 부도(浮島)라 한다. 천연기념물 제361호인 노랑부리백로·괭이갈매기·저어새 번식지로도 유명하다. 과거 칠산바다에서 잡힌 조기는 영광굴비 중에서도 으뜸으로 치는 ‘오사리굴비’로 명성이 자자했지만 이제는 기후변화와 남획 등으로 조기떼가 별로 잡히지않는다고 한다.
계마항에서 1시간 반쯤 후면 송이도. 섬전체 모양이 귀처럼 생기고 소나무가 많다하여 송이도라 불리는 이 섬에는 몽돌해수욕장과 썰물 때 갈라지는 바닷길이 유명하다. 선착장 옆 2km의 해변에 하얀 융단처럼 깔린 조약돌은 맨발로 다녀도 발이 전혀 아프지 않을 정도로 부드러울 뿐만 아니라 도자기의 필수적인 원료로써 알갱이가 곱고 반짝거린다. 또, 연중 200회 정도 송이도에서 각이도까지 바닷물이 갈라지는 거대한 바닷길이 생겨 현대판 ‘모세의 기적’도 목격할 수가 있다. 바닷길은 폭이 250m, 길이가 무려 4km 정도라고 한다. 2시간 정도 모습을 드러내는 바닷길에서 맛조개·피조개 등을 잡을 수 있다. 일정상 송이도에는 들르지못하고 바로 안마도로 향한다.
배가 송이도 모퉁이를 돌면 곧 멀리 안마도가 보이기 시작한다. 반갑다. 이제 거의 다 왔구나 생각했는데 아직이다. 송이도로부터 거의 1시간 반은 더 가야 한단다. 날씨가 맑아 잘 보이는 것 같다. 파도 역시 잔잔하여 섬여행에 최적의 날씨이다.
3시경 안마도 부속섬인 대석만도에 도착. 몇명을 내려준다. 그중 한 명은 배에서 필자와 몇마디 나눴던 낚싯꾼 할아버지. 연세가 79세란다. 나이가 많으신데도 친구분과 둘이 1박2일 바다낚시를 하러 오셨단다. 대단하시다. 석만도에는 농어와 민어가 잘 잡힌다고 귀띔해주신다.
배는 대석만도와 소석만도 사이를 지나 안마도 해역에 진입한다.
죽도 코너를 돌면 우측으로 횡도, 오도가 보이고 안마도 방파제가 시야에 들어온다.
빨간 등대와 하얀 등대가 방파제 양쪽에 서 있고, 배는 등대 사이를 지나 어항 모양의 포구로 들어간다.
3시 반경 드디어 안마도 선착장에 도착, 계마항으로부터 3시간 정도 걸렸다. 선착장에는 붉은 색, 녹색 천이 뒤섞인 깃대들과 함께 ‘청정의 섬 안마군도’라고 쓰여진 표지석이 방문객들을 맞아준다.
우리 일행은 선착장 바로 앞에 위치한 해나루 민박집에 여장을 풀고 잠시 후 민박집에서 운영하는 낚싯배로 섬 일주 유람에 나선다.
배가 방파제를 나가자 기암절벽이 연이어 나타나고 절벽 위에는 소떼와 염소떼가 노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온다. 대문 모양으로 큰 구멍이 뚫어진 말코바위라고 부르는 암벽도 보이고,
깎아지른 절벽과 바위 위에 서 있는 소와 염소들이 아슬아슬하다. 안마도에는 소 300여 두가 산비탈과 능선에서 방생하고 있다고 한다.
사랑바위, 토끼바위, 거북바위,흔들바위, 두꺼비바위, 이무기바위, 손오공바위, 등대바위 등 일일이 기암절벽의 이름을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다.
용바위 또는 돌고래바위라는 기암도 나타난다. 좌측 두 바위봉우리 사이로 해가 비치면 마치 용이 여의주를 물고 있는 모양처럼 보이기도 한다.
또, 병풍 모양으로 늘어선 써우리도라고 부르는 바위섬들도 보인다.
암벽곳곳에는 각양각색의 거대한 동굴들도 보인다. 간조 때는 문이 열리고 만조에는 문이 닫히는 용궁굴이라고 부르는 동굴도 있고,
아기못갖는 여인이 돌을 던져 들어가면 아기를 얻을 수 있다는 전설의 옥동자굴도 있다. 정말 절경이다. 홍도, 백도 등의 바위 섬들과 비견할 만하다. 안마군도를 ‘서해의 소금강’이라 부르는 이유가 실감이 간다. 이토록 아름다운 섬이 그동안 별로 알려지지않은 게 의아할 정도다. 아마도 배편이 멀어서가 아니었을까 혼자 짐작해 본다. 해마루 민박 주인이기도 한 김삼중 선장은 관광해설사 못지않게 유창한 어조로 특징적인 기암괴석들을 하나하나 소개해 준다.
횡도에는 현재 2가구가 살고 있으며, 오도는 60년대까지만 해도 30여 가구가 살았으나 현재는 무인도이다. 안마도와 횡도, 오도 간 2020년까지 출렁다리를 설치할 계획이라고 한다.
약 1시간 반 정도 안마도, 횡도, 오도 해안을 돌아본 후 대석만도에서 배를 정박시키고 40분 정도 대석만도 이곳저곳을 둘러본다. 대석만도는 해안선과 능선이 아름다운 섬이다. 개미허리처럼 완만한 능선이 길게 뻗어 있다. 대석만도 역시 60년대만 해도 20-30여호가 살았다고 한다. 지금은 봄-가을까지 불과 4-5가구 만 섬을 지키고 있다. 마을 우측에는 조그만 규모의 초등학교 분교터도 그대로 남아 있다. 학교마당에는 노오란 선인장 꽃들이 방문객들을 반겨준다. 대석만도 건너 소석만도에도 사람이 산 흔적이 보인다. 전봇대도 몇 개 보이고 폐가 한 채도 눈에 들어온다.
다음날 아침 마을길 산책에 나선다. 포구에 안개가 자욱하다. 한 폭의 동양화 같은 풍경을 그려낸다. 안마도는 선착장 정면에서 바라보면 건산(145m), 뒷산(후봉, 177m), 성산봉(막봉,167m) 등이 섬의 북쪽에서 동쪽을 돌아 남쪽으로 연결되는 비교적 기복이 큰 산지를 이루고 있다. 어항 모양으로 오목하게 포구를 감싸고 있는 지형이라 전경이 아름답다. 취락은 섬의 서쪽 만입부에 있는 월촌리와 신기리의 등촌·곰몰·새터·불등·큰당너머 마을 등에 분포한다. 인구는 현재 65가구, 200여 명이다.
선착장에서 우측 해안길을 따라가면 제일 먼저 안마도치안센타가 보이고 곧 이어 안마도 발전소, 보건진료소 및 공중목욕탕 등을 만난다. 섬에 공중목욕탕이 있는 게 특이하다. 낙월면 안마출장소 옆에는 법성초교 안마분교장도 보인다. 안마분교는 재학생이 없어 2014년부터 2016년 2월 29일까지 2년간 임시휴교 상태이다. 분교장에서 조금 더 가면 월촌경로당 옆에 거대한 팽나무가 서 있다. 이 팽나무는 300-400년 된 것으로 추정된다.
팽나무 앞 평지에는 저수지도 보이고, 논밭과 함께 집들이 여기 저기 산재하여 예쁘고 아기자기한 섬마을을 이루고 있다.
아침식사 후 섬 트레킹에 나선다. 민박집에서 우측 해안길을 따라 신기리 및 죽도 방향으로 돌아가는 길을 따라간다. 선착장 뒤 성산봉에서 군기지가 보이는 뒷산을 거쳐 건산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을 걸을 수도 있는데 우리 일행은 일정상 시멘트길로 포장된 산허릿길을 돌 예정이다. 8시 반경인데 포구의 바닷물이 제법 빠져 있다. 갯뻘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몇분 쯤 해안을 따라 돌면 바닷물을 막는 갑문을 만나고 마을로 이어지는 물길도 보인다.
마을에서 건산 허릿길로 들어서면 곧 시멘트길을 막은 철문을 만난다. 소떼들이 마을로 내려오지못하도록 하기 위한 문이다. 사람들은 철문을 열고 들어간 후 다시 막아놔야 한다.
허릿길을 돌다보면 월촌리 선착장과 방파제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고, 길 옆 숲에는 인동초,양지꽃, 마타하리, 나리꽃, 애기똥풀 등 다양한 야생화들이 우리 일행을 반긴다.
산책로 경관이 매우 아름답고 호젓하다. 다만, 시멘트 길 바닥이 온통 소똥 천지인 것이 흠이다. 소똥이 ‘청정의 섬’이라는 이미지를 완전히 망쳐놓은 셈이다. ‘청정의 섬 안마군도’를 지키기 위해서는 소들이 산책로까지 내려오지못하도록 펜스를 설치하거나 구간별로 관리펜스를 설치해놓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허릿길 끝 죽도로 이어지는 제방 아래 해안에는 수십마리의 소떼들이 놀고 있는 모습도 내려다보인다. 어느 섬에서도 볼 수 없는 색다른 풍경이다. 소떼들이 해변에서 해수욕을 즐기는 모습 같다. 산책로의 소똥 만 없도록 잘 관리한다면 ‘소 해수욕장이 있는 섬, 안마도’ 이미지도 관광테마로 괜찮을 것 같기도 하다.
밤에는 별비가 쏟아지고 낮에는 기기묘묘한 바위섬들의 속삭임과 부서지는 파도소리에 숨이 멎을 것 같은 섬 안마도. 1박2일의 짧은 안마군도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면서 안마도에서 태어나고 자란 이신 시인의 고향 시 <별비>를 다시 열어본다.(글,사진/임윤식)
수평선으로 밀감빛 해가 꺼진 후
파도가 해변에 졸음처럼 밀려든다
마을은 모깃불 연기에 묻히고
약주 드신 봉구 아빠는 휘청휘청,
싸리울타리 너머에선 해피가 자욱하게 웃고 있다
(중략)
사람과 마을, 섬과 바다가 마실 가서
해가 되고 별이 되는 밤
병풍처럼 둘러선 곰돌, 등몰, 신기, 선창
월촌, 다섯마을에 구슬같은 별이 떨어진다
멍석에 누워있는 내 얼굴에 별들이 쏟아진다
열한 살, 내 동화의 여름밤에
소나기, 소나기
뼛속까지 적시는 별비가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