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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평군(가평군) 화야산(禾也山, 754.9m)을 가다.
글 쓴 이 都 寅 高 枓 永
5월23일 간밤에는 주룩 주룩 내리던 단비가, 새벽에는 보슬 보슬 소리없이 옷깃을 적신다. 비가오면 참가인원이 적을텐데...(36몀) (동참하신 모든님들에게 감사를 드리면서) 안도(安堵)의 한숨을 내쉬며... 차는 빗속을 달린다.
선산 휴게소에서 간단히 조반을 들고는 줄곧 내달아 충주호(忠州湖) 부근을 지나고 있는데, 차내는 노래교실로 화기애애(和氣靄靄)하다! 모처럼 좌석에 여유가 있어 뒷자리로 옮겨서 약간 높은자리에 앉으니... 차내 분위기가 한눈에 들어온다.
달리는 차내에서도 어느곳에 자리하느냐에 따라 마음에 다가오는 느낌과 안정감(安定感)이 많은 차이가 있음을 느끼면서 이런 저런 생각으로 잠겨 있는데, 유리창을 때리며 흩어지는 물보라가 오늘은 별로 반갑지 않구나!
여주를 거쳐 37번 국도를 타고 양평을 지나 유명산(862m, 한강기맥상에 있는산) 옆의 선어치 고개를 넘어 설악면(雪岳面)으로 힘겹게 달리니... 고개길은 구~불 구~불 구절양장(九折羊腸) 이로다!
화야산(禾也山)이 가까워 질수록 빗줄기는 오락 가락 가늘어져서 출발기점인 설악면 회곡(檜谷)2리 마을회관 앞에 이르니... 날씨가 개이고 바람도 알맞게 살~랑 살~랑 불어 등산하기에 더없이 좋슴니다!
복이로다! 복이로다! 남산님들의 복이로다! 시계는 거의 12시가 다되어서 준비운동없이 곧장 열지어 오르시니... 대지(大地)는 녹색으로 물들어 한껏 부풀어 있고, 비온뒤라 향기로움과 청정(淸淨)함이 절정에 다달아 있도다!
마을회관을 지나 산행개념도상의 “밤가시” 방향으로 오르니 출발기점을 찾기가 용이(容易)치 않아, 본각사(本覺寺)와 화야산장(禾也山莊)을 지나 “성경통독관” 부근에서 박태옥회원님이 진입로를 발견하여서 모두들 기쁜마음으로 오름니다!
선두로 진입로를 찾아나선 최대장(6-1)님에게 긴급연락(무전기:워키토키,6-2)을 하면서... 박대장(박태옥님 임시대장으로 존칭)님이 등산로를 찾았다고 하니, 후미에서 함께 가시던 황부회장님(6-3), 박영화님, 서부장님, 취산님, 김진여심보살님, 공주님, 행복님 등이 모두 폭소를 하시니 온 산천이 후~끈 후~끈 합니다!
후미(後尾)가 다시 선두가 되어 쉬~엄 쉬~엄 비에젖은 낙엽을 밟으며 조심 조심 20여 분을 오르니, 갈림길에서 화야산 정상가는 방향을 찾기가 쉽지않아 나침반으로 확인하면서 얼마를 더 오르니...
“화야산 어서오십시오”라는 이정표가 보이고, 그 밑에 1Km라 적혀있다.안도의 숨을 내쉬며 편안한 마음으로 다시 오름니다.
선두는 최대장이(6-1), 중간은 필자가(6-2), 후미는 황까페지기님이((6-3) 진행을 도우시니 산행이 순조롭고 바람도 제법 불어서 시원함을 더해 주십니다.
30여 분을 올라 8부능선쯤에서는 경사도 가파르고, 비온뒤라 토산(土山)의 진흙이 쩍 쩍 달라붙어 미끄러지고, 넘어지고, 받쳐주고, 당겨주고 한참을 씨름하여 겨우 겨우 오르시니... 모두들 진땀을 흘리신다.
어떤님들은 검은바지에 흙이 묻어서 얼룩 덜룩하고, 또 다른님들은 엉덩방아를 찧어서 만국지도(萬國地圖)를 그려 놓았슴니다 그려!
모두들 힘겹게 오르면서도 밝은모습으로 웃을 수 있는 것은 날씨가 좋아서제! 지금 대구와 전국에서는 비가 오고 있다는데... 화야산(禾也山)은 등산하기에 더없이 좋은 날씨며, 바람은 쏴~아~ 쏴~아~ 붐니다!
20여 분을 더 올라 정상이 가까워 질수록 바람소리는 더욱 거세어지고, 주변에는 철쭉꽃이 띄엄 띄엄 보인다! 몇 몇 회원님들에게 기념촬영을 해 드리고는 선두로 나아간 최대장에게 연락하니... 지금 막 정상에 도착해 식사를 하려고 한다 면서... “이곳 정상에는 바람도 없고 고요하여 멋지다!”고 하신다.
얼마를 더 올라 정상(頂上)에 도착하니 선착(先着)하신 몇 몇분들은 여기 저기 둘러앉아 식사를 하신다. 함께 들자며 인사를 건네오시니... 푸근한 산인심(山人心)이 온몸으로 느껴집니다!
시계는 벌써 14시에 이르고 시장끼도 더하여서 모두들 도착하는대로 옹기종기 모여앉아 맛있는 도시락을 드시니, 신기하게도 바람소리만 거세게 들릴뿐... 평평한 정상에 식사하는 곳은 고요하고 고요하도다!
과시(果是) 명산의 명당이로고! (사방이 숲으로 싸여서 꼭 단지안에 갖혀있는 형세임) 바람소리는 나는데, 바람을 느끼지 못하니... 이것도 남산님들의 크나 큰 복입니다 그려! 점심을 맛있게 먹고는 잠시 건너편을 바라보니, 취산님께서 손짓을 하신다. 행복님, 공주님도 함께 들면서... 취산님 왈! “세상에서 제일 맛있게 하는 집에서 한 떡”이라며, 공주님의 떡을 권하신다. “체면은 건강을 해친다.”며 몇 개를 먹는데... 이번에는 집사람까지 과일을 가져와 대접하시니... 더는 바랄것이 없슴니다!
식후 잠시 천하를 조망(眺望)하니 시계(視界)는 흐려서 사방을 가늠하기 어렵고, 다만 지척에 정상표석(頂上標石)이 두 개나 서 있다. 하나는 경기도 양평군에서, 또 하나는 가평군에서 세웠는데... 가평군에서 세운 표석에는 754.9m이고, 양평군에서 세운 표석에는 755m로 기록돼 있으니... 지자제(지방자치제)가 시행되고난 후 행정통일이 더욱 어려움을 겪고있는 것 같슴니다.
디카맨 황부회장님의 단체촬영을 마치고, 두 표석(標石)을 번갈아 가며 여러 회원님들에게 기념촬영을 해 드림니다.
이곳 화야산(禾也山)은 백두대간의 오대산 부근에서 서쪽으로 한강기맥을 따라 계방산,오음산, 금물산을 지나 용문산(1157m) 부근에서 다시 북서쪽으로 벽암산(373m), 곡달산(630m)을 거쳐 화야산에 이르고, 이어서 뾰루봉(뽀루봉.709m)을 지나 그맥을 북한강(청평호)에 떨구고 있으니... 이름하여 화야지맥이라 한다.
뾰루봉 가는길은 비교적 순탄하여 걷기가 한결 수월하며, 오후들어 바람은 더욱 세차게불어서... 물기를 머금은 낙엽(落葉)위에는 바람에 부러진 상수리나무 새순들이 온산에 자욱 자욱하다!
무전기로 서로간에 연락을 주고 받으며 여러개의 봉우리를 오르락 내리락 80여 분을 걸어 뾰루봉(709m)에 이르니... 예쁜 이름에 걸맞게 가녀린 표주석(標柱石)과 조그만 바위가 길손을 반겨 주신다!
자세히 보니 뾰루봉(뽀루봉) 역시 예외가 아니어서... 그 표기가 애매하다! 지나온 이정표(里程標)에는 뾰루봉인데, 정상에는 뽀루봉으로 새겨져 있도다!
몇 몇 회원님들에게 사진촬영을 해 드리고 정상을 약간 비켜나 주위를 바라보니, 북서쪽으로는 청평호(淸平湖)의 푸른물결이 언뜻 언뜻 보이고, 그 너머로 가덕산, 북배산 등 화악지맥의 연봉들이 끝없이 펼쳐진다.
비온뒤 山川의 모습은 맑고도 향기로와서 몸과 마음이 동시에 시원합니다. 최대장과 박번님, 구윤서님, 취산님 등은 선발대로 철탑 방향으로 하산하시고, 필자는 좀더 기다렸다가 김유정님, 홍총무님, 윤진석님, 서부장님 등과 합류하여 하산합니다.
뽀루봉(뾰루봉)에서 철탑으로 내려가는 길은 경사도 심하고 험로(險路)라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안전하게 진행할 것을 6-1, 6-3 과 서로간에 연락하면서 20여 분을 걸어 나리니, 뾰루식당으로 내려가는 마지막 봉우리에 닿는다.
꼬리표(시그날)를 여러개 붙여놓고 10여 분을 더 나려와 최대장과 둘이서 얼마를 기다리다 후미에 도착이 너무 지연되고 있어, 최대장은 먼저 하산하여 하산주를 대접할 것을 부탁드리고 필자 혼자서 이런 저런 생각으로 님들을 기다림니다!
바람은 신나게 불어 때로는 몸이 휘청거릴 지경이고, 흔들리는 숲사이로 청평호의 푸른물결이 언뜻 언뜻 보이시니... 불현 듯이 남이섬(南怡島:청평호 상류에 있음)에 얽힌 애틋한 전설이 떠 올라 잠시 옮겨 봅니다.
남이(南怡:1441~1468)는 세조때 장군으로 의산군(宜山君) 휘(彙)의 아들이며, 좌의정 권람(權擥)의 사위이고, 태종의 외손이다. 그는 1457년 17세에 무과에 급제하여 세조의 총애(寵愛)를 받았으며, 이시애(李施愛)의 난에 출전하여 공을 세우고, 건주위(建州衛)를 정벌(征伐)할때도 선봉으로 적진에 들어가 적을 무찔렀다.
이로써 적개공신(敵愾功臣)이 되고, 훈일등(勳一等)에 책록되어 26세의 나이로 병조판서(兵曹判書)가 되었다. 이때 한계희(韓繼禧)는 종실(宗室)이나 외척에게 병권을 주는 것은 부당하다고 간(諫)하였고, 예종(睿宗)이 즉위하자 유자광(柳子光)의 무고(誣告)로 옥사(獄事)가 일어나 처형되었는데...
예종이 즉위한지 얼마 안되어 어느날 혜성(彗星)이 나타났는데, 이때 금중(禁中)에서 숙직을 하고 있던 남이가 “혜성이 나타남은 묵은 것을 없애고 새것을 나타나게 하려는 징조다”라고 말하는 것을 유자광이 듣고 이것을 돌려쳐서 남이가 역모(逆謀)한다고 예종에게 고해바친 사건과 또 하나는 그의 시(詩)에서 꼬투리를 잡아 모함했다고 전해 오니... 잠시 옮겨 봅니다.
백두산석마도진(白頭山石磨刀盡)(백두산의 돌을 칼을갈아 다 없애고)
두만강수음마무(豆滿江水飮馬無)(두만강 물을 말에게 다마셔 없애고)
남아이십미평국(男兒二十未平國)(남아 이십에 나라를 평정하지 못하면)
후세수칭대장부(後世誰稱大丈夫)(후세에 누가 사내 대장부라 하겠는가)
라는 글중에서 미평국(未平國:나라를 평정하지 못하면)을 미득국(未得國(나라를 얻지 못하면)으로 고쳐서 예종에게 고해바치니... 선왕(先王)때부터 남이(南怡)를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예종(睿宗)은 이것을 기화로 마침내 그가 제거(除去)되었다고 하며, 이때 남이를 위시하여 강순(康純), 조경치(曺敬治), 변영수(卞永壽), 변자의(邊自義), 문효량(文孝良), 고복노(高福老), 오치권(吳治權), 박자하(朴自河) 등 과 그의 장인(권람) 및 처족(妻族) 다수(多數)를 죽였다고 전한다.
28세의 짧은 생(生)을 살다가신 님의 일생은 청사에 길이 빛나서, 후세에 많은사람들에게 귀감(龜鑑)이 되고 있으니... 이제사 화야산(禾也山)의 산명(山名)과 뾰루봉(뽀루봉)의 아름다운 이름의 의미를 어렴풋이 짐작이 가며, 그 옛날 님께서 말달리고 활쏘시던 그 현장을 가 볼 수 없슴이 못내 아쉬울 뿐입니다.
30여 분을 기다리니... 마지막으로 황부회장님과 김해진님이 나려오시면서... 뒤에오는 회원님이 더는 없다 하신다. 아직도 하산하지 못한 회원님들이 상당한데... 염려가 되어 휴대폰으로 연락을 해 보니, 뾰루봉에서 길을 잘못들어 8명이 잘내려오고 있다 하신다. 안도(安堵)의 숨을 내쉬며 셋이서 뾰루식당쪽으로 하산합니다.
결국 선발대 4분과 후미에 8분이 다 무사히 도착하시니... 최대장께서 갈증에는 맥주가 최고라며 한잔 권하신다. 그러고는 건배(乾杯)까지 하라시니... “존경하고 사랑하는 남산님들의 건강과 남산의 무궁한 발전을 위하여!!!”
단기 4343년(서기2010년)5월23일
경기도 양평군(가평군) 화야산(754.9m, 755m)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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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화야산 산행에서 체험한 여러가지 에피소드는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 입니다.오오 흩어져 나름대로 산을 하고 고생도 많았지만 한편으로는 보람된 추억이 많은 수도 함께 가져왔다고 생각 합니다.^&^
산행 당일 출발시에는 비가 나렸어요! 한데도, 함께 동참해 주신 모든님들께 다시한번 감사드리오며, 취산님, 김해진님, 황까페지기님의 사진 자료를 많이 활용하였슴니다. 이점 깊이 감사드리오며, 바쁜사정으로 후기가 많이 늦었사오니 이점 널리 이해 바라옵니다.
아... 청평호에서 모터 보트를 타고 휘이 한바퀴라도 돌았으면 최고의 산행이였는데....시간은 기다려 주지를 안해서...
화야산 산행은 추억거리가 많아 영원히 잍혀지지 않을 산행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멋진산행 이였읍니다.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