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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 옴 - 글을 올려 주신분 감사합니다]
색소폰의 발명자 아돌프 색스 아돌프 색스(Adolphe Sax) 본명 : Antoine Joseph Sax 직업 : 색소폰 발명가 가족 : 부 찰스 조셉 색스(악기제조상) 출생일 : 1814년 11월 6일 벨기에 디낭 사망일 : 1894년 2월 4일 프랑스 파리. 학력 : 벨기에 브뤼셀로얄스쿨 벨기에 태생 프랑스의 악기제조업자, 색소폰 발명자
색소폰을 처음 만든 아돌프 색스의 아버지는 벨기에의 디낭 출신으로 그 곳에서는 이미 관악기 제조사로 정평이 나 있는 유명한 악기 제조상이었다. 아돌프는 장인 정신이 투철한 악기상의 아들로 태어난 것이다. 그의 아버지는 아돌프가 어렸을 때 브뤼셀로 사업을 이전했고 그곳에서도 역시 그의 장인 정신은 많은 연주인들에게 감동을 주어 성공적인 사업 확장을 할 수 있었다. 그 당시는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 나가는 것이 당연시되던 시대였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늘 아버지가 하는 일을 곁에서 지켜봐 온 아돌프는 악기 만드는 일과 쉽게 가까워 질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아돌프 색스는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악기를 배워 나갔는데 이는 악기를 만드는 사람이 직접 그 악기를 테스트해야 하기 때문 이라고 한다. 이렇게 다양한 악기를 배운 아돌프 색소는 자신이 배운 악기들의 다양한 특색을 알게 되었고 각각의 악기마다 고유 영역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난 후 자신이 배운, 그리고 당시까지 나온 금관, 목관 악기의 장점만을 살려 새로운 악기를 만들고자 했다. 아돌프 색스는 악기를 배우면서 느낀 점, 즉 목관 악기의 음색과 금관 악기의 풍부한 음량을 하나로 만들 생각을 했고 결국 ‘색소폰’이라는 악기가 탄생하게 되었다. 처음 만든 색소폰은 클라리넷처럼 12음계로 복잡하지 않은 대신 배음을 이용한 옥타브 음을 낼 수 있게 했다. 이러한 옥타브 음을 내려면 관 자체가 기존의 클라리넷보다는 커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나무보다 쉽고 편한 금속으로 원추형의 큰 관을 만들었다. 그러나 몇 번의 실험 결과를 통해 소리를 내야하는 마우스피스는 금관 악기의 것을 사용하면 소리가 너무 가냘프고 자신이 원하는 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터득한 후 나무를 깎아 만들게 된다. 그리고 드디어 베이스 색소폰이라는 결과물이 탄생되었다. 아돌프 색스가 처음으로 만든 베이스 색소폰은 1842년 베를리오즈에게 보내졌고 1844년, 관현악단에서 처음으로 대중들 앞에 선보였다. 이후 1846년 3월 20일에 특허를 따내게 되었고 베를리오즈의 오페라 곡에 처음으로 사용된다. 이후 아돌프 색스의 심혈을 기울인 실험은 꾸준히 계속되어 베이스 색소폰보다 조금 작은 색소폰을 만들 계획을 세운 뒤 큰 원추형의 관을 조금 작게 만들고 길이 또한 줄이게 된다. 이 악기가 현재 대중들에게 청아한 소리로 사랑 받고 있는 알토 색소폰이다. 알토 색소폰은 1853년경에 나온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윌리암 프라이의 교향곡에 사용되었다. 알토보다 조금 후에 나온 테너 색소폰은 비제의 ‘아를르의 처녀’에 사용되면서 그 진가를 인정받기 시작했다. ‘아를르의 처녀''에는 테너 색소폰 독주가 있었는데 이 연주 이후 많은 테너 색소폰 연주 지망생들이 테너 색소폰을 구입하려고 아돌프의 집으로 찾아와 그의 집 앞에 긴 줄을 서는 일대 장관을 연출했다고도 한다. 이렇게 탄생한 색소폰은 교향곡에도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그 진가를 발휘하기도 했지만 소리의 울림과 화려한 사운드로 군악대에서 사용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교향곡과 오페라 등 고전 음악에서는 점점 그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색소폰은 1900년대에 들어와 미국으로 건너오게 되었고 남북 전쟁 이후 헐값에 불허 받은 악기로 연주하던 흑인 브라스 밴드에게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주로 댄스 밴드와 고적대에서 사용되기에 이르렀으며, 현재 우리 시대 대부분의 모든 음악에 사용되고 있다. 특히 재즈에서 가장 활발히 연주되는 악기로 자리 매김 하게 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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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소폰은 1940년대 초 벨기에 태생의 아돌프 색스에 의해 창안되었으며 목관악기와
금관악기의 특징을 결합하여 만든 것이다. 처음에 제작된 나라는 프랑스로 클래식에
주로 사용되었으며 독주, 중주, 합주악기로 그 영역을 넓혀 현재는 재즈, 오케스트라 등
모든 분야의 음악에 사용되고 있다.
이글을 쓴 사람은 지구르트 M. 라셔 [Sigurd M. Rascher] 로서 색소폰의 아버지로 불리는 사람으로 클래식
색소폰 계열에서는 로데익스와 더불어 가장 유명한 사람이고 현재의 색소폰의 알티시모 영역을 최초로 개척한 사람
이라고 합니다.
아돌프 색스는 왜 색소폰을 만들었나?
많은 가설들이 있었다. 어떤이는 아마도 세르펜트[역자-트럼펫의 원형으로 알려진 고대 관악기]에서 발전했을
것이라고 주장했고(악기의 진화론?),
반면 다른 사람은 발명자가 악기점에서 어슬렁거리다가 클라리넷의 마우스피스를 뷰글에 끼워서 불어보고 유레카를
외치며 자신을 천재라고 했다고 하기도 했다. 그 어느것도 진실과는 거리가 멀다.
색스의 아버지는 악기 제조상이었다. 벨기에의 디낭출신으로, 그 곳에서 오랫동안 여러가지 관악기를 만드는 일에
종사했다. 아돌프가 어렸을 적에 색스경은 브뤼셀로 가게를 이전했고, 거기서 성공적으로 일을 벌여나갔다.
어릴적부터 아들이 이 일을 배우는 것은 당연하게 여겨졌다. 또한 그 당시에는 만든 사람이 직접 테스트를 해야
했으므로, 어린 아돌프는 일찍이 악기를 배웠다.
곧 그는 현악기와 관악기, 또 금관과 목관악기의 다양한 차이를 알게 됐다. 즉, 현악기는 관악기와 비교하면 대개
음량이 빈약한 편이며, 또한 목관악기도 금관악기와 비교하면 역시 딸리는 편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차이를 음색을 통해 매 꿀 수 있는 악기를 꿈꾸었다. 이를 위해서는 이런 악기들의 특성을 모두 모아
하나로 묶어야 했다. 이 악기는 현악기의 유연함, 목관악기의 다양한 음색, 금관악기의 풍부한 음량을 모두 지니고
있어야했다. 이제 목표가 정해지자, 실험을 시작했다. 이 새로운 악기는 클라리넷같이 복잡한 12음계 대신에 배음을
통한 옥타브음을 내어야 했으므로, 큰 원추형 관을 필요로 했다. 이건 나무보다 금속으로 만드는 것이 쉬웠다 .
하지만 마우스피스는 금관악기의 것을 사용할 수 없었다. 악기제조에 대한 충분한 지식 덕분에, 커다란 악기일수록
비례가 커지고 쉽게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최초에는 베이스 색소폰을 만들었다. 이 악기를 1842년 베를리오즈에게 보여 주었고 1844년에 색소폰
으로는 처음으로 관현악단에 포함되어 시연되었다. 또 같은 해 오페라 곡에 포함되었고, 그 후 1846년 3월 20일,
특허를 얻었다. 색스는 이 시기에 이미 색소폰의 모든 계열을 만들 계획이 있었으나, 다른 악기들은 후에 완성되었다.
1853년 윌리암 프라이(William H. Fry)가 그의 교향곡에 알토를 사용한 것으로 보아 알토 색소폰은 이때쯤 완성되었을
것이다. 이 작곡가는 일년뒤 짧은 소품에 테너를 사용했다.
비제의 "아를르의 처녀"(1872)의 알토를 위한 아름다운 독주는 이후 모든 색소폰 애호가들에게는 친숙한 것이다.
1840년대 파리에서의 첫 출현 이후 색소폰은 모든 음악애호가들의 사랑을 받았다.반면 전통적인 악기제조상들은 이
새로운 경쟁자의 등장에 위협을 느끼고 악의에 가득찬 반대와 이러한 변화의 물결에 동조하는 많은 음악가들에 대한
공공연한 사보타지로 대항하였다.
그러나 새 악기에 대한 열정은 반대와 사보타지의 행렬을 뒤덮었다. 색소폰에 스며있는 아돌프 색스의 천재성은 이
모든 것을 능가한 것이다. 색스 자신도 한때 치유 불가능한 암으로 고생했으나 [역자 - 아돌프 색스는 입술암에
걸렸다고 합니다. 주위에서 수술을 권유했으나 입술을 잘라내면 악기를 테스트할 수 없으므로 이를 거부했고 민간요법
으로 기적적으로 고쳤다고 합니다.] 그를 비난하던 사람들보다 더 오래 살아 우리에게 그의 꿈과 노력, 업적을 누리게
해주었다.
1830년 열다섯살의 나이에 브뤼셀 박람회에 상아로 만든 클라리넷과 플룻을 출품했다. 이것들은 굉장히 좋은 제품으로
평가받았다. 스무살이 되자 그는 최초로 쓸만한 베이스 클라리넷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 일은 많은 칭송을 받았고
곧 그 시대의 훌륭한 많은 곡들에 사용되었다. 그는 또 피스톤 밸브의 원리도 연구했고 이를 뷰글에 적용해서 색스혼(saxhorn)계열을 만들었는데, 지금은 다른 이름으로 고적대에 사용된다.
코넷과 바리톤이 그것이다! 그의 손을 거쳐 여러방식으로 개량되지 않은 고적대의 악기들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그의 연주 능력은 의심할 바 없이 이 위대한 악기 제조 능력에 일익을 담당했는데, 새로운 실험을 해보고 바로 그
악기가 실용적인지 연주하여 평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기초적인 법칙을 잘 이해하고 있는 것, 악기의 비례의 음향학적 결과를 결정할 수 있는 능력등은 그로 하여금 정확한
악기의 제조를 가능케 함으로서 오늘날까지도 그 악기들이 살아남게 되었다.
이제 한발짝 앞서나갈 시기가 되었다. 현존하는 악기의 개량뿐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음색의 창조를 해야하는 것이다.
이 앞에 색스가 새로운 악기가 능가하기를 바랬던 현악기, 목관과 금관악기사이의 음색의 차이를 이야기했다.
이전의 그의 업적들은 이를 향한 준비에 불과하듯이 보인다.
색소폰을 만드는데 대한 색스 자신의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그러나 그의 친구인 카스트너의 다음 기록에 의하면
파리에 선보이기 전에 브뤼셀에서 완성되었던 것 갈다.
"색스는 1841년 브뤼셀 전시회에 색소폰을 보냈었다. 그건 녹색으로 포장되었는데 누군가 고의적으로 소포를 험하게
다루었고, 악기는 심하게 망가져서 전시될 수 없었다."
아무리 점잖은 사람에게도 이건 심한 일이었다. 그 뒤로 파리는 그의 집이 되었다. 파리에 갔을 무렵 그는 28세였고
이후 죽을때까지 52년을 그곳에서 보내었다. 그는 파리에 가게를 열고 일을 시작했다. 색스는 작곡자들을 만나서
그의 악기점에 와서 색소폰 소리를 들어보라고 부탁했다. 대부분은 의례적인 인사만 건내왔다.
처음 방문해준 몇 사람중 하나가 핵터 베를리오즈였는데, 그는 이 새 악기의 가능성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였다.
만약 그가 베토벤이 죽은 몇 년 뒤에 환상 교향곡을 작곡하지 않았거나 그 이후 악대를 위한 장송 교향곡을 작곡하지
않았다면? 색스의 작업실에서 베를리오즈는 모든 악기의 소리를 들어보고 이 젊은 발명가에게 많은 질문을 해댔다.
며칠 뒤 베를리오즈가 정규적으로 기고하는 Journal des Debats 에 실린 이 만남에 대한 글은 색스에게는 큰 기쁨
이었을 것이다. 베를리오즈는 색스에 대해 "생각하고 행동할 줄 아는 사람" 이라고 짧은 인상을 적고 새로운 소프라노와
베이스 클라리넷에 대한 기술을 한뒤, "색소폰의 출생증명" 이라는 글을 썼다.
"발명가의 이름을 딴 색소폰은 오피클레이드(ophicleide) 와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으며, 19개의 키가 있는 금관악기
이다. 마우스피스는 다른 금관악기와는 달리 베이스 클라리넷의 마우스피스와 비슷하다. 따라서 색소폰은 리드가 있는
금관악기라는 새로운 종류의 악기들의 선조가 될것이다.
음역은 낮은 음자리의 아래쪽 B플랫에서부터 3옥타브의 영역을 가지고 있다. 운지는 플룻이나 클라리넷의 제2음역 과
비슷하다. 음색은 매우 특이해서, 내 생각에는 현재로선 색소폰의 음색에 비교할 만한 금관악기는 없는 듯하다.
그건 풍부하고 유연하며, 떨림이 좋으며, 매우 강력하다. 또한 강약의 조절이 쉽다. 내가 들어 본 바로는, 오피클레이드의
저음과 비교하면 음정과 소리의 명확함이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이런 소리의 특성은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현재의
교향악단의 어떤 음색과도 닮지 않았다.
다만 베이스 클라리넷의 저음 E,F음만이 좀 비슷하다 하겠다. 리드가 있어서, 소리의 강도를 늘이거나 줄이는 것이
가능하다. 고음역의 소리는 매우 떨림이 좋아서 멜로디의 표현에 잘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악기는 빠른 진행이나 복잡한 아르페지오에는 잘 맞지 않는다. 그러나 저음부의 악기들은 빠른 진행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불평하는 대신, 우리는 색소폰을 오용해서 이 악기가 음악적으로 무용지물이 되어 그 놀라운
본성을 파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기뻐해야 할 것이다."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이때 발명된 악기는 베이스 색소폰이었다. 이 악기를 위한 악보는 오늘날과는 달리 낮은음
자리표에 기보되었다. 베를리오즈의 음역에 대한 기술은 이점을 염두에 두어야한다.
음역이 3옥타브였다는 것도 놀랄것이 없는게, 색스는 플룻과 클라리넷의 배음역에 익숙해있었고, 이 기술을
색소폰에도 당연히 적용했었다. 다른 작곡자와 음악가들에게 색소폰을 선 보였을 때, 오케스트라에서 음역을 따지지
않아도 좋다고 언급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말을 제대로 알아들은 사람이 몇이나 있었을까! 그 당시에는 배음음역을 포함해서 색소폰의 음역을 철저히
연구한 사람이 없었던 것 같다. 이것은 한 동안 잊혀 졌고 심지어는 실수라거나 악기의 이상으로 치부되었다.
오늘날의 우리는 더 많이 알고 있다. 모든 학생들은 모든 키를 막은 상태로도 매일같이 배음역을 연주한다.
즉 : 낮은 Bb의 핑거링을 하고 중간 F음이나 그 위의 Bb음을 낼 수 있다. 이 소리를 들으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는 점점 더 많은 배음을 낼 수 있고, 다른 것들과 합쳐서 이전의 "낡은 영역" 이상을 정복할 수 있다.
나의 "Top Tones" (1941) 에 다양한 기본 연습과 설명, 운지표등 을 적어놓았다. 이후 이에 대한 많은 저술이 나왔다.
고음 F 이상의 음역에 대한 악보들은 매우 많으며, 여기에는 약간만, 다른 곳에는 한 옥타브 이상이 나와 있다.
하지만 이를 접하는 모든 학생들이 다 배음역을 습득한 것은 아니다. 이 음역을 피해야할 이유는 없다.
이런것을 실제 협연이 아닌 연습곡으로 작곡해준 작곡자들에게 고마워하자. 전문 연주는 어떤 경우에도 작곡자의
요구에 충분히 응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할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다 른 악기의 연주자들이 얻은 찬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악기에 대한 작품은 모든 카테고리에
다 있다. 수많은 소나타, 협주곡, 조곡, 심지어 소품도 있다. 대부분은 알토를 위한 것이지만, 점점 더 많은 우호적인
작곡가들이 테너,소프라노, 심지어 바리톤과 베이스을 위한 곡을 쓰고 있다.
또 이제는 색소폰 4중주단을 위한 곡들도 많이 나오고 있다.
대부분의 곡은 SATB, 아니면 AATB의 구성을 가지고 있다. 사실 1932년의 베를린 공연 이래로, 사중주단을 만들만
한 색소폰 애호가들을 만나기는 힘들었다. 1940년의 뉴욕에서도 비슷했다. 더 큰 악단을 위한 오리지날 곡도 매우
드물다.
하지만 바로크 음악을 위시한 많은 악곡들이 나오고 있다. 그 시대의 작곡자들은 주로 멜로디 조성을 염두에 두었었고
,따라서 그들의 작품은 잘 조화되어 있고 실내악으로 적합하다.
대부분 SAATBB의 편성으로 충분하지만, 소프라노나 베이스를 끼워넣는 것도 가능하다.
또한 다른 현악기나 목관, 금관악기와 같이 편성한 실내악도 많이 있다.
비록 아직까지는 오케스트라에서 색소폰이 필수불가결한 것은 아니지만, 자주 사용되고 중요한 부분을 담당한다.
이를 사용했던 작곡자들은 카스트너와 플라이를 선두로, 비제, 마세네트,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힌델민드, 호네거,
미요,프로코피에프 등의 수백작품이 있다.
고적대에서는 이미 필수 불가결 해졌다. 작은 기적이다! 아돌프 색스의 마음속에 새로운 악기의 개발의 불을 밝혔던
것도 이 목관악기와 금관악기의부조화가 아니였던가? 이제 오피클레이드의 자리를 메꿔줄(베를리오즈의 인용문을
보라) 색소폰이 있다.
그는 그래서 프랑스 군악대의 책임자였던 루미그니 장군에게 이점을 이야기 했다.
"일반적인 군악대" 와 색스에 의해 편성된 새로운 악대와의 콘테스트가 도심의 공터에서열렸다.
이 악대사이의 대결은 많은 군중들에게 둘러싸여 벌어졌는데, 35명이였던 정규 군악대에 비해 28명의 적은 편성을
보인 색스의 새 악대였지만, 그날의 승리의 깃발을 휘날렸다.
그 이후로 프랑스 군악대에는 색소폰이 공식적인 지위를 얻게되었고, 곧 다른 모든 나라도 이를 따라했다. 그리곤
오래지 않아 유럽과 미국의 모든 일류급악대에서 색소폰이 쓰였다.이미 살펴 보았듯이, 오랬동안 색소폰은 특정한
음악에만 사용되었다.
- 베를리오즈의 찬양, 카스트너의 성서적주제를 가진 오페라, 플라이의 크리스마스 교향곡, 도데의 연극을 위한
비제의 무대음악, 그리고 더 많은 오페라, 교향곡, 마침내 많은 유명한 고적대까지. 최근의 수 십년 이전에는 이미
80년의 역사를 가진 이 악기를 댄스음악에 쓸 생각을 한 사람을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곧 상황은 일천해서 이 부드럽고 달콤한 음색은 찢어지는 트럼펫소리, 시끄러운 드럼, 바쁘게 움직이는
스텝과 어지러운 대화소리와 만나게 되었다.
목관악기의 소리는 마우스피스에서 만들어지므로, 단지 그것만 바꾸는 것이 합리적 이였다.
- 색스가 의도적으로 만들었던 크고 둥근 내부구조를 좁고 평평한 벽을 가진 클라리넷의 마우스피스와 거의 다를바
없는 형태로. 몸체와 마우스피스의 아름답고 일정한 원추형의 일체감은 이제 원추형의 몸체와 평평한 내부구조를
가진 마우스피스의 이형으로 나뉘어졌다.
이제 더 이상이 악기는 초기에 음악가들을 매혹시켰던 적절한 배음역을 지닌 달콤한 음색을 지니지 않았다. 하지만
색소폰은 공격적이고 날카로운 고유음색을 지닌 채로 시끄러운 댄스밴드의 토양에 서서 곧 주요주자로 자리를 매겼다.
한편, 이런 발전과정을 통해 음악가들 사이에서의 평판은 점점 나빠졌고, 댄스뮤직에서처럼 활발한 위치에 서지 못했다.
그 고귀한 기원은 모두 잊혀졌고, 이제 시끄럽고 울부짖는 댄스밴드의 악기로 알려져서 중요한 음악가들의 관심에서
제외되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이런 중요한 음악가들의 지속적인 노력과 인내, 그리고 이미 언급한 다른 두 요소의
결합이다.
아돌프 색스가 디자인한 바른 마우스피스와 예술적으로 적절한 작품. 그러나 이런 구체적인 사안은 이전처럼 경우에
따른 편의주의적 타협이 생겨서 다시 얻은 모든 것들을 잃지 않도록 지혜롭게 해결하고 이루어야할 것이다.
비록 80년의 세월이 걸렸지만, 모든 색소폰 애호가들은 이제 이런 점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악기에 대한 고한 자긍심 -
원한다면! ; 아돌프 색스가 고안한 마우스피스 - 사용할 수 있다면! (*) ;
그리고 모든 카테고리의 많은 멋진 곡들 - 연주할 수 있다면!
베를리오그, 메이어베어, 카스트너, 할레비, 로시니와 다른 많은 유명한 음악가들은 색소폰이 "더 즐거운" 소리로
"값을 메길 수 없는 만족" 을 줄 미래를 이야기 했다.
이제 그 미래가 다가왔고 우리는 그 안에서 살 수 있는 특권을 지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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