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령산은 전포동 진산이다. 서면 전포동에서 사십 분 내지 한 시간 남짓 가파른 산길을 올라가면 정상이다. 차를 타고 가는 길도 있다. 정상에 오르면 부산이 손바닥 안이다. 서면을 비롯해 남포동과 영도, 사직동과 동래, 멀리 낙동강까지 보인다. 맞은편 백양산 양옆으로 엄광산 수정산 구봉산 금정산 등등 엔간한 부산 산은 다 보인다.
몸을 돌리면 광안리 바다. 바다를 가로지른 광안대교가 장관이다. 해안 산책로가 전국 어디 내놓아도 손색없는 용호동 이기대 역시 장관이고 햇살 받아 반짝이는 바다 물결이며 해운대 신시가지 하늘을 찌를 것 같은 고층아파트도 장관이다. 날 맑은 날은 수평선 언저리 대마도까지 보이리라. 황령산 정상은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탁 트인, 전국 어디 내놓아도 손색없는 전망을 갖춘 산이다.
탁 트인 전망을 갖춘 산답게 정상에는 봉수대가 있다. 봉수대는 유사시 연기나 불을 피워 인근에 전파하는 일종의 통신시설. 조선시대에도 있었고 고려시대에도 있었다. 황령산봉수대도 역사가 깊다. 밝을 때는 연기를 피우고 어두울 때는 봉홧불을 피워 위급상황을 인근 봉수대에 알렸고 인근 봉수대는 황령산봉수대 신호를 보는 즉시 연기나 불을 피워 그 인근에 알렸다. 그렇게 해서 나라님 계신 한양까지 삽시간 전파했다.
황령산봉수대 신호를 이어받은 봉수대는 여럿이다. 동쪽 해운대 간비오산봉수대, 서쪽 엄광산봉수대와 구봉산봉수대, 북쪽 금정산 계명봉수대다. 황령산 신호를 받은 봉수대에서 연기나 불을 피우면 그 인근 봉수대에서 이를 받아 다시 연기나 불을 피웠던 것이다. 부산 봉수대 주 기능은 일본 왜구 동태 감시. 수시로 출몰해 양민을 괴롭히고 재산을 약탈하는 왜구 무리가 수평선 언저리 출몰하��봉수대 신호로 이를 알리고 대비했다.
임진왜란 첫날과 그 전날에도 그랬을 것이다. 몇 백 척 왜선이 다가오자 황령산봉수대는 황급히 연기를 피우고 불을 피워 인근에 알렸을 터. 황령산 신호를 기점으로 전국 방방곡곡에서 연기가 피고 봉홧불이 폈을 터. 봉수대 아궁이를 어루만지면 그날의 불기가 여직 뜨겁다. 당연히 봉수대는 일본에겐 눈엣가시. 조선을 집어삼키는 과정에 가장 먼저 한 일 하나가 봉수대 해체였다. 1898년 기능을 상실했다.
이쯤에서 부산시민의 날 이야기를 꺼내자. 지난 호에 이어 두 번째다. 부산시민의 날은 이순신 함대가 왜선을 대파한 부산포해전을 기념한 날. 이순신 장군이 임란 첫해 음력 9월 1일(양력 10월 5일) 쓴 난중일기는 지금 읽어도 손 떨린다. 이순신 함대가 부산 앞바다를 지나다 황령산 언덕빼기 포구에 정박한 왜선 470여 척을 발견해 100척 넘게 쳐부수었다는 승전기다. 긴장의 연속인 전쟁 와중이라 다른 날 일기는 대체로 짧은 반면 이날 일기만큼은 매우 길다. 승전의 기쁨이 그만큼 컸으리라.
올해 부산시민의 날은 33회째. 행사는 풍성하다. 그런데 뭔가 가슴 파르르 떨리게 하고 두 주먹 불끈 쥐게 하는 행사가 빠진 것 같아 아쉽다. 그래서 하는 말. 시민의 날 하루 만이라도, 한 주일 만이라도 황령산봉수대에 연기를 피우고 봉홧불을 피우면 어떨까. 화재 위험이 걱정된다면 같은 효과를 내는 레이저 빔을 쏘면 될 듯.
얼마나 장관이겠는가. 황령산봉수대 신호를 필두로 부산 전 봉수대가 연기를 피우고 불을 피운다면, 그리고 입소문이 난다면 곳곳에서 관광객이 몰려오리라. 무엇보다 시민의 날이 어떤 날인지 모르는 세대에게 부산시민에게 국방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부산포해전 대승 자긍심을 심��주지 싶다. 부산 전 봉수대가 동참하는 날이 언젠가는 오리라 믿으며 다가오는 부산시민의 날, 우선은 부산진구부터 시작하자. 황령산봉수대부터 불을 피워 부산 모든 봉수대에, 한국 모든 봉수대에 불을 피우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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